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최강욱 ‘암컷’ 발언, 여성단체의 이상한 성명서

[노정태의 뷰파인더] 이해 어려운 양비론 속사정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3-12-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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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정인 겨냥 저열한 여혐 발언

    • 이재명 대응부터 잘못됐거늘

    • ‘주어가 없는’ 질책의 결과

    • 민주당 모두가 ‘빌런’ 돼버려

    • 특별감찰관 부활해야

    “제가 암컷을 비하하는 말씀은 아니고,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입니다.”

    11월 19일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같은 당 소속 민형배 의원의 책 ‘탈당의 정치’ 북콘서트에 참여한 그는 현 정권이 ‘검찰 공화국’이 됐다는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발언을 듣더니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도 보면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며 상식 이하의 표현을 던졌다.

    최강욱의 ‘암컷’ 타령은 처음이 아니다. 바로 전날인 11월 18일도 마찬가지였다. 전북 전주시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책 ‘디케의 눈물’ 북콘서트가 열렸다. 조국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말을 빌려 윤석열 대통령 혹은 윤석열 정부를 ‘침팬지 집단’에 비유했다. “침팬지는 자기들끼리 싸우고 자기들이 내세운 사람을 음모를 꾸며 몰아낸다”면서 말이다. 그러자 최강욱은 “유시민 선배가 그거 하나 놓친 것 같다”며 “적어도 침팬지 사회에선 암컷이 1등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없다”고 한마디 덧붙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놓고 볼 때 최강욱이 ‘암컷’이라는 단어로 지칭한 대상이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윤석열 정권의 배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저열한 여성혐오 발언이다.

    문제는 이 발언을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주요 여성 인권 단체들의 반응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통령실이 ‘김건희 이슈’를 다뤄온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여성주의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정치와 얽힌 채 본연의 소임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9월 18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에게 허위로 인턴증명서를 발급했다는 혐의를 받는 최강욱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날 판결로 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9월 18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에게 허위로 인턴증명서를 발급했다는 혐의를 받는 최강욱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날 판결로 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폭락’한 여성층 지지율

    ‘암컷 발언’은 거센 후폭풍을 불러왔다. 기관과 매체마다 차이가 있으나, 해당 발언이 불거진 후 수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전반적으로 국민의힘이 지지율에서 민주당을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의 지지율에 가시적 타격이 있었다. 가령 알앤써치가 CBS노컷뉴스 의뢰로 11월 22일~24일 전국 성인 남녀 1013명을 설문해 같은 달 26일 공표한 주례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무선전화 RDD 100%·전화ARS 방식·응답률 2.2%·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해당 기간 민주당 지지율은 여성층에서 7.8%포인트 하락했다. 가히 ‘폭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렇듯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것은 최강욱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민주당 전체가 힘을 합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시간 순서대로 따져보자. 문제가 터진 지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응이 나왔다. 11월 21일 이재명은 페이스북을 통해 내놓은 입장문에서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관용 없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재명의 대응부터가 잘못됐다. “부적절한 언행” “태도가 본질”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으실 것” 같은 원론적 표현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정작 문제의 발언을 던진 최강욱의 이름은 이재명의 발언 속 어디에도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주어가 없는’ 질책이라는 소리다.

    당대표의 입장문이 나온 바로 다음날인 11월 22일, 암컷 발언과 관련해 또 다른 설화가 터진 것은 그런 면에서 볼 때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남영희 당시 부원장은 유튜브 ‘박시영 TV’에 출연해 “그 말을 왜 못하는가”라며 “그것을 빗대서 ‘동물농장’에 나온 상황을 설명한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됐단 말이냐”라며 최강욱을 두둔하고 나섰다. 양문석 전 민주당 통영·고성 지역위원장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암컷) 표현의 맥락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를 지목한 ‘비유’였다”며 최강욱의 편을 들었다. ‘암컷’을 “여성 일반을 지칭하며 여성비하로 읽어야 하는 보통명사인가, 특정인을 지목하는 정치적 비유로 읽어야 하는 고유명사인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반발이 쏟아지자 결국 남영희는 11월 24일 민주연구원 부원장직을 내려놨다. 11월 30일 현재 양문석의 페이스북에는 문제의 게시물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사라졌거나, 같은 일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막상 최강욱 본인의 태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11월 28일 ‘박시영 TV’에 출연한 최강욱은 김건희가 명품백을 받았다는 의혹을 거론하며, 그런 문제 대신 본인의 암컷 발언을 지적하고 있는 언론을 탓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렇게 빌런인가”라고 되물었다.

