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軍治인가 法治인가… 말 많은 군 사법제도

“계급 앞에 무력한 군사법원 차라리 폐지하라”

  • 글: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2-12-31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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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 사법제도와 법무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점은 군검찰관과 군판사가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수사와 재판은 지휘관과 법무참모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법논리보다 계급논리가 앞선 탓이다. 어차피 군 지휘체계상 독립이 힘들 바에야 군사법원 기능을 민간법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軍治인가 法治인가… 말 많은 군 사법제도
    2002년 10월8일 참여연대는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창해 준장을 고발했다. 업무상 횡령, 직권남용 혐의다. 업무상 횡령 혐의는 군검찰 수사관들의 활동비(수사비)를 빼돌렸다는 의혹인데, 9월 하순 국회 국정감사 때 민주당 의원들의 폭로로 불거졌다.

    참여연대와 국회 법사위·국방위 등에 따르면 김법무관리관은 육군 법무감으로 재직하던 2000년 4월부터 2002년 1월까지 22개월 동안 군검찰 수사관 45명의 활동비 1억65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동아’가 확보한 군검찰 수사관들의 증언과 진술서, 통장 입출금 기록 등 갖가지 증거자료에 따르면 김법무관리관은 수사관 개인의 통장으로 지급해야 할 활동비를 횡령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또 몇몇 고참 수사관이 그로부터 돈봉투를 전달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어 그가 수사비 일부를 전용(轉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직권남용 혐의는 군검찰의 수사과정과 군사법원의 재판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다. 고발장에 따르면 김법무관리관은 국방부 법무운영단장, 법무감 재직 당시 허아무개 준위의 군용물절도 사건과 관련, 군검찰관 법무참모 군판사 등에게 청탁 또는 압력을 넣었다. 또 자신의 육사 동기인 서아무개 중령이 군용물횡령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항소심에서 군검찰관 군판사 등에게 압력을 행사, 공소기각 판결을 이끌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01년 11월 국방부 검찰단은 국방부 조달본부 시설부장을 지낸 이아무개 준장이 연루된 군납비리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부장관 지시로 수사권이 육군본부 검찰부로 넘어갔다. 장성급 수사는 국방부에서 하는 것이 관례였기에 뒷말이 많았다.



    이씨가 2002년 1월 기소유예로 풀려나자 군검찰 안팎에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이 일었다. 3개월 후 이씨는 엉뚱하게도 대검 중수부의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 재구속됐다.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의 친구 김성환씨가 군납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과정에 육군 검찰부가 군납비리사건을 축소수사한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신동아’ 2002년 6월호 참조).

    참여연대는 고발장에서 군납비리사건 수사권 이첩과 수사축소의 장본인이 바로 김창해 법무관리관(당시 육군 법무감)이라고 주장했다. 고발장에 따르면 당시 김법무감은 국방부장관에게 수사권 이첩을 건의해 국방부 검찰단이 손을 떼게 하는 한편 사건이 육군본부 검찰부로 넘어간 후에는 수사팀에 압력을 넣어 수사내용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고발

    고발장을 접수한 국방부 검찰단은 2개월이 지나도록 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아 수사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고발장이 법무관리관 책상에 뒹굴고 있다고 들었다. 수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발 내용에 대해 “제보자의 증언과 자료가 신빙성이 높고 관련자들한테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군검찰 조사가 진행되면 제보자가 수사에 협조하기로 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국방부 검찰단 관계자는 “(수사를) 진행은 하고 있다. 담당 검찰관이 기록 검토중이다”며 수사의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 참여연대 관계자를 조사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고발인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며 “충분히 검토한 후 필요할 경우 고발인을 부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껄끄러운 수사”라며 군 법무병과의 최고위직인 법무관리관을 수사하는 데 따른 곤혹스러운 심정을 내비쳤다. 한편 김창해 법무관리관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후속기사 참조).

