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국방개혁 2020’을 비판한다

‘큰 그림’ 없이 모아놓은 각론, 각군 이해관계에 상처투성이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5-10-24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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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중순 국방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국방개혁 2020’.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전 정부의 ‘좌절된 계획’을 모아놓았을 뿐, 노무현 정부만의 독창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보환경 분석과 부합하지 않는 구조개편 방향, 3군 사관학교 통합과 ‘국방정보체계 본부’ 신설안의 좌절…. 2년 반의 시간을 흘려보낸 ‘조급한 개혁안’의 한계는 어디서 비롯됐으며 그 극복방안은 무엇인가.
    ‘국방개혁 2020’을 비판한다

    9월13일 오후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하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

    “다음주에 국방부가 국방개혁안을 청와대에 보고한다. 대통령이 OK 하면 바로 발표한 뒤 연말까지 ‘국방개혁기본법’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이번 개혁안을 승인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기대만큼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내부에서도 강하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국방부가 수차례 보고했지만 번번이 반려됐다.”

    지난 8월초, 청와대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러나 회의적이던 그의 말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8월말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보고한 ‘21세기 선진정예 강군을 위한 국방개혁 2020’을 승인한다. 이어 9월13일 국방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개혁안을 공식 발표했다. ‘2020년까지 군병력 50만으로 감군(減軍)’이라는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뒤따랐다.

    발표 직후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야당과 언론, 시민단체에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비판자료를 내놓았다. 초점은 ‘50만’이라는 숫자가 적정한가 여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남북관계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감군은 위험하다”는 견해를 밝혔고, 시민단체에서는 “남북 상호 군축 등을 고려해 30만~35만 수준의 더욱 과감한 감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방부측은 이러한 비판에 서운해하는 분위기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창군 이래 최대 규모’라고 자부하는 개혁안을 만들어냈는데 우군이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병력감축과 구조개편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묶어내고 법제화를 통해 꾸준히 관리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으니, 이만하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치권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번 개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핵심적인 포인트는 ‘충분히 새롭지 못하다’는 것. 1990년대 초반 추진된 8·18계획이나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군 구조 개편안이 거의 그대로 통합된 것일 뿐, 줄기차게 ‘국방개혁’을 강조해온 것에 비해 노무현 정부 나름의 전향적인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게 전부라면 지난 2년 반 동안 도대체 뭘 한 거냐”는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전의 국방계획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나온 얘기들이 다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묻는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반론이지만, “2020년 한반도 안보환경이 십수년 전에 마련했다가 실현하지 못한 계획만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한가”라는 재반론에 부딪히면 빛이 바래는 것이 사실이다.

    국방부는 9월14일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총 65쪽 분량의 파워포인트 자료를 배포했다. 이외에도 세 가지 버전의 설명자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민간에 공개된 것은 이 자료가 유일하다.

    자료를 꼼꼼히 분석해보면 먼저 눈에 띄는 ‘약점’은 서두에 제시된 안보환경 전망과 후반의 군 구조 및 전력재편 부분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앞에서는 ‘북한의 군사위협은 점진적 감소, 지역내 ‘잠재적 위협’의 현실화 가능성’이라고 표현해 경계해야 할 위협 상황이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후반부의 전력구조나 군 구조 재편방안은 이전보다 더 강력한 휴전선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혁안에 나타난 지상군 배치 변화는 전방사단 축소와 경비여단 배치로 요약된다. 현재는 육군 1·3군 예하 군단에 배속된 2~3개씩의 사단이 휴전선 인근에 일렬로 늘어선 채 배치돼 있지만, 이들 사단을 전방에서 빼고 전문인력만 보유한 경비여단을 투입해 철책경비를 맡기는 방식이다. 대신 화력과 기동력을 갖춘 사단 예하부대는 2선에서 공격과 방어를 한다는 그림이다.

    이러한 전투 서열은 지상군 주 전력이 앞으로도 계속 휴전선에 붙박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구조다. 15년 뒤인 2020년의 안보환경이 여전히 남북 대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지 따져보면 다르게 생각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발표 자료 서두의 안보환경 전망처럼 남북간 긴장이 점차 완화되고 지역내 위협이 증가한다면 지상군 구조 또한 이에 걸맞은 형태로 설계했어야 옳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잠재위협에 두루 대응하려면 휴전선 경비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짧은 시간에 적 후방에 침투할 수 있는 지상전력을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동이 자유로운 대대 규모의 부대 수십 개를 만들어 유사시 상대방 본토를 타격할 역량이 된다면 주변국의 무력도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례 안 맞는 ‘주먹’과 ‘다리’

    평양-원산 이남지역만 타격할 수 있는 KF-16 대신 F-15K급 차기 전투기를 주력 기종으로 삼아 한반도 전체를 정밀타격권 안에 둔다는 공군 부분을 보자. 이 경우에도 공중 급유(給油) 능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차기 전투기 또한 북한을 벗어날 수 없다.

