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공신닷컴 강성태가 본 차별금지법 "진짜 차별은 학력을 차별로 보는 것“

  • 강성태 공신닷컴 대표

    입력2021-08-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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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력 철폐의 민낯 ‘학종’의 실패가 남긴 교훈

    • 학력은 학생이 후천적 노력으로 얻은 성과

    • 학력 쌓는 과정에서 공정성 확대 시급

    [GettyImage]

    [GettyImage]

    “성태 형 학력 보고 채용하면 불법이라는데 그럼 굳이 좋은 학교 가려고 공부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자퇴할 생각이었는데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김치싸대기 맞을까 봐 못하겠어. 형이 답 좀 해줘.”

    “해당 직군의 전문성을 나타내는 석·박사 학력조차 밝힐 수 없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요? 그럼 뭘로 뽑는다는 건지….”

    공신닷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글이다. 구독자가 100만 명을 넘는 멘토링 채널이다 보니 하루에도 수백에서 수천 건에 이르는 다양한 질문과 댓글이 이어진다. 구독자 상당수는 입시를 앞두고 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이른바 청년세대다.

    처음에 이런 글이 가끔 올라올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질문이 계속 올라왔다. ‘현재 이슈가 이거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질문 수가 날로 급격히 늘었다. ‘법알못(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이렇게 학생들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처음 ‘차별금지법’을 접했다.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정의로운가! 그런데 내가 매일같이 소통하는 대한민국의 진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차별금지법은 과연 정의로울까?



    ‘학종’ 불편한 진실이 남긴 교훈 돌아볼 때

    복잡한 검색 끝에 차별금지법 제정 취지를 찾아봤다. 우리나라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이 헌법적 가치를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란다. 그런데 ‘학력’, 니가 거기서 왜 나와?

    앞으로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합리적 이유 없이 학력을 이유로 고용에 있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여전히 학력을 채용이나 승진에서 반영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는 무엇으로 가릴 수 있는가? 너무 모호하다. 또한 이 합리성 여부를 온전히 증명해 내야 하는 책임은 회사에 있다. 고용과 승진 상황이 회사마다 사람마다 다르고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그때마다 합리성을 입증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차별’에 부담감을 느끼는 기업들이 결국 채용 과정에서 대졸 및 석·박사를 포함한 학력을 아예 적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전망한다. 채용에 학력을 반영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행복해질까? 그깟 한 장짜리 졸업장에 갇혔던 나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드디어 빛을 보고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력이 떠난 자리에는 면접과 기타 경력이 남아 더한 깡패 짓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학력 말고 내세울 것들을 찾아야 한다. 학력을 대체할 정도의 전문성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스펙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여기서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학생부종합전형이다. 우리는 이미 고등학생들을 통해 학력 철폐의 민낯을 본 적이 있다.

    입시 정책의 변화를 한번 살펴보자. 학생부종합전형을 핵심으로 한 수시전형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확대됐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는 너무 좋다. 시험 점수로 줄을 세우는 것이 어린 학생들에게 얼마나 냉정한 일인가. 점수로 나타나지 않는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열정을 보려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탄생한 제도가 바로 학생부종합전형이다.

    문제는 도대체 열정과 잠재력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마치 지금 차별금지법이 고용시장에서 학력을 몰아내려 하는 것처럼, 점수를 입시제도에서 소거하고 정성적인 것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 다르다. 내가 분명 시험 성적은 더 높고 다른 활동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떨어지고 쟤는 붙는 일이 허다하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학입시는 학생 본인뿐 아니라 온 집안의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 엄청난 도전이다. 수긍하지 못할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 누구도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니 깜깜이 전형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준이 뭔지 모르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전부 다 준비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다 챙겨야 하니 공교육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결국 사교육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제 “차라리 점수로 줄 세우던 시절이 행복했고 낭만적이었다”고 말한다. 수학능력시험(수능) 하나만 챙기면 됐던 정시 위주 입시로 제발 돌아가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입시제도가 다시 정시 비중을 좀 더 높이는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는데, 차별금지법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당장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현장에서 학생들이 보인 반응은 ‘혼란스러움’이다. 취업에서 활용하지도 못할 석사 공부를 해야 할지, 복수전공을 과연 해야 할지 다들 나에게 와서 묻는다. 마치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초기를 보는 듯하다.

