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9월과 11월 ‘문화일보’의 차기 대통령선거 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안철수 의원을 멀찌감치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그는 비슷한 시기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도 정치 분야 1위에 오를 정도로 신망이 높다. 그러나 해외에서 반 총장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박하다. 일부 인사는 그의 리더십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 안팎에서 다르게 조명되는 반 총장의 리더십을 들여다봤다.
한 매체는 “전임 유엔 총장 7명 가운데 연임 10년 임기를 못 채운 사람은 1961년 비행기 사고로 숨진 다그 함마르셀드 2대 총장과 조기 사퇴한 트리브그 할브란 리 초대 총장, 상임이사국 미국의 거부권(비토) 행사로 연임에 실패한 부트로스 갈리 6대 총장 등 3명뿐”이라며 반 총장의 연임을 평가절하했다. 당시 해외 언론이 반 총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 총장은 2007년 유엔 사무총장에 처음 취임했을 때도 해외 언론과 보수진영 칼럼니스트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뉴스위크’는 그해 3월 ‘반 총장의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라는 제목으로 반 총장이 유엔의 구조적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 총장은 취임 후 몇 달 동안 이어진 언론 공세에 무척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격이 온화한 그가 역정을 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당시 일부 유엔 직원은 반 총장의 그런 태도에 놀라 만나기를 꺼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시리아 사태로 비판 촉발
유엔의 생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집권 2기를 맞은 2012년 1월 이후로는 반 총장에게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던 비판의 목소리가 크게 수그러들었다. 과거 행태를 볼 때 해외 언론들은 어쩌면 ‘반 총장 리더십에 대한 비판 기사가 더는 뉴스거리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발한 지 만 3년이 다 돼가는 시리아 사태가 해외 언론과 보수진영에 다시 한 번 반 총장의 리더십에 찬물을 끼얹는 빌미를 줬다.
일부 보수진영은 시리아 내전으로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서고 한 달 최고 5000명이 숨져가는 대학살극이 빚어지자 이를 막지 못한 원죄를 유엔에 물었다. 안토니우 쿠테헤스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는 2013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의 화상회의에서 “우리는 약 20년 전 르완다 대량학살 이후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사망자와 난민이 발생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르완다 사태 때는 종족 간 내전으로 80여만 명이 목숨을 잃고 240여만 명이 난민이 됐다.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들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지자 유엔을 향한 비난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급기야 NYT는 2013년 9월 중순 외부 기고를 통해 반 총장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표현이 워낙 과격해 뉴욕 외교가에서도 회자될 정도였다. 미국의 유력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의 조너선 태퍼먼 편집장은 ‘반기문,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반 총장을 ‘투명인간 총장(Invisible Secretary General)’으로 묘사했다. 그는 “반 총장과 유엔은 시리아 대학살에서 완전히 무능했다. (반 총장)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고 썼다.
반 총장은 이에 앞서 같은 달 11일 유엔총회 콘퍼런스에 참석해 “유엔은 2년 넘게 이어진 시리아 사태를 막지 못한 ‘총체적 실패(Collective failure)’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유엔은 대량학살을 막을 의무가 있다’는, 2005년 유엔이 채택한 원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칙은 1994년 르완다 대학살과 보스니아 내전 때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종청소를 막지 못한 유엔이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발언 동영상을 보면 반 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시리아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서둘러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뉘앙스로 얘기했다.
하지만 태퍼먼 편집장은 이를 ‘반 총장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스스로 인정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 인신공격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반 총장이 영어를 잘 못해 메모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를 꼬집어 ‘어설픈 의사전달자(Clumsy communicator)’라고 비판했다. 전직 유엔 외교부문 고위 직원의 말을 인용해 여러 국가의 고위 관료들이 반 총장과 대화를 나눌 때 그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는 반 총장이 유엔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에 든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무력한 관찰자’‘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이라고 혹평했다.
