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건교부 ‘가격 담합 아파트’ 발표 그 후

“집값 잡기는커녕 잠자는 사자 건드려… 정부, 또 졌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6-09-08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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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교부 적발 후 아파트에 ‘입질’하는 사람 더 늘었다”
    • “집값 상승에서 ‘물먹은’ 사람의 심정, 안 당해보곤 몰라”
    • 현수막은 고전적 수법, ‘아저씨 부대’가 주도하는 인터넷 담합이 최신 트렌드
    • 적발 지역 중개업소, 문 닫고 암암리 영업
    • 시세로 굳어진 담합 아파트 호가, 요지부동
    • “집값 잡으려면 아파트 분양가부터 내려라”
    건교부  ‘가격 담합 아파트’ 발표 그 후
    “돈한푼 안 들이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해줬으니 건설교통부가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일이 아니면 우리 아파트가 신문이나 TV 뉴스에 오르내릴 일이 있겠나. 건교부 발표 후 주변에서 우리 아파트에 ‘입질’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모두 건교부가 홍보해준 덕분이다.”

    7월21일 건교부가 집값 담합을 했다고 공개한 서울·수도권 아파트 단지 58곳 중 인천광역시에서 유일하게 ‘찍힌’ 부개동 삼부한신아파트 부녀회장 박상임(43)씨의 말이다.

    건교부는 “7월11일 개설된 집값담합신고센터에 접수된 110여 건의 담합 사례지역을 1차 조사한 결과, 서울 신림동 대우푸르지오 아파트, 봉천동 보라매 삼성아파트, 고양시 화정동 부영아파트 등 58개 아파트에서 담합행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담합 아파트는 서울 13곳, 경기 44곳, 인천 1곳이다. 부천 중동·상동신도시에서만 35곳이 적발됐다. 건교부는 집값 담합 신고가 들어온 서울·수도권 아파트 96개 단지에 조사단(18개팀 36명)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이들 아파트의 부녀회와 주민자치회 등은 현수막과 유인물 게시, 단지 내 방송을 통해 담합을 선동하고,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에게도 담합에 협조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교부는 이들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 명세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한편 국민은행, 한국감정원, 부동산 114, 부동산 써브, 스피드 뱅크, 닥터아파트 등에는 4주간 담합 아파트에 한해 ‘당분간 시세정보 게재를 유보한다’고 표기토록 했다.

    건교부 발표에 담합세력 뭉쳐



    인천시 부개동 삼부한신아파트 부녀회장 박상임씨는 “강남이나 송파, 목동, 경기도 분당 등 소위 버블 세븐 지역에서 가격 담합이 이뤄질 때는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뒤늦게 나서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며 “이번 발표는 졸속행정의 대표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의 몸통은 그대로 놔두고 꼬리를 비틀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정부의 정책은 형평성이 가장 우선인데 그걸 무시했으니 이 정책이 먹혀들겠나. ‘걸린’ 이후 집값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예전에 집값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반발심으로 똘똘 뭉쳤다.”

    12개동 1020세대인 이 아파트에는 각 동을 대표하는 12명의 부녀회 대표가 있다. 박씨가 각 동 대표를 긴급히 소집한 것은 지난 5월 말. 박씨는 부개동과 인접한 부천시 중·상동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5월 중순경 가파르게 상승하자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몇 주 사이에 대형 평형 기준으로 호가가 2억~3억원씩 뛰었다. 강남이나 다른 지역의 집값이 올랐을 때도 속이 상했지만 인근에 위치한 중·상동의 집값이 껑충 뛰자 주민들의 소외감이 극에 달했다. ‘담합을 하자’는 회의 결과에 따라 6월 초 ‘우리 아파트는 평당 1000만원의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안내문을 붙였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시세가 부녀회가 내세운 호가와 비슷해졌다.”

