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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마지막 회>

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농민, 군인 가릴 것 없이 농장 곡식 훔쳐가기 바빠 … 전기 없어 탈곡 못한 벼이삭, 겨우내 절구로 찧어 먹어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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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알곡을 어떤 가격에 파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불법적으로 숨겨놓은 알곡이기 때문이다. 비리의 소지가 크다보니 작업반장들의 집은 점점 더 부유해진다. 이들은 자기 집 땔감도 농민들을 시켜 해오도록 한다.

물론 작업반장을 오래하려면 수하 농민들의 신망을 얻어야 하고, 윗간부들에게는 뇌물을 주기적으로 바쳐야 한다. 북한 농민들은 대대로 농촌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있다. 농장원의 자녀 열 명 중 한두 명이 겨우 농촌에서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마을 구성원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작업반장을 오래하려면 이런 점도 고려해 꾸준히 ‘덕’을 쌓아야 한다.

좌절된 ‘포전담당제’

남쪽에서 비료가 몇 십만t씩 지원되던 시절에는 이 비료를 놓고 치열한 뇌물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농장 간부들은 비료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상급 간부들에게 뇌물을 들고 가 ‘사업’을 했다. 적잖은 비료가 장마당에 흘러나와 개인의 텃밭에 투입할 비료로 팔렸다.

하지만 남쪽의 비료 지원이 중단된 이후부터 중국산 비료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6월에도 서해의 남포나 동해의 청진항에 중국 비료가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올해는 비료 수급 상황이 지난해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요소비료 1㎏을 옥수수 1㎏과 맞바꿀 수 있었으나 올해는 옥수수 3㎏으로 올랐다고 한다. 물론 비료는 통제품으로 장마당에서 공공연하게 거래할 수 없다. 하지만 사려고 맘먹으면 안면을 통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것이 비료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어떻게든 비료를 빼돌려 자기 텃밭에 가져가려고 한다. 농장 작물은 가을이 되면 군인의 것이 되지만, 개인 텃밭은 온전히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다. 농장 밭에선 1정보(3000평)당 쌀이든 옥수수든 2~3t씩 수확하기 힘들지만, 개인 텃밭은 그보다 두세 배 많은 소출을 낸다.

북한의 개혁개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언급되는 것이 농촌의 토지 분배다. 중국도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농촌에서 가족 단위 생산책임제도를 먼저 도입했기 때문이다. 북한도 2004년 협동농장에서 중국을 모방한 개혁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다만 가족 단위가 아니라 10~20명으로 구성된 분조를 2~5가구로 보다 소규모로 쪼개는 방식으로 일부 지역에서 시험했다. ‘포전담당제’로 불린 이 제도는 사실상 소규모 가족단위 영농제다.

포전담당제는 개혁주의적인 마인드가 강했던 박봉주 당시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해 허락을 받았다. 박 전 총리는 벼 생산 중심의 황해도와 옥수수 생산 중심의 함경도에서 30여 개의 협동농장을 선택해 포전담당제를 도입시켰다.

그리고 토지사용료와 생산비용, 군량미 등의 명목으로 국가에 납부하는 수량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물은 전부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런 조치는 일선 협동농장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실 1990년대 후반에도 몇몇 관리위원장이 농민들에게 농장 땅의 일부를 텃밭으로 나눠줬던 사례가 있었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농민들이 굶어죽는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일부 관리위원장이 국가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집행한 일이었다. 이들은 농민들에겐 ‘용기 있는 간부’로 환영 받았지만 당국의 눈에는 ‘일시적 위기 앞에 사회주의적 원칙을 버리고 타협한 위험분자’로 비쳤다. 결국 이들은 숙청되는 운명을 면치 못했다.

그랬던 북한에서 소규모 가족단위 생산제도가 도입됐으니 이 소식은 즉각 전국에 소문으로 퍼져갔다. 사람들은 “우리도 중국식 개혁개방을 하나봐” 하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2004년 가을 시범단위의 알곡 생산량은 전년의 150~200%로 늘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다음해 전국으로 일반화되기는커녕 시범 농장 자체가 사라졌다. 집단주의적 경제시스템을 흔드는 박 전 총리의 개혁 조치를 못마땅하게 여긴 노동당 원로들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들은 150~200%의 증산 효과가 일어난 것은 전적으로 해당 지역 간부들이 포전담당제를 성공적인 영농방법으로 만들기 위해 영농자재와 비료 등을 우선적으로 은밀하게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김 위원장에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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