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금의 나라’ 한국! 골드러시 시작됐다

대한광업진흥공사의 황금맥 찾기

  • 안영배 < 동아일보신동아기자 > ojong@donga.com

    입력2004-10-29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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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 불모지대로 여겨온 전남 해남에서 고품위의 금광이 발견됐다. 확인된 금광 매장량은 139만4000t(순금으로는 5.4t, 493억원어치). 이로써 1998년 이후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금을 올해부터 다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대한광업진흥공사는 해남 외에도 태백산 일대 등 여러 곳에서 금광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세계적 금 생산국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1년초, 국내 자원개발의 총사령부격인 대한광업진흥공사(이하 광진공)의 자원탐사처 사무실. 장병두 자원탐사처장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사진자료를 보고받았다. 프랑스의 인공위성 스폿(SPOT)-XS가 전남 해남 부근의 지형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장처장의 지휘 아래 광진공 기술진은 며칠 동안 사진을 면밀하게 조사한 끝에 금광이 있음을 의미하는 여러 간접 증거를 찾아냈다. 놀랄 만한 결과였다. 원래 이곳은 납석을 채굴하던 광산이 있던 곳으로 15년 전부터 금이 있다는 소문만 나돌았을 뿐 그 누구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버려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인 광상(鑛床)이론에 의하면 해남과 같은 화산지대에서는 금이 나올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맥이 있다니….

    과거에는 자원을 개발할 때 사람이 직접 자원을 탐사하거나 비행기로 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의 자원탐사에서는 거의 인공위성을 이용한다. 인공위성의 카메라는 1m 크기의 물체까지도 식별할 정도로 성능이 발전해, 금이나 은 등 땅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해준다.

    물론 인공위성이 직접 금을 찾아주는 것은 아니다. 첨단 컴퓨터 탐사 기기를 장착한 인공위성은 조사 대상지역에 존재하는 단층, 절리, 암맥의 구조선 등을 찾아낸다. 땅 위의 틈은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위성 사진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바로 이런 틈 속에 지하자원이 숨어 있거나 틈을 따라 지하자원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진에서 이런 틈이 나타나면 지하자원 탐사가들은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다.





    채산성 없는 금은 그림의 떡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현장 지질조사다. 예를 들어 금을 찾는 탐사가들은 주변의 지질환경은 어떤지, 차돌 속에 금이 들어 있는지, 지하수에 금이 녹아 있는지 등을 조사한다. 광물에 박혀 있는 미세한 금 입자를 찾기 위해 전자현미경을 들이대고, 전파를 땅밑에 쏘아 지하구조를 측정하기도 한다.

    장처장은 외부의 주목을 끌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자원탐사팀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노다지 낭보를 냈다가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그는 몇해 전 경북 성주 수륜광산의 금광 탐사작업을 잊을 수 없다.

    1998년 7월 경북 성주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금광맥(金鑛脈)을 발견했다는 언론보도가 터져나왔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금광으로 각광받은 금덕광산 및 주변 285ha(현 수륜광산)에서 큰 금맥이 발견됐고, 지하부분을 뺀 지표상의 금광석 매장량만 34만4420t(순금 7.2t)으로 추정되며, 오는 2001년부터 본격 생산에 착수해 향후 10년간 연간 1t씩 금을 생산할 있다는 게 당시 언론보도의 요지였다.

    이 낭보는 IMF 환란으로 ‘제2의 국채보상운동’으로 불린 금 모으기 운동이 눈물겹게 진행되던 당시 상황과 맞물려 전국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떤 이들은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 여겨 감격해마지 않았다.

    이어 수륜광산측에서는 본격적인 금광 개발을 위해 광진공에 품위(금광석 1t당 순금함유량)를 따지는 시추작업을 의뢰했다. 품위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경제성이 있기 때문. 광진공 조사 결과 초기 시추 분석에서는 1t당 평균 20.8g으로 전국 최고 품위를 지닌 것으로 나타나 역시 흥분을 금치 못했고 이것이 또한번 언론보도를 타기도 했다.그러나 이후의 정밀 시추 분석 결과에서는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평가가 나와버렸다.

