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부정 의혹에 흔들리는 국기(國技) 태권도

“단증 발급 비리? 죽은 사람에게 물어보쇼”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10-24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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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지검 특수2부, 단증 발급 비리 수사 착수
    • 말 많고 탈 많은 승단 심사비의 비밀
    • 국기원 이사가 원장 선출 무효소송 제기
    • 이사회 녹취록, “집안식구끼리 무슨 격식을 차려…”
    부정 의혹에 흔들리는 국기(國技) 태권도
    건국이래 최고의 문화수출상품이라는 태권도. 현재 세계 태권도 인구는 177개국 6000만명. 한국의 고유 무술이 전세계의 대중스포츠로 발전한 것이다.

    한국 태권도계는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이하 세계연맹), 대한태권도협회(이하 대태협) 세 단체가 이끌고 있다. 태권도 종주국의 상징인 국기원은 단증 발급과 태권도 기술 연구, 지도자 연수 등을 맡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5개 대륙연맹과 연맹 소속 각국 태권도협회의 상위 단체로서 올림픽을 비롯한 태권도 국제경기를 주관한다. 대한태권도협회는 국내 경기를 총괄하는 단체로 승단심사를 관장한다.

    지난 30년간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온 데는 김운용씨의 공이 컸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김씨는 국기원장과 세계연맹총재, 대태협 회장을 겸직하거나 번갈아 맡으면서 한국 태권도계는 물론 국제 태권도계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해왔다.

    지난해 1월 김씨는 특경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수재, 외환거래법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공금 38억원을 횡령했고 8억여 원의 뇌물을 받았다.

    김운용 체제가 몰락한 뒤 3대 태권도 단체의 수장(首長)은 모두 바뀌었다. 국기원장에는 오랫동안 부원장을 지낸 엄운규(76)씨가 취임했다. 세계연맹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조정원(58) 전 경희대 총장을 새 총재로 선출했다. 대태협의 경우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2001년 11월 김운용씨가 이른바 개혁세력의 압박으로 물러난 뒤 구천서(55) 전 의원이 2002년 2월 선거에서 회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구 전 의원은 2003년 12월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됐고 이듬해 2월 김정길(59) 전 의원이 새 회장으로 선출됐다. 김정길 대태협 회장은 현재 대한체육회장을 겸하고 있다.



    태권도계 비리 8가지 검찰에 진정

    ‘개혁대상’이던 김씨가 퇴출되고 태권도계는 한동안 평온을 되찾은 듯싶었다. 사회적으로 눈길을 끌 만한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범태권도바로세우기운동연합’(이하 범태련)을 비롯한 이른바 개혁세력의 목소리도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운용 체제의 부정적 유산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태권도계의 고질적인 비리에 대한 시비가 재연된 것이다. 균열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곳은 세계 태권도계의 구심점이자 태권도인의 정신적 지주인 국기원.

    국기원은 현재 두 가지 소송에 휘말려 있다. 하나는 국기원 기술심의위원회 부의장을 지낸 범태련 상임대표 오용진씨의 진정에서 비롯된 형사사건이다. 오씨는 올초 검찰에 태권도계의 8가지 비리의혹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했다. 피진정인은 엄운규 국기원장이다. 이 사건은 김운용씨의 비리를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됐는데, 그동안 진전이 없다가 최근 정식 수사대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뒤늦게 수사가 시작된 데는 지난달 오씨가 최초 진정 내용을 보강하는 자료를 제출한 것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얼마 전 검찰에서 진정인 조사를 받은 오씨는 “(검찰에) 최초 진정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는 한편 몇 가지 비리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진정인 조사에 이어 국기원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오씨가 추가로 제기했다는 ‘몇 가지 비리의혹’ 중에는 해외 승단 심사비 착복혐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세계 태권도계에 파문이 크게 일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의식한 듯 검찰 관계자도 “국기원 비리는 국가 위신과 관련된 문제”라며 “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고 진정 내용에 신빙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또 하나는 국기원장 선출과 관련된 민사소송이다. 소송을 낸 사람은 국기원 이사인 김철오씨와 전 이사인 이승완씨. 두 사람은 지난 5월의 국기원장 선출 과정에서 이사회가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이사회 결의 원인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국기원장을 다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기원 정관에 따르면 원장 또는 이사장의 임기는 4년이다. 다만 보선으로 취임한 경우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임기다. 김운용씨의 임기 만료일은 지난 9월23일. 따라서 엄 원장의 임기도 그때까지다. 그런데 국기원 이사회는 이보다 넉 달 전인 지난 5월 현 원장인 엄운규씨를 차기 원장으로 서둘러 선출함으로써 시비를 자초했다.