    참여연대가 김창해 법무관리관을 고발한 지 열흘 뒤인 2002년 10월17일 군법무관 출신 법조인 9명은 군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부분이 변호사인데 현직 판사 2명이 포함돼 있다. 10월22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들의 주장에 대한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군사재판이 더 이상 군이라는 장막 뒤에 숨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김창해 법무관리관 고발 사건은 군 사법체계의 문제점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금횡령 의혹은 어찌 보면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직권남용 의혹은 다르다. 이것은 법논리가 계급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군사재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한 국방부 특조단 조사과정에 있었던 일이다. 특조단은 대부분 헌병으로 구성됐는데 군법무관도 3명 파견돼 있었다. 조사 초기 이들은 회의석상에서 허일병의 사인(死因)에 대해 각자 의견을 제시했다. 그 자리에서 군법무관 2명이 조심스럽게 “타살 의혹에 대해서도 한번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호되게 경을 쳤다. 이후 두 법무관은 수사 중심에서 배제됐다. 계급이 법 위에 있는 군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도대체 군에서는 어떻게 수사가 이뤄지고 어떻게 재판이 진행되는 것일까. 군판사와 군검찰관은 민간 판·검사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2000년 7월 국방부는 국방개혁위원회(위원장 김재창 예비역 육군 대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 법무체계를 개편했다. 개정된 제도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국방부장관 직속으로 검찰단과 고등군사법원을 창설한 것이다. 이전까지 국방부 검찰부는 법무관리관(준장 또는 소장) 지휘를 받는 법무운영단(단장은 대령)의 한 부서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심판부라는 이름으로 역시 법무운영단에 귀속돼 있었다.

    둘째는 군사법원의 확대다. 이전까지 군단급 이상 부대에만 있던 군사법원을 사단급 부대에도 설치한 것이다. 이는 전시 군사법원의 원활한 운영을 꾀하고 사단장의 지휘권을 강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개정된 내용을 보면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국방부 검찰부가 검찰단으로, 심판부가 고등군사법원으로 승격되면서 독립적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편제상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 고등군사법원장은 수평 관계로 모두 국방부장관의 지휘를 받는다. 또 사단급 부대에도 군사법원을 설치한 것은 재판권 확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측면도 있다.

    하지만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는 여전히 군 사법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이를 “군치(軍治)와 법치(法治) 사이의 갈등”으로 규정한다. 한교수는 “재판이 명령체계의 일환이냐, 아니면 명령체계로부터 독립된 사법활동이냐가 관건인데, 군사법원 운용 실태는 여전히 전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라 할 만한 군법무관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국방부 소속의 군법무관 A씨는 “군 법무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대 지휘관이 사실상 군검찰 수사를 지휘한다는 것이다. 군사법원의 경우도 겉으로는 독립돼 있지만 자체 인사권이 없어 지휘관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군검찰과 군사법원의 독립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현재 군법무관의 수는 육해공군 합해 400여 명에 이른다. 군법무관은 크게 단기장교와 장기장교로 나눈다. 단기는 사법고시 합격자로 복무기간이 3년이다. 장기는 대학 졸업 후 군법무관 임용고시를 통과한 자로 의무복무 기간이 10년이다. 이제까지는 격년제로 40명씩 선발해왔는데 올해부터는 1년에 25명을 뽑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군법무관은 임관 후 군판사와 군검찰관 등의 보직을 받는데, 일반 판·검사처럼 현직을 떠난 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

