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식량무기론은 허구다

  •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yykim@chonnam.ac.kr

    입력2005-03-11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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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곡인 쌀만은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식량안보론은 설득력이 약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쌀뿐만 아니라 원유를 비롯한 모든 물품이 무기가 된다. 정부의 쌀값 지지정책은 농민들로 하여금 경쟁력 있는 분야로의 轉職을 제한해 오히려 가난을 대물림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경쟁력을 높일 때까지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경쟁력은 문을 열어야 높아진다.
    금년 쌀농사는 대풍이다. 초여름 가뭄과 일부 지방의 장마 피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평년작을 웃돌고 있다. 그렇지만 쌀농가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쌀농사는 풍년인데 쌀농가의 소득은 별로 증가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쌀 생산증가로 쌀 재고량이 늘어가기 때문에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압박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쌀농가는 쌀농가대로 소득보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지만 양자를 다 충족시킬 수 있는 별다른 묘책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쌀은 가격탄력성과 소득탄력성이 낮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을 때 쌀 증산정책은 주곡(主穀)을 자급자족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쌀 풍작은 정부 재정을 압박하고, 쌀농가의 소득에도 별다르게 기여하지 못한다. 물론 부족한 것보다는 남아도는 편이 더 낫다. 그러나 이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꼭 낫다고만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쌀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쌀이라는 상품의 특성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쌀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과 농산물에 근거한 농가소득 문제는 모두 농산물에 대한 수요 특성에서 연유한다. 첫째, 쌀을 비롯한 대부분의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가격 비(非)탄력적이다. 즉, 쌀 수요량은 가격변화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쌀 가격이 10% 내린다면, 쌀 수요량은 10% 미만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 쌀값이 2배 오를 경우 쌀 수요량이 절반 미만으로 줄어들지도 않는다. 쌀값이 2배로 올랐다고 해서 사람들이 하루 세끼 먹던 밥을 한끼나 한끼 반으로 줄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요가 가격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쌀 생산이 늘어나 가격이 내려가면 쌀농가의 총수입은 오히려 감소한다. 가격 하락으로 인한 총수입 감소효과가 수요량 증가에 따른 총수입 증가효과보다 더 크기 때문에 농가의 총수입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영농기술이 발달하고 기후 조건이 좋아 풍작이 되면, 쌀 가격이 내려감과 동시에 쌀농가의 총수입도 감소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 자란 벼를 갈아엎는 이유

    동일한 문제를 무 경작 농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도 풍작이면 경작 농가가 다 자란 무를 수확하지 않고 갈아 엎는다는 보도가 나올 때가 있다. 이러한 행동은 무 가격이 하락한 데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무 공급을 줄여 가격하락을 방지해, 농가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막아보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쌀 수요에 대한 소득탄력성도 낮다. 즉, 소득이 10% 증가했을 때 쌀에 대한 수요는 10% 미만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득이 예전보다 10% 더 증가했다고 해서 쌀을 예전보다 10% 더 먹지는 않는다.

    소득이 증가하면 음식 소비패턴이 변화해 기존 쌀의 소비는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같은 쌀이더라도 저공해 쌀이나 품질이 좋은 쌀, 특수 기능성 쌀을 선호할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0년에는 농가와 비농가의 1인당 쌀 소비량이 각각 160.5kg과 112.1kg이었으나, 2000년에는 각각 139.9kg과 89.2kg으로 줄어들었다. 은 연도별 1인당 쌀 소비량을 나타낸 것이다. 전가구와 비농가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대 초반까지 증가하다가 그 이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1970년 말경에 약간 증가하였다가 그후 다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소득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소득증가와 함께 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나 소득수준이 더 높아지면 오히려 쌀 수요가 감소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소득에서는 쌀은 소득증가에 따라 그 수요가 증가하는 정상재(正常財)가 아니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1970년대 말에 쌀 소비가 증가한 현상은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소득 감소가 그 원인의 하나라고 판단된다.

    식량안보론 재고해야

    한편 농가의 쌀 소비량은 전반적으로 전가구나 비농가에 비해 많으나, 역시 1990년까지 증가하다가 그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비농가에 비해 농가의 쌀 소비량이 많은 것은 쌀이 자가(自家) 생산품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쌀문제의 원천은 영농방법 개선 등으로 쌀 공급은 증가하는 반면에 소비증가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가격 지지(支持) 정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쌀의 시장가격은 내려가고 쌀농가 소득은 감소하게 된다. 물론 쌀을 비롯한 농산물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얼마전 중국과의 무역마찰로 마늘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다. 그러나 여타 농산물보다 쌀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되는 이유는, 쌀은 한국민의 주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은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국민정서가 형성돼 있다. 이에 따라 정치적인 이유로 쌀농가에 대한 소득보조 정책 등이 행해져 왔다.