    박씨는 그러나 집값이 오른 이유가 담합 때문만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부녀회가 나서기 전부터 집값은 이미 꿈틀대고 있었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매물 20여 개가 며칠 사이에 소화됐다. 이후 공급이 달리는데다 주변 시세와 인근 지역 분양가가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집값이 상승한 것이다.”

    아파트 시세가 호가와 같아진 것이 시장의 움직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담합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씨는 또 건교부의 담합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파트는 같은 단지라도 전망이 좋은 로열층과 그렇지 않은 저층의 가격 차이가 큰 데도 불구하고 건교부가 거두절미한 채 평형대별 거래 가격만 밝혔다”는 것. 그는 “건교부 발표가 그동안 집값 상승에서 ‘물먹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앞으로 아파트 가격 담합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가 집값 폭등 주범이라니…”

    실제로 건교부의 담합 아파트 명단 발표 후 건교부 홈페이지는 “강남이나 버블세븐 지역은 조사에서 쏙 빼놓고, 다른 지역에서 담합할 때는 ‘열중쉬어’ 하고 있던 건교부가 이제야 뒷북을 두드리고 있다”며 “누가 이기는지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면서 정부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글들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다음은 ‘건교부 도대체 제 정신인가’라는 제목으로 홍성필씨가 올린 글의 전문이다.

    “장인이 사는 평촌의 아파트는 1년 전 6억원쯤 했는데, 지금은 13억원을 호가한다. 어머니가 사는 부천 상동의 아파트는 1년 전 4억원쯤 하던 게 이제 호가가 5억원이다. (부천 상동 중동) 주민들은 당연히 억울하지 않겠나. 1년 전만 해도 가격 차이가 별로 없었고, 주변 환경도 비슷한 다른 지역이 담합으로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치솟을 때 (부천 상동 주민들은) 순진하게 가만히 있었다. 참다참다 ‘우리도 제값 받기 운동 하자’고 종이 한 장 붙였더니 집값 폭등의 주범인 양 몰고 있다. 부천 중·상동 50만 주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걸 알기나 하는가. 건교부의 어이없는 작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삼영씨는 “공평하게 살고 싶다”며 “이 정부는 말로만 서민을 위한다고 했지 실제로는 서민을 더 못살게 만드는 무능력한 정부”라고 꼬집었다. 정씨는 “강남, 분당, 목동 등 다른 곳은 이미 담합을 통해 (집값이) 몇 억씩 올랐는데도 묵인해놓고 이제 와서 힘없는 동네 아파트만 담합이라는 명목으로 칼을 휘두르니 산적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가격 담합 단지로) 적발된 곳 중에 몇몇은 터무니없이 올린 곳도 있으나 대부분은 제 위치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어놓았다.

    건교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아파트 단지 부녀회 관계자와 주민들 또한 “우리는 소위 ‘빽’ 없고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파트 가격 담합을 한 것으로 적발된 서울 영등포구 우성아파트(2차) 부녀회장 진모씨는 “반상회 때 ‘다른 아파트 단지는 죄다 가격 담합을 해서 값이 올랐는데 우리도 해야 되지 않냐’는 안건이 많이 접수돼 부녀회가 그 일을 대신 했을 뿐”이라며 “마치 이번에 걸린 58개 단지 부녀회가 아파트 가격 담합의 ‘시초’인 양 정부가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발표했는데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번 1차 조사의 허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한마을 아파트 24평형에 사는 이모(33)씨는 “실제로 집값 담합은 바로 옆 단지에서 먼저 시작됐고 더 적극적이었는데, 우리 아파트만 걸렸다”며 “주민들이 ‘옆 단지엔 힘있는 사람들이 좀 사나보다’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초 성동구 응봉동 D아파트 34평형을 5억원에 계약한 김모(41)씨도 건교부 조사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전세로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내 집값의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봤더니 3월에 3억원 하던 시세가 부녀회의 담합 소식이 전해진 후 하루가 다르게 오르더라. 조금 있으면 떨어지겠거니 하고 기다렸는데 하락할 기미가 안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더 오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2개월 만에 2억원을 더 주고 아파트를 샀다.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2억원이 두 달 만에 오르더라. 그런데도 이 아파트는 용케 (건교부 조사에) 걸리지 않았다.”

