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조영철 기자
지식재산이란 전통적인 발명, 디자인, 상표 및 저작권을 의미하는 협의의 개념에서 벗어나 생명공학상의 새로운 발견, 기술비결, 식물 신품종, 컴퓨터 프로그램, 예술, 인공지능 등 인간의 모든 정신적 창작물을 뜻하는 무체재산(無體財産)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미국은 사실 1980년대 초에 지식재산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간파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식재산의 권리화, 자산화를 추진해왔다. 일본은 미국의 지식재산보호정책을 모델로 ‘지적재산입국(知的財産立國)’이라는 과제를 국가생존전략으로 수립했다. 또 총리가 직접 지적재산국가전략추진본부를 설치하고 2002년 지적재산기본법을 만드는 등 지식재산업무를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 지적재산고등법원이라는 특수한 제도도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이에 대한 통합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다만 특허청 문화관광체육부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부처이기주의가 생기고, 정책추진도 비효율적이다. 이런 가운데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파악한 일부 지식인이 민간 차원에서 관련 운동을 펴나가고 있어 관심을 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을 지낸 김명신씨가 김재철 전 한국무역협회장,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함께 공동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지식재산포럼이 바로 그런 단체다. 이 포럼을 발의하고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명신(65) 회장을 1월7일 서울 마포 도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69년 변리사가 된 이후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남산라이온스클럽회장, 국제라이온스협회 354복합지구 의장, 대한변리사회 장(1996~1998), 아시아변리사협회장(2000~2003) 등을 지냈다.
일본 2002년 이미 법제화
▼ 언제부터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까.
“저는 산업정책에 관해 고민하는 학자도 아니고 또 대단한 법률가도 아닙니다. 다만 변리사 업무를 40년간 해오면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습니다. 외국 대기업들이 한국에 와서 무슨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를 항상 문의해옵니다. 또 국내 대기업들은 외국 나가서 무슨 사업을 하면 좋을지 상담을 원합니다. 우리 직원들이 만지는 서류가 이르면 10년 뒤, 멀게는 20년 뒤에 국내외 시장에 나올 상품들과 관련된 겁니다. 그래서 남보다 좀 더 많은 정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일본에 갔을 때 그곳에 지적재산기본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2005년 봄에 한양대 법대 윤선희 교수와 다시 일본을 방문해서 그 내용과 배경을 파악하고 돌아왔습니다.”
김 회장은 윤 교수와 함께 지적재산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지적재산전략본부를 방문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이 순순히 받아주질 않았다고 한다. 결국 평소 안면이 있던 일본 법조계 원로인 도쿄대 나카야마 노부히로 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갈 수 있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인구는 많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입니다. 다만 교육열이 높아 두뇌 재산은 풍부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반대로 일본은 재빨리 판단한 겁니다. 즉 현 상태 일본의 국력과 자산, 기술, 교육수준, 산업구조로는 앞으로 100년을 버틸 수 없다고 결론지은 거지요. 두뇌자원에 국운을 걸기로 한 겁니다. 이에 대해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합의를 봐서 지적재산기본법이 생겼습니다. 여기에는 행정부 전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입법, 사법, 행정, 심지어 외교, 학교, 기업까지 전부 포함된 전략이 있습니다. 2005년 제가 국제거래신용대상 개인상을 받고 시상식장에서 ‘사재를 털어서라도 지식재산권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게 직접적 계기가 돼 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