    주곡만은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논리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식량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깔려 있다. 일반 상품과 같이 외국에서 수입할 수도 있지만 국제 쌀시장을 독점하거나 국제관계가 악화되면, 쌀 가격이 올라가고 식량이 무기가 되는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우려의 기본이다.

    그러나 소설가이자 경제평론가인 복거일씨는 일찍이 식량은 무기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 바 있다. 첫째, 쌀을 비롯한 국제 농산물시장은 경쟁적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국가가 독과점의 위치를 점하기 어렵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정에서 농업부문의 타결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실 각국이 자국의 잉여농산물 처리를 유리하게 하려는 기도 때문이지 식량안보 때문은 아니다. 이는 국제 농산물시장이 경쟁적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둘째, 잉여농산물 생산국은 대부분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가 식량을 무기화하면, 그 나라는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음과 동시에 정권유지가 어렵게 된다. 셋째, 공업은 그 기반이 파괴되었을 때 다시 건설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농업은 훨씬 빨리 복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놓고보면, 주곡인 쌀만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혹자는 전쟁시에 식량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쟁시에 적국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한 수단이 무기가 되므로 굳이 식량 무기화만 논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적국에 보급품을 제공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최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도 유엔을 통해 구호식량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난민들을 위한 인도적 차원이고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강대국의 선의이자 전쟁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화정책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적대시한다면 식량을 비롯한 모든 물품의 반입금지 조치를 취할 것이다.

    쌀값 지지정책은 쌀농가의 소득보전을 위한 보조금 정책이다. 그래서 쌀이라는 상품만은 특별히 국회에서 수매가격을 결정하는데, 아마도 상품가격을 국회에서 결정하는 예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쌀 가격을 지지한다는 말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으로는 쌀을 파는 농가가 얻을 수 있는 소득이 너무 적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가격보다 높게 가격을 책정하고 유통과정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쌀농가라는 특정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에 정부가 개입해, 쌀 가격을 높게 고정시킴으로써 소득재분배를 하는 행위다.

    그러나 정부가 지지해주는 가격은 시장가격보다 높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의 쌀 수요량은(비록 소량일지라도) 줄어든다. 반면에 쌀 농가의 공급량은 늘어나므로 초과공급량만큼의 쌀을 정부나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예를 들어 종합미곡처리장)이 수매해야 한다. 이렇게 사들인 쌀을 수매하고 보관하기 위해 정부는 따로 예산을 편성한다.

    현재 한국의 쌀값은 국제가격보다 3배 정도 높다. 쌀농가는 쌀 생산에 대한 유인(誘因)을 제공받아 생산을 늘리고 있는데, 국내에서 쌀 소비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남는 쌀을 수출하려고 하니 국제 가격보다 높아 수출할 방법도 없다. 이러하니 더욱 재고가 쌓이게 되고 정부는 더 많은 보관 비용을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쌀 가격지지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은 쌀 농가다. 반면 손해를 보는 집단은 쌀 소비 가계와 일반 조세 납부자다.

    이런 구조에서 소득은 일반 쌀 소비자와 조세 납부자로부터 쌀 농가로 재분배된다. 결국 쌀 가격지지 정책이 오늘의 쌀문제를 일으킨 중요한 원인인 것이다.

    가격지지 정책의 문제점

    쌀문제 해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격지지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쌀농가가 가격지지 정책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가소비 이외에 정부 수매용으로 내놓을 수 있는 쌀의 양이 상당한 정도가 되어야 한다.



    는 경작 면적별 농가 분포를 정리한 것인데, 이 표를 살펴보면 한국의 쌀 농가는 대부분 경지면적이 작은 영세농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0.5ha(1ha는 약 3000평) 미만을 경작하고 있는 농가가 1990년과 1999년에 각각 40.4%와 46%였고, 1ha 미만을 경작하는 농가가 각각 74.3%와 75.7%에 달한다.