    담합의 진화는 계속된다

    건교부의 담합 아파트 1차 조사가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파트 주민이 많지만 아파트 값이 급등한 지역에선 어김없이 주민들의 조직적인 담합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 형태와 방법도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건교부가 이번에 적발한 현수막이나 안내문을 이용한 부녀회의 수법은 고전적인 방법에 속한다. 최근의 담합은 ‘아줌마’보다 ‘아저씨’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주 활동 무대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블로그와 카페, 부동산 정보 제공 사이트 내에 개설된 ‘단지 동호회’ 등을 통해 부녀회보다 훨씬 주도면밀하게 담합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올 초 집값이 급등한 산본 신도시다. 지난 3월 말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산본 네트워크’라는 카페가 생겼다. 산본 신도시 주민 몇 명이 주도해 만든 이 카페의 회원수는 8월6일 현재 5500여 명. 회원들은 카페가 문을 열자마자 ‘저평가된 아파트 값을 바로잡자’는 홍보물을 제작해 아파트 입구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에 붙이자는 캠페인(?)을 벌였고 집주인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중개업소를 추천하는가 하면 미끼, 저가 매물을 올리는 비추천 중개업소 명단을 공개했다.

    건교부  ‘가격 담합 아파트’ 발표 그 후

    최근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한 조직적 집값 담합이 성행하고 있다. 주민들은 인터넷 카페에 담합에 호의적인 중개업소를 추천하고, 저가 매물을 올리는 중개업소는 되도록 이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또한 이들은 강남을 비롯해 분당, 목동, 일산, 평촌의 아파트 시세와 산본의 시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산본의 집값이 타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시중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을 때 대출금의 기준이 되는 국민은행 부동산 시세가 상향 조정되도록 고가에 거래된 ‘물건’의 계약서를 국민은행측에 보내 시세에 즉각 반영하라고 요청했다. 유명 포털 사이트와 부동산 정보 제공 사이트에 ‘산본’의 장점을 널리 홍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된 후 산본의 집값이 수직 상승했다.

    산본동 백두극동아파트 49평형의 경우 이 카페가 개설되기 직전인 3월20일 국민은행 시세(일반거래가)가 4억9000만원이었으나 카페 회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 지 40여 일 만인 5월8일에는 6억7000만원(하한가 5억6000만원, 상한가 7억2000만원)으로 뛰었다. 단숨에 2억여 원이 오른 것이다.

    산본 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친 데는 집값이 저평가됐다는 주민들의 피해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집값 담합에 비협조적인 중개업소에 직·간접적으로 항의하고, ‘허위 매물과 미끼매물(인터넷 부동산 정보 사이트 등에 매수자를 현혹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물이 없는데도 부동산 중개업자가 허위로 매물을 올려놓는 행태)의 정리를 요구했다.

    이에 질세라 지난 4월 부천 중·상동 주민이 결성한 ‘ 주민연합회’도 문을 열었다. 산본의 ‘활동’을 벤치마킹한 이 카페의 8월6일 현재 회원수는 75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활동 내용은 산본 주민들이 보인 것과 대동소이하다.

    “억울하면 집을 사라”

    건교부가 담합 아파트 58곳의 실명을 공개한 지 열흘이 지난 8월1일 부천 중·상동을 찾았다. 한아름마을, 백송마을, 라일락마을, 보람마을, 포도마을, 무지개마을 등 35개 아파트 단지가 무더기로 적발된 지역이다. 그러나 건교부 발표가 무색하다 싶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상동의 아파트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백송마을 LG·SK 아파트(38·48평형 496세대) 단지 내에는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파트 제값 받기 운동에 동참합시다’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인근 단지에서도 집값 담합과 관련된 현수막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LG·SK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만난 50대 주민(여)은 “담합 지역으로 지정된 데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덤덤하다”면서 “실거래가를 공개하고, 각종 부동산 관련 사이트에서 시세 제공을 유보하는 게 집값 안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냐”고 반문했다.