    학생의 노력이 본질이 아니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공’하는 대학교 내 취업준비센터 취준생들. [뉴시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공’하는 대학교 내 취업준비센터 취준생들. [뉴시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부마저 이의를 제기했다. 최근 국회에 차별금지 법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내면서 금지 대상 차별의 범위에서 ‘학력’을 제외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교육부는 학력이 성별처럼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교육부의 이 같은 이의 제기에 대해 “개인의 노력은 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요소는 개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물론 학력에 환경적 요소가 반영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과 환경 중 어느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일반화할 수 없다. 노력과 환경이 학력에 마치는 영향을 수학 문제처럼 계산할 수도 없을뿐더러 사람마다 상황마다 노력과 환경의 영향이 다르게 작용한다. 노력도 환경도 학력에 영향을 주는 건 맞다. 하지만 노력이 환경보다 덜 본질적이라고 여기는 건 단언컨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나는 매년 공신닷컴 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인터뷰를 한다. 수능 만점자,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서울대와 고시에 합격한 사람 등 우리 사회에서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 대상이다.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공부 방법을 알려주고 희망과 힘을 주기 위해 2006년 시작한 일이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개천 용을 만났다. 그들이 얼마나 혼신을 다했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 요소가 개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라면, 이런 사람의 노력은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소위 흙수저로 태어나 피나는 노력 끝에 명문 대학에 합격하고 공부를 이어가는 학생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다. 비단 저소득층 학생만이 아니다. 공부는 노력이 아닌 환경이 좌우한다고 하면 어린 학생들에게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말을 도대체 무슨 염치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학생들의 동기를 꺾을 수 있는, 정말 경계해야 할 말이다.

    진짜 차별은 어디서 오는가?

    다시 학생부종합전형을 예로 들면, 학생부종합전형 역시 취지는 좋았으나 종합적으로 챙길 게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자율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동아리 활동, 독서 기록, 수상 실적, 세특(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줄여 이르는 말), 행특(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그리고 지금은 비리가 너무 많아 폐지됐지만 논문과 인턴 경력까지. 실제로 학생 혼자 다 챙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반면 능력 있는 부모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무 많아졌다. 비교과의 상당수를 학생 맞춤으로 준비하기 위해 고액 컨설팅을 받는 사람도 늘어났다. 오죽하면 전 국민이 드라마 ‘SKY 캐슬’의 ‘예서 코디’(김서형 분)에게 열광했겠는가?

    대치동 학종 컨설팅 업체에 가보라. 학생이 할 거의 모든 것을 대신 해준다. 예컨대 동아리 활동은 열정과 잠재력, 진로 적합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학종의 중요한 평가 요소다. 업체에선 기존 학교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보다 자신이 새로 동아리를 만들면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으니 새로 만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돈만 주면 새로 만들 동아리 이름을 지어주고 운영 계획서까지 써준다. 학생은 그것을 학교에 제출만 하면 된다.

    차별은 학교에서도 있었다. 학종 전형은 기본적으로 학생 개인 맞춤으로 준비돼야 하지만, 공교육 환경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입시 지도를 일일이 맞춤형으로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정된 자원으로 입시 결과를 내기 위해 ‘특정 학생에게 학생부 몰아주기’가 만연해 있다. 소위 명문대에 갈 만한 학생들 위주로 챙기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만 뽑아 특별반을 만드는 일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선택된 소수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각종 활동, 수상의 기회는 물론이고 도서관 가장 좋은 자리까지 몰아준다. 교내 대회가 있으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공지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보이지 않는 잠재력과 열정으로 인재를 뽑겠다는 그 아름답고 이상적인 제도 속에서 오히려 학생은 차별을 배웠다.

    정시, 즉 수능 위주의 전형 역시 환경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능 당일 부모가 대신 시험을 치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EBS 교육방송을 이용하면 누구나 무료로 대한민국 최고 선생님들의 강의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학력 얻는 과정에서 공정성 확대 시도해야

    기본적으로 입시는 정시 위주로 치르되, 점수에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개성과 천재성을 가진 일부 학생을 위해 학종을 남겨두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엔 맞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교육 봉사 동아리로 시작해 교육 기업을 창업한 지 이제 15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날마다 강의를 하면서 현실을 고려치 않는 무리한 교육정책이 학생과 학부모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지켜봤다. 학종이 생기면서 사교육 시장이 융성한 것처럼, 학력의 차이가 취업 현장에서 반영되지 않으면 경력이나 외부 활동, 인턴 이력 등 스펙 쌓기가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땐 정말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만나야 할지 모른다.

    차별금지법의 취지를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진짜 평등은 학생들의 노력의 산물인 학력을 폄하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학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학력을 얻기 위해 개인이 노력한 부분을 인정하고, 애초에 학력을 얻는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수많은 학생이 도서관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디 이들의 사기를 꺾지 않길, 이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강성태 #공부의신 #차별금지법 #신동아


    강성태
    ● 1983년 출생
    ●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졸업
    ● 현 공신닷컴 대표,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신’ 대표
    ● 저서: ‘강성태 영단어 어원편’ ‘강성태 영문법 필수편’ ‘강성태 66일 공부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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