    장관 참모가 군사법원장 상관 노릇

    군 법무체계는 기능 면에서는 민간 법조체계와 비슷하다. 군검찰관이 검사, 군판사가 판사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과 체계는 딴판이다. 먼저 군 검찰조직을 살펴보자. 최상급부대인 국방부에는 검찰단이 있다. 대령이 단장인 검찰단은 국방부 직할 부대에서 벌어진 사건과 장성급 장교가 연루된 사건 등 주요 사건을 수사하는 기관이다. 중령급이 부장인 고등검찰부와 보통검찰부로 구성돼 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지휘체계가 일원화된 민간 검찰과 달리 군 검찰 지휘체계는 다원화돼 있다. 군검찰의 지휘부라고 할 만한 국방부 검찰단은 육해공군 본부 또는 예하 부대 검찰부를 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군검찰 조직이 지휘관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아 검찰관이 소속 부대장의 지휘를 받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장관 직속으로 검찰단이 있듯 각군 본부에는 참모총장 밑에 고등·보통검찰부가 편성돼 있다. 군사령부 이하 사단급 이상 부대에는 고등검찰부가 없고 보통검찰부만 있다. 보통검찰부장은 군사령관, 군단장, 사단장 등 부대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다.

    특기할 것은 법무참모 제도다. 국방부장관은 법무관리관이라는 참모를, 각군 참모총장은 법무감, 그리고 군사령부 이하 사단급 이상 부대 지휘관은 법무참모를 두고 있다. 법무참모란 말 그대로 지휘관에게 법률적 문제와 관련해 조언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지휘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군 법무조직의 실세들인 것이다.

    법무참모의 으뜸인 법무관리관은 편제상 수평관계인 검찰단장을 지도·감독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엄밀히 말해 지휘권이 아니므로 수사를 지휘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에서 하는 웬만한 수사는 사전에 법무관리관 결재를 거쳐야 한다. 법무관리관이 검찰단장의 직속상관인 국방부장관의 수사 지휘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까닭이다.

    앞서 소개된 군법무관 A씨는 “법무관리관은 장관의 참모 노릇에 충실하면 된다. 그런데 장관을 대신한다는 미명하에 국방부 검찰단장과 고등군사법원장을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시키는 등 상관 행세를 한다”고 비판했다.

    각군 본부의 검찰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각군 본부의 경우 아예 편제상 고등·보통검찰부가 참모총장의 참모인 법무감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인원이 적은 해·공군은 고등검찰부장이 보통검찰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군사령부, 군단, 사단급 부대의 법무참모도 소속 검찰관의 직속상관이다. 사단급 부대엔 대개 법무참모 1명, 군검찰관 1∼2명이 있는데, 법무참모가 보통검찰부장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軍治인가 法治인가… 말 많은 군 사법제도

    1992년 4월2일, 육군 9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이지문 중위(군부재자 투표 관련 양심선언자)에 대한 구속적부심 심리를 마친 민변 변호사들이 부대 정문 앞에서 가족들과 대책을 모의하고 있다.

    군검찰 조직에 비해 군 사법기관은 적어도 편제상으로는 독립돼 있다. 최고위직은 국방부에 있는 고등군사법원장. 검찰단장과 마찬가지로 대령이 맡고 있으며 장관 지휘를 받는다. 고등군사법원은 군내 모든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관할한다. 국방부에는 또 국방부 직할 부대에서 일어난 사건의 1심을 맡는 보통군사법원이 있다.

    각군 본부에는 보통군사법원이 있다. 법무감 지휘를 받는 고등·보통검찰부장과 달리 보통군사법원장은 편제상 법무감과 대등하다. 군검찰관의 경우 사단급 이상 부대에 배속돼 지휘관의 통제를 받지만, 군판사는 모두 각군 본부 소속으로 군단급 이상 부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보통 한 부대에 한 명씩이다. 사단급 부대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군단에 있는 판사가 출장 가서 재판을 한다.

    군 사법체계의 문제점으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군검찰관과 군판사가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사관, 장교에 대한 구속이나 기소는 사단장 군단장 등 지휘관의 결재를 받아야 가능하다. 구속영장청구서에 결재란이 있는데 거기에 지휘관 사인이 없으면 영장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부대의 불명예나 지휘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지휘관들이 군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군검찰권이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군법무관 A씨는 “사단에서는 중령만 돼도 구속하기 힘들다. 지휘관이 자기 체면 생각해 사건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한인섭 교수는 지휘관 결재권 폐지를 주장한다. 다만 지휘관이 병력운용 및 작전수행을 위해 불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지휘관 의견서’를 검찰관에게 제출토록 해 검찰관이 그 의견서를 참고해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토록 하자는 것이 한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2000년 5월 해군 1함대에서 발생한 ‘조중위 사건’은 영장 청구시 지휘관의 결재 여부가 문제가 된 사건으로 군법무관이 군에서 갖는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또 군에서는 법질서보다 계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앞선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준 사건이기도 하다.