    중·상동의 공원과 상가, 단지 내 쉼터 등에서 만난 주민 11명 중 아파트를 소유한 7명은 이구동성으로 “집값이 올라가면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아파트 담합에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중 40대 중반의 한 여성은 “배고픈 건 참아도 (다른 지역의 집값이 올라)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세입자들이 보인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세입자라는 한 주민은 “반상회 때 집값 담합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집주인측과 세입자 간에 냉기가 흘렀다”며 “도대체 부녀회에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며 각종 정책을 남발했지만 약발이 먹힌 게 뭐가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집을 소유한 7명에게 아파트 가격 담합이 세입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속이 좀 쓰리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세입자가 건교부에 (담합한다고) 신고하지 않았겠냐” “배알이 꼴리면 집을 사면 될 것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세입자 처지를 고려하는 집주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내 집값 오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한 세입자는 “집값 상승이 전세가 상승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이래저래 집 없는 서민들만 죽어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주택자의 설움, 아파트 소유자와 세입자 사이의 깊은 감정의 골이 느껴졌다.

    시세로 굳어진 호가, 매물 全無

    집값 담합을 했다고 적발된 아파트들의 집값 변동 추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매수자’로 가장해 부천 상동 LG·SK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그런데 업소마다 출입문에 ‘7월31일부터 8월6일까지 휴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문이 잠긴 H중개업소의 안을 들여다보니 두 명의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크를 하자 문을 열어준다. “사람이 있는데 왜 문을 닫고 있냐”고 물으니 “건교부의 추가조사를 피하려고 문을 닫은 채 암암리에 영업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부동산 중개업소의 대표라는 김모씨에게 “아파트를 사려고 하는데 담합 지역으로 적발된 후 매매가가 좀 떨어지지 않았냐”고 물었다. 김씨는 우선 필자가 진짜 매수자인지 아니면 ‘매수자를 가장한 매도자’인지를 탐색하는 눈치다. 집주인이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매수자인 척 중개업소에 들러 “얼마에 살 수 있어요?” 하고 묻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필자와 몇 마디를 나눈 끝에 매수자로 확신했는지, “아파트 가격 담합 단지로 지정된 후 매물이 쏙 들어갔지만 작업을 한번 해보겠다”며 적극성을 보였다. LG·SK 48평형의 지난 5월 초 시세는 5억대 초중반이었다.

    “현재 48평형 호가는 8억~8억5000만원 선이다. 만약 계약금을 손에 쥐고 있다면 매물을 거둬들인 집주인과 7억5000만원 선에서 타협해보겠다.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집주인의 사정이 급하지 않은 한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매물이 하나 둘이라도 나와야 거래가 성사되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 지금처럼 매물이 없는 상황에서 단 한 건이라도 호가에 계약서를 쓰면 그게 곧 시세로 굳어버린다. 그러면 호가는 또다시 1억~2억원이 뛸 것이다.”