    이 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0.3ha 미만을 경작하는 쌀농가 비율은 연차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0.7∼1.5 ha를 경작하는 농가 비율은 감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2.0 ha 이상을 경작하는 농가 비율은 약간 증가하고 있으며, 기타 경작 면적을 가진 농가의 비율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소규모 경작면적을 가진 농가 비율이 증가하고, 중규모 경작면적을 가진 농가 비율은 감소하고 있으며 대규모 경작면적을 가진 농가 비율은 약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쌀 생산 농가수는 연차적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쌀 가격지지 정책의 실질적 효과를 계산해 보기로 하자. 1ha에서 얻어지는 쌀 소출량은 약 5t인데, 이를 80kg 쌀 한 가마로 계산하면 62.5가마다(추곡으로 수매하는 벼 110kg은 쌀 80kg에 해당). 2000년의 추곡 수매가는 한 가마 당 약 16만원이었다. 논 0.5ha에서 쌀 31가마를 얻을 수 있는데, 이것으로 인한 총수입 금액은 496만원에 불과하다. 1ha를 경작하는 농가는 약 1000만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 쌀농사를 짓는 데 들어간 자기 인건비와 비료값, 품삯 등을 제하면 순 이윤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영세 쌀 농가의 평균 경작면적이 0.5ha라고 하면, 이 농가에서 나오는 쌀은 2500kg(약 31.3가마)이다. 여기에서 4인 가족 농가가 연간 소비하는 쌀 560kg(139.9kg × 4인 = 559.6kg)을 빼고 나면 1940kg이 남는다. 이는 약 24가마에 해당한다.

    국내 쌀값이 국제 쌀값의 3배인 것은 쌀 한 가마의 가격 16만원 중에서 3분의 2인 10만원이 보조금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렇게 따지면 0.5ha의 논을 가진 농가에 돌아가는 총 보조금은 240만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쌀을 생산하는 농가의 75%가 0.5ha의 아주 작은 경작면적을 가졌다. 이렇게 작은 경작면적을 가진 농가를 가격지지 정책을 펼쳐가며 계속 보호해야 하는가? 정부의 가격지지 정책에 대해서 의문의 여지가 많다.

    가난 대물림과 부채탕감

    정부가 보조금이라는 ‘유인’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영세 쌀농가로 하여금 쌀을 계속 생산하게 한 것은, 어찌 보면 쌀은 주곡이기 때문에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영세 쌀농가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준 측면이 없지 않다.

    쌀이 특수상품이 아닌 일반 상품으로 취급되었더라면 직업전환이 가능한 나이의 농민이 채산성이 없는 쌀농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만큼 농촌의 구조조정은 빨라졌을 것이고, 국가 전체의 자원배분도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했을 경우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이 용이하지 않은 고령 농민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가격지지 정책이 결국은 소규모 영세 농민들의 직업전환 의지를 무디게 한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가계유지도 어려운 영세농민들은 소득증대를 위한 다른 영농사업도 제대로 펼치지 못해 결국 농가부채라는 또다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협을 통해 만기가 돌아오면 정책자금과 영농자금을 저리로 다시 융자해주고, 이때 발생하는 금리 차이를 정부가 보조하는 방식으로 부채를 탕감해주고 있다.

    이러한 부채탕감은 열심히 일하여 이미 부채를 상환한 농가의 소득을 그렇지 않은 농가에 재분배해주는 것이며, 일반 납세자의 돈을 농민에게 재분배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결국 농업정책이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는 한, 쌀문제를 비롯한 농가 부채탕감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다.

    최근 쌀문제, 특히 쌀 재고량 증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정부 정책은, 농정 당국자들도 인정하다시피 그야말로 고육책이다. 정부는 정부 수매 예정량의 일부를 농협이나 민간이 운영하는 종합미곡처리장이 인수하는 계획을 내놓고 있으나,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또 가격지지 정책은 쌀농가에 대한 보조금 정책인데, 2004년부터 쌀시장이 추가적으로 개방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 정부가 종래의 농업보조금 정책을 폐지하고 시장원리에 입각한 농정을 펼치겠다고 천명한 것은, 농업도 변화하는 국내외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쌀문제에 대해 한국이 가야 할 길도 일본과 크게 다를 수 없다. 국내외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분업에 입각해 비교우위 산업에 집중하고, 비교열위 산업 제품은 수입해서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경쟁력은 문을 열어야 올라간다

    그러나 자유무역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농산물 시장개방은 적지않은 마찰을 빚고 있다. 중상주의 시대처럼 자유무역은 마치 국부를 유출하는 원흉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간단한 원리지만 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향후 쌀을 비롯한 농산물 교역에 보탬이 될 것이다.