    중국과 갈등이 빚어질 경우 베이징 등 핵심에 출격할 수 있으려면 상당수 주력 전투기에 동시에 급유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러한 능력을 적정수준으로 확보하는 방안은 이번 개혁안이나 군의 무기체계 수급계획에서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주력 전투기의 수를 줄여서라도 공중 급유 능력과 균형을 맞췄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나마 해군은 KDX-3 구축함과 KSS-3 잠수함 확보 등을 통해 훨씬 먼 지역까지 활동반경을 넓히게 되지만, 이 또한 앞서 예로 든 지상군 재편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한계가 있다. 지상군이 지역 내 잠재 적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려면 해군이 유사시 이들 부대나 전차 등 관련장비를 적 본토로 수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듯 ‘지역내 잠재적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서두의 안보환경 전망과는 달리, 이번 개혁안에서 군은 타격능력을 강화하고 작전반경을 넓히는 등 ‘주먹’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 여전히 ‘대(對)북한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유사시 지역내 다른 국가에 투사할 수 있게 해줄 ‘다리’를 확보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혹시 실제로는 그러한 계획을 갖고 있지만, 주변국의 반응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은 것일까? 군 전력기획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혁 마인드’가 강한 편에 속하는 군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혁신성’ 부족의 사례로 꼽는 대목으로는 군정(인사, 법무, 예산 등 행정 관련 분야)과 군령(작전, 지휘, 훈련 등 전쟁수행 관련 분야)의 분리에 관한 것이 있다. 이는 이번 개혁안의 주요 전제였던 ‘문민화’ 및 ‘3군의 합동성 강화’와 관련이 깊다.

    개혁안이 취하는 방향은 군령 권한을 합참으로 집중하고 각군 본부는 군정 기능에 충실한 조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전투부대 지휘권은 합참의장이 통합해 맡음으로써 3군이 합동군 형태로 움직이도록 하고, 각군 참모총장은 기능부대 지휘권을 맡는 형식이다.

    “참모총장을 없앤다면…”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15년 뒤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군정 부분을 더 과감하게 문민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아예 참모총장제를 폐지하고 각군 청장의 형태로 민간인을 임명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다. 각군 참모부 대신 육군청, 공군청, 해군청을 만들어 국방부가 관할하는 것이다.

    군령 부분에서도, 각군 참모본부가 사라지고 합참이 직접 군사령부를 통할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3군의 합동성이 대폭 증가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정 필요하면 대신 각군 총사령관을 둘 수도 있다. 국방부가 각 군청을, 합참이 개별 군사령부를 맡음으로써 군정과 군령의 분리, 군과 민간인력의 분리도 명쾌해진다. 이를 통해 군 장성이나 장교의 수를 상당수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 이러한 군 구조는 당장은 매우 급진적으로 들리지만, 2020년 시점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유사시 한국군과 함께 작전을 해야 하는 미군도 장기적으로 이 구조를 지향하는 데다, 적잖은 수의 고위 지휘관을 줄여야 하는 만큼 지금부터 준비해도 완성이 쉽지 않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사관학교 통합이 백지화된 까닭은?

    반면 이번 개혁안에 반영된 합동성 강화는 주로 합참의 덩치를 키우고 기능을 늘리는 것에 집중됐다. 지금은 620여 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15년 뒤에는 800명이 근무하면서 전쟁기획 및 작전수행체제를 완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방부가 최근 중장 보직이던 합참차장을 대장이 맡도록 변경한 것은, 남북 군사회담을 담당하는 합참차장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합참 기능 강화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개혁 2020’을 비판한다
    그러나 국방부 주변에서는 합참에 대장 두 명을 두는 방안이 1·3군 사령부 통합으로 대장 자리가 하나 줄어드는 육군을 배려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두 전방 사령부를 묶어 지상작전사령부로 만드는 방안은 김대중 정부 시절 발표됐다가 성사되지 않은 것. 이번 개혁안에서 공군은 전투사령부가 하나 늘고 해군은 함대사령부가 둘 늘어나는 데 비해, 육군은 군사령부 하나와 군단 넷이 줄어드는 등 장군이 가장 많이 줄어든다. 또한 그간 육군이 주로 맡던 합참의장을 3군이 윤번제로 맡는 방안이 확정적이다.