    필자가 “가격이 맞으면 당장 계약하겠다”면서 매수 호가를 7억원에 못박았다. 고객이 이 정도의 적극성을 보이면 중개업자는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물건 ‘쥐어짜기’에 돌입한다. 김씨는 ‘매물’이 등록된 공책을 펼쳤다. 몇 장을 뒤적이는가 싶더니 “찔러볼 만한 매물이 하나도 없다”며 공책을 덮는다. 그러면서 “급등세 조짐을 보이던 지난 5월 8개의 물건이 한꺼번에 소진됐다. 아파트 가격 담합 지역은 급매물이 빠진 후 호가와 시세 차이가 벌어졌다가 차츰 시세가 호가에 가까워지는 속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 오른 이유, 따로 있다

    LG·SK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부천 중·상동 지역은 5월 이후 3개월 새 아파트 값이 대형 평형을 중심으로 2억∼2억5000만원 올랐다. ‘담합,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 김씨는 이 지역 집값 급등의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5월4일 모델하우스를 공개한 ‘중동역 2차 대우아파트’의 분양가가 아파트값 급등의 기폭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대우아파트 48평형 ‘중간층’의 분양가는 평당 1314만원(전체 분양가 6억4400만원). 비슷한 시기 중동에서 입지가 좋은 편에 속하는 은하마을 D아파트 49평형의 국민은행 시세가 4억원대 초반이었다(5월1일 기준 일반거래가).

    “중·상동 지역 부녀회가 다른 신도시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집값을 올리기 위해 담합을 계획할 무렵 대우아파트 분양가가 공개돼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부녀회가 설치지 않아도 주민들 사이에 ‘(대우아파트) 분양가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순식간에 형성됐고 이는 시세와 호가에 즉각 반영됐다. 결국은 분양가가 집값 상승을 주도한 것이다. 2009년 개통 예정인 지하철 7호선의 개발 호재도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노릇을 했다.”

    부천 중·상동 못지않게 여러 단지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경기도 고양시 화정·행신지구도 호가가 떨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일부 단지 대형 평형의 호가는 오름세가 계속됐다. 나와 있던 매물 또한 ‘자라목’처럼 쏙 들어간 상태다. 여름철이 원래 부동산 시장 비수기인데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집주인들의 반발이 더해져 매물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는 게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전언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은 제쳐두고라도 가까운 일산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집값이 낮아 부녀회가 담합에 나섰다”면서 “최근 인근 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가 평당 1500만원대에 육박하면서 호가가 상승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화정·행신지구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한 고양시 행신동 ‘SK뷰’(25~45평형 574가구)의 평당 분양가는 960만~1490만원(45평형 풀옵션) 선. 7월25일부터 청약 신청을 받은 이 아파트의 분양가가 예상보다 높게 책정된 것이 잠잠하던 이 지역 집값을 들썩이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화정·행신지구 부녀회측이 내세운 호가는 ‘SK 뷰’ 분양가와 비슷한 평당 1500만원 수준.

    화정지구 은빛마을 부영아파트(37평형)에 사는 배모(54)씨는 “부녀회가 제시한 호가가 당시 시세와 2억~3억원 차이가 났지만 주민들 사이에 ‘우리 아파트도 인근에 새로 짓는 아파트 분양가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김모(43·여)씨는 “좀 낡았다는 점을 빼면 교통이나 환경, 교육시설 등이 월등히 낫기 때문에 집을 새 아파트 분양가보다 싸게 내놓는 집주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면 먼저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파트 분양가를 자율화한 1998년 이후 분양가는 수직 상승했고, 2005년에는 자율화 이전보다 무려 191%나 올라 평당 1521만원으로 조사됐다. 부동산정보 서비스업체 부동산뱅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997년 서울시 동시분양에 나온 아파트의 평당 평균 분양가는 464만4000원. 자율화 실시 첫해인 1998년의 경우 전년 대비 10.2% 상승한 512만원이었다가 이듬해에는 평당 562만4000원을 기록했으며, 2000년 643만9000원이던 것이 2005년 1500만원대로 껑충 뛰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체가 주변 시세에 맞춰 분양가를 높게 책정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주변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제발 우리도 적발해달라”

    건교부가 담합 아파트 단지를 공개한 후 ‘제발 우리도 걸렸으면 좋겠다’며 건교부와 ‘맞짱’을 뜬 아파트 단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의 동아아파트(1단지)는 ‘우리 아파트 가격을 평당 1000만원으로 정상화합시다’ ‘우리 아파트는 매매가격이 평당 1000만원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주민 일동’ 명의의 현수막을 7월23일 처음으로 내걸었다. 건교부 발표 이틀 만이다.

