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부가 원하는 것과 안보 상황이 모순되니 ‘정권의 목표’와 ‘국방의 목표’가 충돌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죽어나는 것’은 중간에 낀 실무자들이다. 높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는데, 그러다 실무자들이 염려하는 큰 위기가 일어난다. 진정한 리더라면 그럴 때 나서서 실무자들의 애로를 해소해주어야 한다. 상황이 복잡한 만큼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분리해주어야 한다.
정권의 목표와 국방의 목표가 충돌하면 국방부 장관이 조율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노력을 하는 장관은 보기 어렵다. 그러나 1999년 6월의 조성태 장관은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나는 국방을 전문으로 책임진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할 테니, 대통령께서는 내가 그 의무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지침을 달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정확히 증언해줄 사람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타계했고, 조 전 장관은 대화를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일영 씨는 “1차 연평해전 이후 조 장관으로부터 ‘당신만 알고 있어라’는 전제로 들은 것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조 장관이 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지침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NLL에서 충돌이 일어났을 때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 둘째는 우리 군이 먼저 발포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충돌이 벌어져도 더 큰 사태가 일어나는 확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는 명료한 지침 같지만, 우리 같은 실무자들이 보면 모순된 지침이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보고 먼저 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군은 부대 곳곳에 ‘먼저 보고 먼저 쏘자’는 구호를 붙여놓지 않았는가. 이기라고 하면서 먼저 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로는 가능해도,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확전 방지는 우리도 동의하는 것이다. 군이 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위기를 관리해 종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확대되는 것은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 때문이고,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 군은 제대로 된 군이 아니다. 사태가 벌어지면 빠르게 제압해 종결짓고 다시 적이 반발해 새로운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군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다.
조 장관은 ‘셋째는 문제가 없고, 첫째와 둘째 지침이 모순되니,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지침은 대통령이 주시는 것이고, 그 지침을 실행하는 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대통령을 대신해 통수권을 행사하는 국방부 장관이 할 일이다. 군의 본질이 무엇인가. 세상에 패배를 목표로 삼은 군은 없다. 군의 목표는 항상 승리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첫째로 잡아준 지침을 제1 지침으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했다.
조 장관은 ‘절대 목표는 승리이고, 부차적인 목표는 선제사격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조 장관은 그러한 지침을 해군 2함대 등 작전부대 지휘관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현장 지휘관에게 모든 것을 맡겨 승리를 이끌어낸 1999년 6월 15일의 1차 연평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