    2000년 5월14일 밤 10시50분경 해군 1함대 검찰부장 조아무개 중위는 BOQ(독신장교숙소) 점검을 하던 일직사령 최아무개 소령으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였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조중위는 최소령에게 변호인선임권을 고지한 후 현행범으로 체포, 영창에 구금했다.

    영내 구타자는 구속기소가 원칙이므로 조중위의 체포행위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 체포하기 전 법무실장을 통해 함대사령관에게 전화로 보고했으므로 보고체계에 어긋난 행동도 아니었다. 다만 헌병대장과 협의해 처리하라는 함대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긴급체포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하지만 구타행위는 긴급체포요건에 해당되므로 불법체포는 아니었다.

    ‘구타 상관’ 체포가 군기강 문란(?)

    애초 해군에서는 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 했다. 조중위를 보직해임하고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5월20일 1함대 징계위원회는 두 사람에 대해 견책을 결정했다. 하지만 평소 군법무조직과 불편한 관계인 모 기관이 개입하는 바람에 사건이 커졌다. 모 기관의 건의를 받아들인 국방부장관은 군 명령체계 확립 차원에서 이 사건을 엄중히 다룰 것을 해군참모총장에게 지시했다.

    그후 해군본부 검찰부는 두 사람을 정식으로 입건, 그해 7월 불구속기소했다. 1심에서 구타자인 최소령은 벌금형(700만원)에 그쳤다. 반면 조중위는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형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최소령은 군복무를 계속하는 데 지장이 없었으나 유죄판결을 받은 조중위는 강제전역 당할 처지가 됐다. 조중위는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벌금형만 해도 치명타였다. 전역 후 판·검사로 임용되는 데 중대한 결격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법대로’ 했다가 자칫 인생을 망칠 위기를 맞은 조중위는 현재 해군본부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육군 전방부대에 근무하는 군법무관 B씨는 “지휘부는 조중위의 정당한 사법 행위를 군기강 문란으로 규정했다”며 “이 사건에서 얻은 교훈은 법을 진행하는 군검찰관이라 하더라도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군검찰관과 군판사의 직무 독립성을 훼손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인사권 예속이다. 각군 참모총장(실무는 인사참모부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는 각군 본부 법무감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입김이 작용한다(법무관리관은 장성 보직인데, 해·공군 법무병과에서는 편제상 장성이 배출되지 않으므로 육군 법무감이 임기를 마친 후 자동 승진하는 자리로 굳어져 있다). 특히 군사령부 이하 부대에 소속된 군검찰관의 경우 부대 지휘관이 전출, 보직해임 등의 인사권을 행사하므로 여간한 배짱이 아니고선 지휘관의 뜻에 어긋난 수사는 할 수 없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참모조직에 의한 인사고과다. 군검찰관의 경우 각군 본부에서는 법무감이 고등·보통검찰부장을 근무평정한다. 군사령부급 이하 부대의 군검찰관은 1차로 법무참모, 2차로 부대 지휘관으로부터 인사고과를 받는다.

    각군 본부 이하 부대의 경우 편제상 법무감, 법무참모가 군검찰관의 직속상관이므로 근무평정이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국방부 검찰단장이 편제상 대등한 관계인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인사고과를 받는 것이다. 국방부장관의 참모인 법무관리관이 장관 직속 기관장인 검찰단장을 근무평정하는 것은 검찰단의 독립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위법성마저 있다는 것이 군검찰 주변의 중론이다.