    이번 개혁안에서는 합참의장과 차장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육군에서 맡는 것으로 규정했다. 합동성 강화, 합참 기능 강화라는 명분 아래 합참차장을 대장 보직으로 만든 조치가, 혹 이래저래 대장 숫자가 줄어드는 ‘육군 불만 달래기’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합동성 강화를 위한 필수과제 중 하나가 군별로 분리된 정보화 인력 및 조직을 통합하는 것이다. ‘네트워크 중심전(NCW·Network Centric Warfare)’이라는 현대전 개념을 따라잡으려면 육해공군이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운용돼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특정한 상황에 각군 무기체계 중 어떤 것이 투입돼야 할지, 당장 투입 가능한 무기체계나 부대는 무엇인지 즉각 파악해 대응할 수 있다.

    군에서는 누구나 공유하는 이 필수과제를 위해 당초에는 각군 정보화 조직을 통합해 국방부 산하에 ‘국방정보체계본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새 본부에서 각종 정보체계를 통합 개발하고 운영하는 방안이다. 통합 네트워크 서버 등의 기본장비를 확보하는 것도 이 본부에서 맡게 된다.

    그러나 이 안은 최종적으로 개혁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결론은 정보체계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공유해 육해공군 사이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는 수준. 그러나 정보가 집적되는 메가 센터를 군별로 따로 구축하는 등 초기 아이디어와는 거리가 있다. 통합된 정보체계본부 구축방안은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초기에 검토되다가 최종적으로는 반영되지 못한 아이디어로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방안이 있다. 사관학교를 하나로 만들어 1~2학년 때는 함께 수업을 듣고 3학년 때 군별로 전공을 나누는 형태가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합동군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마찬가지로 각군 대학의 통합도 심도 깊게 논의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둘 다 없던 일이 됐다.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대신 1학년 때만 함께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게 이번 개혁안에 반영된 결론이다. 대학의 경우 통합교육과 교관교류를 확대하는 수준. 군 주변에서는 세 사관학교와 대학을 통합하면 교장(중장) 및 총장(소장 혹은 준장) 보직이 도합 네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었으리라는 시각이 강하다. 군별 이해관계 차이를 넘지 못한 ‘적당한 타협’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렇듯 이번 개혁안, 특히 군 구조 개편안의 한계와 문제점을 확인해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를 관통하는 국가 대전략이 있다고 하기보다는 시간에 쫓겨 단위 사안을 급히 접목해 묶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군의 구조를 바꾸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안보전략이다. 국가가 안보 측면에서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이를 어떻게 달성해 나갈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다음이 국방정책이다. 안보전략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군을 활용할 것인지, 군이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판단한다. 이러한 전제가 완성되어야 국방개혁안이 나올 수 있다.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절한 군의 편제는 무엇이고 무기체계는 어떤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후 나라의 경제형편이나 인구구조 같은 사정을 감안하며 실행방안을 짠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국방개혁안은 이러한 흐름을 거쳐 설정됐다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까지 제기된 문제점을 개선하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제거하며 효율을 높이는 개별방안을 모아놓은 것에 가깝다. 총론에서 각론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각론을 모아놓은 총론이라는 것. 주변 안보환경 예측과 전력재편 방안이 괴리된 듯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여기서 한 가지 사항이 궁금해진다. ‘국방개혁’을 신념처럼 되뇌던 노무현 정부의 개혁안이 기대와 달리 이렇듯 한계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더욱 근본적인 개혁안이 나오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차례 보고를 “미흡하다”며 반려했던 청와대가 이번 방안을 수용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가.

    2012년? 2015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국방개혁을 역설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30일 계룡대를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개혁과제가 이미 설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 조기에 시작될 수 있으므로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된 ‘통수권자’의 개혁요구는, 이후 군 지휘관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이어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조바심’과는 별개로, 정부 안에서의 개혁방안 연구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는 2003년초 관련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와 합참, 산하 연구기관에서 보고서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전 정부의 개혁방안 검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관계자들은 이 무렵 청와대와 군 지휘관들 사이에 개혁을 둘러싸고 이견이 컸다고 전한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월 이를 우회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한 방위사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병) 복무기간을 줄여 전체 병력 수를 줄였으면 한다. 군 당국과 국방장관은 시간을 두고 줄여 나가겠다고 하는데, 그 속도를 다시 논의하려고 생각 중”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조영길 전 국방장관으로 대표되는 초기 관련 인사들이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지 않았다는 점을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NSC 등 청와대 관계부서 또한 군의 반감을 지나치게 의식해 ‘몸을 사린’ 측면이 있다는 것. 이 시기 국방부와 NSC 사이에 적잖은 갈등이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듬해에는 국방개혁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NSC가 추진한 ‘남북군사력 비교연구’를 계기로 NSC와 합참 관계자들이 대립하는 모양새가 빚어지기도 했다.

    개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먼저 결정됐어야 할 일들이 제대로 완결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대표적인 것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유사시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도록 되어 있는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되찾아오겠다는 것 또한 초기부터 여러 차례 강조된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목표시기는 청와대 내에서조차 2012년에서 2015년을 오가며 혼선을 빚었고, 국방부와 합참에서의 실무도 사실상 이뤄진 게 없었다.

