2021년 12월호

‘탈원전 문제’ 성토 나선 정재훈 한수원 사장, 2년전에는 원전 폐쇄 선봉

前 “월성1호기 돌릴수록 손해 본다” 後 “한수원은 월성1호기 가동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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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1-12-3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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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탈원전 결정 집행해 온 정재훈 한수원 사장

    • 국정감사에서는 “원전 필요하다” 발언 잇따라

    • 국감 예비 답변에는 ‘원전 지지’ 없어

    • 일각선 “탈원전 책임 회피 아니냐” 지적도

    • 檢 “월성원전 조기 폐쇄에 정 사장 큰 역할”

    • 2018년 국회서는 “월성1호 돌릴수록 손해”

    • 정 사장 “2019년부터 원전 필요하다는 주장 펴왔다”

    • 한수원 “월성1호기 돌리고 싶었으나 원안위가 막아”

    2018년 6월 30일 한수원 이사회 의결을 거쳐 가동이 중단된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의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동아DB]

    2018년 6월 30일 한수원 이사회 의결을 거쳐 가동이 중단된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의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동아DB]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정부 정책이나 전력 수급 문제를 떠나서 원자력 생태계만을 따져본다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CEO로서는 신한울 3·4호기가 건설 재개가 돼서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갖고 있다.”

    10월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기정위) 국정감사에서 정재훈(61) 한수원 사장이 남긴 발언이다. 신한울 3·4호기는 2017년 2월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10월 공사에 돌입했지만,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에서 건설 보류 결정을 내려 지금까지 공사가 중단된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다.

    한 번이 아니었다. 정 사장은 10월 20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 국감에서도 “(원전 없이 탄소중립 달성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 밝혔다. 정 사장의 발언에 원전업계는 물론 한수원 관계자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한수원은 이날 국감에 대비해 예비 답변 자료를 준비했지만, 정 사장의 발언은 이 예비 답변에는 적혀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도 11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저는 원래 답변 자료를 보고 대답하지 않는다. 소신껏 내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 밝혔다.

    일부 원전업계 관계자들은 정 사장이 현 정부와 선긋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정권 말 탈원자력발전(이하 탈원전) 정책 책임에서 비켜나가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것. 정 사장은 월성1호기 원전 폐쇄 결정,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등 현 정부의 탈원전 행보에 적극 가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도 정 사장을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과정 중 배임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전력업계와 관가에서는 정 사장이 평소의 소신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관료 출신이지만 현장 중심의 경영을 선호해 원전에 대한 인식이나 생각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과연 정 사장의 발언은 선긋기일까, 뒤늦은 소신일까.



    경제성 평가 문제 알면서도 이사회에 감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 사장과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간의 관계부터 살펴봐야 한다. 2018년 4월 4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청와대에 ‘원전 조기 폐쇄 추진방안 및 향후 계획’이라는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는 “한수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판단돼 조기 폐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감사원 감사 결과, 이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10월 22일 검찰에 이 사건을 수사 의뢰했고, 검찰(대전지검 형사5부)은 11월부터 이 사건에 대해 수사한 뒤 올해 6월 30일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된 인물인 채희봉 전 청와대산업정책 비서관,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 그리고 정 사장을 기소했다.

    정 사장이 한수원의 사령탑으로 임명된 시점은 4월 5일. 따라서 경제성 평가와 직접적 관계됐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한 2018년 6월 15일 당시 사장이 정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의사회 의결이 아니었다면 2018년 9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운영변경허가를 기다려야 했다.

    검찰은 이사회 의결 과정에서 정 사장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사회 의결을 일주일가량 앞둔 시점에 한수원 직원이 정 사장의 지시를 받고 한수원 이사진에게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해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사전 설명을 했다는 것. 문제는 정 사장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의 발단이 된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2020년 10월 과기정위 국감에서 정 사장은 월성1호기 폐쇄에 대해 “(2018년) 5월 10일 ‘삼덕회계법인(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에서 변수를 잘못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검찰 공소장에도 “한수원이 월성1호기를 즉시 폐쇄하면 한수원 이사들에게 배임 등 민·형사상 책임이 우려된다는 내부 검토 결과를 산업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검찰은 “정 사장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에 가담해 한수원에 1481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그를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월성1호기 폐쇄 어쩔 수 없었다”

    정 사장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도운 이유는 정부의 탈원전 기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8년 7월 산자위 회의에서 벌어진 정 사장과 박맹우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과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아래는 박 전 의원과 정 사장간의 일문일답.

