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울 가회동 유형건·김미경 부부가 그들 집에 묵으러 온 손님들과 포즈를 취했다. 2 김귀녀 씨는 결혼한 딸이 쓰던 방을 공유경제 장터에 내놨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살고 있는 주부 김미경(43) 씨의 설명대로 북촌 골목을 걸었다. 손님 맞으러 미리 나와 서성이고 있는 남편 유형건(49) 씨가 빨간 구슬보다 먼저 보였다. 이들 부부의 한옥은 아담하고 정겨웠다. 마당에선 강아지가 컹컹 짖고 나무 기둥이며 창살은 늦은 오후 햇살에 물들어 감귤색으로 반짝였다. 부부는 1년 전 20년간의 ‘아파트 라이프’를 청산하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이날 손님은 기자만이 아니었다. 서울에 출장 온 2명의 미국인이 일을 끝내고 서울 구경할 겸 이틀을 묵고 간단다. 부부는 방 4칸 중 2칸을 ‘공유경제’ 장터에 내놨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아들이 유학을 가는 바람에 비게 된 공간에서 머문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란 필요한 물건을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거나 서로 바꿔 쓰는 개념의 경제를 일컫는다. 2008년 미국 하버드대 로렌스 레식 교수가 개념을 정립했고, 2011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세상을 바꿀 10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로 꼽았다. 공유의 대상은 집을 비롯해 자동차, 자전거, 전자제품, DVD 등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

3 권혜진 씨가 개인 연구소이자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한옥 ‘서경재’. 외국인들이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한글 현판을 달았다.
서울 사람들도 이런 ‘집 공유’라는 낯선 문화에 참여하고 있다. 2008년 첫 번째 서울 주인장이 나왔고, 2월 현재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서 ‘Seoul’을 검색하면 800개 이상의 집이 뜬다. 실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내놓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여타 나라들과 달리 서울에선 비즈니스 형태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중장년층 주인장들을 중심으로 공유경제 개념에 충실한 집 공유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비즈니스 형태란 원룸이나 고시원, 여관 등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뒤 공유경제 사이트를 통해 여행객들에게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촬영하고 있는 사진작가 조성완 씨는 “주로 30대 직장인들이 ‘투잡’ 삼아 월세 원룸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고 전했다.
“여기가 손님방이에요.”
김귀녀 씨(57·서울 광진구 자양동) 가 방문을 열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그가 그린 그림 한 점이 걸린 정갈한 방. 창 밖으로는 복닥복닥한 서울 시내가 펼쳐졌다. 지금은 결혼해 홍콩에 살고 있는 딸이 쓰던 이 방을 김씨는 2011년 10월부터 외국 손님들에게 내어주고 있다. 그의 집은 방 3칸짜리 아파트라 거실과 부엌은 손님들과 함께 쓴다. 김 씨처럼 중장년층 주인장 중에는 장성한 자녀가 분가해 남은 방을 공유경제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직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오숙자씨(66·서울 강남구 양재동)도 아들 둘을 결혼시키고 4년간 비워둔 2층을 에어비앤비에 내놨다. 오 씨는 “남편과 친분 있는 일본인 사업가가 우리집에 와서 ‘이렇게 좋은 공간을 내버려두는 비생산적인 일을 해서 되겠느냐’고 핀잔 준 일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에 오 씨는 부부가 쓰는 1층과 2층을 분리하는 공사를 한 뒤 지난해 가을부터 외국인들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디지털 저널리스트 권혜진 씨(48)는 개인공간을 활용하는 경우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살림집이 있고 경복궁 근처에 개인연구실 용도로 한옥 ‘서경재’를 마련한 그는 “절반은 내가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른 이들과 나누자는 생각에 에어비앤비에 등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