    때문에 이번 국방개혁안에도 작통권 문제는 잠정적인 형태로만 포함됐을 뿐, 구체적으로 군 구조 개편이나 무기체계 도입을 환수일정과 연동하는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9월말에야 SPI(한미 안보정책구상)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협의하자는 뜻을 미국측에 공식 전달했다고 밝혔다.

    “명확한 지침 필요했다”

    결국 국방개혁 준비작업은 조영길 장관이 물러나고 윤광웅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후임으로 임명된 2004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는 8·18 계획 등에 참여해 강한 ‘개혁 마인드’를 과시하던 윤 장관을 임명하며 국방개혁 추진이 발탁 이유였다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이 무렵 노 대통령은 고위 안보당국자들 앞에서 “벌써 2년이 지났다. 이제 군 개혁은 어떻게 할 거냐”며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할 것은 청와대에서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함에 따라 국방개혁안 작성작업이 통째로 국방부와 합참에 맡겨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군 구조 개편 부분은 합참 전략기획본부가 주축이 되고 국방부 정책실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작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위의 국가 대전략이 설정되어 그에 따라 각론을 정한 것이 아니라, 군 스스로 각론을 모아 엮는 방식으로 개혁안이 구성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개혁안 준비과정에서 운영된 ‘국방발전자문위원회’의 한계다. 당초 국방장관 자문기구로 설치될 예정이던 이 조직은, 상징성을 감안해 대통령 자문기구로 격상되어 NSC 전략기획실이 운영을 맡았다. 그러나 위원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대부분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웠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초기에는 단순히 아이디어 개진 수준이었고, 막판에야 합참이 작성한 개혁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낸 게 전부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앞서 살펴본 이번 국방개혁안의 한계가 어떻게 배태된 것인지 대략 윤곽이 그려진다. 출범 초기 군의 반감과 청와대 안에서의 지지부진한 논의로 인해 적잖은 시간이 흘러갔고, 뒤늦게 군이 급히 자체적으로 세부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연구할 시간이 부족했고, 이전 계획을 모으는 과정에서 각군의 이해관계가 어정쩡하게 타협되는 모습도 나타난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에게 국방개혁의 분명한 윤곽이나 비전이 없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병력감축, 주변국에 대한 전력강화, 자주국방을 위한 기반조성 등 다양한 쟁점 가운데 어느 것이 핵심인지, 언제까지 어떤 규모로 추진할지 뚜렷한 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개혁 논의에 관여했던 한 국방부 관계자의 말이다.

    “처음부터 대통령이 ‘경제사정이나 거시지표를 따져보니 병력을 몇 년까지 몇 만으로 줄여야겠다, 예산은 이 정도까지만 줄 수 있다, 대신 전력은 최소한 현재 수준은 돼야 한다, 그에 맞춰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어 와라’, 이렇게 명확한 지침을 내렸다면 흐름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참모나 군 수뇌부의 역할이 뭔가. 지침이 내려오면 어떻게든 실행방안을 만드는 것 아닌가. 못하겠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뭐가 나와도 나왔을 것이다.”

    “한걸음이라도” vs “갈 길이 멀다”

    대통령 본인이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을 감안하면, 비판은 결국 청와대 안보관련 참모들에게로 이어진다. 참모들 스스로 분명한 비전이 없었음은 물론, 이를 다른 과제에 비해 후순위로 둔 것은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동북아균형자론이나 평화번영정책 등 노무현 정부가 ‘큰 틀의 안보전략’이라고 말했던 개념들이 국방개혁에 반영된 흔적이 없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상위에 해당하는 그림이 없는데 국방개혁안이 제대로 그려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한계가 많은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다. 병력 18만 감축이면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사실 청와대와 군 관계에 한계가 있음을 고려하면 그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 어떻게든 합의와 결과물을 이끌어낸 것만도 큰 공이다. 그래도 3군 균형발전이나 합참기능 강화 같은 큰 원칙은 대략 포함되지 않았나.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걸음이라도 떼야 한다.”

    개혁안 검토작업에 참여했던 한 군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이 이번 개혁안을 승인한 것도 같은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벌써 임기의 절반이 지나갔으니 더 늦출 수 없었으리라는 것. 특히 최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노 대통령으로서는 그 전제인 작통권 환수 준비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국방개혁에 착수할 필요를 느꼈을 듯 하다.

    이번 국방개혁안 준비에 관여했던 상당수 관계자들은, 개혁안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1년마다 진행상황을 평가하고 3년마다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단 시작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각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해 치열한 토론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 가까스로 걸음마를 뗀 개혁안이지만, 더욱 꼼꼼하고 가혹하리만큼 매서운 비판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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