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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漫步客)이 되어 2011년 서울의 청계천변을 걸어보자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만보객(漫步客)이 되어 2011년 서울의 청계천변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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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漫步客)이 되어 2011년 서울의 청계천변을 걸어보자

더블린사람들<br>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338쪽, 1만2000원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한복판에 가면 한 남자가 낮이나 밤이나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형상으로 서 있다. 마른 체구의 그는 중절모를 쓰고, 현미경 렌즈와 같은 둥근 안경을 끼고 짐짓 도도하게 치켜든 턱이며 걸음걸이가 삐딱한 자세다. 모든 사물의 형상 이면을 꼼꼼히 보는 눈과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신경의 소유자, 그는 소설가다.

더블린에서는 이 작가가 출간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딴 ‘블룸스데이’ 축제가 매년 6월 열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가는 이 도시의 거주자들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소설을 쓴 이래 죽을 때까지 이 도시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이 도시, 그러니까 세계의 의미심장한 수도들 중 하나인 더블린을 줄기차게 소설의 무대로 삼았지만, 자랑이라고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이 비난과 비판에 치중했다.

자기 몸의 태생지이자 정신의 성장지인 더블린을 그는 마비의 공간, 심지어 제 새끼를 팔아먹는 더러운 도시라고 욕설을 내뱉듯 퍼붓고는, 자신의 조국은 대영제국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의 식민지인 아일랜드가 아닌 ‘예술’임을 공표하며 자발적 망명자로 평생 유럽과 미국을 떠돌며 살았다. 생전 지은 업을 죽어서 영원히 되사는 것일까. 조국 아일랜드로부터, 태생지 더블린으로부터 그토록 멀리 떠나고자 했으나 그는 어제도 오늘도 이 도시의 심장 오코넬 대로 옆 킬모어 카페 앞을 걸어가는 모습 그대로 ‘더블린 사람들’에 의해 사로잡혀 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조이스. 나는 2005년 한여름과 한겨울, 두 차례에 걸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그를 찾아갔다. 그의 주위에는 그의 소설 주인공들처럼 언제나 걸어오고 걸어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가지는 8월의 따사로운 노을에 잠기고, 거리에는 여름을 연상시키는 훈훈한 바람이 감돌았다. 일요일의 휴식을 위해 셔터를 내린 거리는 화사한 옷차림의 군중들로 북적였다. 찬란한 진주 같은 가로등은 전신주 꼭대기로부터 그 밑에서 끊임없이 모양과 색채가 변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직물 속으로 빛을 던졌고, 따뜻한 회색의 저녁 공기 속으로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웅얼거림 소리가 퍼져 나갔다.

문학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소설을 단순히 ‘이야기’로 여긴다. 자신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소설을 안 쓸 뿐이지, 쓴다면 몇 권쯤은 너끈히 될 것으로 믿는다.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가, 소설은 이야기이되 사실이라기보다 어느 부분 ‘과장하면서 덧댄 이야기’, 즉 ‘꾸며낸 이야기’로 인식하는데, 과장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주는 단계에 이르면 어떤 식으로든 ‘환상’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이 환상의 창출이야말로 한 편의 소설로서의 핵심 ‘장치’가 성공적으로 안착됐다는 증표다.



‘더블린 사람들’의 소설들은 단순한 ‘이야기’의 차원과 ‘환상’의 창조 사이에 존재한다. 더블린이라는 도시, 그곳에 살며 떠도는 군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세밀하게, 그러나 어떠한 환상의 인위적인 장치도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고증하기 때문이다. ‘더블린 사람들’은 이야기와 환상의 차원 너머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곧 소설로서의 ‘고현학(考現學)’의 세계가 그것이다. 옛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고고학(考古學)이라고 한다면, 현대(modern), 그러니까 현재 우리 삶의 양식과 체계의 근간이 된 근대의 산물(modernity)을 연구하는 학문이 고현학이다. 고현학의 대상은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초 자본제 생산 체제하의 도시, 거리, 병원, 영화관, 카페, 서점 등이다. 15편의 단편과 중편으로 구성된 조이스의 첫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1914)’은 모든 작품이 거리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주인공들은 도시의 곳곳을 걷고, 그 걷기를 통해서 존재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에게 공손하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는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킹즈 인의 중세풍 아치문을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헨리에터가(街)를 걸어 내려갔다. (중략)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그는 단조롭고 비예술적인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에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한줄기 빛이 그의 마음의 지평에 아롱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서른둘이었다. (중략) 콜리스 식당 근처에 갔을 때 아까처럼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여 그는 엉거주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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