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모르면 ‘노땅’ 되는 케이블 예능 신드롬

“화려한 캐스팅, 다양한 소재, 과감한 시도 … 공중파 하위 채널에서 맞상대로 성큼”

  • 위근우│ 기자 eight@10asia.co.kr│

    입력2010-09-30 14:3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케이블 콘텐츠의 성장세가 놀랍다. 1% 안팎의 시청률만으로도 ‘대박’ 평가를 받던 시대는 갔다.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공중파 인기 예능과 ‘맞짱’ 뜨고, 한발 더 나아가 공중파에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CJ 등 대기업 자본이 투입돼 제작되는 일부 프로그램은 공중파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과감한 도전으로 미디어 산업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더 이상 ‘애들이나 보는 것’이 아닌 케이블 콘텐츠의 오늘을 짚어봤다.
    모르면 ‘노땅’ 되는 케이블 예능 신드롬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 중인 인기 프로그램들. 왼쪽부터 <화성인 바이러스>, <롤러코스터>, <슈퍼스타 K>.

    “여러분, 케이블 몰라요. 케이블도 여러분 몰라요. 서로 다른 취향과 이해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오해들. 오늘의 기사는 TV 채널은 13번 이후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을 위한 케이블 탐구생활이에요.”

    위의 글을 보며 서혜정 성우의 감정 없는 목소리와 함께 tvN ‘남녀탐구생활’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위의 ‘여러분’에 포함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만약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만들어 배포한 ‘한나라당 선거남녀탐구생활’을 보며 -그 문제 많았던 내용과는 별개로-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좋은 포맷을 센스 있게 선점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은 케이블 콘텐츠를 즐기는 건 아니라도 그 문화적 파급력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당신에게도 이 기사가 유용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낯설다면, 혹은 낯설지는 않더라도 이들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이 왜 많은 젊은이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런 당신에게야말로 이 기사가 유용한 입문이 되길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남녀탐구생활’의 몇몇 요소를 패러디해 인터넷에 배포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성향의 남녀가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소소한 디테일과 독특한 내레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남녀탐구생활’이 과연 선거 캠페인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인터넷을 통한 UCC 시청이 일상이 된 세대에게 그 캠페인은 이해불가의 텍스트가 아닌, ‘남녀탐구생활’의 패러디로 당연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녀탐구생활’은 20~30대에게 매우 일상적인 콘텐츠인 셈이다.

    하위 채널의 반란

    하지만 하위문화로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이 특정 세대에게만 어필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의 평균 시청률은 4%를 넘었다. 당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부침을 겪고 있던, 하지만 그 브랜드 인지도는 여전했던 MBC 의 시청률이 3%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볼 때 놀라운 수치다. 케이블과는 비교도 안 되는 프로모션의 기회를 갖고 있고, 계획 시청이 가능하다는 공중파의 절대적 우위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언젠가부터 케이블 콘텐츠는 공중파 바깥의 마이너리그가 아닌, 콘텐츠 대 콘텐츠로 공중파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저력과 점유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선언이 단순한 레토릭 같다면 수치를 보자. 2010년의 가장 ‘핫한’ 케이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M.net 시즌 2는 최근 케이블 최초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절대강자인 KBS ‘1박2일’이나 MBC 정도를 제외하면 두 자릿수 시청률은 공중파 예능에서도 결코 쉬운 수치가 아니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SBS 의 시청률은 12% 근처에 머물러 있고, KBS 은 6%대, 는 8%대, 유재석이 출연하는 SBS 역시 9%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차원, 즉 플랫폼과 콘텐츠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편의상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이라는 말로 구분하지만, 현재 공중파 콘텐츠를 안테나를 통해, 말 그대로 공중파를 수신하며 보는 가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케이블 가입자가 1400만 가구에 달하는 현재, 방송 3사의 프로그램도 소위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처럼 기술적으로는 케이블망을 통해 보는 상황이다. 송수신 방식으로 채널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진 게 현실이다.