    두 사건에 대해 국기원측은 인사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세력이 개혁을 빙자해 현 지도부를 음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진정 내용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거나 허위사실이며, 원장 재선출 건의 경우 지난 9월 이사회를 다시 열어 적법한 절차를 밟았기에 별문제가 안 된다고 반박한다.

    진정 내용의 핵심은 단증 부정발급이다. 대상자는 모두 7명인데 상당수가 태권도계의 지도층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서에 따르면 이들은 국기원측에 돈을 주고 가짜 단증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부정 승단은 확인됐는데…”

    단증 부정발급 의혹은 지난 1월 대한태권도개혁위원회 소속 태권도 관장과 사범 수십명이 서울 역삼동 국기원 건물 앞에서 벌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통해 불거졌다. 이들은 엄운규 원장에 대해 단증 장사를 통한 부당이득, 비리를 저지른 측근인사 중용, 국기원 예산 횡령 등 8가지 비리의혹을 제기했다. 그에 앞서 오용진씨는 이런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국기원측은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해 오용진씨를 비롯한 대한태권도개혁위원회 관계자 4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맞서 개혁위원회측도 지난 3월 김상필 의장 명의로 김운용, 엄운규 두 전·현직 국기원장을 단증 부정발급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명예훼손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가, 엄 원장 등에 대한 고발 사건은 형사4부가 맡았다. 지난 9월 중순 형사4부는 피고발인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형사4부의 수사가 끝난 직후 형사2부는 오씨 등 개혁위 관계자 4명을 약식기소했다. 그 결과 두 사람에게는 각 300만원,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각 200만원의 벌금이 나왔다. 명예훼손이 인정된 것이다.

    무혐의와 벌금형이라는 검찰 수사결과만 놓고 보면 개혁위측은 허위 주장을 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는 “허위 승단 등 단증 부정발급 사실은 확인했는데, 고발당한 사람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고 무혐의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말하자면 엄 원장에 대한 무혐의 결정과 별개로 국기원의 비리의혹은 사실로 인정된 것이다.

    “허위 승단을 한 사람들의 진술이나 단증발급 업무 시스템에 비춰 김운용씨나 엄운규씨가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이 작아 보였다. (대상자 7명 중)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사람은 6명인데, 이들은 당시 국기원 실무자들과 접촉했을 뿐 김씨나 엄씨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부정 승단은 컴퓨터 조작을 통해 이뤄졌는데, 실제 고단자의 무력기록부에 이름과 사진, 생년월일 등을 바꿔 등록하는 수법이었다. 그런 방법으로 4, 5단이 8단으로 둔갑하는 등 가짜 고단자가 여럿 배출됐다.

    부정 승단자들은 검찰에서 국기원 실무자들에게 수십만원 또는 상품권을 주고 가짜 단증을 발급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이들이 돈을 건넸다는 세 사람이 공교롭게도 모두 고인(故人)이라는 점이다.