    앞서 살펴본 맥락을 되짚어보면 최강욱의 억울함도 이해가 된다. 최강욱이 ‘빌런’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최강욱 혼자만 빌런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최강욱은 조국 전 장관 아들 허위 인턴확인서 작성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8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음 총선에서 피선거권이 없다. 그런 최강욱에게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려놓고, 그마저도 이름을 적시하지 않은 두루뭉술한 ‘엄중 경고’를 날린 민주당은 결국 모두가 빌런이 되고 만 셈이다.

    사과를 ‘우리 여성 모두’가 대리 수령?

    지난해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통합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양문석 당시 경남도지사 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통합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양문석 당시 경남도지사 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암컷 발언’은 최강욱이라는 한 사람의 문제도, 그가 속해 있는 민주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어디까지 뻗쳐 있으며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 나쁜 것은 우리 사회의 너무 많은 영역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탓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제대로 된 평가와 반성이 나오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앞서 인용했던 양문석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되짚어 보자. 그는 ‘암컷’이 여성 일반에 대한 비하로 쓰일 때와 특정인을 향한 ‘정치적 비유’일 때를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여성에 대한 공격적 발화로 징계를 당하는 것을 납득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비판’ 내지 ‘풍자’이므로 처벌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장려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조금만 따져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미국에서 어떤 백인이 흑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까마귀’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흑인 모두를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비유일 뿐이므로 괜찮다는 반론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검은 피부색을 짚어 특정인을 폄하하기 위한 표현으로 어떤 흑인을 ‘까마귀’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다면, 누군가의 성별을 지목해 그를 폄하하기 위해 ‘암컷’이라고 부르는 폭언 역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드는 이유가 있다. ‘여성 일반’을 향한 공격적 발화와, 그 여성 중 누군가를 향한 공격적 발화를 구분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양문석이 최강욱을 옹호하기 위해 그 폭언의 대상자를 김건희로 국한했다면, 반대로 여성단체들은 최강욱을 비판하면서도 폭언의 직접적 피해자인 김건희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김건희를 ‘여성 일반’과 떼어놓는 것은 민주당과 여성단체가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의 ‘주어 없는 질책’이 나왔던 11월 21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역시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강욱은 여성이 암컷으로 보이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200자 원고지 2매 분량의 짧은 성명이다. 분량이 작더라도 내용은 묵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내용마저 아쉬웠다는 점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 암컷들이 설치는 정부라고 말했다는 보도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질문을 던졌다. “그의 눈에는 우리 여성들이 모두 암컷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는 앞서 언급했던 ‘여성 일반’과 ‘김건희’의 구분선이 또렷하게 그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강욱의 암컷 발언은 김건희를 향한 것이었지만, 한국여성단체협외희는 그것을 ‘우리 여성들’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일단 긍정적인 일이지만 다음 문장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최강욱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회의원을 역임한 사람이면 아무리 정부를 비판한다고 하더라도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정도는 구별할 줄 아는 양식을 가져야 되지 않는가?”

    이 질문은 최강욱을 질책하는 것 같지만 실은 어느 정도 관용하는 것이다. 그가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은 ‘암컷’이라는 여성혐오적 폭언을, 아무튼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했던 말’이라며 이해와 용서의 여지가 없지 않은 것으로 포장해주는 결과를 낳는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정부 비판’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다면 여성혐오도 허용되는가. 허용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암컷’은 안 되지만 가령 ‘암탉’ 정도는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은 최강욱을 질책하고 있지만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여성 일반을 향한 것이 아니라 김건희라는 한 사람을 향한 은유이며 풍자’라는 양문석의 변명과 같은 전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강욱의 암컷 망언은 ‘정치적 발언’으로 승격되고 만다. 이는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은 ‘암컷’이라는 여성혐오적 폭언을, 아무튼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했던 말’이라며 이해와 용서의 여지가 없지 않은 것으로 포장해주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성명서에 ‘김건희’라는 구체적인 피해자가 적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첨예한 논란의 인물을 직접 거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 김건희를 대신해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김건희가 받아야 할 사과를 ‘우리 여성 모두’가 대리 수령하는 것은, 김건희를 향한 여성혐오적 망언을 예방하는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여성 일반을 향한 여성혐오의 강도를 낮출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최강욱 봐주기의 일환

    다음날인 11월 22일 한국여성민우회가 발표한 성명을 읽으며 필자의 혼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여자 탓’하는 저열한 정치, 이제는 끝장내자”라는 민우회 성명 제목에는 심지어 ‘최강욱’이라는 이름조차 담겨 있지 않다. 물론 제목 아래에 ‘최강욱 전 의원의 발언이 드러낸 여성혐오 정치에 부쳐’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하지만 ‘부제’의 기능이 그렇듯, 한국여성민우회의 논평은 최강욱의 발언 그 자체를 비난한다기보다, 그 발언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소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총 세 문단으로 이루어진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명문 중 첫 번째 문단은 최강욱의 발언에 대한 비판 및 소수자 혐오 없는 정치를 지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곧장 이어진 다음 문단을 읽어보도록 하자.

