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3가지 당부 중에 “친구들과 싸우지 마라”의 뜻은 이해했지만,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와 “공부 열심히 해라”는 그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것인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아리송했다.
그러고는 학교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취직했다. 내가 증권회사에 첫발을 디딘 1988년은 요사이 중국과 아주 흡사했다. 증권회사 다니는 사람과 점심 한번 먹기도 힘들었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는 사람에게 한 조각 정보를 듣는 것조차 영광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어찌 보면 펀드 열풍이 이는 요즘과도 비슷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직장경력 20년이 지나도 주식투자를 어떻게 해야 돈을 버는지 잘 몰랐다. “뭐, 한 5000만원만 있으면 지금 하는 월급쟁이 생활 정도는 할 수 있어”라며 당당하게 퇴사하는 선배들을 보면 허풍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동시에 나는 왜 저런 자신감이 없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공부의 방법을 몰랐던 것처럼 주식투자의 방법을 모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몰랐던 것처럼, 시장의 소리를 들을 줄 몰랐던 것이다. 방법을 몰라 성적이 나쁜 채로 가방만 들고 학교를 다녔듯이, 시장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며 좋지 않은 성적표를 참으로 오랫동안 달고 다녔다.
더군다나 시장의 우등생은 지표가 불분명했다. 학창시절 우등생과 달리 시장의 우등생은 정체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시장이란 원래 그런 거야. 시장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야”라는 노자나 장자풍의 검증되지 않은 도인(道人)들이 시장을 끌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금강경이라는 불교경전에서 시장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2006년, 내게는 두 가지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는 대학원에서 금융기관 직원이 대부분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식투자 비법-Stock Picking 능력개발’ 위주의 PB 양성과정을 맡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 방송국의 ‘경제야 놀자’라는 프로그램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펀드를 소개하게 된 것이다.
제작진의 뛰어난 능력 덕분인지 10%대 미만이던 시청률이 30%로 껑충 뛰고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자 나는 초조해졌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프로급이라 늘 근심을 안고 있었는데, 이제 전 국민을 상대로 허풍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들었다.
나는 어떤 주식이 좋고 어떤 주식이 나쁜지를 구별하는 안목(What to Buy, What to Sell )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식은 예측을 토대로 가격을 매기는 것이 본질인지라 타이밍(When to Buy, When to Sell)이 항상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내 능력이 고객에게 그다지 큰 매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불안과 걱정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
펀드를 고르는 방법은 주식을 고르는 방법과 완전히 다르다. 펀드는 방향성과 테마를 주제로 한 종합선물세트를 고르는 것과 같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파느냐’ ‘언제 사고 언제 파느냐’보다 ‘종합선물세트에 무엇이 들었느냐’ ‘그 선물세트가 맛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좋아 하느냐, 앞으로도 좋아하겠느냐’가 관건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역사가 짧은 한국의 펀드시장도 시간이 흐르면 주식처럼 ‘When to buy’와 ‘What to buy’가 중요한 시점이 다가올 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2000년의 벤처 광풍처럼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미미한 펀드가 많았다. 좋은 펀드라고 알려진 것들이 정말 좋은 펀드인지 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