    문제는 역시 채산성. 가채광량(매장량 중 기술적으로 채광이 가능한 광석 중량)이 많다 해도 금값보다 금을 캐내는 비용이 더 든다면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후 수륜광산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금생산 소식이 없다.

    금광 개발과 채산성의 함수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서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8년초 서울 마포의 아파트 재개발공사 현장에서 금맥이 발견됐다. 공사장에서 채취한, 반짝거리는 돌덩이들을 분석한 결과 1t당 금함유량이 14.5g. 보통 10g이 넘으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곳이 서울 도심의 금싸라기 아파트 개발지라는 점. 결국 금을 채취해 창출할 이득에 비해 아파트 개발이 더 경제성이 있다는 이유로 그냥 묻어두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튼 과거의 일을 거울 삼아 광진공 기술진들은 1년간 해남지역에서 ‘티나지 않게’ 지질 광상조사, 물리탐사, 시추탐사 등을 끝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월 순금량 5.4t(금광 매장량은 140만t)으로 500억원 규모의 대형 금광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이 1998년 이후 전량 수입했던 금을 다시 생산하게 된 순간이었다.

    생산 규모도 연간 1.5t(137억원 상당) 산출 기준으로 4년간 생산할 수 있어서 경제성도 있었다. 2000년 기준으로 내수용 금 소비량(44t)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지만, 어쨌든 한국이 과거 금생산국으로서 가졌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셈이다.

    사실 금은 개도국이나 중위권 국가보다는 선진국에서 더 많이 생산해낸다. 전통적으로 다이아몬드와 금광으로 유명한 남아공이 2000년 기준으로 428t으로 1위를 기록했고, 그 뒤를 이어 미국(328.4t), 호주(290.8t), 중국(172.8t), 캐나다(158.4t), 러시아(125.9t) 순이다.

    금생산량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는 남아공의 경우 너무 많은 금광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영국은 전쟁을 일으켜 남아공을 영국령으로 삼은 이후 30년간 채광한 금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금 졸부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남아공의 금광 개발 역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특수가 끝난 이후 두 차례나 경제공황을 겪은 일본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화(通貨) 가치를 지닌 금 수집에 혈안이 됐고, 당연히 식민지 조선은 무차별적으로 금 수탈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광물이 많이 묻혀 있는 광맥을 표현할 때 쓰는 ‘노다지’라는 말에는 그런 아픈 과거가 묻어 있다. 일제 때 우리나라 금광 개발의 이권을 거머쥔 서양의 광산주들은 값싼 임금으로 노역에 동원된 인부들이 행여 채굴된 금을 훔쳐내기라도 할까봐 “노 터치”(No touch)를 연발했다. 금광에서 하도 노 터치, 노 터치 하며 영어가 쓰이다 보니, 어느새 일확천금이나 횡재를 암시하는 우리말 ‘노다지’가 탄생했던 것이다.

    일제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는 금 노다지판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30년 6186kg(순도 99.9%, 이하 동일)의 순금 생산량을 기록한 이후 해마다 그 생산이 늘어만 갔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에는 2만2848kg이 생산됐고, 다시 일본이 1941년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함으로써 유발된 대동아전쟁 즈음에는 한해 평균 2만6000여kg이 생산됐다. 이 기간 조선총독부에서는 광적으로 금을 매집했고, 금값 역시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전쟁을 수행하는 일본으로서는 금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 금광업자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일지금맥(一指金脈)’이라는 말도 노다지와 관련된 용어다. 금맥의 폭이 새끼손가락 하나 굵기 정도는 돼야 금광을 파느라 쓴 화약값 이상을 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제성 있는 금광을 가리켜 바로 노다지 금광이라고 한다. 1930년대 한국의 ‘골드 러시’ 현상을 연구한 바 있는 전봉관씨(한신대 강사)는 노다지 금광으로 떼돈을 번 전설적인 금광왕들도 여럿 있었다고 말한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이른바 ‘황금광시대’였고, 당연히 일확천금을 거둔 전설적인 금광왕들도 여럿 탄생했다. 황금광시대 사람들은 조선 제일의 금광왕으로 친일활동을 해온 최창학을 꼽는 데 이견이 없었고, 그 뒤를 이어 방응모, 박용운, 이종만, 김태원 등을 제2인자로 거론하곤 했다. 특히 방응모씨가 발견한 교동금광은 말 그대로 노다지 금광이었다. 방씨는 금광으로 떼돈을 번 이후 조선일보사를 인수했는데, 이광수의 소설 ‘흙’에서도 그가 금광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아무튼 일제 때 하도 금을 많이 캐갔기 때문인지 1945년 8·15광복 이후 한국의 금생산량은 해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급기야 1997년 국내 최대의 금광으로 고군분투하던 무극금광(충북 음성군)마저 채산성 문제에 부딪쳐 생산을 중단함으로써, 한국은 순금 생산 제로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

