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황 박사는 자신을 “평범한 수의학과 교수”라고 소개하면서 “(서울대에서) 인공임신학으로 학위를 받았는데, (서울대에서) 교수로 채용해주질 않아 일본에 가서 연구했다”고 했다. 그가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것은 홋카이도(北海道)대에서 가축번식 기술과 동물의 유전자 조작, 인공 번식 등을 연구하고 돌아온 직후인 1986년이다.
황 박사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이렇게 들려줬다.
“참 가난하게 자랐어요. 농부한테 소가 얼마나 귀합니까. 어머니는 아들이 아프면 여사(餘事)로 생각하고, 소가 아프면 난리를 쳤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참 섭섭하데요. 행여 소가 죽기라도 해봐요. (집이) 초상집보다 더했어요. 그래서인지 어린 마음에 동물의사가 되고 싶더라고요. 오죽하면 ‘소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게 만들고 싶다’고 상상했겠습니까. (웃음) 제가 시험관 소에 관심을 가진 것이 이런 어릴 적 경험 때문 아니겠어요?”
그로부터 5년 뒤, 황 박사는 동물복제 전문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한국 최초로 체세포 복제 젖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다. 그 무렵 한국 사회에서는 소의 인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영롱이’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특구와 개성공단 독점사업권을 따낸 다음해인 1999년 2월 태어났다. 동물 체세포 복제로는 세계에서 5번째, 젖소 복제로는 세계 최초라고 언론은 보도했다. 같은 해 4월, ‘영롱이’와 마찬가지로 체세포 복제 방법을 이용해 복제 한우 ‘진이’가 태어났다.
또한 미국의 광우병 파동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2001년, 황 박사는 광우병 내성(耐性) 소를 탄생시키겠다고 장담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3년 12월, 광우병 내성을 갖춘 소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광우병을 유발하는 ‘프리온(Prion)’ 단백질 변이체를 이용해 광우병 내성을 가진 복제 소 네 마리를 생산해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그의 측근은 “(황 박사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시험관 송아지를 만든 1993년만 해도 연구비를 걱정하는 평범한 수의학과 교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김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이후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 첫 작품이 ‘영롱이’였다.
“국정원이 자금 지원”
황 박사에게서 백두산 호랑이 복제 얘기를 들은 건 ‘영롱이’와 ‘진이’가 태어난 해인 1999년 여름이었다. 그는 “‘진이’란 이름을 대통령이 지어주셨다”고 귀띔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들려줬다. 북한이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해달라며 호랑이 한 마리를 내려보냈다는 것. 당시 서울대를 출입했던 경찰 관계자는 “백두산 호랑이 복제 연구비는 국가정보원에서 지원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보냈다는 백두산 호랑이는 1993년 낭림산맥에서 생포된 야생 호랑이로, 고(故) 김일성 주석이 ‘낭림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황 박사는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해 북한에 선물로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김 대통령께서는 우리 민족만큼이나 우리나라 동물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앞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 동물을 차례대로 복제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 호랑이가 들어와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북한을 방문할 때 복제된 호랑이 새끼를 선물로 갖고 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