    국내 경제주체 간의 교환과 마찬가지로 국가간에도 다른 국가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한 물건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교역에 참가한 모든 나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즉, 비교우위에 입각한 국가간 분업으로 양국 모두 이득을 얻어 더 부유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상대국이 보호무역을 하더라도 자국이 자유무역을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 중국과의 마늘분쟁에서 보았던 것처럼, 국가 전체적으로는 자유무역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내부적으로는 소득재분배 문제를 야기한다. 즉 쌀을 수입하면 한국시장에서 쌀값이 떨어져 쌀 소비자는 이득을 보지만 쌀 생산자는 손해를 본다.

    반대로 쌀 수출국에서는 수출로 인해 쌀값이 올라갈 것이므로 소비자는 손해를 보고 생산자는 이득을 보는 반대현상이 발생한다.

    자유무역이 국부를 증가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의 하나임에도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자유무역이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내부적인 소득재분배 때문이다. 그러나 쌀을 비롯해 한국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정부가 펼치는 보조금 정책과 수입금지·관세 장벽·수입할당제 등은 자유무역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만 감소시킬 뿐, 농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비교우위나 비교열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노력하면 비교열위도 비교우위가 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은 공업분야에서 비교열위에 있던 것이 비교우위로 돌아선 경우를 수없이 경험하였다. 국가간에 비교우위가 이동하는 것은 경제발전 단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를 들면, 1970~1980년대에 한국은 미국의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상품을 주로 수출했지만, 지금은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교열위의 작물은 버리고 비교우위의 작물을 개발하고 생산해야 한다.

    목화와 밀이 경쟁력을 상실해 국내 생산이 중단되었을 때, 농촌경제와 관련 산업에 미칠 파장이 크게 우려되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농촌경제가 크게 위축되지도 않았고, 이 두 작물이 원료가 되는 상품 소비에 별다른 애로도 없었다.

    자유무역이 이득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본다면, 현재 진행중인 한국과 칠레간의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은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와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현재 한국과 칠레간의 무역 비중은 미미하나, 칠레는 남미국가 중 무역자유화를 내세운 안정된 국가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상호 이득을 볼 수 있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은 주로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칠레는 주로 과실류와 채소류를 비롯한 농산물을 수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두 나라에서는 제조업과 농업 주체 사이의 소득재분배가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농민단체들이 칠레산 농산물과 경쟁관계에 처하게 되므로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 경쟁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농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보조금 정책이나 수입금지·관세장벽 그리고 수입할당제 등은 개방화한 국제 사회에서 지속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자원배분도 왜곡한다. 흔히 경쟁력을 확보한 다음에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닫힌 문안에서 경쟁력이 제고되기 어렵다. 닫힌 문으로 인해 시장변화에 따른 가격의 정보전달 기능과 유인제공 기능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젊은 기업농이 늘어야 한다

    경쟁력은 문을 열어야 높아지며,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는 경제주체는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은 각 경제주체가 대내외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개방의 속도와 시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자유무역협정으로 새로 무역이 창출되는 효과와, 역내국(域內國)에 대한 차별관세로 인해 수입선이 생산비가 낮은 역외국에서 생산비가 높은 역내국으로 바뀌는 무역전환 효과도 있으므로 이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쌀을 비롯한 농산물 정책을 전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쌀에 대해서는 주곡은 자급해야 한다는 국민정서부터 변해야 한다. 식량은 무기화하기 어렵다는 점에 인식을 새롭게 한다면, 쌀을 일반상품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고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농산물도 일반상품처럼 가격 경쟁력이 있는 만큼만 국내 생산을 하고 나머지는 수입하여 소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도 스스로 비교열위 작물은 버리고 새로운 작물을 경작하는 쪽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상품가격이 변하지 않으면 그 상품을 생산하는 주체는 구조조정을 해야 할 유인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가격은 ‘신호(信號)’인데, 그 신호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조정에는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과 비용이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쌀문제가 결코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영세 쌀농사의 대부분은 노년층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머지않아 쌀농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젊은이들이 많은 농토를 경작하는 대규모 기업농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도 기업농이라고 할 만한 3ha 이상의 경지를 경작하는 농민이 있는데, 이러한 경작지를 운영하는 젊은 농민이 증가해야 한다.

    젊은 기업농이 많아지면 쌀농사도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고, 쌀이 더 이상 추곡수매나 재고문제로 정부 재정을 압박하는 특별상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쌀을 특수상품이 아닌 일반상품으로 간주하고, 국내 쌀시장을 예정된 계획에 따라 개방해 쌀의 가격과 유통량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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