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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그 후| ‘위기 or 기회’ 박근혜 심층탐구 ③

박근혜와 언론

특종도 낙종도 없는 특이한 평화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박근혜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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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말씀드렸다”

박근혜와 언론

2006년 1월3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출입기자들과의 신년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금은 기자들이 박 전 대표의 ‘한마디 정치’에서 간간이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얼굴을 보기조차 어려운 전담 기자들은 국회가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국회활동에 충실한 박 전 대표는 본회의나 상임위가 열리면 되도록 참석한다. 이때 기자들은 회의장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각종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박 전 대표가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외부 행사장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별로 할 말이 없다”거나 “이미 다 말씀드렸다”가 전부다. 기자들이 동선을 쫓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유도 질문을 던지지만 한번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지 않는다. 박 전 대표를 전담하는 한 젊은 기자는 “첫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내용을 다시 물어보면 표정이 굳어지기 때문에 되묻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고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기자는 “현장에서 민감한 질문을 던질 때 박 전 대표의 얼굴을 보면 문득 ‘얼음공주’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며 웃었다. 보통의 정치인은 아무리 난감한 질문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 나와도 성의껏 답변하는 노련함을 보이지만 박 전 대표는 원칙적으로 대한다. 그만큼 전담기자에게조차 박 전 대표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취재원이다.

박 전 대표는 간혹 사석에선 기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잘 웃고 가벼운 농담도 곧잘 던진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조금 다르다. 말 한마디에도 결코 실언(失言)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는 개인의 삶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20대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몸에 밴 자세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기자들과 만나서도 말을 아끼지만 예외가 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작심하고 기자들과 대면할 경우다. 그 때마다 박 전 대표가 툭 던지는 한마디는 정국의 흐름을 일순에 바꿔놓곤 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전 ‘면도날 테러’를 당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깨어난 뒤 곧바로 “대전은요?”라고 물었고, 이 한마디로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는 대전시장선거에서 역전승했다. 2007년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단 세 마디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했다. 이때까지는 당 대표로 있을 시기다. 대선후보 경선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대폭 줄인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한마디를 날렸다.

2007년 11월 당시 이재오 의원이 친박 진영을 압박하자 “오만의 극치”라는 한마디로 무력화시켜버렸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살아서 돌아오라”는 말로 당 안팎의 친박계를 하나로 결속시키면서 ‘박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켰다. 지난해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이상득 의원이 친박을 표방하던 무소속 정수성 후보에게 이명규 의원을 보내 사퇴압박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일갈했다. 최근 세종시 논쟁이 벌어졌을 때는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카피라이터의 작품 같다

그가 직접, 혹은 이정현 의원을 통해서 던지는 한마디는 마치 깊이 고민한 카피라이터의 ‘작품’ 같다.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전후좌우를 모두 살펴보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용어 선택이다. 미디어법 파동 때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전해져 나중에 어조를 완화했지만 그 일도 ‘한마디’의 위력을 역으로 방증한다.

그간 박 전 대표가 던지는 한마디의 대부분은 “…는 안 된다” 식의 일종의 ‘안티성’이었다. 이 때문에 친이계에서 “박 전 대표가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 또 일부 국민이 한마디 정치에 피로감을 갖는 이유가 됐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안티성이 통했지만 앞으로 국정운영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긍정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 전 대표의 이런 스타일을 과거 그를 폄훼할 때 이용됐던 ‘수첩공주’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처음 정치의 전면에 나설 때 그가 공식회의 때도 수첩에 적어온 내용만 읽는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이것은 곧 ‘콘텐츠 부족’이란 말로 이어졌고, 당내 반대파나 당시 여당이 그를 공격할 때 쓰는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는 동안 후보자 TV토론 등을 통해 그런 비판론은 상당 부분 불식됐다. ‘한마디 정치’를 ‘수첩공주’에 대입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

기자 출신으로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대언론 공보를 담당했던 한 정치인은 “박 전 대표는 자기의 메시지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고, 국민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현재 정치인 중에서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은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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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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