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졌던 탄저균이 ‘문명의 나라’ 미국에 다시 나타났다. 생화학테러 가능성에 미국인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빈자(貧者)의 핵무기’라 불리는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는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안겨줄까.
미국의 공격이 이뤄질 것에 대비해 아프간 국민과 전세계의 이슬람 신도들에게 지하드(聖戰)에 나설 것을 촉구해왔던 탈레반 정권과 빈 라덴은 미국의 공격 개시 직후 대미 보복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탈레반의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는 최근 세계 주요 통신사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이 빈 라덴을 죽여도 우리들은 대미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보복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빈 라덴은 전세계 50여 개 국가에 걸쳐 5000여 명 이상이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조직원과 추종자들을 동원해 무차별적이고 대대적인 연쇄 테러공격을 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리적인 군사력으로 미국에 대항할 수 없는 아프간과 빈 라덴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테러리즘뿐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판단이다.
만약 빈 라덴이 보복 테러를 자행한다면, 그 공격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미국 정부와 많은 전문가들은 생화학 무기를 이용한 테러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생화학 무기를 이용한 무차별적 공격을 통해 뉴욕과 워싱턴 사태에 버금가는 희생자를 발생케 하여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미국의 보복 전쟁에 대한 반전 분위기를 조성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실로 나타난 생화학 테러 공포
최근 미 플로리다주에서 같은 직장동료 2명이 생물무기로 사용되는 탄저균에 잇달아 감염된 사건이 발생하여 미 정부가 생화학 테러의 가능성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플로리다주에서 처음 발생한 탄저균 감염사례는 이후 뉴욕과 네바다주에서도 발생했으며 미국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미 보건당국은 10월8일 한 주간지 발행업체의 직원인 에르네스토 블랑코가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받던 중에 탄저병으로 판명됐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앞서 5일에는 같은 회사 직원인 보브 스티븐스가 탄저병으로 사망했다. 아메리칸 미디어사가 발행하는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더 선’의 사진부장이었던 그의 컴퓨터 키보드에선 탄저병 박테리아가 검출됐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이 회사 건물 전체에 대한 출입을 봉쇄하는 한편 직원 400여 명 전원을 상대로 탄저병 감염 확인 검사를 실시했다.
지난 12일에는 뉴욕의 NBC방송국 본사의 여직원 한 명이 탄저균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졌고, 뒤이어 네바다주 리노에 있는 한 기업체에 배달된 우편물에서 양성으로 추정되는 탄저균이 발견되면서 이 일련의 사건들이 단순한 범죄가 아닌 생화학테러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같은날 배달된 뉴욕타임스와 NBC방송의 저명앵커인 톰 브로코 앞으로 정체불명의 분말이 묻은 우편물이 배달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테러로 의심되는 사건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생화학테러에 대한 우려는 서서히 공포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탄저병에 감염된 환자가 사망한 것은 1976년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탄저병 박테리아는 소나 양 등 동물을 통해 인체에 감염될 수도 있으나 누군가 고의로 병균을 살포하지 않는 한 같은 직장 직원이 잇달아 이 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스티븐스씨가 사망했을 때만 해도 탄저병 발생을 테러리즘과는 무관한 별개의 사건으로 간주했으나 추가 감염자가 발생함에 따라 세균살포에 의한 테러리즘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9월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자살테러를 감행한 범인 중 무함마드 아타는 플로리다주에서 거주하는 동안 생화학 테러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약살포 비행기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테러리즘(Old Terrorism)은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 의사소통 행위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뉴 테러리즘(New Terrorism)은 전쟁의 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쟁에서는 적의 궤멸이 목적이므로 승리 이외에 요구조건이 있을 수 없으며, 상대방에게 최대의 타격을 입히는 것이 최종 목표다. 뉴 테러리즘은 대량살상 자체가 목표이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어마어마한 인명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지난 9월11일 대참사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도덕적 한계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보이지 않는 무기
생화학무기의 위협은 치명적 기능 외에 사용 범위와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데에 있다. 폭탄은 눈에 보이지만 생화학무기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독면을 아예 쓰고 살지 않는 한 생화학 테러를 미연에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누군가가 감염된 다음에야 무기가 사용됐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린 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생물무기를 이용한 테러는 공상과학소설이나 007시리즈 영화에나 등장했으나 현실에서는 도덕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일축되곤 했다.
그러면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생화학무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화학무기는 크게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로 나눌 수 있다.