    이 아파트 부녀회 관계자는 “집값 담합을 한 부천 중·상동과 인천 부개동 등 인근 단지와 집값이 이렇게 큰 폭으로 차이가 날 수 있느냐”며 “우리 아파트가 건교부 2차 조사에서 적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막말로 우리는 걸려도 손해 볼 게 없다. 그러니 정부가 ‘적발’해서 우리가 담합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전국에 알려달라. 집값이 몇 년 동안 요지부동이었다. 주민들의 불만이 상상을 초월한다. 정부도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같은 돈 주고 산 친구네 집은 두 배로 뛰었는데 우리 집은 그대로라면 속 쓰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누구의 소행인지 8월5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현수막이 갈기갈기 찢겨 있더라.”

    정부의 담합 아파트 발표 이후 인천시 부평구에서는 갈산동의 이 아파트 단지 외에 부평동의 몇 개 아파트 단지에서 집값 담합을 독려하는 현수막을 제작해 ‘보란 듯이’ 단지 입구에 내걸었다. 담합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이 지역의 주민들은 정부 발표를 통해 인접 지역인 부천 중·상동의 담합 소식을 접한 후 “이참에 우리도 집값을 올리자”며 담합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집값 담합은 암암리에 서울과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1차 조사에서 걸리지 않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가만히 있으면 우리만 손해’라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임정은(42)씨는 요즘 잠을 설친다. 열대야 때문이 아니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값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안 오르네 해도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에 비하겠는가. 2000년 초만 해도 이 집(대지 50평의 2층 양옥)을 팔면 서울의 웬만한 지역 40평형대 아파트를 사고도 남았다. 그런데 차츰차츰 단독주택과 아파트 가격차가 벌어지더니 불과 몇 년 사이에 아파트 값이 두 배로 뛰었다. 이제 아파트는 내게 ‘너무나 먼 당신’이 돼버렸다. 솔직히 앉아서 몇 억원씩 벌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아파트 주민들은 담합이라도 하지만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그마저 힘들다. 이곳 주민들은 향후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는 재건축만 바라본다.”

    “집값이 미쳤다”

    어떤 이는 “집값이 미쳤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의 10대나 20대가 결혼해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게 됐다. 이번 취재 중에 만난 사람들 또한 “당신 자식이 부모 도움 없이 집 장만을 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한결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취직도 어려운데 집 장만은 턱도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도 담합에 대한 의지는 굽히지 않았다.

    “자식들이 결혼해 집을 마련하든 못하든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다. ‘담합에 성공해 집값이 오르면 이익이고, 실패한다고 해도 본전’이기 때문에 죽자 살자 내 집값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직접 나서서라도 집값 담합을 해야겠다.”(서울 중랑구 묵동의 40대 전업주부 김모씨)

    건교부는 8월11일 2차 담합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차 조사는 당초 버블 세븐 지역이 한 곳도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한 형평성 시비 해소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건교부는 “강남, 목동, 분당, 용인, 산본 등의 지역을 특별 정밀 조사했으나 용인시 언남동 신일해피트리 외의 지역에서는 담합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서울 12곳, 인천 8곳, 경기 21곳 등 총 41개 아파트 단지를 담합 아파트로 발표했다. 여기에는 “우리도 적발해 달라”며 드러내놓고 담합을 한 인천시 부평구 동아아파트 등 부평구 일대 8개 단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하지만 정부가 ‘담합 아파트’를 발표했음에도 해당 아파트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8월7일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1차 조사에서 적발된 58개 아파트 단지의 시세를 조사한 결과, 57개 단지는 시세 변화가 없었고 1개 단지는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정부는 결국 이번에도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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