    “‘왜 여성들은 가만히 있느냐’, 정치권에서 여성혐오 발언과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입장을 요구받으며 호명되는 건 늘 여성들이다. 우리는 부정의에 분노하고 문제제기 할 책임이 여성들에게 떠넘겨지는 것을 수차례 보아 왔다. 이는 성차별/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성을 정치적 싸움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이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성평등 실현에 무관심한 정치적 책임 주체들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성찰하고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것은 최강욱이나 민주당을 향한 비판이 아니다. ‘최강욱이 저런 소리를 하는데 여성단체들은 왜 비판하지 않느냐’는 비난을 향한 논박이다. 세 문단으로 이루어진 성명서에서 두 번째 문단은 본론에 해당한다. 즉 한국여성민우회는 성명서를 통해 암컷 발언을 한 최강욱을 비난하는 대신, ‘암컷 발언이 나왔는데 여성단체들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도 않는 뻔한 비난에 항변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명서는 양비론적 태도를 보여준다. “최강욱 전 의원은 이번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해서 즉시 우리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말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기 바란다”고 명시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달리, 한국여성민우회는 최강욱이나 민주당을 향한 사과 혹은 재발 방지 요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여성을 주변화하고 혐오하는 정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모호한 추상적 선언으로 성명서를 마무리 짓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입장을 오래도록 견지해왔다. 소위 ‘남페미’라는 비아냥거림에도 익숙한 편이다.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여성단체는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나오는 패턴 역시 낯설지 않다. 아니,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명서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의 ‘주어 없는’ 질타가 나온 다음날에야 발표된 성명서에서, 최강욱의 암컷 발언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성명서의 본론조차 아니며, 심지어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도 않다. 되레 ‘정치권 일반’을 향한 원론적 비판으로 성명서를 끝맺는다. 잘못한 사람은 최강욱이고 그를 두둔하는 주체는 민주당인데, 한국여성민우회는 모든 기성 정치권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이토록 의도가 투명한 양비론은 결국 ‘최강욱 봐주기’의 일환 아닌가.

    김건희 이슈

    영국 국빈 방문과 프랑스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월 26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1호기편에서 내리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영국 국빈 방문과 프랑스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월 26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1호기편에서 내리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어떤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암컷’이라는 상식 이하의 여성혐오적 욕설을 들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단체들은 항의 시위 대신 뜨뜻미지근한 성명서 한 장을 내밀 뿐이다. 그나마 일각에서는 성명서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김건희 이슈’라고 불러볼 수 있다. 한국의 여성주의는 현실 정치에 완전히 함몰돼버렸다. 명백히 특정인을 향한 여성혐오적 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격한 반발이 뒤따르지 않거나 사실상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지금까지 쌓아올린 한국 여성운동의 성과 역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우선 민주당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당의 내부 징계는 형사처벌이 아니므로 엄격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 최강욱에 대한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철회하고, 그보다 훨씬 더 실효성 있는 징계를 통해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를 두둔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여성단체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선호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 여성으로서 여성혐오의 대상이 됐다면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닐까.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했다고 잘못 알려진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죽을힘으로 싸우겠다”는 명언에 담긴 가치를 되새겨봐야 한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당하는 여성혐오에 맞서지 않는다면 여성단체는 ‘여자들이 모인 정치단체’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피해자 탓하기’가 될 우려를 무릅쓰고 말하건대, 현재 벌어지는 김건희를 향한 여성주의적 정치적 공격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대통령과 대통령부인, 그리고 대통령실의 손에 달려 있다. 최강욱의 암컷 발언은 결국 김건희가 대통령부인으로서 이른바 ‘비선 실세’ 행세를 하고 있다는 세간의 루머를 가장 저급한 방식으로 입에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지난 정권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폐지돼버린 특별감찰관(대통령 소속이지만 독립된 지위로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등을 감찰하는 자리)의 부활이다. 실질적으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묻기 전에, 그러한 조직의 유무가 지니는 상징성을 따져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민해볼만한 지점도 있다. 김건희는 미술 전시 기획 업체 코바나컨텐츠 대표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온 사업가다. 마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힐러리 클린턴이 그러하였듯 공식적인 직함을 부여받고 활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대통령의 아내가 ‘영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내조’에 국한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인식을 넘어,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비선 실세 의혹을 불식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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