    태권도계의 한 관계자는 “뻔한 일 아니겠냐”며 관련자들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돈을 받았다는 세 명의 고인은 사건 당시 단증발급 업무와 상관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 수사를 했던 검찰 관계자도 “관련자들이 입을 맞춰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같은 의혹 제기에 공감을 나타내는 한편 “의심 가는 점은 있지만 다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 이상 밝혀내기가 힘들었다”고 고심한 흔적을 내비쳤다. 새로 수사에 착수한 특수2부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뭔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기원측은 단증 부정발급 비리를 검찰이 수사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조사해 밝혀낸 사실을 강조한다. 국기원 이근창 기획조정실장에 따르면 이 일이 불거진 것은 2002년 12월 대태협 기술심의위원회 김종오 부의장이 “위원들 중에 단증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국기원에 확인을 요청하면서다.

    국기원이 단증발급 전산기록을 확인한 결과 고단자 7명의 단증 발급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취임 직후 이 사건을 보고받은 엄운규 원장은 조사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허위 전산처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산부장이 사직했다. 조사위원회는 부정 승단자 7명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네 차례나 내용증명을 보냈는데도 당사자들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근거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부정 의혹에 흔들리는 국기(國技) 태권도

    김운용 체제에서 2인자였던 엄운규 국기원장. 태권도 비리 진정사건과 원장 선출 무효소송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사진·무토미디어 한혜진 기자

    그렇게 조사를 벌이는 와중에 현 지도부에 불만을 품은 김모 이사가 이 사실을 외부에 알렸고, 그것이 지난 1월 중순 개혁위원회라는 ‘정체불명’ 단체의 시위로 연결됐다는 게 이근창 실장의 설명이다. 반면 개혁위측에서는 국기원이 조사위원회를 형식적으로 구성해놓고 실제로는 조사를 자꾸 늦췄기 때문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위해 사건을 외부에 공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혁위측 시위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국기원은 지난 2월 관련자 전원의 승단 등록을 취소하고 원래의 단으로 낮췄다.

    이근창 실장은 부정 승단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다 망자(亡者)라는 점에 대해서는 “자기네끼리 입을 맞췄는지 모르지만 엄운규 원장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사건 이후 전산기록 조회를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보안조치를 강화했기 때문에 앞으로 전산기록 조작을 통한 단증 부정발급 비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엄운규 원장과는 무관한 일”

    개혁위측이 엄 원장에게 단증 부정발급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부원장을 지내면서 국기원 행정업무를 총괄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태권도계에서 단증은 실력과 더불어 명예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실무자한테 고작 수십만원 주고 가짜 단증을 받았다는 게 말이 되냐”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1999년 서울시 태권도협회(이하 서태협)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태권도 관장 두 사람이 협회 관계자에게 각각 1000만원을 주고 월단 특별심사에서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근창 실장은 “문제의 단증 부정발급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2002년에 엄 원장은 부원장직에서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지휘감독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진정서에 언급된 8대 의혹 중 단증 부정발급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 9개관 관장들이 해외 승단 등록비의 20%를 추천 수수료 명목으로 챙겨온 점이다. 국기원측 설명을 들어봐도 ‘20% 배분’ 관행에 법적인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근창 실장은 “관(館) 통합 당시의 지분을 인정해 원로 관장들에게 해외 단증 발급시 등록비의 20%를 해외보급 활동비 명목으로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9개 관이란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대한태권도협회의 전신)가 창립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태권도의 대표적인 9개 파를 일컫는다. 관 이름과 창시자 또는 초대 관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 지도관(이종우), 오도관(최홍희·작고), 청도관(엄운규), 무덕관(홍종수·작고), 정도관(이용우), 한무관(이교윤), 창무관(이남석·작고), 송무관(노병직·작고), 강덕원(이금홍).

    현재 태권도 단증 업무는 대태협과 국기원으로 이원화돼 있다. 즉 심사를 주관하는 곳은 대태협(시군구협회→시도협회→대태협)이고, 단증을 발급하는 기관은 국기원이다. 9개 관은 1978년 단증 신청 창구가 대태협으로 일원화되기 전까지 자체적으로 승단심사를 했다. 결국 ‘20% 수수료’에는 관 통합에 따른 9개 관의 ‘손실’을 보상하는 의미도 있는 셈이다.