생물무기는 세균무기의 개념이 확대된 것으로, 세균·바이러스·리케차(Rick ettsia) 등의 미생물을 사용하여 사람·가축·식물을 살상 또는 무능화시키는 무기를 말한다. 폭탄·포탄 등에 넣어서 살포하거나 음식물에 삽입하는 방법으로 공격한다. 대량살육의 가능성이 많아 비인도적이라는 이유에서 국제법으로 그 사용이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75년 3월 29일에 발효한 국제조약에서는 개발·생산·저장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 보복사용의 가능성과 방어방법의 연구를 구실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날 개발된 생물학적 작용제는 수십 종에 달하며, 대인용으로 사용되는 세균에는 장티푸스·콜레라·페스트·디프테리아 등의 균, 바이러스에는 뇌염·유행성 독감·천연두·황열병(黃熱病)의 병원체 등이 있다. 배양시 살균제를 소량 투입하여 균의 저항력을 증가시켜 보충 백신으로 죽지 않는 강력한 균을 생산한다.
생물무기의 살포 방법에는 호흡기 기관으로 침투될 수 있도록 폭발성 소형폭탄에 균을 주입하여 에어로졸(Aerosol) 상태로 공기 중에 살포하거나, 곤충 매개물을 소형 폭탄에 충전하여 항공기로 목적 지역에 투하하거나, 사람이 직접 잠입하여 병균을 살포하는 방법 등이 있다.
생물무기는 테러 공격 대상인 사람을 무력화하는 반면, 시설에는 비(非)파괴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특징과 병원균의 경우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다른 테러무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생물무기는 은밀성과 잠재성이 매우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에어로졸 상태로 살포할 경우 무미·무취로 육안 식별이 불가능하며,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균의 활성화 기간이 지나면 2차적인 전염 확산이 가능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장기간의 피해가 나타나게 된다. 특히, 일부 균의 경우 수명의 한계가 없어 더 위협적이다.
탄저균의 경우 잠복기간이 1∼7일로 일단 전염되면 치사율이 8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생물무기의 파괴력은 지리적 조건, 인구밀도, 온도, 풍속 등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탄저균 10㎏이 살포된다면 서울 인구 절반 정도가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연구 결과도 있다.
생물무기는 제약산업 또는 맥주 제조 공장과 같은 시설만 있어도 은밀하게 생산이 가능하고, 대량생산이 용이하며, 제조 비용이 저렴하여 ‘빈자의 원자폭탄’으로 불리고 있다. 1톤의 핵폭탄을 생산하는데 대략 100만달러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생물무기는 1만달러 이하로도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위력 면에서는 같은 무게의 핵무기의 420배에 달한다.
생물무기를 이용한 전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고대 전쟁시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적의 성벽 위로 던져 병을 옮기게 하였으며, 중세에는 천연두 환자가 사용하던 수건과 담요를 적대국에 제공하여 많은 수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하도록 한 적도 있다. 그후 전염병의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생물학무기로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인위적으로 많은 생물학 작용제를 생산하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근세 들어서도 생물무기 사용 사례는 많다. 1754∼1763년 영·불 전쟁시 북미 대륙에서 영국군이 인디언에게 오염된 모포를 제공하여 인디언 부족에 천연두를 퍼뜨렸으며, 제1차 대전 중에는 독일군이 유럽 및 미국의 가축에 비저균을 접종해 유럽전역에 비저균이 만연되기도 했다. 제2차 대전 중에는 독일, 러시아, 영국, 미국에서 생물무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고, 1931∼1945년 일본은 만주 731부대를 중심으로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실시해 페스트, 장티푸스, 콜레라, 비저균 등의 세균을 대량생산한 바 있다. 1979년 구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황우(Yellow Rain)를 살포하였다. 또한 구소련은 베트남의 화학전 부대에 각종 곰팡이 독소, 세균을 공급하여 라오스, 캄보디아에 120회 이상 살포하여 수천명을 죽였다.
