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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푹 익은 감자…식탁에서 끓여 먹는 푸짐한 요리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푹 익은 감자…식탁에서 끓여 먹는 푸짐한 요리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 사는 동네엔 10년 전, 그러니까 신혼살림을 차리면서 처음 와봤다. 모든 게 낯설었는데 가까이 사는 선배 부부가 여러 면에서 동네 생활 길잡이가 돼주셨다. 그러다 윗집 아기 엄마와 친해져 단둘이 맥주 한 잔 나누는 이웃이 됐고, 그 뒤엔 막역한 친구가 버스 세 정거장 거리로 이사 와 틈날 때마다 만나 수다를 떨었다.

같이 먹어야 더 맛있는 닭볶음탕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먹는 닭볶음탕. [GettyImage]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먹는 닭볶음탕. [GettyImage]

며칠 전 남편과 동네 식당에 가서 닭볶음탕을 먹었다. 양이 많은 요리는 대체로 ‘대, 중, 소’로 나뉘는데 여기는 ‘대, 중’만 있다. 작은 걸 시켜도 둘이 먹기엔 버거운 양이다.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 부지런히 먹으며 동네 친구들을 떠올렸다.

선배 부부는 직장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윗집 아기 엄마는 타국으로 이민을 갔고, 막역한 친구는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별을 보고 출퇴근하는 신세가 됐다. 전엔 다 같이 둘러앉아 닭볶음탕을 먹던 사람들이다. 사장님 솜씨가 좋아 둘이 먹어도 맛있지만, 여럿이 먹을 때가 더 얼큰하고, 진국 같고, 분주해 입맛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각종 햄과 소시지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부대찌개. 식탁에서 보글보글 끓여 먹어야 맛있는 요리다. [GettyImage]

각종 햄과 소시지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부대찌개. 식탁에서 보글보글 끓여 먹어야 맛있는 요리다. [GettyImage]

커다란 냄비를 가운데 두고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요리가 있다. 각종 햄과 소시지, 통조림 콩, 두부, 납작한 떡 등을 빙 둘러 담아 주는 부대찌개도 그렇다. 어떤 식당은 넓은 전골냄비에 국물 자작하게 부어 여유롭게 담아주고, 어떤 곳은 아담하고 납작한 냄비에 넘치도록 재료를 수북하게 올려 낸다. 희한하게도 모든 재료가 푹 익어 어우러지고 나면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냄비에 찰랑찰랑, 딱 먹기 좋게 국물이 보글거린다.

김치를 넣으면 칼칼하고, 치즈를 올리면 고소하고, 중간에 라면을 넣으면 국물 맛이 또 달라진다. 한창 잘 먹을 때는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은 다음에야 숟가락을 놓았다. 부대찌개는 자리에 따라 밥반찬이 되고, 술안주로도 좋으며, 해장으로는 더없이 알맞다.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으로 전골을 끓이면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일품이다. [GettyImage]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으로 전골을 끓이면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일품이다. [GettyImage]

곱창전골을 먹는 시간은 부대찌개 때보다 조금 느리게 흐른다. 식당 주방에서 한소끔 끓여 오지만 식탁 위에서 조금 더 익혀 맛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밥상은 이런 점이 참 재밌다. 주방장 손을 떠난 음식에 생생한 채소 고명을 얹어 내면, 식탁 위에서 저마다 불을 다루며 더 끓인다. 진하게 뒀다가, 이때다 싶을 때 맑은 육수를 더 부어 새로 또 먹기도 한다.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에서는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우러난다. 쫄깃한 곱창과 채소를 건져 먹은 뒤 우동이나 칼국수처럼 굵은 면발을 넣어 곱이 스며든 국물을 마저 먹는 맛이 좋다.

‘오디오’가 빌 틈 없는 샤브샤브 식탁

곱창전골의 친척뻘인 ‘낙곱새’는 조금 더 발랄하다. 곱창에 작게 썬 낙지, 자잘한 새우를 넣고 칼칼한 양념을 풀어 국물이 자작하도록 끓여 먹는다. 식당에 따라 햄, 소시지, 떡, 치즈 같은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건더기를 퍼서 밥에 올려 비비 듯 먹다가 마지막엔 밥이 찌개 냄비로 들어가 달달 볶아지기 일쑤다.

좋은 사람들과 둘러 앉아 샤브샤브를 먹으면 서로 떠주고 그릇에 담아주며 마음까지 뜨끈해진다. [GettyImage]

좋은 사람들과 둘러 앉아 샤브샤브를 먹으면 서로 떠주고 그릇에 담아주며 마음까지 뜨끈해진다. [GettyImage]

집에서 여럿이 둘러 앉아 먹는다면 배부르게는 만두전골, 술 마시기는 어묵탕, 반주 정도에는 간장국물 자작하게 볶아 먹는 스키야키 같은 게 편하다. 재료와 국물을 준비해두면 누구 한 명 엉덩이를 들썩거리지 않고 다 같이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중에도 채소와 고기를 바로바로 익혀 먹는 샤브샤브가 좋다. 고기며 채소, 어묵, 떡, 두부와 곤약을 넣고 익을 때마다 서로 떠 주고, 같이 떠먹는 음식. 누군가 재료를 우루루 넣으면 누구는 뒤집고, 누구는 건져서 남의 그릇에 담아 준다. 손이 바빠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느라 이른바 ‘오디오’가 빌 틈이 없다. 대단한 걸 내어주지는 못해도 고기 한 점, 말랑하게 익은 배춧잎 한 장 친구 그릇에 놓아주고 나눠 먹는 마음과 시간은 얼마나 뜨끈한가.

#닭볶음탕 #곱창전골 #부대찌개 #낙곱새 #샤브샤브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2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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