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한국정치학회장 양승함의 ‘4대 정치현안’ 관전법

“노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 시대정신에 안 맞아”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7-02-12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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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은 다양한 변화 반영해야
    • 노 대통령의 목표는 ‘좌파적 체제변혁’
    • 나라를 집단농장화하자는 건지…
    • 정부, 민간 분리해 북한 상대하자
    • 중도성향 대변하는 통합신당 돼야
    한국정치학회장 양승함의 ‘4대 정치현안’ 관전법
    대통령의 실정(失政), 개헌 논란, 대규모 정계개편,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한국 정치는 네 가지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여러 주장이 충돌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은 현상을 해석해 곧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양승함(梁勝咸·56) 한국정치학회장(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4대 정치현안 관전법’과 관련, 몇 가지 힌트를 제공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주최 학술대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배적 권위주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위적 민주주의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유형일까요.

    “탈(脫)권위적 모험주의자라고 봐야겠죠. 그에게 ‘대통령’이란 하나의 ‘수단’ 같아요. 노 대통령이 정말 갖고 있는 생각은 국가질서, 사회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기 내내 탐험만 하는 대통령”



    ▼ 어떤 방향으로의 변화일까요.

    “대통령을 만나보니 그의 첫 일성이 ‘힘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언론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대통령은 소위 보수-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이 크며 이들을 타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듯했어요. 취임하자마자 검찰, 국가정보원 개혁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죠. 조선일보, 검찰, 서울대, 강남, 재벌에 이어 ‘서울특별시’ 자체도 못마땅해 수도이전을 추진한 것이고요.

    그에게서 국가는 ‘진보-개혁’ 대 ‘보수-기득권’으로 양분됩니다. 자신은 진보-개혁의 대표 격이고 이들을 위해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믿는 거죠. 그러니, 대통령직은 하나의 수단이며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거죠. 목표 자체가 ‘국가질서의 근본적 변화’이니까요. 그 방향은 자연히 좌파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 노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 좌파적이라고 보는 건가요.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상당히 편협한 민주주의자예요. 자신과 맞으면 동조자, 안 맞으면 타파의 대상, 이런 식이죠. 그는 386만큼 논리적, 체계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좌파적 혁신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보려 한 듯해요. 기존의 대한민국 헌법체계와 다를 수 있다고 봐요. 이건 국민 앞에 떳떳하게 내놓을 만한 비전이 아니죠. 그러니 외부에는 노무현 정부에 국가 비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참여정부라면서 진보 인사들로 채우고, 혁신도시라는 것도 혼란스러워요. 나라를 ‘집단농장화’하자는 건지….”

    ▼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관여하는 것도 국가질서의 근본적 변화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하나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대통령이 ‘도로 민주당’에 반대한다면서 당 사수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단순히 올해 대선만 고려하는 건 아닙니다. 그에게는 시대적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세력을 견고하게 결집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해요. 당장의 대선 결과보다는 이번 대선 이후를 내다보고 있는 듯해요.”

    ▼ 노 대통령의 시도는 성공하고 있는 건가요.

    “개혁은 속도와 범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속도면에서 무모했어요. 다수의 합의를 이끄는, 숙성 과정을 생략했죠. 범위도 조절하지 못 했어요. 노 대통령은 출범 초 검찰, 국정원 개혁에 나섰지만 이들 권력기관이 과연 근본적으로 변했을까요? 난 아니라고 봅니다.

    개혁은 임기 초반에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임기 초반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니 성공은 어려웠다고 봐야죠. 그러나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노 정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 공익 차원에서 노 대통령의 개혁을 평가한다면.

    “개척정신, 창의력은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무모함도 있었어요. 사회는 실험대상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관리자’예요. 혁명이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도 이후에는 혁명을 ‘관리’해 나가야 하는 거죠. 임기 내내 탐험만 하는 대통령이어선 안 되죠.”

    “개헌 여러 번 할 수 없지 않나”

    노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 구상에 대해서도 양 회장은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양 회장은 “4년 연임제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미 실기(失期)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 포인트라는 방식도 틀렸다”고 덧붙였다.

    “개헌 추진은 대선정국 이전에 했어야 했어요. 또한 이번 헌법을 개정하려면 대통령 임기 조항만 손댈 것이 아니라, 권력구조를 포함해 21세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미래지향적 내용이 담겨야 해요. 개헌을 여러 번 할 수는 없잖아요. 현행 헌법은 1987년 제정된 것으로,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는 각 분야에서 정말 많은 것이 변했어요. 대통령 임기에만 집착해선 안 되며 이런 다양한 변화상을 시대정신에 맞게 헌법에 담아내야 해요.”

    “남북정상회담 어렵다”

    11개월 뒤 대통령선거 투표가 실시된다. 북한은 “한나라당 집권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여권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전쟁이 날 것”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 회장은 “누가 집권해도 한반도가 쉽게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북한 변수가 한국 대선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실패’는 아닙니다. 그러나 노력은 많이 했는데 구체적 성과가 없다고 할까요. 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못하리라고 봅니다. 잘못 추진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고, 망신당할 거예요.”