생물무기 위협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물무기가 테러에 이미 이용된 바 있다는 것이다. 구소련의 경우 스탈린이 유고의 티토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소련의 폭력조직을 이용, 티토가 참석하는 리셉션장에 페스트 박테리아 살포를 계획한 바 있다. 1978년 9월 영국에 망명중인 불가리아의 반체제 인사 조르지 마코프를 살해하기 위해 불가리아 비밀경찰이 KGB가 제공한 리신(Ricin)이라는 독소를 특수 제작한 우산대에 장착하여 공격했는데 저격을 받은 마코프는 4일 만에 런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1차 대전에서 화학무기 실험
생물무기는 연구목적을 위한 합법적인 사용과 테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과의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 확산 방지와 규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특히,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가 중동 및 동남아 지역에 치중되고 있다는 것이 우려할 만한 점이다. 생물무기를 이용하는 것이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국제협약에 따라 금지되어 있지만, 제조과정이 용이하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이라크, 시리아, 북한 등이 생물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리비아, 이란, 인도 이집트, 이스라엘, 베트남, 파키스탄, 라오스 등 15개 국가가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무기란 사람을 살상하거나 초목을 말려 죽이고, 또는 사물을 태우는 소이효과(燒夷效果)나 발연효과(發煙效果)를 내는 모든 화학약품을 활용한 무기를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는 화염방사제·연막·소이제·독가스·발광발색제(發光發色劑)·조명용 약품 등 화학반응을 직접 전투에 이용하는 모든 군용기재를 포함하나, 좁은 의미로는 애덤자이트·이페리트·포스겐 등과 같은 독가스만을 가리킨다. 유독 화학제에는 신경제, 교란제, 혈액제, 질식제 등이 있다.
전쟁의 수단으로서 화학물질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아프리카의 ‘피그미’족과 아마존강 유역의 원시인이 일종의 화학무기인 독창과 독화살을 사용하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군이 아테네군 공격시 송진과 유황을 태워 발생하는 연기를 적진으로 날려보내 아테네군을 질식시키기도 했다. 또 프랑스군의 알제리 정벌시 펠리시어 장군이 레무기야 동굴 안에 숨어 있는 아프리카 토족에게 생나무를 태운 연기를 들여보내 질식시켰다. 이와 같이 고대부터 19세기까지는 독성물질을 전쟁에 사용하거나 물질을 태워 발생하는 질식성 연기를 공격무기로 사용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현대적 의미의 화학무기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이다. 화학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한 악명높은 군대는 독일군이다.
1915년 4월22일 독일군은 벨기에 국경의 이쁠전투에서 염소가스를 사용했는데 적군 사상자만 1만5000명에 이르렀다. 또 1916년 동부전선에서는 독일군의 질식가스 공격으로 소련군 500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17년, 독일군은 영국군을 수포가스로 공격해 1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18년에는 미국이 수포 작용제 루이사이트를 개발해 제한적으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제1차 대전 중 200여 회의 화학무기가 사용됐으며 이로 인한 피해자만도 무려 130만명(사망 9만1200명)에 이른다.
14개국이 생화학무기 보유
1차 대전에서 화학무기가 가져온 참상을 경험한 세계 각국은 1925년 독성물질과 기타 가스, 세균전 등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 간헐적이나마 화학무기는 꾸준히 모습을 나타냈고 군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1935∼1936년에 이탈리아가 독립전쟁시 화학무기를 사용했고, 1937∼1942년, 중·일 전쟁시 일본은 중국군에게 수포가스를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화학무기가 사용된 예는 많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구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회교 반군을 향해 무려 47회의 화학공격을 벌여 3000여 명이 사망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1980년부터 8년간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이란군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5만여 명이 사망했다.
공격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진 화학무기는 치명적인 것과 일시적, 지속적 혹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유해한 효과를 나타내는 비(非)치명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형이 서로 명확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작용의 치명적 여부는 투입된 화학무기의 양, 작용기간, 그리고 공격을 받은 사람의 신체 상태에 달려 있다.
치명적 독소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신체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신경계통에 손상을 주는 신경작용제, 혈액을 오염시키는 혈액작용제, 질식현상을 일으키는 폐작용제 혹은 기관지작용제, 그리고 피부에 수포를 발생시키는 피부작용제 등이 그것이다.
간접적 화학무기는 인간 생존의 기반이 되는 자연환경의 변형을 야기한다. 인간의 식량이 되는 곡식을 파괴하는 제초제와 같이 식물계의 파괴에 초점을 두는 화학무기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해를 주는 것이 아니지만 곡식이나 야채의 훼손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류에게 피해를 입힌다.
