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한국은 세계화 과정에서 ‘학습하는 방법까지 학습’한 나라

[김호기의 고전으로 읽는 21세기] ‘전지구적 변환’과 ‘세계화와 그 불만’으로 읽는 지금, 여기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24-01-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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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 탈냉전

    • 민주주의·세계화 최고 전문가 헬드

    • 새로운 이론화와 경험적 접근 시도

    • 정치적 기획으로 내놓은 ‘세계주의’

    • 세계적 진보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 세계화 좋다? 나쁘다? 문제는 관리!

    • 거역할 수 없는 물결 적극 이용해야

    • 개방으로 큰 한국, 선진국 구실 할 때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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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의 세계사에서 중대한 분기점을 이룬 시기는 1980년대였다. 케인스주의 복지국가가 이끌던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등장이, 정치적으로는 신보수주의의 도래가, 국제정치적으로는 탈냉전의 개막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 새로운 시대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어휘는 ‘세계화(globalization)’였다. 세계화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이전에는 국제화(internationaliziation)가 널리 사용됐다. 두 개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국제화가 국민국가들 간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한 것을 뜻한다면, 세계화는 그 교류가 질적 전환을 이뤄 세계적 차원이 독자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의 분석 단위와 활동 영역은 국민국가를 넘어선 세계사회 전체다. 예를 들어 애플과 삼성의 활동 무대는 지구 전체이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방탄소년단(BTS) 노래의 발신 대상도 지구 전체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일찍이 갈파했듯, 국민국가는 삶의 거시적인 문제에는 너무 작고 미시적인 문제에는 너무 큰 것이 돼버렸다.

    세계화가 복합적 양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미·중 무역갈등, 포퓰리즘의 발흥은 세계화에 제동을 걸었다.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했다. 팬데믹이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더욱 촉진함으로써 세계화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보면 세계화 시대는 우리 삶과 사유의 방식을 작지 않게 변화시켰다. 12세기에 활동했던 성 빅토르 수도원의 위고가 남긴 말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세계를 적절히 표현한다.



    “자기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상냥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보는 사람은 완벽하다.”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작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만난 구절이다. 국민국가를 넘어서 세계사회를 새로운 고향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다시 타향으로 객관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만큼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심정과 태도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 언명을 찾기 어렵다.
    세계화 시대는 계속되는 걸까, 아니면 종막을 고한 걸까. 세계화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1990년대에 세계화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세계화를 다룬 담론과 책이 차고 넘쳤다.

    당시 세계화를 분석한 책 가운데 특별한 이목을 끈 두 저작이 있다.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헬드(David Held)와 그의 동료들이 내놓은 ‘전지구적 변환’(Global Transformations, 1999)과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내놓은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 2002)이다. 두 저작을 통해 21세기 세계화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려고 한다.

    ‘전지구적 변환’의 주요 내용

    데이비드 헬드(David Held) 등이 쓴 ‘전지구적 변환’(Global Transformations, 1999)과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내놓은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 2002). [각 출판사]

    데이비드 헬드(David Held) 등이 쓴 ‘전지구적 변환’(Global Transformations, 1999)과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내놓은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 2002). [각 출판사]

    ‘전지구적 변환’이란 제목은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명저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변환’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등장이 가져온 거대한 변동을 다룬 것처럼, ‘전지구적 변환’은 세계화의 충격이 낳은 전 지구적 변동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헬드, 국제관계학자 앤서니 맥그루(Anthony McGrew), 사회학자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경제학자 조너선 페라턴(Jonathan Perraton)이 공동 저자다. 이 가운데 헬드는 민주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세계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혀왔다.

    ‘전지구적 변환’이 세계화를 다룬 다른 저작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새로운 이론화를 시도한다. 저자들은 그간 나온 세계화에 대한 설명을 비판적으로 종합해 새로운 개념적 정의와 분석틀을 제시한다. 둘째, 세계화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적 접근을 시도한다. 경제에서 환경에 이르기까지 저자들은 오늘날 세계화를 둘러싼 다양한 영역을 실증적으로 접근해 세계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들은 세계화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를 내놓는다. 세계화는 “초대륙적·지역 간 활동, 상호작용 및 권력 행사의 흐름과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 및 사회적 거래의 공간적 조직 방식에 큰 변화가 발생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과정 또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세계화를 이렇게 규정할 때 그것이 지방화, 전국화, 지역화, 국제화와 맺는 관계가 선명해진다. 저자들에 따르면, 세계화는 지방·국민국가·지역 수준에서 진행되는 사회 과정과 반대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복합적이고 역동적 관계를 이룬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과 아태경제협력체(APEC) 등으로 대표되는 지역 경제공동체는 무역과 생산의 세계화에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계기가 됐다고 저자들은 파악한다.

