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은 대개 턴테이블 쪽에서다. 1970년대 말, 일본 오디오 메이커 켄우드사 사장이 EMT 927 턴테이블을 쓰고 있었다. 그가 탄식을 하며 외쳤다. “와 우리 회사는 왜 요런 환장할 턴테이블을 못 만든다냐!” 이 한마디에 난리가 난 켄우드 전(全) 기술진이 몰입훈련 끝에 만들어낸 것이 L-07D 모델이다. 나도 진작부터 EMT 927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구동원리가 전혀 다른 L-07D 모델이 대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 궁금할 수밖에. 그러던 차에 마침내 그걸 구했다. 전(前) 주인이 모터는 미국에 보내 정비하고 톤암(Tone arm) 베이스 같은 부속품들은 영국에 주문해 맞춰놓은 극상품이었다. 결과는 물론 기대 그 이상으로 ‘베리 베리 굿!’ 물개처럼 유연하게 미끄러져 돌아가는 플래터 위의 LP 소리골이 무척이나 정숙하고 차분하게 들렸다.
이런 일은 서막에 불과하다. 좋으면 더 좋아야 한다는 게 ‘오도팔(誤道八·오디오파일)’의 습성이라 뭔 짓이든 더 하고 싶어진다. 잘난 켄우드에 톤암을 하나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일이 이상하리만큼 잘 풀렸다. 켄우드를 넘긴 전 주인이 내 커피 생활을 부러워한다. 놀러오면 이쪽저쪽 두 대의 커피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스프레소를 한두 잔도 아니고 연거푸 주문해 마신다. 그 모습에 커피 쪽 호사를 조금 접기로 마음먹었다. 아끼던 이소막 헥사곤 에스프레소 머신을 내놓고 협상을 한 것이다. 그가 갖고 있는 톤암과 맞바꾸자고.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것이 다이나벡터 DV505라는 톤암이었다. 그런데 이후 과정이 좀 복잡하게 진행됐다. 켄우드에 추가로 톤암을 부착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턴테이블 장인
쇠를 깎아 직접 턴테이블을 만드는 구로동 진선공작소에 40kg이나 되는 턴테이블을 끙끙대며 들고 찾아간 시각이 밤 11시경이었다. 그때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작업을 했다. 진선공작소 유진곤 사장은 일본의 유명 장인들이 부럽지 않은 재주꾼이다. 나사가 부적합하면 아예 나사를 새로 깎아 사용하는 수준이라, 옛날 유명 톤암을 복각해 일본으로 다량 수출하기도 한다. 명장과의 밤샘인들 불면의 괴로움이 없으랴. 그런데도 이러구러 밤샘의 나날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9층 위에 10층 있고 10층 위에 옥상 있다. 잘 알려지고 유명한 턴테이블이라면 누구나 찾는 고정 품목이 있건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장인 혼자서 전 과정을 다하는, 그래서 아주 소량 생산되지만 성능이 대단한 걸작이 턴테이블에도 있다. 프랑스, 아니 유럽 오디오계에서 J. C. 베르디에 할아버지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한다.
어느 방송국 PD가 직접 파리의 제작실을 찾아가 만난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접했다. 그 PD가 어렵사리 모셔온 베르디에의 작품이 ‘라 플라틴’라는 무게 65kg의 거대한 턴테이블이다. 35kg짜리 플래터(platter)가 공중에 떠서 돌아가는 구조다. 군침을 심하게 흘리면 단감이 입속으로 뚝 떨어지는 수도 있는 모양이다. 베르디에 옹의 작품을 나도 하나 구했다. ‘라 플라틴’ 후속작인데 경랑으로 만들어진 ‘누보 플라틴’ 턴테이블이 떡하니 작업실 한복판에 놓였다. 게다가 함께 따라온 두 대의 톤암이 다름 아닌 오리지널 RF297과 오랫동안 써보고 싶었던 명기 FR64K다. 바야흐로 턴테이블 명작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톤팔이’다. 명작의 향연 와중에 ‘사진쟁이’이자 오디오 평론가인 친구 윤광준이 붙여준 별명이다. 보통은 한 개의 턴테이블을 사용하고, 거기에 하나 혹은 두 개의 톤암을 부착한다. 그런데 이 뭔 지랄인지 네 대의 턴테이블에 여덟 개의 톤암 사용자가 돼버린 것이다. 아홉 켤레의 구두가 아니라 톤암 여덟 개의 사나이, 톤팔이란다. 윤광준이 고생 좀 했다. 톤암이 여덟 개라는 건 바늘(카트리지)이 여덟 개가 붙는다는 얘기다. 난 30년간 오디오에 관심을 가졌지만, 톤암에 바늘 붙이는 일조차 할 줄 모른다. 사실 못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그 내력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