    군판사도 인사고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군판사의 최고위직인 고등군사법원장만 해도 검찰단장과 마찬가지로 편제상 대등한 관계인 법무관리관으로부터 근무평정을 받는다. 각군 본부에 있는 보통군사법원장도 수평관계인 법무감의 인사고과를 감수해야 한다. 편제상으로만 독립돼 있을 뿐 실제로는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군판사의 계급이 법무참모보다 낮은 것도 문제다. 군사법원의 최고위직인 고등군사법원장은 대령이다. 준장인 법무관리관에게 일단 계급에서 눌릴 수밖에 없다. 각군 본부의 경우 법무감은 준장(육군), 또는 대령(해·공군)인데, 보통군사법원장은 편제상 대령 자리임에도 중령, 소령이 맡고 있다. 군사령부 이하 부대에서도 법무참모가 군판사보다 계급이 높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지휘관은 물론 법무관리관 법무감 법무참모 등 참모들이 재판과정에 청탁이나 압력을 넣을 경우 군판사가 이를 거절하기란 매우 어렵다. 10년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했던 김경환 변호사는 “군에서는 사법부를 지휘관 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재판이 동네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군법무관이 되는 순간부터 이 직업에 회의를 품게 됐다. 군에선 수사와 재판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군판사와 군검찰관은 액세서리일 뿐이다. 모든 건 지휘관에게 달려 있다.”

    김변호사는 군검찰과 군사법원이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국방부 검찰단장과 고등군사법원장이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모든 군검찰관은 국방부 검찰단, 모든 군판사는 고등군사법원에 소속돼 예하 부대에 파견 근무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변호사는 또 인사와 예산이 명실상부하게 독립된 기무사령부처럼 독립부대인 법무사령부를 창설하는 것도 검토할 만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변호사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대안은 군사법원 기능을 민간 법원으로 이관하는 것이다. 즉 수사와 기소는 군검찰이 하되 재판은 민간 법원이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군의 특수성 때문에 군인 재판은 군대에서만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민간법원에서 다루지 못할 ‘특수한 사건’이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군사법원 폐지에 따른 잉여인력 발생 문제에 대해선 “군검찰로 돌려 수사력을 보강하거나 무기계약 등 군의 대형 사업에 필요한 법적 검토, 법제 개선 작업 등에 투입하면 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군 법무병과의 고위관계자 C씨도 군사법원 폐지 주장에 공감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검찰관과 군판사가 지휘관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군의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다. 군법무 종사자들은 자괴감을 갖고 있다. 그럴 바에야 군사법원을 없애는 것이 낫다. 군사법원 제도를 가진 나라는 미국과 한국 등 세계적으로 몇 나라 없다. 민간 법원에 군사부를 설치하고 거기서 군 범죄사건을 재판하면 된다.”

    C씨의 말마따나 미국을 제외한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군범죄도 민간 법원에서 재판한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는 아예 기소도 민간 검찰이 맡고 있다. 군사법원이 있는 미군도 한국군과는 사정이 다르다. 장성 대우를 받는 고참 영관장교가 군판사를 맡기 때문에 외압에 휘둘릴 소지가 적다. 특히 주한·주일미군의 경우 군판사 한 명이 순회재판을 하기 때문에 지휘관 입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군사재판을 민간 법원으로 옮겨야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1999년 6월∼2000년 5월까지 한 해 동안 군검찰이 처리한 군 범죄사건은 약 1만2000건이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폭력, 상해(36%)다. 이어 교통범죄(27%), 군무이탈(12%), 절도 사기 횡령 등의 재산형 범죄(8%)가 뒤를 잇고 있다. 이런 범죄들은 민간 법정에서 다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인섭 교수는 “지휘체계 문란 등 꼭 군에서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될 범죄를 제외한 일반 범죄에 대한 재판은 민간 법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법무관 A씨는 군검찰의 수사 영역 일부를 민간 검찰에 넘기는 방안을 제의했다.

    “장성급 수사는 국방부 검찰단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2001년 군납비리사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듯 검찰단도 외압에는 별 힘을 못 쓴다. 고위층 수사, 특히 참모총장급 이상에 대한 수사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민간 검찰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나 특별수사검찰청이 만들어지면 군법무관을 파견 근무케 해 거기서 군고위층 연루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다.”