    세계화는 그 분석 대상이 세계사회인 만큼 복합적 과정이다. 따라서 세계화를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이며 차등화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세계화는 사회적 삶의 주요 영역을 이루는 정치·군사·경제·이주·문화·환경 등에 스며들어 있고, 그 결과 사회적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지구적 상호연결성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저자들은 그동안 세계화를 설명해 온 ‘과대지구화론’ ‘회의론’ ‘변환론’을 주목하고 비교한다. 과대지구화론이 지구 자본주의, 글로벌 거버넌스, 지구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국민국가가 쇠퇴하고 있다는 견해라면, 회의론은 그 반대로 무역 블록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약화로 국민국가의 힘에 의해 세계화가 제한된다는 견해다. 마지막으로 변환론은 강도 높고 광범위한 세계화로 국가권력과 세계정치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견해다.

    저자들은 세 학파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먼저 국민국가의 종말을 강조하는 과대지구화론이나 세계화를 국제화와 동일시하려는 회의론은 일면적 해석이다. 한편 국가권력과 세계정치를 변화시키는 추동력으로 세계화를 이해하는 변환론은 더욱 엄밀하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세계화의 미래에 대해 ‘전지구적 전환’이 내놓은 정치적 기획이 ‘세계주의(cosmopolitanism)’다. 저자들은 세계화를 규제하고 민주화하기 위한 세 가지 프로젝트를 비교한다. 하나가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혁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면, 다른 하나는 비정부조직들이 주도해 글로벌 거버넌스를 대체할 대안적 모델을 모색하는 ‘급진적 공화주의’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세계주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재구성하려는 ‘세계주의적 민주주의’다. 세계주의는 민주적 통제 범위 밖에 놓인 권력의 소재지와 형태를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원칙과 제도를 고안하고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자들에게 민주주의란 ‘이중적 과정’이다. 그것은 국민국가적 수준뿐만 아니라 세계사회적 차원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요컨대 세계주의는 지구적 차원에서 정당한 정치적 권위를 창출해 내려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전지구적 변환’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말 번역본이 900쪽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한 이 저작은 세계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심층적 논의를 제공한다. 나아가 세계화에 대한 일방적 지지나 반대를 유보하고, 그것이 주는 충격과 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세계주의라는 정치적 기획을 제안한다.

    1994년 11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 구상’을 발표했다. 이듬해 2월 3일 세계화추진기획단 발족식이 열렸다. [동아DB]

    1994년 11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 구상’을 발표했다. 이듬해 2월 3일 세계화추진기획단 발족식이 열렸다. [동아DB]

    이 저작이 출간된 1990년대 후반까지 세계화의 성격과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시각이 맞서왔다. 보수는 세계화가 가져오는 경쟁력 강화와 성장의 효과를 강조한 반면, 진보는 세계화가 낳은 사회 양극화 및 불평등의 강화를 부각했다. ‘전지구적 변환’은 중도적 관점에서 이 두 시각을 모두 아우른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에 대한 종합 교과서로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1세기 들어 세계화가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원할 것 같은 세계화로부터 후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화와 탈세계화가 공존하는 양상이 관찰되고 있다. 이 새로운 국면은 세계화와 그 전망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요청하고 있다.

    ‘세계화와 그 불만’의 주요 내용

    스티글리츠는 폴 크루그먼과 함께 세계적인 진보 경제학자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 만큼 학문적 업적이 탁월할 뿐 아니라 빌 클린턴 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과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을 정도로 현실적 영향력이 크다.

    ‘세계화와 그 불만’은 21세기 벽두에 스티글리츠가 내놓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진보 경제학자임에도 스티글리츠는 세계화에 담긴 장점, 즉 세계화가 인류의 빈곤 해결과 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스티글리츠에게 세계화는 좋은 것만도, 나쁜 것만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세계화에 대한 가치판단에 있다기보다 세계화가 어떻게 관리되느냐에 있다.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끈 것은 스티글리츠가 한국을 포함해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1997년 한국 경제위기를 낳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본의 자유화다. 이 자본의 자유화 정책에는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 재무부가 크게 영향을 미쳤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한국의 조건에서는 시기상조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위기가 일어난 후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고금리와 재정긴축정책은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처방이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이러한 관찰은 말레이시아 경제에 대한 평가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스티글리츠는 IMF의 권고를 거부한 말레이시아가 외환위기를 가장 신속하게 벗어났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의 3대 기둥인 ‘재정 긴축, 민영화, 시장 자유화’가 모든 국가에 만변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이 스티글리츠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이런 맥락에서 스티글리츠는 세계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세계화는 미국 재무부와 국제기구 관료 집단의 그릇된 결정에서 비롯했으며, 이러한 결정은 월가의 이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비판한다.