    물론 6번 SBS, 7번 KBS2, 9번 KBS1, 11번 MBC, 13번 EBS처럼 번호를 익숙하게 외우고 있는 채널의 경우 계획 시청이 가능하긴 하지만, 최소한 기술적인 면에서 여타 케이블 채널과 공중파 채널 모두 원칙적으로는 동등한 차원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재핑(zapping·광고를 피하기 위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는 행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재핑의 짧은 과정에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우리의 시청계획에 케이블 채널이 당당히 자리 잡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주목할 만한 콘텐츠들이 등장하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기점을 정확하게 잡을 수는 없겠지만 종합오락채널 tvN의 등장은 그 변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플랫폼, 진보한 콘텐츠

    MBC 와 시트콤 등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스타 PD 출신인 송창의(현재 CJ미디어 제작본부장)가 대표를 맡으며 화제를 모은 tvN은 2006년 10월 개국 초기부터 같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들을 내놓았고, 를 통해 케이블에서는 난공불락의 성이라 여겨졌던 시청률 1%의 벽을 넘었다.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나 자극적인 소재와 페이크 다큐라는 포맷으로 화제를 모은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그 성과는 곧잘 케이블의 선정성이라는 말로 가치 절하되기도 했지만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 것은 분명했다. 또한 다큐드라마라는 타이틀을 걸고 등장한 의 성공은 tvN의 성공이 단순히 말초적 쾌감에 의존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일반 카메라 대신 8㎜ 카메라로 찍으면 분명히 일반 드라마와는 다른 무엇이 나올 거라는 확신”(송창의)을 가지고 만든 이 드라마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연기자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었고, 덕분에 특유의 코믹 코드와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직장 생활의 디테일을 담아냈다.

    같은 의미에서 tvN과 같은 CJ미디어 계열의 M.net이 내놓은 의 등장 역시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DJ DOC의 정재용을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이 당시 등장한 케이블 콘텐츠 중 가장 탁월했던 건 아니다. 다만 우스운 별명을 비롯해 촌티 나는 무대 의상 등 허를 찌르는 테마로 수많은 톱스타와 아이돌을 ‘쌈 싸먹은’ 이 차트쇼는 공중파와 케이블을 포함해 과거의 예능 장르의 범주로는 묶을 수 없는 독특한 ‘무엇’이었다. 케이블치고는 괜찮은 프로그램이 아닌, 케이블이기에 가능한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즉 공중파의 보편적이지만 조금은 경색된 분위기와는 다른 자유분방함 속에서 좀 더 독창적인 기획들이 과감하게 시도된 것이다.

    비록 예능은 아니지만 MBC드라마넷을 통해 탁월한 완성도의 장르물 같은 작품이 등장해 케이블 자체 제작 드라마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3%의 시청률을 기록한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직 미완의 대기로 꼽히던 2PM을 누나들의 로망으로 만들어준 MBC every1 시즌 3나, 리얼 버라이어티에 완벽한 기승전결의 서사와 감동까지 선사한 M.net 같은 프로그램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케이블 자체 제작 예능의 경쟁력은 갈수록 강화되었다.

    “직접 만들어 돈도 번다”

    이러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의 양적 질적 향상은 케이블 채널의 수익 선순환이라는 범주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증가가 실제로 유의미한 수익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의심의 시선 역시 존재하며, 어느 정도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비록 앞서 몇 개의 성공 사례를 들었지만 이들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그 몇 배에 달하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들이 나온지도 모르게 폐지되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영업 적자로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었다. 만약 단기적으로 본다면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홀드백(hold back·공중파의 본 방송 이후 다른 케이블 방송이나 다른 방송 플랫폼에서 재방송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풀린 과 ‘1박2일’ 같은 인기 공중파 콘텐츠를 사서 주야장천 틀어대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케이블 채널이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오히려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 것을 가지고 있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CU미디어 관계자의 말처럼 자기 것이 아닌 공중파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것은 방영 횟수의 한계가 있고, 그 기간이 끝나면 결국 다시 구매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체 제작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콘텐츠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채널의 것이며, MPP(복수 채널 사업자)라면 교차 편성을 통해 하나의 프로그램을 자사의 몇 개 채널에서 돌려 수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분명 자체 제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고, 종종 적자를 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한 자산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자를 통해 실제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가 입소문과 UCC 패러디 등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시청률 4.2%를 돌파했던 지난해 11월, tvN은 43억원 정도의 광고비를 벌어들였다. 매달 35억원에서 40억원이면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마침내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는 CJ미디어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인정하듯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tvN의 도전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프로그램 질의 향상과 이를 통한 선순환적 수익구조의 확립. 특히 의 돌풍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국 순회 예선이라는 블록버스터급 규모를 보여준 가 케이블 역대 최고시청률인 7%를 돌파한 것은, 그리고 그 성공 덕에 우승자에 대한 혜택을 비롯해 규모를 훨씬 키운 시즌 2가 오직 협찬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었던 건, ‘뿌린 만큼 거둔다’까지는 아니어도 ‘거두려면 뿌려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 프로그램의 메가톤급 히트 이후 여러 케이블 채널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규모로 프로그램의 볼륨을 키운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공중파를 넘어서

