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미디어 비평

주진우 기자의 너무 잦은 ‘허위 논란’

신종(新種) 기자? 매문(賣文) 선동가?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6-12-29 17: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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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주진우 씨는 자신이 소속된 매체에서 활동하기보다 소셜미디어 활용, 강연, 방송 출연으로 더 많은 뉴스를 생산한다. 그는 일찍이 인터넷 팟캐스트 ‘나꼼수’의 일원으로도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런 그에 대해 소속 매체에서 기사를 쓰는 차원을 넘어 ‘기자 겸 대중강연자’의 길을 개척하는 ‘신종 기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주씨의 뉴스성 발언에 대해 그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과 비판이 자주 제기돼왔다. 그는 지난 11월 25일 일본 와세다대에서 열린 ‘애국소년단 토크콘서트’에서 최순실 사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비아그라 나오고, 마약성분이 나오고, 앞으로 더 나올 거거든요. 섹스와 관련된 테이프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마약 사건이 나올 거예요…그리고 병역 비리가 나올 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나올 겁니다. 최순실·박근혜와 관련된…그리고 대규모 국방 비리가 나올 겁니다.”



    증명할 수 없는데 확신한다?

    그의 이런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그는 섹스 관련 테이프, 마약, 병역 비리, 국방 비리 같은 ‘자극적이고 사실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그렇게 볼 만한 근거나 정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기자 신분 때문에 이런 비공식 정보도 신뢰하기 쉽다. 그가 뒤이어 하는 말을 들으면 허망한 느낌마저 든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겨놓은 유산이 최소한 10조 원이 넘을 거예요…숨겨놓은 재산이 몇 조가 될 겁니다…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서 차관을 들여올 때 무기로 들여온다든지, 대기업에서 뭘 수입할 때 아예 커미션을 떼고 스위스 계좌에 묻어뒀습니다. 그 계좌의 돈은 상당 부분이 움직이지 않고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고 저는 취재 결과 확신하고 있습니다. 증명할 순 없습니다, 아직은.”

    증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확신하는 행위는 그냥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자 막연한 예언일 뿐이다. 그의 이런 말들은 ‘사실 확인’ ‘팩트 체킹(fact checking)’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저널리즘’과 동떨어진 태도로 비친다.

    주씨는 2011년 한 출판기념회에서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면서 뤼브케 서독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로부터 고소당했다. 박정희와 뤼브케가 당시 만난 사실이 있으므로 주씨의 말은 기사로 치면 오보였지만 그는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그의 페이스북은 루머를 배양하는 실험실 같다. 11월 6일에는 “박근혜 최순실 주변에서는 사람이 많이 죽습니다”라는 글로 시작한다. 1995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이 등장하는 장면이 방영된 후 촬영감독이 사망한 사건을 두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1995년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정치권에 진입하기 전이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제보자를 찾는다며 기사화할 의지를 내비쳤다.  



    하도 막 던지다 보니…

    11월 3일에는 최순실의 문화예술계 개입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대표 가수님, 박근혜 대통령이랑 노래할 때는 좋으셨죠?”라고 썼다. 이 ‘국가대표 가수’가 누군지를 두고 인터넷에서 많은 이야기가 설왕설래했다. 11월 10일에는 익명의 관계자 입을 빌려 “초기 록히드마틴과 라인을 이룬 것은 린다 김과 정윤회였으나 최순실이 마무리했다”며 최순실의 방위산업 개입을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이 말을 덥석 받았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공론화한 것이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이를 공식 부인했고 이후 의혹 제기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잠잠해졌다.

    하도 막 던지다 보니 가끔 사과할 때도 있다. 주씨는 팟캐스트에서 “최순실 씨 30년 친구분들이 (최순실 씨) 임신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주씨는 “유튜브 제목을 보고 내용을 들으면 정유라 씨가 최씨의 딸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 이 점에 관해서는 최순실 씨, 정윤회 씨, 정유라 씨에게 사과한다”고 썼다.



    ‘고급 속물이 매문한다’

    주씨는 시사 이슈에 관한 공개 발언이나 글로 대중적 인기를 누린다. 그는 공인을 감시해야 할 기자이면서 그 자신도 공인인 셈이다. 그에게 사회적 인지도를 안겨주는 그의 말이나 글이 사실성 논란에 자주 휩싸인다면 그에겐 ‘매문(賣文) 선동가’라는 비판이 제기될지 모른다. ‘고급 속물이 매문한다’고 한 김수영의 산문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매문(賣文)을 하고 있다. 매문은 속물이 하는 짓이다. 속물 중에도 고급 속물이 하는 짓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매문가의 특색은 잡지나 신문에 이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라디오에 나가고, 텔레비에 나가서 이름이 팔리고, 돈도 생기고, 권위가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

    열 번의 특종보다 한 번의 오보가 기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자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주씨는 이 원칙에서 예외인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별명이 ‘사탄 기자’라고 말한다. 악마니 악동이니 하는 말은 요즘 시대에 얼마든지 애칭으로 쓸 수 있다. 더구나 일탈행위를 일삼는 권력자를 응징하는 사탄이라면 좋은 사탄이다. 다만, 개인의 정파적 신념을 퍼뜨리거나 대중에게 영합하기 위해 ‘사실 추구’라는 기자의 직업적 가치를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는 사탄이라면 언론업계에선 환영받기 힘든 사탄이다.

    주씨의 감성적 발언은 인터넷에서 종종 화제가 된다. 그럴 때마다 “주진우 같은 기자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주씨가 인기를 끄는 건 어쩌면 우리 대중 일각의 ‘감성적인, 너무나 감성적인’ 어떤 독특한 정서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라면, 프랑스라면, 독일이라면 입증되지 않은 폭로를 너무 자주 하는 언론인이 과연 사회적 평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논술은 당장 듣기엔 달콤한지 몰라도 결국 소통의 장을 오염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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