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숙청 양태는 김정일 때와 다르다. ‘평양 속도’ ‘평양 정신’ 등 김일성이 권력을 공고화하던 시기에 내놓은 구호가 등장한 것처럼 숙청 방식, 죄명이 김일성 시대와 비슷하다.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죄목은 김정일 시기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보 당국이 입수한 2014년 북한 내부 문건은 “종파 놈들을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고 기술한다. 처형 참관인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경고하고, 집행 후엔 충성 각오가 담긴 소감문을 작성하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흔적을 없애라”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이 없다”는 지침대로 처형 후에는 출판·영상물에서 이름과 사진을 삭제하는 ‘흔적 지우기’ 작업을 진행한다. 평양은 이영호를 총참모장에서 해임한 후 6일 만에 ‘김정일 기록영화’에서 삭제했으며 장성택은 처형 5일 전 ‘김정은 기록영화’에서 사라졌다. 또한 연좌제를 적용해 가족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지방으로 추방하거나 혁명화 교육을 이수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빈번한 처형에 공포감을 느껴 눈치 보기, 몸 사리기로 ‘제 살 궁리’에 나서는 현상과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려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누가 ‘군부’를 옥죄나

“장성택, 이영호, 현영철 같은 최고위급 간부는 물론이고 중앙당 과장이나 지방당 비서 등 중간 간부까지 처형했다. 최근 6개월 동안 국방위 설계국장 마원춘, 총참모부 작전국장 변인선, 당 재정경리부장 한광상 등 김정은을 가까이서 보좌한 핵심 간부가 사라져버렸다”는 게 정보 당국의 설명이다.
“2012년 이후 처형된 70여 명 중 60여 명이 노동당 간부, 나머지 10여 명이 군부, 내각 인사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정부 관계자는 밝힌다. 주목할 것은 군부 고위 인사의 숙청과 좌천이다. ‘김정은의 금고지기’로도 불린 한광상 등 측근 인사가 숙청 대상이 된 것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 재임 기간은 평균 8개월에 그친다(김영춘 4개월, 김정각 7개월, 김격식 6개월, 장정남 13개월, 현영철 10개월). 그 중 현영철은 숙청됐고, 나머지는 한직으로 좌천됐다. 김명국→최부일→이영길→변인선으로 이어진 총참모부 작전국장 경질 등 군부 핵심 직위도 숨 가쁘게 바뀌었다.
반면 김정일 집권 17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이는 최광, 김일철, 김영춘(김정은 집권 후 해임) 3명, 김일성 집권 시기(46년간)엔 5명(최용건, 김광협, 김창봉, 최현, 오진우)이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군부의 수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총참모장은 이영호→현영철→김격식→이영길로 바뀌었는데, 현직인 이영길을 제외하면 이들의 말로도 비참하다.
2013년 여름, 북한 당국이 군에 배포한 학습제강은 “당과 사상과 뜻을 같이하지 않고 동상이몽하면서 견실치 못하게 행동해 당적으로 처리된 자”라면서 이영호를 ‘반당반혁명분자’로 규정한다. 2012년 2월 숙청된 이영호는 김정은과 함께 김정일 운구차 맨 앞에 섰던 인물이다. 김정일이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발탁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나 ‘흔적 지우기’ 대상이 됐다.
이영호의 후임 총참모장은 이번에 숙청된 현영철이다. 2012년 7월 차수로 진급해 총참모장에 올랐으나 이듬해 5월 5군단장(상장)으로 좌천됐으며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으로 부활했다가 숙청됐다. 김격식은 김정은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총참모장을 거친 후 군단장으로 좌천됐다 5월 10일 사망했다. 장례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았으며 ‘노동신문’은 짧은 기사로 그의 부고 소식을 다뤘다.
‘조선인민군’은 당의 군대
일부 언론은 인민무력부장을 군정권자, 총참모장을 군령권자로 표현하는데, 북한식 당-국가 체제를 살펴보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사상적으로 군을 통제하는 총정치국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총정치국은 군의 정치사상을 통제하고 지휘관 인사를 주관하며 군인의 노동당 입당 여부를 심사한다. 1980년대 이후 총정치국장은 오진우(1980~1995년)→조명록(1995~2010년)→최룡해(2012년 4월~2014년 4월)→황병서(2014년 4월~현재)로 이어졌다.
북한에서 ‘조선인민군’은 국가, 인민의 군대가 아니라 ‘당의 군대’다. “조선인민군은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노동당 규약 46조)이라고 규정돼 있다. 노동당의 북한군에 대한 영도는 세 갈래로 이뤄진다. ①권력 : 노동당 조직지도부→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을 통해 군부 인사 임명 및 숙청 권한 행사 ②이념 : 노동당 조직지도부→조선인민군 당위원회 책임비서를 통해 당 생활 지도 권한 행사 ③군사행위 : 노동당 군사부→조선인민군 총참모부를 통해 지휘.
황병서는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부부장에서 총정치국장으로 이동했다.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조연준이 맡고 있다. 북한 매체는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을 ‘당 부장’으로 호명하면서 소속 부서를 밝히지 않으나 지난해 10월부터 김정은의 군 시찰을 거의 빠지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볼 때 군사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