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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별곡-한국의 碑銘문학 2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공동묘지 태허 옆에 묻어달라”… 묵살된 도산의 유언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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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망우리묘지를 찾아 유상규의 무덤 오른쪽 위로 올라가면 도산의 묘는 오간 데 없고 묘가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묘지석(墓址石)만 남아 있다. 앞면에 ‘도산 안창호 선생 묘지(墓址)’, 뒷면에는 ‘1973년 11월10일에 이 지점에서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도산공원 내로 이장’이라고 씌어 있다. 필자는 유상규 관련 자료를 찾다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망우리 묘지에 묻힌 사연을 ‘삼천리’(1938. 5)에서 발견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뒤늦게 밝혀진 도산의 유언

…육십 세를 일기로 봄바람 아직도 찬 3월10일에 서울제대 병원 일실에서 이리하야 도산은 이 세상을 하직했다. 여기에 부기할 것은 도산은 돌아가기 전 며칠 전에 이런 말씀을 하였다.

“나 죽거든 내 시체를 고향에 가저가지 말고.”

“그러면 엇더케 할래요.”



“달리 선산 가튼데도 쓸 생각을 말고.”

“서울에다 무더 주오.”

“ … ”

“공동묘지에다가…”

“유상규군이 눕어잇는 그겻 공동묘지에다가 무더주오.”

伯氏와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었다. 유상규란 경성의전 청년 교수로 상해 당시부터 도산의 가장 사랑하든 애제자인데, 그만 연전에 서울서 작고하였다. 그날 장례식은 춘원이 주재하였다.’(1938. 5.1. ‘삼천리’ 제10권 제5호. ‘도산의 임종, 서울 공동묘지에 묻어달라는 일언(一言)이 세상에 끼친 유언’ 중에서)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망우리공원에 있던 도산 안창호의 묘. 경기중학교 시절 유상규의 장남 유옹섭이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도산이 이런 유언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1973년 정부는 서울 강남에 새로 닦은 대로에 도산의 이름을 붙이고, 도산공원도 만들어 도산의 묘를 망우리묘지에서 이장했다. 일부 기록을 보면 “도산이 망우리에 ‘가매장’됐다가 이제 편히 도산공원으로 이장하였다”라는 대목까지 보인다. 도산의 유언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장 당시 아마 ‘이제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를 격에 맞게 잘 모시게 됐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버려진 도산 묘터

유상규의 장남 옹섭씨는 후에 부친의 자료를 정리하던 중 이 사실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도산의 이장이 추진될 당시만 해도 도산의 이런 유언을 아는 부친 유상규의 동지 세대가 생존하던 때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 또 그런 글이 씌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도산의 시신은 자신의 유언이나 희망과는 관계없이 다른 곳으로 이장된 셈이다.

도산과 태허가 혈연의 부자지간과 다름없었음을 알 수 있는 글이 또 하나 있다. 흥사단 동지 장리욱(1895~1983)이 지은 ‘도산의 인격과 생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고 유상규 의사는 도산을 스승으로만이 아니라 분명히 어버이로 모셨다. 도산 앞에서의 행동거지는 물론이지만 도산의 신상 모든 일에 대해서 갖는 유군의 그 세심한 정성은 훌륭한 ‘효자’ 바로 그것이었다. 도산은 동지 유군이 당신을 향해서 갖는 그 정성어린 섬김에 대해서 가슴 깊이 고맙게 느끼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어느 기회에 나는 도산을 모시고 대동강 하류 만경대에까지 나아갔던 일이 있다. 도산은 거기서 그렇게 멀지 않게 바라보이는 조그마한 과수 밭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은 유상규 군이 당신을 향해 갖고 있는 그 고마운 마음을 두 집 자녀에게까지 전해주고 싶어서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과수 밭은 유군의 맏아들(옹섭)과 도산의 둘째아들(필선·1912~2001)의 이름으로 보관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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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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