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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방위사업비리 수사의 이면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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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 때는 불량품 아니었다?

그런데 이 수사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는 방탄복의 성능에 관한 평가다. 2012년 감사원이 조사한 방탄복은 2003~2010년에 군에 납품된 제품이다. 이는 북한군의 구형 소총인 AK-47에 대응해 피탄(被彈)방호 시험을 거친 방탄복이다. 감사원은 샘플 14벌의 성능을 검증했다. 이 중 2008년 제작된 한 벌이 북한군 소총에 뚫렸다. 그런데 감사원이 피탄방호 시험에 사용한 소총은 2012년부터 북한군에 보급된 AK-74다. 즉 구형 소총에 맞춰 제작한 방탄복을 신형 소총으로 시험한 셈이다. 북한군의 신형 소총과 구형 소총은 탄약 크기, 총구 속도 등에서 차이가 난다.

방탄복 납품업체는 입찰할 때 피탄방호 시험 자료를 방사청에 제출한다. 방탄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을 심사하고 채택한 방사청 책임이다. 방사청은 감사원 시험방식에 이의를 제기했고 감사원도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2년 뒤 국정감사장에서 김 의원의 발언으로 재점화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 의원의 국정감사장 발언 이후 국방부가 실시한 방탄복 성능 시험결과다. 지난해 11월 17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기술품질원은 합동으로 방탄복의 방호력을 측정했다. 장소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ADD 산하 다락대시험장.



이날 사수들은 구형 방탄복은 AK-47로, 신형 방탄복은 AK-74로 시험했다. 45m 떨어진 지점에서 각각 3발씩 실사격을 해 관통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퍼펙트’. 신·구형 방탄복 모두 뚫리지 않았다. 다만 구형의 경우 방탄면이 조금 뒤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날 공개 시연장에 참석한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은 방탄복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 비리보다 부실에 초점 맞춰야

지난해 11월 17일 경기 연천군 다락대 훈련장에서 새누리당 국방위 의원들이 신형 방탄복의 성능을 확인했다.

성능 평가 아닌 운용 평가

둘째는 허위 공문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다. 합수단이 문제 삼은 특전사의 허위 공문서(‘다기능방탄조끼 시험결과’)에는 피탄방호 시험이 아니라 운용시험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운용시험은 병사들에게 3개월간 사용하게 한 후 착용감, 중량, 활동성 등을 측정해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다. 방사청 주변에서는 합수단이 운용시험에 관한 문서를 피탄방호 평가 문서로 오인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보고서는 2010년 5월 작성됐다. 특전사는 2011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S사로부터 방탄복 2000여 벌(13억 원 상당)을 구입했다. 특전사는 2009년 4월 방탄복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예하부대인 대테러 전문 707부대에서 시험 운용했다.

소총과 마찬가지로 방탄복도 순차적으로 개량된 제품이 납품되므로, 군에는 신·구형 방탄복이 뒤섞여 있다. 당시 특전사가 시험 운용한 제품은 신형 방탄복의 시제품이었다.

707부대는 이 방탄복에 대해 ‘부적합’ 의견을 냈다. 일부 언론은 감사원 보고서에 ‘총탄을 방호할 수 없는 등 모든 면에서 사용하기 부적합하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특전사 주변에 따르면 707부대는 피탄 성능이 아니라 끈이 헐겁고 소리가 나는 등 착용 시 불편함을 ‘부적합’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공인 피탄방호 능력 시험은 육군사관학교 인근 화랑대연구소에서만 가능하다. 개별 군부대의 시험은 인정되지 않는다.

합수단은 당시 특전사 군수처장이던 전 대령과 여단 군수참모 박 중령이 공모해 방탄복 성능을 허위로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전 대령이 보고서에 707부대의 의견을 누락하는 등 문서 작성에 관여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시제품은 이미 피탄방호 시험을 거쳐 방사청으로부터 성능을 인정받은 것이기에 언론보도와 달리 성능 평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는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게다가 박 중령은 구속적부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박 중령 측은 “증거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혐의가 없는 것”이라며 “포인트를 잘못 짚은 합수단이 앞뒤 안 맞는 수사를 벌였고 언론이 아무런 확인 없이 받아쓰면서 사건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합수단은 5월 하순 성능평가 서류를 조작해 방사청에 제출한 혐의로 방탄복 납품업체 S사 임원 조모 씨를 구속했다. 박 중령은 불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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