    세계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스티글리츠가 제시한 대안은 국제기구와 국제금융체계의 포괄적 개혁이다. 특히 이제까지 선진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주력했던 국제기구들은 비밀주의적 관행을 청산하고 민주적 토론에 입각한 정책 결정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이 이뤄진다면 인간적인 얼굴을 한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게 스티글리츠의 전망이다.

    주목할 것은 스티글리츠가 2018년 ‘세계화와 그 불만’ 개정판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개정판에서 인상적인 점은 초판 출간 이후 15년 동안 나타난 세계화의 ‘새로운 불만’에 대한 분석이다. 스티글리츠는 21세기에 들어와 세계화로부터 얻은 이익이 세계화의 옹호자들이 주장한 것보다 적었고, 그러기에 세계화에 대한 분노가 증가해 왔음을 부각한다.

    개정판에서 스티글리츠의 논리는 초판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세계화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세계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이 세계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화는 결국 실패한 기획으로 귀결돼 왔다는 얘기다.

    세계화에 대한 관리의 실패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부 기업과 국가에 유리한 불공정한 경제 규칙 및 무역협정, 다수의 세계화 패배자인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소수의 세계화 승리자인 대기업에 이익이 집중되는 승자독식, 그리고 점진적인 불평등 강화와 공동체 파괴 등이 그렇다.

    개정판에서 스티글리츠는 세계화의 반작용으로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의 경제정책도 비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보호무역주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세계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논지다.

    ‘세계화와 그 불만’이 갖는 미덕은 세계화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스티글리츠의 세계화론은 긍정론과 부정론을 넘어선 ‘개혁론’ 또는 ‘개선론’이라 할 만하다. 스티글리츠가 소망하는 세계화는 ‘상생하는 세계화’이자 ‘대안적 세계화’다. 이는 세계화가 원래의 목적대로 작동해 모든 국가에 이익을 안겨주는 것을 함의한다.

    새로운 세계화를 위해 스티글리츠는 다시 한번 IMF와 세계은행의 지배구조 개혁, 즉 공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세계적 차원의 경제 규칙 개선과 제정을 요구한다. 개혁을 통해 세계화가 새롭게 관리될 수 있다면, 세계화는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전망한다.

    요컨대 세계화와 민주주의를 양립시켜야 한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의 결론이다. 민주적 절차의 강화를 통해 소망스러운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모든 이들이 세계화로부터 혜택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세계화를 다시 돌아본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인근에 화려한 외관 조명을 자랑하던 옛 리먼 브라더스 본사의 모습. 리먼 브라더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인 2008년 9월 15일 파산했다. [동아DB]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인근에 화려한 외관 조명을 자랑하던 옛 리먼 브라더스 본사의 모습. 리먼 브라더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인 2008년 9월 15일 파산했다. [동아DB]

    이쯤에서 지나간 세계화 시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세계화를 이끌어온 두 힘은 경제의 세계화와 문화의 세계화다. 경제의 세계화는 교역·투자·통신의 확대로 국가 간 상호 의존이 증대하고, 지구적 차원에서 다자간 협의·조정·협력이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초국적 기업들은 생산 부문을 지구적으로 재배치하는 신국제분업을 통해 국경의 의미를 축소시켜 왔다.

    문화의 세계화는 문화의 생산·분배·소비의 지구적 체제가 구축되고 완성되는 것을 말한다.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드라마·대중음악·통신프로그램은 세계시장에서 판매돼 왔다. 이러한 문화의 지구적 재구조화는 어떤 서구의 정책 및 기술보다 일상적·문화적 삶과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연히 세계화 경향을 가속화해 왔다.

    정치의 세계화도 주목할 만하다. 정치의 세계화는 국제연합(UN), IMF, 국제무역기구(WTO) 등과 같은 정부 간 조직들과 ‘국제사면위원회’ ‘그린피스’ ‘국경 없는 의사회’ 등과 같은 비정부조직에 의해 주도됐다. 이 초국적 조직들은 정치·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교통·통신·과학·환경 등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초국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 왔다.

    승승장구하던 세계화가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다. 세계화에 대한 거부는 무엇보다 포퓰리즘의 발흥에서 찾아볼 수 있다. 21세기 포퓰리즘은 방어적 민족주의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우파 포퓰리즘은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해 왔다. 세계화 시대에 약화돼 온 민족주의가 다시 힘을 얻어 소생한 것이 2010년대 이후 지구사회의 이념적 풍경이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와 2017년 미국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세계화로부터 후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스티글리츠가 적절히 분석하듯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고립주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세계화에 제동을 걸었다.