    여기서 금이 하고많은 광물 중에서 왜 통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사람들은 왜 황금에 매료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금은 다른 금속에 비해 대단히 우수한 물리적·화학적·기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이 어느 금속보다도 탁월해 성냥골만한 1g의 순금을 두드려 펴면 가로 세로 1m의 박판(薄板)으로 늘일 수 있다. 또 길이 3.3km의 금실로도 변신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금속과는 달리 산화작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색깔이 아름답고 잘 변색되지 않는다. 몇천년 전에 제작된 황금유물이 현대에 발굴돼서도 그 찬란한 광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성질 때문에 금은 다양한 형태의 장신구나 치아 등 의료용재로 가공할 수 있다. 사람의 몸에 부착했을 때 다른 금속에 비해 피부 알레르기 반응이 적은 것도 장점. 일찌감치 우리 선조들은 금의 뛰어난 장식미를 이용할 줄 알았다. 5세기경에 조성된 신라 고분들에서는 황금관을 비롯해 금판 위에 작은 금알갱이를 붙여 만든 금팔찌와 금귀고리 등 순금제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말에 쓰이는 마구까지도 순금으로 만들 정도였다.

    이중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꼽히는 금관은 당대 최고의 세공기술로 만들어진 순금제 금관. 요즘 용어로 18K(금의 순도가 24분의 18, 즉 75%의 순금에 은·동·아연 등을 섞어 합금한 것)가 아닌 진짜배기 24K 순금인데, 그 무게만도 325돈, 즉 1200g(천마총 금관)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렇게 1500∼1600년 전 당시 순수 황금으로 금관을 만들어 쓴 민족은 지구상에서 한국밖에, 더욱이 신라인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 신라인들이 금빛 찬란한 황금문화를 꽃피웠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금은 또한 장식용뿐만 아니라 산업용으로도 널리 활용된다. 어떤 금속과도 잘 화합하므로 합금 가공하기 쉬우며, 전기·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부품 재료가 된다(한국은 일본 미국 독일 영국에 이어 세계 5위의 전자산업용 금 소비국이다).

