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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

  • 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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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야기한 세계 금융위기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유럽 재정위기가 닥쳐오면서 세계경제의 앞날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인류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빠른 인구구조 변화, 국경 없는 초경쟁의 강도도 날로 세지고 있다. 혼돈에 빠진 2013년 세계경제를 이끄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들을 탐구하는 새 연재를 시작한다. 첫 주인공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다.
‘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제이미 다이먼의 아침밥은 은행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데일리뉴스’가 내놓은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57) JP모건체이스(이하 JP모건) CEO 겸 이사회 의장에 대한 평가다. 2000년 부실로 휘청대던 시카고의 작은 은행 뱅크원에서 처음으로 은행 최고경영자가 된 그는 뱅크원과 JP모건의 합병을 진두지휘하고 베어스턴스, 워싱턴뮤추얼 등을 추가 합병하며 JP모건을 미국 최고 은행으로 만들었다. 인수합병(M·A)을 기반으로 덩치 불리기를 통해 월가의 ‘은행 포식자(Bank Eater)’로 불리며 약 10년 만에 월가 금융황제가 됐다.

다이먼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가 잇따라 무너질 때도 적자 없이 위기를 극복하며 능력을 발휘했다. 또 대통령, 재무장관,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정치인 등 월가를 압박하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서슴지 않으며 ‘월가의 대변자’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로이터통신은 다이먼이 1907년 금융위기 당시 ‘월가의 구원투수’로 불렸던 JP모건의 창립자 존 피어몬트 모건이 살아 돌아온 인물이나 다름없다고 치켜세웠다.

2012년 ‘런던 고래’ 사건으로 불리는 62억 달러 규모의 대형 파생상품 손실사태로 연봉이 절반으로 깎이고 ‘무결점 경영자’의 이미지에 적잖이 흠집이 났지만 다이먼에 대한 월가의 신뢰는 여전하다. 다이먼의 인생 역정 자체가 ‘성공→ 추락→ 부활’이라는 전형적인 롤러코스터 형태를 띠고 있는데다 그를 대신할 만한 인물도 현재로선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2013년 초 오바마 2기 정권 출범 직전 세계적인 부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다이먼이야말로 월가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자 차기 재무장관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 후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의 제이컵 루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했지만 워런 버핏의 말은 다이먼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이먼은 1956년 1월 뉴욕의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시어슨이라는 중소 금융회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다. 일반적인 그리스 이민자 후손보다는 형편이 넉넉한 편이었지만 미국 주류 사회에 완전히 편입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이먼은 미국 보스턴에 소재한 터프츠대에 진학해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1980년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한다. 그의 하버드대 동기들의 면면은 쟁쟁하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 미디어 대기업 NBC 유니버설의 스티브 버크 CEO, 투자회사 바우포스트의 세스 칼먼 CEO 등이 그의 동기다.

비주류 그리스 이민자 후손

‘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2009년 1월 29일 세계경제포럼에 참여한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체이스 CEO.

터프츠대 재학 당시 다이먼은 여름방학 동안 시어슨의 인턴으로 일했다. 그때 시어슨의 경영 현황과 M·A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쓴 적이 있다. 다이먼의 아버지는 이 보고서를 자신의 상사이자 시어슨의 CEO였던 샌포드 웨일에게 보여줬다. 시어슨의 CEO 자리에 결코 만족하지 못했던 야심가 웨일은 신출내기 대학생이 쓴 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고 다이먼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1982년 하버드대 MBA 졸업장을 거머쥔 다이먼은 월가에서 직장을 알아보고 조언을 청하러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장이던 웨일을 찾았다. 다이먼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쟁쟁한 금융회사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았지만 다 포기했다. 웨일이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이먼을 개인비서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1998년까지 16년간 피로 맺어진 부자관계보다 더 끈끈한 사회적 부자관계를 유지했던 웨일과 다이먼의 성공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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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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