    가령, QTV의 의 경우 이휘재라는 A급 진행자와 현영, 이인혜, 김새롬 등 공중파와 케이블을 오가는 여성 방송인 10여 명을 모아 만든 토크쇼다. ‘여행지에서 작업하면 쉽게 넘어올 것 같은 여자’, 혹은 ‘사귀면 물귀신처럼 달라붙을 것 같은 여자’와 같은 공중파에선 다루기 어려운 독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중파 못지않은 규모와 매끈한 진행을 더한 이 프로그램은 여타 공중파 토크쇼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SBS 의 새 코너인 ‘영웅호걸’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진행을 맡은 이휘재에게 여러 기자가 많은 여자 연예인을 이끄는 면에서 와 비슷한 것 같다는 요지의 질문을 던졌다. 케이블이 오히려 공중파 예능의 좌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상황. 이것은 메이저/마이너의 이분법으로 공중파와 케이블을 나누기 어려워졌음을 보여준다.

    역시 QTV의 프로그램인 는 아직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이경실, 정선희, 간미연, 김신영, 정시아, 고은미, 전세홍 등 출연진의 위용은 가히 KBS ‘남자의 자격’의 여성 버전이라 할 만한 수준이다. MBC 대표 토크쇼인 의 안방마님인 김원희가 알렉스와 함께 진행을 맡아 일반인 출연자에게 멘토링을 하는 M.net 도 마찬가지다. 연애에는 ‘젬병’인 여성 출연자가 여러 남성 출연자 사이에서 소위 ‘나쁜 남자’를 솎아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관념적이지 않은 연애 테크닉을 전수한다는, 흥미롭되 낯선 포맷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원희라는 인물이 가진 직설적이면서도 편안한 이미지를 통해 프로그램이 기획했던 의도는 시청자에게 빠르게 이해되었고, 몇 회의 방송만으로 시청률 1%를 넘나드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캐스팅, 신선한 상상력

    인기 진행자의 고른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역시 가장 돋보이는 건 tvN의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독특한 취향 혹은 재능을 가진 인물을 직접 스튜디오에 데려와 대화하는 토크 버라이어티 는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의 조합을 보여주고, 게스트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잠재적 질병을 확인하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 은 신동엽이 메인 MC를 맡고 조형기를 비롯한 친숙한 얼굴들이 패널로 활약한다. 가장 화려한 건 역시 다. 여태 한 번도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없던 이경규, 신동엽이 더블 MC를 맡았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MC의 네임밸류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는 30명의 일반인 여성이 출연하는데, 그걸 무명의 MC가 진행할 수는 없다. 도 독특한 일반인이 나오는데 얼굴도 모르는 MC가 나오면 프로그램의 완성도나 함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조절한다. 단지 A급 MC니까 캐스팅한다든지 하는 건 없다”는 송창의 본부장의 말대로 볼륨의 증대보다 중요한 건 유니크한 기획이다. 다만 확실한 건, 현재의 케이블은 케이블이기에 가능한 독특한 콘셉트를 결코 마이너해 보이지 않도록 공중파 못지않은 만듦새로 미장할 수 있는 단계에 올랐다는 것이다.

    아마도 곧 시즌 2는 두 자릿수 시청률의 벽을 넘을 것이고, 수많은 A급 예능인은 케이블과 공중파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말하자면 정체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제 케이블과 공중파 사이의 벽은 허물어졌다. 물론 그러니 이제부터 케이블 예능을 주목해서 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의 머릿속에서 케이블과 공중파를 나누는 경계의 벽, 그것은 허물어져야 할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