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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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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모건이 말한 문명사회를 ‘국가’로 바꾼 이가 엥겔스다. 엥겔스는 ‘국가 이전 단계’와 ‘국가 단계’라는 말로 ‘문명 이전’과 ‘문명’을 정의하면서, 국가라는 말을 등장시켰다. 따라서 ‘국가라고 하는 문명사회는 법을 가진 사회’로 정의되었다.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내몽고 자치구에서 발견된 하가점 유적지 터. 가운데 불룩한 부분이 유적지이다.

법은 추상적인 것이므로 어딘가에 이를 기록해놓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록이 유실된 경우이다. 실제로는 법이 있었는데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를 국가 이전 단계로 보아야 하는가?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을 해보니 지역공동체적 특성이 발견되는 시기는 대체로 청동기가 등장한 시기와 겹쳤다. 그리하여 서양의 학자들은 청동기시대를 법치 국가가 등장한 시기로 본다.

일반적으로 인류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를 거쳐 철기시대로 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청동기와 철기 시대를 거의 동시에 맞이한 곳도 있다. 일본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일본은 한반도 등에서 청동기와 철기 문명을 경험한 사람들이 건너갔기에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러면 일본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들어가기 전에는 법으로 다스리는 국가가 없었을까.

신석기 후기에도 국가가 있었다

아테네의 사례처럼 서양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국가가 생겨났다. 그러나 동양은 달랐다. 한국 중국 등 동양에서는 법치가 출현한 다음에는 물론이고 산업사회가 열릴 때까지도 농촌에서는 성씨(姓氏)별로 모여 사는 혈연공동체를 유지했다. 하버드대에 봉직했던 고고학의 대가인 중국계 장광즈(張光直·작고) 박사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서양 잣대로 하면 동양은 혈연 중심이니 산업사회가 올 때까지 국가가 아니었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농업은 물을 필요로 하므로 대개 강가에서 이뤄졌다. 강물의 범람은 농업을 위협하니 이들은 공동으로 둑을 쌓았을 것인데, 이러한 일을 하는 데는 경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강가에서는 어업이 이뤄지고 어업과 농업 생산물의 교환에 의해 원시적인 상업이 탄생한다. 배를 비롯한 어업도구를 만드는 산업도 시작된다. 산과 사막과 짐승이 우글거리는 육로보다는 강으로 물자를 운반하는 게 쉬웠을 터이니, 강가의 취락지는 교통의 요지가 된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법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신석기시대 후기 농업이 시작된 동양의 강가에 있는 취락지에서는 이미 국가가 등장한다. 신석기 후기에 나타난 법치는 청동기의 출현으로 가속화한다. 청동기를 가진 사람은 간석기(마제석기)를 가진 사람보다 노동력과 전투력이 강할 수밖에 없으므로 쉽게 지배자가 돼, 그 권력을 대대손손 전하면서 권력을 강화한다. 청동기는 이들의 권력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이므로, 이들은 피지배층에게 청동기 제작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국가를 운영해 나간다.

단군은 백두산에서 건국하지 않았다

‘한민족을 형성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단군’이라고 대답한다. 한민족을 형성했다면 단군은 실존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단군이 실존 인물이냐’고 물으면, 단군신화를 이야기하며 ‘신화에 나오는 비실존 인물이다’는 대답이 주류를 이룬다.

신화 형태로 거론된 인물이라고 하여 실존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몽과 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갖고 있지만 그들은 고구려와 신라를 건국한 실존 인물이다. 따라서 곰이 변해서 사람이 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다고 하여, 그리고 1908년을 통치하다 산신령이 됐다고 하여 단군을 비실존 인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한민족을 형성한 시기의 ‘지도자’ 전부를 단군으로 불렀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단군은 특정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을 이끈 지도자 자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1675년 ‘북애(北厓)노인’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고려 초 발해의 유민이 쓴 ‘조대기(朝代記)’를 토대로 작성한 ‘규원사화(揆園史話)’의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규원사화’는 환웅의 아들인 ‘환검(桓儉)’이 최초의 단군이 되고 ‘고열가(古列加)’가 마지막인 47대 단군이 돼 1195년간 나라를 이끌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문헌 고증 과정을 거쳐 작성된 역사책이 아니라 고유신앙의 견지에서 쓴 역사 이야기(史話)인지라 역사학계에서는 사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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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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