    뭐니뭐니해도 금의 가치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은 탁월한 환금성. 화폐 발행량을 금 보유고와 연동시켜 금의 태환을 보장했던 금본위제도는 1971년 미국대통령 닉슨에 의해 막을 내렸지만, 금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결제수단의 하나로 화폐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금은 금괴든 장신구든 어떤 형태로 갖고 있더라도 당장 현금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주요 금시장에서는 하루 24시간 내내 금 거래가 이뤄진다. 화폐보다 더 안정적인 측면도 있다. 달러 엔 마르크 같은 통화는 그 발행 국가에 의해 동결될 수도 있고 회수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으나, 금으로 보유한 자산은 사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동결될 우려가 없다. 더욱이 화폐 자산은 그 화폐가 평가절하될 경우 손실을 입게 되지만, 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국제가격에 따라 움직이므로 그럴 위험성이 낮다. 금이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비율의 포트폴리오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한편으로 금은 일단 채굴되면 부식하거나 변질되지 않기 때문에 인류 역사와 함께 축적돼 오는 특징이 있다. 현존하는 금은 소량의 소모분을 제외하면 약 13만t으로 추정된다. 이를 다 모으면 길이 20m에 가까운 정육면체의 찬란한 황금 덩어리가 된다. 이러한 금은 그대로 혹은 형태만 바뀐 채 전세계에서 유통되거나 퇴장(退藏)돼 있다. 그러니까 엊그제 아기 돌 선물로 받은 금반지가 고대 이집트나 신라시대에 채굴된 금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은 수요의 측면에서 여전히 희소성을 자랑한다. 지질학자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금의 양을 10억∼20억t 정도로 추정한다. 지각 1t당 함유량으로 환산하면 2∼5mg에 지나지 않는 희귀한 금속인 셈. 따라서 암석 1t당 금이 5g 이상 들어 있으면 광산으로 개발할 가치가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광진공의 장병두 처장은 이번에 개발된 해남의 은산광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암석 1t당 금함유량을 따지는 품위로 볼 때 은산광산은 평균 10.73g/t(최고 품위는 493g/t)이다. 이는 국내 금광산의 평균 품위(7.4g/t)에 비하면 매우 양질의 금맥이다. 금맥(金脈) 역시 맥폭이 1.27∼1.32m로 국내 금광산의 평균 맥폭(0.5m)에 비해 매우 경제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금은 어떻게 그 맥을 이루며 존재하는 걸까. 대한지질학회 장순근 박사는 황금맥은 마그마 기원으로 해석한다.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 활동에 의해 금 등 광물을 많이 함유한 가스체 등이 단층이나 균열로 생긴 틈을 따라 지표로 올라오다 식으면서 그 속에 녹아 있던 광물이 침전해 광상(鑛床)을 이룬다는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 황금은 페그마타이트나 석영맥 속에서 작고 순수한 결정 형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보통 크기가 1∼2mm의 작은 알갱이로 박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1997년에 문을 닫은 무극광산 금맥의 경우 폭 1m 안팎의 흰 석영맥 사이에 금은색 띠 부분에 스며든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금빛 찬란한 모습을 볼 수 없다. 만약 금이 눈으로 보일 정도면 그게 흔히 말하는 노다지 금맥이다.

    또 금광맥이 풍화작용에 의해 분해·붕괴되어 빗물이나 강물에 운반되다 침전한 사금(砂金)도 있다. 이 사금 속에서 간혹 손가락 크기만한 황금 덩어리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큰 황금 덩어리는 1869년 호주 빅토리아 주의 모래속에서 나온 것으로 무게가 약 71kg이나 됐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사금 광상의 경우 거의 고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금광맥과 관련해 장병두 처장은 해남 광산의 경우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도 밝힌다.

    “해남의 은산광산 및 모이산광산의 경우 국내의 기존 금·은 광상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국내 기존 광상은 화강암·변성암·화강편마암이 모암(母巖)인데 비해 해남의 광상은 화산암 또는 화산활동과 관련한 퇴적암이 모암이다. 이제까지 예상치 못한 지질대에서 금광이 나왔다는 뜻이다. 이를 이른바 천열수 광상(epithermal deposits)이라 하는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형태다.”