    ▼ 북한 핵실험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지속여부로 논란이 일었는데요.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금강산, 개성 사업을 중단하면 재개하는 데 5~6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사업이 중단되면 정부가 민간기업에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어요. 북한과의 채널을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핵실험 이후 정부 지원은 대부분 중단됐어요. 사실 북한에 제공되는 물자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대주는 겁니다. 민간교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요.

    여당, 야당 등 정치권 모두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남북관계는 항상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북한은 사실상의 주적(主敵)이면서 통일의 대상입니다. 대북관계에서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은 분리해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민간 부문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북한과 교역하도록 해주고, 정부 지원 부분은 철저한 상호주의를 지켰으면 합니다. 북한은 적어도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1시간 전쯤엔 한국 측에 통보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은 북한에 ‘휴전선의 대포를 뒤로 좀 물리라’고 할 수도 있죠. 한국도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어야죠.”

    ▼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이 북한 내부를 변화시킨 징조는 없나요.

    “북한 측은 최근 들어서는 남측에 사정도 많이 하고 요구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건 굉장한 변화예요. 지속적 지원이 마음을 열게 하는 측면이 분명 있어요.”

    ▼ 한나라당 집권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예상하는데.

    “한나라당은 상호 호혜적 대북정책을 펼 것이므로 경색국면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될 가능성도 있어요. 누가 집권해도 전쟁은 쉽게 나지 않아요.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은 모두 현 정권하에서 발생한 일이잖아요. 북한의 핵개발은 한국 정부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북한 당국이 정한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듯해요.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나 중국입니다. 이 때문에 한미관계가 공고해지면 북한은 한국에 더 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한미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남북공조의 강화로 연결되지는 않아요. 한국만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이죠.”

    “북한의 대선 개입, 용납 안 돼”

    ▼ 그러나 북한은 “한나라당 집권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북한은 대선과 같은 중차대한 한국의 내정(內政)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한국 국민이 북한의 이런 기도에 휘둘린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대단히 큰 불행이 돼요. 자주국 국민이 북한의 영향을 받아 정부를 선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인가요.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민 배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여합니다. 유일체제는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연쇄반응이 일어나죠. 반면 북한을 완전 봉쇄하더라도 중국 쪽이 트여 있기 때문에 한 세대 정도는 존속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정치인이 북한이 중국에 흡수될 것을 우려하는데,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지만 북한 주민의 민족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에 편입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아요.”

    ▼ 김정일체제 붕괴시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다면 새로운 엘리트 계급이 새 정권을 수립하거나 아니면 유엔 또는 주변 몇 개국 공동위원회가 북한을 신탁통치할 수 있어요. 후자의 경우 한국과의 통일이냐, 별개의 정부 수립이냐가 문제가 될 거예요. 다시 한반도가 분할되는 방식이 채택되는 것을 우리로선 막아야겠죠. 현재의 유력 대선주자 그룹은 북한 체제 붕괴에 대비한 치밀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해요.”

    양승함 회장은 올해 대선에서 표(票)의 향방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요인으로 ‘지역주의’를 꼽았다. “최종 순간에는 많은 유권자가 후보자의 출신지를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지역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긴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라면서 “두 번째의 요인은 경제가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대책 제시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역, 경제, 품격

    ▼ 선거는 현실 반동적이라고들 하는데요.

    “그런 경향이 있죠. 독재정권하에서는 민주화 이슈가 유권자에게 먹힙니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불만과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유권자는 이번 대선에선 이를 ‘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겁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에 많은 국민은 자괴심을 갖고 있어요. 이에 따라 ‘품격 있는 대선주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 등 한나라당 대선주자 3인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 전 시장의 경우 대세론은 믿을 게 못 됩니다. 역대 대선에서 한 달 만에 지지율이 뒤바뀌는 상황이 자주 있었어요. 각별히 조심해야 할 거예요. 박 전 대표는 언행의 품격이 돋보입니다. 손 전 지사도 만만치 않아요. 한나라당 경선에서 ‘캐스팅보트’를 할 수준은 된다고 보여요.”

    ▼ 여권의 통합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는데요.

    “책임정치의 측면에서는 대선을 수개월 앞두고 집권여당이 당을 해체한 뒤 신당을 만든다는 것은 비판의 소지가 다분해요.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선 중도, 실용, 개혁 등 중간층이 크게 늘었는데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없어요.

    정치구도는 국민의 이념적 균열구도를 반영하는 게 좋아요. 한국사회엔 지역적 균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보-중도-보수 등 이념적 균열이 정치에도 반영되어 다층적 균열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 통합과 안정화에 더 도움이 돼요. 신당이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려면 인물중심 정당, 지역기반 정당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겁니다. 과연 이런 신당이 나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겠죠.”

    ▼ 현재 범여권 주자 중 지지율 1위인 고건 전 총리, 제3후보로 부상 중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장이 연대할 수 있다면 이는 이명박-박근혜 드림팀과 경쟁해볼 만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정 전 총장의 경우 부드러운 성향에 소신이 있으면서 지적 수준도 높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대학총장과 국가원수는 다른 직책이므로 그가 국가원수로서의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군요.”

    양 회장은 “한국정치학회는 한국 정치가 나아갈 지표를 제시해온 최고의 정치 싱크탱크였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선 정치 현안에 침묵을 지켜왔다. ‘시국선언’ 한 번 내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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