    단증 심사비는 국기원과 대태협, 세계연맹의 주 수입원이다. 국내의 경우 국기원 40%(등록 수수료), 대태협 15%(심사추천비), 시도협회 45%(심사수수료)의 비율로 배분된다. 현재 1단 단증 심사비는 1만8700원이다.

    그런데 실제로 단증 발급 수수료를 가장 많이 챙기는 곳은 대태협 산하 각 시도협회다. 사정은 이렇다. 일선 체육관은 1단 심사를 보려는 수련생에게서 10만원 안팎을 받는다(‘안팎’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체육관은 시군구협회에 심사비로 3만5000원 안팎을 낸다. 시군구협회는 이 돈에서 2만5000원 안팎을 떼어 심사감독비 명목으로 시도협회로 보낸다.

    규정대로라면 시도협회는 그중 1만8700원을 대태협으로 보내고 대태협은 이를 국기원에 단증 신청비용으로 내야 한다. 그리고 국기원은 이 돈을 앞서 언급한 비율로 나눠 대태협과 시도협회에 내려 보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국기원·대태협·시도협회의 배분비율이 정해져 있다 보니 시도협회에서 아예 자기 몫을 뗀 다음 나머지 금액을 나눠 대태협과 국기원으로 올려 보내는 것이다.

    단증 등록비용(또는 심사비용)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말이 많다. 일정한 기준 없이 지역 협회마다 다르게 받는 까닭이다. 시도협회가 중간에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도 있다. 승단심사 불합격자의 경우 등록비를 돌려받는 것이 이치에 맞는데 시도협회가 이를 돌려주지 않는 것도 논란거리다. 시군구협회가 일선 체육관으로부터 받는 심사비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태협의 등록 수수료 취득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기원 이근창 기조실장은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심사비 산출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기원의 단증 수입은 연 70억원 안팎. 그중 25억원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입이다. 해외 단증의 경우 심사는 각국 태권도협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발급은 국기원이 한다.

    그런데 해외에서 단증을 발급받는 방법은 한 가지 더 있다. 협회를 거치지 않고 개인(개별 체육관)이 직접 국기원에 신청하는 방법이다. 원로 관장들이 챙긴다는 ‘20% 수수료’는 바로 이 개별 단증 신청과 관련된 것이다. 원로 관장들의 추천으로 해외 단증이 발급될 때마다 등록비 수입의 20%를 그들에게 떼어주는 것이다.

    원로 관장들의 ‘지분’

    태권도문화연구소 이경명 대표는 올초 ‘태권도신문’ 기고를 통해 ‘20% 수수료’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그 대상자가 모두 7명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 해외 등록수수료’라는 자료에도 7명이 수혜자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국기원 이근창 실장은 “현재 이종우, 이교윤, 이용우 세 원로 관장만 ‘20%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 수수료’ 제도를 없애는 대신 훈장 제도를 만들어 연금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실장에 따르면 국기원은 올해부터 해외 단증 등록비 배분 비율을 바꿨다. 지난해까지는 단체(각국 협회) 신청이든 개별 신청이든 국기원과 세계연맹이 4대 6으로 나눴다. 하지만 올해는 단체 신청의 경우 3대 7로, 개별 신청의 경우에는 7대 3의 비율로 나눴다. 이 실장은 단증 등록비를 나누는 것은 ‘배분’이 아니라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임기 남았는데, 사표 내면 안 되지”

    원장 선출 과정을 문제삼은 민사소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에 계류중이다. 논쟁의 핵심은 국기원 이사회가 의결 정족수, 의결제척 사유 등 관련 규정을 위반해 원장을 선출했다는 것이다. 엄 원장이 차기 원장으로 재선출된 것은 5월17일 열린 2차 이사회를 통해서였다.

