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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배우 열전 ⑥

목마른 소녀 정윤희

눈부신 외모로 스크린 장악한 1970년대‘트로이카’의 전설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목마른 소녀 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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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

신인 배우 염복순이 연기한 농촌 출신 영자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집의 가정부로 일한다. 공장의 젊은 노동자 창수의 구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자는 연애보다는 돈을 벌어 시골집의 살림에 보태는 것이 더 중요한, 어리지만 나름의 꿈과 계획이 있는 똘똘한 아가씨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주인집 방탕한 아들의 강간으로 깨지고, 영자는 쫓겨난다. 서울에 먼저 올라와 자리 잡은 고향 언니가 사는 중랑천변의 무허가 판잣집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영자. 호스티스 일을 하는 언니가 남자를 데리고 오면 영자는 찬바람이 부는 거리로 쫓겨나와 여인숙에서도 가장 값싼, 여러 사람이 합숙을 하는 방의 차가운 윗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버틴다. 기술이 없는 그녀는 가내수공업을 하는 봉제 공장에서 실을 감는 일을 한다. 드디어 월급날. 그녀가 받은 월급에서 가게 외상값, 여기저기서 빌린 빚을 갚고 나자 동전 몇 개만 손바닥에 남는다. 그녀의 언니와 영자는 손바닥 위의 동전 몇 닢을 보고 히스테릭하게 웃는다. 언니가 ‘빠’에서 버는 돈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무하고 웃기는 돈이다. 영자는 ‘빠’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고 언니를 따라 나서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무렵 영자에게 꿈이 생긴다. 여자 택시 운전사가 되는 것이다. 일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버스 안내양이 되는데, 만원 버스에 매달린 영자가 손님들을 버스 안으로 밀어 넣으려 애를 쓰는 순간. 뒤에서 오던 차에 그녀의 손이 부딪히고 잘려진 그녀의 팔은 빌딩 숲 사이로 날아가버린다. 외팔이가 된 영자는 팔 한쪽 값으로 30만 원을 받고 그 돈을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있는 시골로 전부 보내버리고 자살을 결심한다. 사는 것도 어렵지만 죽는 것도 어려운 일. 그녀는 팔이 없는 빈 소매를 등 뒤로 감추고 창녀로 전락하고 만다. 전형적인 신파 멜로드라마지만, 주인공들이 전전하는 목욕탕 때밀이, 철공소 직공, 식모, 버스 안내양, 봉제 공장 노동자, 호스티스 같은 직업과 그들이 일하는 곳의 풍경을 리얼하게 묘사하려 노력한 점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신인 염복순은 백치미를 지닌 여배우라는 평을 들으며 이후 1980년대 한국 여배우들의 관능미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백치미란 단어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고 여배우가 주인공인 호스티스 영화의 기틀을 다진다.

목마른 소녀 정윤희

정윤희가 주연한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한 장면.

70년대 트로이카

영화 ‘나는 77번 아가씨’의 정윤희도 처음에는 야쿠르트 배달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빚을 갚아준다고 속인 날건달 같은 사내 김희라에게 딸을 빼앗기고, 딸을 되찾기 위해 무교동 바닥에 들어선 것이다. 그녀들의 말대로 무교동 바닥에 들어선 여자치고 사연 없는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정윤희는 단시일에 최고의 인기 호스티스가 되고, 그녀의 등골을 빼먹으려는 김희라와 그녀의 몸뚱이만을 노리는 온갖 종류의 남성들 사이에서 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7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호스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극장가를 점령했다. 1970년대 후반 한국 극장가는 남자가 주인공인 무협영화와 여자가 주인공인 호스티스 영화로 양분됐다.

1970년대 중반. 1960년대 극장가를 수놓았던 여배우 트로이카가 사라진 빈자리를 대신하려 수많은 여배우가 등장했다. 아역 배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성인 영화 ‘별들의 고향’과 ‘어제 내린 비’에 출연한 안인숙,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로 떠오른 ‘바보들의 행진’과 ‘병태와 영자’의 이영옥, 미스 롯데였던 서미경, ‘성숙’으로 신인 연기대상을 받은 유망주 양정화, ‘영자의 전성시대’의 염복순 등등. 수많은 여배우의 등장과 퇴장 속에서 ‘나는 77번 아가씨’의 여주인공 정윤희는 최고의 흥행 여자 배우로 등극했고 비슷한 시기 주가를 올리던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새로운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사람으로, 제작자들이 찾는 1순위 여배우가 됐다.



사실 데뷔 초기 정윤희에 대한 충무로 제작자와 감독들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예뻐서 인기는 많은데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등장한 장미희 역시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1960년대 트로이카 문희나 남정임, 윤정희에 비하면 그녀들의 연기는 초보 수준이었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액션과 대사표현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당시 모든 신인 여배우의 대사는 성우가 대신 했으니 그녀들에게서 대사 표현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으로만 연기력을 보자면 1970년대 장미희의 표정은 다채롭지 못하고 뭔가 억지스럽다. 장미희가 표현하는 표정이 10여 가지라면 정윤희는 고작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빈약했다. 그렇지만 예뻐서 인기는 있으니 난감했다.

다방 레지, 꽃순이

정윤희는 1975년 정소녀 주연의 영화 ‘욕망’(이경태 감독)으로 영화계에 데뷔한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청춘극장’(변장호 감독)에서는 비교적 비중이 높은 조연을 맡았는데, 여주인공 김창숙과 신영일을 놓고 삼각관계에 놓인 부잣집 막내딸이었다. 이 영화에서 정윤희는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인형같이 예쁜 얼굴을 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여자를 연기하는데 아름다운 얼굴만 아니라면 관심 밖으로 사라져버릴, 특별할 것 없는 배우였다. 이후, 그녀는 하이틴 영화 ‘고교 얄개’와 ‘고교 우량아’에서 얄개 이승현의 예쁘고 철부지인 여대생 누나로 나와 귀여운 얼굴을 내비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해태제과 CF에 출연하면서 아름다운 얼굴을 만천하에 알렸지만, 영화에서는 아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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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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