고엽제는 화학적 잡초 제거제 가운데 하나다. 고엽제는 식물의 신진대사에 영향을 끼쳐 식물을 파괴한다. 토양이 민감한 열대지역에서 화학적으로 잎을 말라 떨어뜨리게 하거나 이미 반폐허가 된 지역에서 식물들을 파괴하게 되면 베트남전쟁이 보여주듯이 광범위한 범위에서의 토양침식을 유발하고 생태계에 장기간 손상을 일으키게 된다.
현재 미국, 소련, 이라크만이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이란 등을 포함하여 최소한 14개국이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리비아는 명백히 화학무기의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란은 자국이 화학무기의 보유를 원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집트와 시리아 역시 유사시에 화학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국가들이지만, 실제 생산이 이루어졌는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터키와 걸프만의 아랍국가들은 그들의 화학산업의 수준을 고려해 볼 때 최소한 몇 가지의 화학무기를 생산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생화학무기에 의한 테러 위협은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속의 이야기로 등장한 것은 1995년 일본의 옴 진리교에 의해 자행된 사린가스 살포사건이다. 도쿄 중심부의 지하철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하고 55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옴 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자신의 교단에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공격과 탈퇴하는 신자들을 납치 및 살해했다는 혐의에 대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공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관련자들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1993년에 도쿄 거리에 탄저균을 살포한 사실을 자백했으며, 보트리늄 독소를 생산하는 박테리아가 증거물로 확보되어 생물무기의 제조에도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옴 진리교 사건은 테러리스트 단체가 화학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옴 진리교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단체들도 화학무기로 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실험실에서 작용제를 훔칠 수도 있고, 상업적으로 독소를 사들일 수도 있다. 또 군(軍)이 보유한 무기를 탈취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빈 라덴처럼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경우 암시장이나 테러 지원국으로부터 생화학무기를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획득 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바는 없다.
생화학무기는 대량살상 무기이다. 그것은 공격 목표물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할 것이다. 그 피해는 좁은 의미에서의 공격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화학무기가 사용된다면 희생자는 비단 인간에 머물지 않고, 공격 대상국은 물론 인접국의 자연환경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전시는 물론 평화시에도 그 실험, 보유에 의한 위험이 만만치 않다. 생화학무기의 존재 자체가 바로 생화학 전쟁인 것이다. 따라서 철저한 통제가 필요한 무기이다.
50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사건 발생 이후 안보 및 공중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낼 수도 있는 생화학무기가 보복 테러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한 보복 테러 자행을 선언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이다가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보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영국 해외정보국(MI6)은 이번 미국 테러공격의 배후에 있는 테러조직들이 이미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도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빈 라덴이 이라크 등으로부터 생물무기를 사들이거나 구소련 과학자들을 고용하여 생화학무기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공멸로 끝나는 생화학테러 시나리오
이들이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모두 함께 죽자’는 막무가내식의 공격을 자행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싫다. ‘빈자의 원자폭탄’이라고도 불리는 생화학무기는 소규모 시설을 통해서 값싸고 쉽게 제조할 수 있어 제3세계 국가로까지 널리 확산될 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 사린가스 공격에서 경험한 것처럼 테러리스트 단체에 의해서도 무분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인명 살상용 독극물과 세균무기 등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에는 염소, 암모니아 등이 대량 생산·유통되고 있는 등 생화학 테러 발생여건은 과거보다 훨씬 개방돼있는 상태다.
따라서 의도적 테러에 의한 재난 발생 가능성은 전시·평시를 불문하고 상존하고 있다. 생화학무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추적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생화학무기를 사용한 공격과 대량살상 무기의 위협에 대처할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워싱턴 등 3개 지역에 배치를 했으며, 추가적으로 7개 지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아울러 미국은 생화학무기에 의한 테러리즘 위협에 따라 예산을 급히 추가 배정하고, 탐지 장비를 보완하는 등 일련의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화학 테러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대응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화생방 방어사령부가 있지만 조직체계상의 문제와 대응 장비의 절대적 부족으로 신속하고 효과적인 임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생물무기 탐지 장비는 한 대도 없으며, 백신도 전무한 한심한 실정이다.
아울러 화생방 관련 임무가 각 부처 및 기관에 분산되어 있어 유사시 위기관리상의 문제가 노출될 우려가 매우 높다. 지금부터라도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이루어져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대거 보충하고 효과적인 위기관리를 위해 통합적인 기구 설립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테러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빈틈이 있는 곳에 테러리스트가 있었으며, 변화하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양상을 미리 예측하여 체계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주변을 맴도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