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6월 이윽고 독일군의 파리 점령이 임박하자 독일군의 요주의 대상 중 하나인 릭은 일자와 함께 남쪽 마르세유로 탈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마르세유에서 결혼을 하자는 릭의 청혼에 확답을 주지 않은 채 역에서 만나자고만 한다. 일자는 떠나는 날 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릭은 ‘당신과 떠날 수도 없고 다시는 만날 수도 없어요’라는 일자의 편지를 전해 받고는 비가 쏟아지는 역을 쓸쓸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의 얼굴엔 늘 우울한 그림자가 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지금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막막한 이별의 이유
한편 빅터는 리스본으로 가는 비자를 구하기 위해 일자와 함께 르노 서장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유가티가 결국 처형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유럽 곳곳에 숨어 있는 반나치 운동가들의 이름을 말해주면 바로 비자를 내주겠다는 스트라세 소령의 회유를 받는다. 빅터는 이 제안을 단호히 뿌리친다.
이제 남은 수단은 암거래 밀항조직에 의존하는 것밖에 없었다. 빅터는 ‘파란 앵무새’라는 바를 운영하고 있는 페라리를 찾아간다. 하지만 최대 암거래상인 페라리는 빅터 같은 나치의 감시 대상자와 거래해 자신의 목숨을 걸 수는 없다고 거절한다. 대신 그는 죽은 유가티가 갖고 있던 통행증을 릭이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정보를 들려준다. 스트라세 소령과 르노 서장 역시 이를 의심해 릭의 바를 수색할 계획을 세운다.
빅터는 릭의 바로 그를 찾아가 통행증에 대해 은밀하게 부탁하면서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릭은 이를 거절하면서 이유는 일자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때 홀에서는 릭의 바에 들른 스트라세 소령 휘하의 독일 군인들이 흥에 겨워 피아노 반주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Die Wacht am Rhein’라는, 독일인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유명한 노래였다. 이를 들은 빅터는 반감을 감추지 못한 채 바의 밴드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즈’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밴드는 릭이 동의의 고갯짓을 보낸 데 힘입어 연주를 시작한다. 바에 있던 대부분의 손님이 호응해 합창을 시작하자 결국 독일군의 노래는 잠잠해진다. 이 일로 스트라세 소령은 빅터를 더더욱 위험인물로 여기게 되고 그를 다시 수용소에 잡아넣거나 아니면 제거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또 릭에 대해서는 르노 서장을 시켜 불법 도박을 구실로 바에 영업정지를 내리게 해 보복한다.
그날 저녁 통행증을 주지 않는 이유를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는 릭의 말을 빅터에게서 전해 들은 일자는 릭을 찾아간다. 그리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빅터의 정치적 열정에 반해 그와 결혼했지만 결혼 후 그는 곧 반 나치활동을 위해 체코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됐고, 몇 달 후엔 탈출하다 사망했다는 소식이 일자에게 전해진다. 바로 그 절망적이고 외로운 순간에 릭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릭과 함께 나치 독일을 피해 파리를 탈출하려는 그때 한 친구가 찾아와서 빅터가 간신히 살아서 파리 근교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릭이 영문도 모르고 겪은 쓸쓸한 이별은 이런 사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