    이례적으로 현 원장의 임기 만료 넉 달 전에 차기 원장을 선출한 이날 이사회는 비판론자들의 표적인 국기원 행정의 폐쇄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신동아’가 입수한 이사회 회의록(J속기사무소)에 따르면 원장이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기원 이사는 모두 17명이다. 그중 13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의 안건은 임원 선임 및 해임이었다. 임원 선임 안건은 차기 원장 선출 및 이사 선임 방식에 대한 것이고, 임원 해임 안건은 각각 법인카드 과다사용과 부정선거 개입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철오, 이승완 두 이사에 대한 해임 여부를 다루는 것이었다.

    이사들은 이날 차기 원장 선출과 이사 선임 문제를 부의(附議)안건으로 상정하기 전에 회의진행 절차를 놓고 가볍게 실랑이를 벌였다. 회의록에 적힌 주요 발언을 원문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자는 이근창 기조실장이다.

    ‘이사 : 송봉섭’ 현 원장님 입장이 직접 의사를 진행하느냐, 이 문제만큼은 본인이 관계돼 있기 때문에 송상근 부원장이 의사진행을 하면서 안건 처리를 해줬으면 한다는 걸 제가 말씀드린 겁니다.‘이사(고문) : 이종우’ 그러니까 격식 찾지 마시고 앉혀놓고 원장으로 추대합시다. 그러면 끝나는 건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해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하지 말고 엄운규 원장을 차기 원장으로 추대합니다, 그러면 간단한 거 아니에요. 같은 집안식구끼리 무슨 격식을 찾고 그래요.‘의장 : 원장 엄운규’ 절차상….‘이사(고문) : 이종우’ 절차는 무슨 절차야. 아니 임원을 지금 그렇게 해서 (선출)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까지) 그렇게 다 했는데.-중략-

    ‘임시의장 : 부원장 송상근’ 부의안건을 상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안건은 이사장(원장) 선출과 이사 선임입니다.‘사회’ 현 이사장 임기는 전임 이사장의 잔여임기 2005년 9월23일에 만료되며, 11대 국기원 이사장을 선출한다는 것이 운영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됐습니다.‘이사 : 김철오’ 지금 이 회의 전에 누가 의장에 출마했는지, 또 엄 원장께서 사퇴하셨는지, 사퇴서가 접수됐는지 이것부터 먼저 확인해주기 바랍니다.-중략-

    ‘이사 : 안종웅’ 임기가 남았는데 사표를 내면 안 되지.

    -중략-

    ‘이사 : 조영기’ 아니, 차기 (원장 선출) 문제가 어떻게 법적인 문제가 됩니까. 편의상 하는 거예요. 우리 국기원의 편의상 먼저 (선출)하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걸 아까 이미….‘이사 : 이금홍’ 미리 하는 거야, 미리.-중략-

    ‘이사 : 김철오’ 먼저 (현 원장의) 사퇴 결의가 돼야 (차기) 원장을 선출하는 겁니다. 두 번째 문제는 원장으로 새로 출마할 분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선거법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합니다. 선거 시기, 방법, 후보자 등록 이런 절차 없이 이 자리에서 앉아서 다 한다?‘사회’ 정관에 보면 이사회에서, 이사 중에서 뽑는다고 돼 있습니다.-중략-

    ‘이사 : 오광웅’ 시기적으로 좀 빠르지만, 전임 이사장이신 엄운규 이사장님을 재선출하되 이사 보선, 재임 문제는 전임 이사장에게 위임하는 것을 정식 동의합니다.

    ‘이사 : 송봉섭’ 재청합니다.‘이사 : 안종웅’ 삼청합니다.‘임시의장 : 부원장 송상근’ 다른 의견 있습니까.‘이사 : 김철오’ 개의안(改議案)이 있습니다. 회의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앞으로 욕을 많이 먹을 겁니다. 나중에 법적인 문제까지 갈 수 있습니다. 행정법 절차에도 맞지 않습니다.‘임시의장 : 부원장 송상근’ 지금 개의안에 동의나 재청이나 삼청 있습니까.‘이사 : 송봉섭’ 없습니다.‘임시의장 : 부원장 송상근’ 없으면 오 이사님이 동의한 내용대로 결정됐음을 선포하겠습니다.(의사봉 3타!)

