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기금으로 환율 조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겁니까.
“조정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그건 그쪽 책임이다’ 이 말입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남에게 책임을 미루면 됩니까. 그게 가능하도록 (외국환평형기금) 규모를 늘리든지, 운용 방법을 달리 생각해보든지 해야죠. 엄연히 정부가 기금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엉뚱한 말을 하는 데다…. 난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이 전 총재에 대한 강 전 장관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던 듯싶다. 다음은 강 전 장관의 책 내용 중 일부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돌출발언 때문에 970원대로 다시 떨어졌다. (2008년) 3월 24일 오후 이성태 총재가 대통령과의 첫 대면에서 적정 환율이 950원에서 1000원 사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내가 생각하는 환율 1250원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 총재는 다음 날 아침 한국외국어대학 동창포럼에 나가 적정 환율이 970~980원이라고 발언해 하루에 29.9원을 떨어뜨려 970원대로 후퇴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루디거 돈부시 MIT 교수가 말한 대로 한국은행은 다시 외환시장의 절대군주 차르가 됐다.
“정부가 시장 상대했다간 끝장”
▼ 강 전 장관은 한국은행을 절대군주 ‘차르’에 빗댔는데요.
“그 양반이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외환시장은 외환 수급에 의해 움직입니다. 기업이나 은행이 시장에 나와서 사고팔고 하면서 움직이는 거죠. 외환당국은 가령 시장이 100을 산다면 5 정도 사주거나 팔면서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거죠. 아무리 외환당국이라고 해도 시장의 큰 흐름을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자칫 그런 인상을 주면 끝장입니다. 영국이 소로스에게 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외환투기꾼인 조지 소로스는 1992년 영국이 고정환율제도에 묶여 파운드화가 고평가된 약점을 이용해 1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화를 팔아 10억 달러의 차익을 거뒀다). 옛날처럼 강제로 가격 통제하듯이 환율을 강제할 수 있으면 몰라도, 요즘은 그런 시장이 아니잖아요.”
▼ 강 전 장관의 주장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뭘 어떤 식으로 동원해서 시장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주 세밀하고 간접적이고 미묘한, 그런 것을 통해서 ‘시장이 요런조런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하는 정도죠. 당국이 목표를 정해놓고 ‘우격다짐’으로 시장을 끌고 간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 강 전 장관은 환율주권을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이런 뜻이 있는지는 모르죠. 환율시장에 온갖 투기꾼이 설쳐대는데, 넓은 의미의 정부가 아무 행동도 안 하고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죠. 그거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잠시 숨을 고른 이 전 총재는 강 전 장관의 환율주권론에 대해 좀 더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 전 장관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지금 당국이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조정하려 하지도 않고. 그런데 왜 환율을 조정하려는 건지. 당국은 시장 상황에 늘 관심을 갖고 있다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이럴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조사해서 ‘이건 뭔가가 꼬여 있다’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 같다’ 그러면 그걸 바로잡아주려고 애를 써야지요.
시장에서 결정되는 환율이 국내외 경제 상황을 잘 반영해 움직이도록 감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지금 환율이 1000원인데 1100원으로 올려야겠다, 그래서 막 매입한다? 그러면 큰일납니다. 자칫 투기 세력에게 ‘땅 짚고 헤엄치기의 장’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겁니다. 이게 ‘환율주권’은 아니잖아요.”
환율이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면, 금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다. 2008년 경제위기 때 강만수 당시 장관은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했고, 이 총재는 버텼다. 강 전 장관이 책에 쓴, 당시 상황에 대한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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