    세계화에 대한 제동에서 또 하나의 영향은 미·중 무역갈등에서 왔다. 중국의 부상은 자연스레 세계경제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미·중 무역갈등이 다른 국가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이 민족주의는 포퓰리즘과 결합해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으로 분출됐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023년 11월 1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의 파일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양국 핵심 관료들을 대동한 채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우드사이드=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023년 11월 1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의 파일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양국 핵심 관료들을 대동한 채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우드사이드=AP 뉴시스]

    세계화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오늘날 세계경제는 하나의 경제로 통합돼 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기업은 자본·노동·원재료를 지구적 차원의 사슬로 엮어 상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가치 사슬’은 완전히 자리 잡았고,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제의 세계화 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긴장이다. 그 긴장이란 스티글리츠가 강조한 바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에서 비롯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미국과 중국의 무역 및 경제갈등의 결과로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는 점차 미국, 중국, 인도 등의 다극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다극체제의 등장은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화, 지역화, 탈세계화의 서로 다른 경향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

    한편 문화의 세계화는 역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의 세계화는 처음부터 이중적 층위에서 진행돼 왔다. 할리우드, 디즈니, 맥도날드의 세계화에서 볼 수 있는 ‘미국 문화의 세계화’가 한 층위라면, 미국 문화와 자국문화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문화’는 또 다른 층위를 이뤄왔다. 예측컨대 당분간 미국적 생활양식으로서의 ‘지구 문화’와 제3의 문화로서의 하이브리드 문화가 지구적 차원에서 공존하는 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정치의 세계화가 놓인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은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한편에서 팬데믹은 탈세계화의 촉진에 속도를 더했다. 팬데믹 시대에 지구적 차원에서는 각국도생(各國圖生)이 강화됐고, 이 각국도생은 기성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무력화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글로벌화된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 훼손된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에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팬데믹을 위시해 금융위기, 기후위기, 테러리즘 등의 지구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헬드와 그의 동료들이 강조한 바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세계화의 미래에 부여된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일대 혁신을 일궈가는 데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오늘날 세계화는 대단히 복합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 영역에서는 세계화·지역화·탈세계화가 혼재하고, 문화 영역에서는 지구 문화와 하이브리드 문화가 공존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복합적 양상의 지구 적 변동을 조율해야 하는, 지구적 차원의 각자도생을 넘어 상호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정치적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우리 사회에서 세계화가 큰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세계화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였다. 두 사태를 통해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는지를 생생히 경험했다.

    돌아보면 세계화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심원했다. 세계화가 지구적 개방을 뜻한다면, 우리 현대사에는 중대한 두 차례 개방이 존재했다. 1870년대의 ‘제1차 개방(개항)’이 하나였다면, 1960년대 ‘제2차 개방(근대화)’은 다른 하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1980년대 이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제3차 개방(세계화)’이 추진됐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제3차 개방에 대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스티글리츠는 한국을 세계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다. ‘세계화와 그 불만’ 개정판에 따르면, 2016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2000년보다 84% 증가했다. 스티글리츠는 한국이 세계화 과정에서 ‘학습하는 방법까지 학습’한 국가라고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 국가 규모와 경제구조를 지켜볼 때 세계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선택 사항을 넘어선 필수 항목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를 거역할 수 없는 한 개방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개방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개방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화의 미래를 내다볼 때 앞서 말했듯 세계화, 지역화, 탈세계화의 공존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에서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지구적 의제와 위험에 대응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재구성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 지구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헬드와 그의 동료들이 주장한 세계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역화와 탈세계화 경향이 관찰되고 있더라도 기후위기와 팬데믹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우리 인류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둘째, 지구적 빈곤·평등·인권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만큼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과 공적개발원조(ODA)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의 발전 경험과 혁신 기술을 개방도상국과 공유하려는 대외정책 역시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신흥 선진국에 걸맞은 국제적 연대와 파트너십의 구축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

    셋째, 한국의 현실에 걸맞은 세계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인구와 자원과 시장의 조건을 고려할 때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세계화 전략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세계화에 대해서는 ‘개방과 복지의 선순환’으로, 지역화와 탈세계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대응해야 한다. 세계화에 대한 개방 전략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으로 국내적 복지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동방, 중국과 러시아의 북방을 넘어 이제 태평양-인도양 국가들의 남방으로 시장을 확장해야 한다. 세계화가 거역할 수 없는 물결이라면 그 물결을 적극 이용하는 지혜와 전략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김호기
    ●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코렛 펠로
    ●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저서 :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신기욱과 공편)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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