    회의록에 나타나 있듯 이날 이사회의 원장 선출방식은 정관 16조 ‘의결 정족수 규정’(이사회는 재적 이사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김철오 이사가 이사회결의취소 소송(7월15일)을 낸 다음 이를 변경해 이사회 원인무효소송(9월5일)을 내자 국기원은 9월22일 제4차 이사회를 열어 2차 이사회에서 결의한 이사장 및 이사 선출 내용에 대해 표결로 추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참석 이사 14명이 거수투표를 해 13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원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날 이사회는 또 하나 중대한 ‘실책’을 범했다. 정관 17조 ‘의결제척 사유’에 따르면 ‘임원의 선임 및 해임에 있어 자신에 관한 사항을 의결할 때’는 해당 임원은 그 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엄운규 원장은 자신의 선출에 관한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에 대해 이근창 기조실장은 “실수”라고 해명했다. 원장 선출 안건이 상정된 후 임시의장을 맡은 송상근 부원장이 “찬성하는 사람 손들라”고 하자 엄 원장이 ‘얼결에’ 다른 이사들과 함께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원장과 이사 선출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임원 선출 방식을 개선하려면 정관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정관을 바꾸려면 이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결국 현 이사진이 물러나지 않고서는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비리 인사들의 출몰

    김철오 이사는 “엄 원장의 연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적법절차를 지키면 소(訴)를 취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동네 이장 뽑는 것도 아니고, 세계 태권도인이 주시하는 국기원장 선거를 그렇게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해도 되는지…. 또 추인이라는 것은 일단 행해진 불완전한 법률행위를 뒤에 보충해 완전한 효력을 갖게 하는 의사표시다. 5월17일자 이사회가 무효인데 어떻게 추인한단 말인가.”

    김철오 이사는 법인카드 사용처(4000만원)에 대한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돼 지난 1월 총무이사에서 물러났는데, 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다. 그와 함께 소송을 낸 이승완씨는 2003년 10월 대태협 회장 선거 과정에서 폭력배를 동원해 구천서 전 의원을 회장으로 당선시킨 혐의(업무방해)로 구속됐다. 국기원은 7월12일 3차 이사회를 열어 이씨를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이씨측은 원장 선출과 마찬가지로 과반수 의결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며 반발하고 있다. 2년형을 선고받은 이씨는 10월13일 만기출소했다.

    개혁파 인사들의 목표는 엄운규 원장과 그 ‘동지’들의 퇴진이다. ‘김운용 왕국’에서 2인자로 군림한 엄 원장은 이종우 고문과 더불어 막후 실세로 통했다. 서태협 회장과 대태협 전무이사를 역임했고, 부원장 시절이던 2001년 11월 개혁파의 압박에 김운용씨가 대태협 회장과 국기원장직에서 잠시 물러날 때는 동반퇴진하기도 했다.

    송봉섭 부원장과 한용석 전 부원장은 비리 전력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1999년 검찰은 서태협에 대해 승부조작, 뇌물수수, 공금횡령 혐의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당시 서태협 회장이던 송 부원장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서태협 회장에 앞서 서태협 전무를 지냈는데 그때 회장이 바로 엄운규 원장이었다. 한용석 전 부원장은 2003년 12월 대태협 부정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7월 엄 원장은 송봉섭씨를 부원장에 임명했다. 한씨는 지난 9월 임기만료로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부원장직도 사임했다.

    오용진씨는 “지난 30년 동안 태권도계에는 법이 없었다”며 “김운용 체제에서 2인자였던 엄 원장은 이제 2선으로 물러나 후진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엄 원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 중견 태권도 사범은 “김철오, 이승완씨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며 “진정한 태권도 개혁을 이루려면 구시대 인물이 다 물러나야 한다”고 양쪽을 싸잡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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