    좀더 풀어 살펴보자. 국내 기존의 금 광상은 ▲지표로부터 750m에서 깊게는 4.5km까지 심도가 내려가고 ▲생성온도는 섭씨 225∼370도이며 ▲주로 단층대에서 산출되며 ▲금맥이 맥상의 형태를 띠고 맥폭은 0.1∼1.2m 정도다. 이에 반해 해남광산과 같은 천열수 광상은 ▲지표로부터 750m 이하로 심도가 낮고 ▲생성온도는 섭씨 240도 이하이며 ▲주로 화산 중심부와 칼데라에서 산출되며 ▲금맥의 폭이 0.01∼0.25m으로 좁지만 그러한 세맥(細脈)이 수개에서 수십개로 연결돼 있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천열수 광상으로는 일본 히시카리 광산, 인도네시아 글라스버그 광산, 페루 피에린나 광산, 미국 맥로프린 광산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일본 히시카리 광산의 경우 1981년에 발견된 이후 연간 7∼8t의 순금을 생산하고 있으며 순금 매장량만 260t에 이른다고 한다. 즉 천열수 광상은 대체로 저품위 등급이지만 세맥이 뻗어나가면서 대규모 광체를 이루기 때문에 발견될 경우 엄청난 금을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천열수 광상은 지표로부터 1km 이내의 낮은 곳에서 형성된 광상이어서 적은 비용으로 채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해남에서 이런 천열수 광상이 발견됐다는 것은 자원탐사학자들에게는 가슴이 쿵쿵 뛸 일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지질학적으로 제3기 화산폭발지대에는 금이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즉 해남처럼 화산이 폭발한 후 화산재 덩어리가 축적돼 땅을 형성한 지역에서는 금광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런 지역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게 사실. 그러다 이번 해남의 금광 발견으로 전남 및 경남 지역의 화산폭발지대에서도 금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이들 지역에서 대규모의 금광이 발견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 금 생산국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과거 금의 산출이 전혀 없거나 희박하다고 생각하던 암석이나 광물에서 대량으로 금이 함유돼 있음을 밝혀내는 방법을 이른바 ‘신(新)광상이론’이라고 한다. 광진공의 장병두 처장은 천열수 광상도 신광상이론에 의해 인공위성을 동원해 포착해낸 쾌거라고 말한다.

    또 신광상이론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금소식을 기대할 만한 곳은 여러 곳 있다. 장처장은 강원도 태백산 광화대 지역(삼척, 태백 등)에서도 신광상이론에 의한 노다지형 금맥을 발견하고 현재 정밀 확인조사 중이라고 귀띔한다.

    “현재 위치를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강원도 태백산 분지의 석회암 분포지에서 신광상이론으로 ‘칼린형 금광상’(Carlin type Au Deposits)이 발견됐다. 이 칼린형 금광상의 경우 미국 네바다 주의 칼린형 금광상과 구조가 똑같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금광상에서 세계 제2위의 금생산국인 미국의 총 금생산량 중 70%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금이 칼린형 금광상에서 나온다는 뜻. 칼린형 금광상의 경우 금은 주로 석회암석에서 박테리아 크기만한 극미립 형태로 산재해 있다.

    물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전자현미경으로 그나마 볼 수 있는 정도여서 ‘보이지 않는 금(invisible gold)’으로 불린다.

    이러한 금은 육안으로 금을 추적하는 고전적인 금광탐사 방법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인공위성이나 ‘지리정보시스템(GIS)’ 같은 최첨단 탐사기기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추적해야 하고, 일단 발견만 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금을 산출해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칼린형 금광상은 석회석 안에 먼지처럼 산산이 뿌려져 있는 모양이지만 석회석과 금을 분리해내는 기술이 발달해 채취가 오히려 쉬운 편이라고 한다. 현재 칼린형 금광상에서 생산되는 금이 전세계 금생산의 10%를 차지할 정도다. 중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국가적인 지원으로 20여 개의 칼린형 금광상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칼린형 금광상과 비슷한 것으로 ‘스카른 금광상(Gold Skarn Deoposits)’도 있다. 석회석에 규소, 마그네슘, 칼슘 같은 원소가 반응하여 생긴 동, 철, 연, 아연, 중석 등을 스카른 광물이라 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금이 함유된 스카른 광물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태백산 거도광산 부근 등 두 군데서 스카른 금광물이 발견됐다. 스카른 금광물은 규모면에서는 칼린형 금광상보다는 작으나 금이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발견하기는 더 쉬운 편이라고 한다.

    24년간 오직 국내 자원탐사에 한평생을 바쳐온 광진공 장병두 처장은 우리나라 금생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남에서 올해부터 금이 생산되고 태백산 일대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돈 이후 금광산에 호기심을 보이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망치 들고 금을 찾는 재래식 방법으로 금을 찾으려다가는 99% 이상 실패하고 만다. 대신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정확한 조사자료를 가지고 금맥을 찾아나선다면 벤처기업에 투자해 성공하는 확률보다 더 높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금생산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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