    관할관의 확인조치권도 논란거리다. 2002년 7월 계룡대 공군 보통군사법원은 F-X사업과 관련해 군사기밀유출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조주형 공군 대령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형량은 관할관(공군참모총장) 확인조치권에 의해 징역 1년6월로 감형됐다.

    관할관이란 쉽게 말해 군사법원이 설치돼 있는 부대, 즉 사단급 이상 부대의 지휘관이다. 군사법원법 379조는 관할관은 무죄, 면소, 공소기각, 형의 면제, 선고유예, 집행유예 판결을 제외한 판결을 확인해야 하며 그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확인조치권은 사실상 지휘관의 감경권을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형량의 절반을 감경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론적으로는 사형을 징역 1월형으로 깎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에 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셈이다.

    김경환 변호사는 “전시에는 몰라도 평시에 관할관 확인조치권을 행사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이 공범인 사건인 경우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며 확인조치권의 부분 폐지를 주장했다.

    한인섭 교수는 “엄정한 유죄판결을 지휘관의 은사(恩赦)로 감형하는 것은 지휘관의 권위를 높이고 상명하복의 풍토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며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한교수는 대안으로 1심 판결에 대한 관할관 의견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군법무관 A씨는 “지휘관에게 (관할관 확인조치권을) 위임받은 법무관리관 법무감 법무참모 등이 이를 군검찰과 군사법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며 이 제도의 폐해를 지적했다.

    고위직 법무관 C씨는 ‘평시 관할관 확인조치권 폐지’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이 문제를 다른 각도로 조명했다.

    “일반적으로 군사재판의 형량은 민간에 비해 센 편이다. 지휘관의 은사 조치는 지휘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사실이지만, 과도한 형량을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민간 재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군형법의 형량을 현실에 맞게 낮출 필요가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법무관리관 법무감 등 참모들이 관할관 확인조치권을 위임받아 악용할 경우다. 상당수 지휘관은 사건 내용도 모른 채 참모가 보고하는 대로 결재한다. 참모들이 변호인과 결탁하거나 형량을 갖고 장난 칠 경우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관할관 확인조치권과 관련해 육군본부 군법무관 D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모 장교가 강간 및 살인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보통법원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려 했다. 하지만 법무병과의 고위관계자가 사형을 강권했다. 이 관계자는 지휘관의 확인조치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재판장은 고심 끝에 사형 판결을 내렸다. 재미있는 것은 관할관 확인과정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이 장교는 2심에서 다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군검찰관과 군판사가 상호 순환보직되는 점도 개선 사항으로 꼽힌다. 현재 군법무관 인사는 각군 본부 인사참모부에서 한다. 문제는 군검찰관을 지낸 법무관이 군판사도 하고 군판사로 근무하던 법무관이 군검찰관으로 발령 나기도 한다는 것. 그러다 보니 상호 개입이 철저히 배제되는 민간 검찰과 법원의 관계와는 달리 상호 일체화 경향이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다. 군검찰과 군사법원은 건물도 같이 쓴다. 국방부에서는 검찰단과 고등군사법원이, 각군 본부에서는 고등·보통검찰부와 보통군사법원이 한 건물을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김경환 변호사는 또 “군판사에 대한 신분 보장이 시급하다”며 “임기가 보장돼 있지 않은 점, 소속은 각군 본부이면서 파견근무를 하는 데 따른 불안감, 불합리한 근무평정제도 등이 군판사를 위축시켜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인권침해도 여전히 시빗거리다. 먼저 영창 제도. 영창은 사단급 이상 부대에 있는 미결수 구금시설이다. 미결수는 영창에 구금돼 있다가 형이 확정되면 경기도 장호원에 있는 육군교도소로 옮겨진다. 다만 징역 6월 미만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그대로 영창에 남는다.