    박 위원: “월성 1호기 왜 폐쇄 결정했습니까?”

    정재훈 사장: “월성 1호기는 저희들이 갖고 있는 기준에 의하면 경제성이 없는 걸로 판단이 됐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박 위원: “그렇게 평가하는 데는 결과를 정해 놓고 하는 용역(경제성 평가) 그것 맞습니까?”

    정재훈 사장: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공기업입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정해진 내용을 그대로 시행합니다. 현재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월성1호기가) 빠져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 사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훈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월성1호기를 가동할수록 손해가 난다고 생각하시냐”는 질문에도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지점만 보면 정 사장은 올해 국감에서만 원전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 사장은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이번 국정감사 발언은)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2019년부터 계속 (국정감사나 국회 상임위원회에 출석해)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고 밝혔다.

    2019년 10월 과방위 국감 회의록을 보면 정 사장이 원전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답변이 있다. 정유섭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전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석탄을 줄이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정 사장은 “포트폴리오를 그렇게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 답변을 제외하고 한수원은 “8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2019년 7월 국회 과방위 회의에서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한수원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보류를 두고 (신한울3·4호기) 폐지 혹은 건설 재개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 사장은 “우리(한수원)가 정부에서 받은 내용은 신한울 3·4호기를 전력 수급에서 제외하는 것이었다. 이를 (한수원이) 임의로 풀 수는(건설 재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경북 울진에서 가동 중인 한울원자력발전본부 전경.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 2호기가 가동 중이며 신한울 3, 4호기도 건설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현재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울진에서 가동 중인 한울원자력발전본부 전경.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 2호기가 가동 중이며 신한울 3, 4호기도 건설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현재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한국수력원자력]

    2년 만에 월성1호기 대한 생각 180° 바뀌어

    정 사장의 원전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한수원 관계자는 “(올해 국감에서 정 사장의 발언을 듣고) 놀라긴 했으나, 평소에 하던 이야기와 크게 벗어난 내용은 아니었다”며 “지난해부터 부쩍 (정 사장이) 내부 회의에서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고 밝혔다.

    2020년 10월 산자위 국감에서는 정 사장이 직접 월성1호기에 대한 비화도 밝혔다. 이날 국감에는 한수원의 이사였던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조 교수는 이날 “한수원이 2017년부터 월성1호기를 없애려 아예 발전기를 작동시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정 사장은 “저희가 수차례 공문으로 원안위에 (월성1호기를) 돌리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며 “수소감지기, 콘크리트 외벽의 철근 노출 등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원안위에서 가동을 막았다”고 밝혔다. 2년 전 “월성1호기를 운용할수록 손해가 난다”는 답변과는 정반대의 이유다.

    한편 정 사장이 탈원전에 가담했던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발언을 고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강창호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노조 지부위원장은 10월 27일 “정 사장의 직위를 해제해 달라”며 감사원에 감사 제보를 한 사실을 공개했다. 강 위원장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정 사장이 탈원전 활동을 계속 수행해 신규 원전 개발 중단이 지속되며 국가 공기업의 추가적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사장 책임 줄이려 발언 번복한다는 분석도

    강 위원장은 11월 12일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정 사장은) 2018년에는 ‘정부의 시책에 따른 것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2019년 10월 감사원 감사가 시행되자, 정부 시책에 따랐을 뿐이지만 자신이 (탈원전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자신의 탈원전 행보에 대한 책임을 줄이고자 (원전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정 사장은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매번 국회에서 아는 대로 발언했고, 소신 있게 답변했다”고 밝혔다. 또한 정 사장은 10월 7일 과방위 국감에서 (배임)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의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유죄가 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 기소됐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월성1호기 조기 폐쇄는 주민 수용성, 안전성,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사회가 내린 결정이다.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탈원전 #한수원 #정재훈 #국정감사 #신동아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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