    기결수를 영창에 가두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징계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까지 영창에 가두고 그 기간을 군복무기간에서 뺀다는 점이다. 징계 받은 자의 구금 기간은 15일 이내다. 재판 없이 징계만으로 구금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든 인신구속은 판사의 판결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섭 교수는 “징계에 의한 구금은 구속과 다를 바 없다. 신체 자유를 속박하는 방법 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병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민간 수사기관 체계와 달리 군검찰은 헌병을 지휘할 권한이 없다. 대부분의 군내 범죄사건은 헌병이 수사한다. 군검찰은 워낙 인력도 달리는 데다 수사지원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아 독자 수사를 벌일 형편이 못 된다. 헌병이 수사한 사건을 검토해 영장을 청구하고 기소하는 게 군검찰의 주 임무다. 군법무관 D씨는 “헌병은 사건을 군검찰로 넘기기 전 지휘관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기 때문에 군검찰이 헌병의 수사내용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헌병이 군검찰을 무시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앞서 관할관 확인조치권의 폐해를 설명하며 예로 들었던 강간범 살인사건은 사실 헌병의 월권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1심 재판 도중 헌병측에서 신병치료를 이유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하지만 강간 횟수가 많아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 군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회에선 검찰이 속한 법무부가 구치소와 교도소를 관리하지만 군에선 헌병이 영창과 교도소를 관리한다. 그만큼 헌병의 권한이 막강한 것이다.

    헌병은 군검찰의 결정을 무시하고 그 강간범을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만 대형사고가 터졌다. 계호병이 조는 틈을 타 열쇠를 집어 수갑을 풀고 달아난 것이다. 이 강간범은 열흘 후쯤 다시 잡혔다. 그동안 한차례 더 강간을 하고 살인까지 저질렀다.

    헌병 수사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없다보니 수사과정에 가혹행위가 있어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수사과정에 변호사 접견권이 보장되지 않고 가족 면회가 금지되는 것도 인권 침해로 볼 수 있다.

    한인섭 교수는 “군에서 구속적부심이나 영장실질심사 이용률이 민간인보다 현저히 낮은 것은 수사과정에서 이러한 제도를 이용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기 때문”이라며 “장교나 부사관에 비해 방어권이 약한 사병의 변호를 전담하는 사병전담변호인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혹행위가 문제가 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사단 총기도난사건을 꼽을 수 있다. 부대에서 총기가 없어진 사건이 발생했는데, 하사관 3명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이들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군사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렸고 대법원도 이에 동조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수사과정에 가혹행위로 거짓자백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02년 7월 고등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단 총기도난사건도 가혹행위로 물의를 빚은 사건이다. 재판과정에 수사관들의 가혹행위가 인정됐다. 이에 가혹행위를 당한 당사자는 수사관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불기소 처분됐다. 부대 징계위원회에서 견책 이라는 경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군 사법제도의 문제점은 더 이상 군의 특수한 사정을 빌미로 덮어둘 수 없다. 법보다 계급이 앞서는 군수사와 군사재판은 이제 인권의 사각지대로 부각, 사회적 감시대상이 되고 있다. 한인섭 교수는 “군의 특수성, 군사재판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주장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인권보장 차원에서 군사재판도 일반 재판과 유사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법보다 계급 우선’전통 깨져야

    국방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E대령은 “병사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국선변호인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환 변호사는 “군 법무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무참모 군판사 군검찰관의 직능을 분리하고 직능별로 평정 진급 보직 등 인사관리를 달리할 수 있는 제도를 조속히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변호사는 특히 “법무관리관 법무감 등의 인사 전횡과 그들이 수사와 재판에 개입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군사법제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먼저 법보다 계급을 앞세우는 ‘무식한 전통’이 무너져야 한다. 관련 기관의 ‘부서 이기주의’가 깨져야 한다. 불합리한 권력을 누리는 자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내놓아야 한다. 군은 과연 언제까지 시대에 맞지 않는 ‘특수성’을 고집하며 변화와 개혁을 거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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