얼마 후 기자는 뉴욕 맨해튼에서 유엔 사무총장실 및 주(駐)유엔 한국대표부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던 중 이 칼럼에 대해 물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다소 놀라웠다. 한마디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였다. 태퍼먼은 뉴욕에서 그다지 비중 있는 칼럼니스트도 아닐뿐더러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칼럼을 쓴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이미 첫 번째 임기 동안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반 총장이 실제 막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기사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반 총장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진 시기는 첫 번째 임기의 반환점을 돈 2009년이다. 여러 매체가 반 총장의 업적을 조명했지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해 6월 13일자에 게재한 중간성적표가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축에 든다. 이 매체는 반 총장이 “강대국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꺼린다”며 껄끄러운 상대와는 부딪치려 하지 않는 태도를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4개 평가항목 가운데 하나인 ‘소신도(Truth to power)’에서 10점 만점에 3점을 줬다. 세계 각국의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평화유지군 활동도 6점에 그쳤다. 반면 기후변화, 식량위기 및 기아 해결 등 세계 발전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분야인 ‘보다 큰 조망(The bigger picture)’에 대해서는 8점의 후한 점수를 주면서 “반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의 리더십은 ‘총장 또는 지도자(General)’보다는 ‘행정가(Secretary)’ 스타일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2009년 6월 14일 WSJ는 ‘유엔의 보이지 않는 남자(The U.N.′s Invisible ma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 총장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고 강한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달 22일에는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어디에도 없는 남자 : 반기문은 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반 총장에게 직격탄을 던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해 5월 WSJ와 NBC방송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미국인 응답자의 81%가 반 총장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달지 않거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한 것.
당시 언론의 비판을 요약하면, 사람들이 반 총장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이 점에서 흔히 비교되는 인물이 코피 아난 전임 총장이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미국 등 강대국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속세의 교황’으로 불릴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그는 미국이 유엔의 동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은 아난으로 인해 이라크전 당시 시간과 비용에서 막대한 손실을 봤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보다 고분고분한 총장을 원했고, 한국인 총장을 내기 위해 열심히 뛴 한국 정부와 이해가 맞물려 반 총장이 취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초인적인 현장방문 일정
반 총장은 자신의 리더십을 코피 아난의 ‘카리스마 리더십’과 비교하는 것을 취임 초기부터 못마땅해했다. 대신 그는 자신만의 ‘묵묵하고 성실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분쟁지역과 재난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을 중시하는 총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비판의 대상이 된 온유한 리더십에 대해서도 그는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 개선 중이라고 수차 밝혔다. 여러 매체에서 그의 연임 실패를 점쳤지만 그는 보란 듯이 회원국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유엔의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모든 회원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다.
2012년 12월 반 총장이 마련한 뉴욕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그는 전에 없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평소보다 와인을 많이 마신 반 총장은 그해 11월 중동에서 거둔 외교 성과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11월 19일 이집트로 날아가 20일 하루 동안 이스라엘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라말라, 이집트 카이로, 요르단 암만, 다시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주파하는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냈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당시 외신들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을 각기 대변하던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나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달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반 총장의 중재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반 총장의 리더십이 서방과 중동 주변국들로 하여금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한 원동력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9년만 해도 서방 언론들은 반 총장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지만 4년 뒤 같은 언론들은 그를 달리 봤다.
반 총장의 회원국 순방 일정은 그의 말마따나 초인적이다. 7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체력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NYT는 2013년 9월 반 총장을 ‘매일 19시간, 휴일도 잊고 일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반 총장은 이를 두고 “총장을 그만둘 때까지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유엔 내부에는 ‘총장이 유엔 조직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지, 왜 그리 회원국을 순방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 반 총장의 해외 순방이 잦다보니 뉴욕에 부임한 지 반 년이 지나도록 총장과 면담 한 번 못한 특파원이 있을 정도다.
유엔 총장실에 따르면, 반 총장이 취임 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을 순방한 거리를 환산하면 한 달에 지구를 한 바퀴씩 돈 셈이라고 한다. 그는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 내전 상태에 빠진 코트디부아르, 수단의 다르푸르 등 역대 총장이 가기를 꺼린 재난 현장을 꾸준히 살펴왔다. 알랭 르 로이 유엔 평화유지활동 사무차장은 “반 총장은 자신을 원하는 곳에는 언제나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토록 잦은 해외 순방의 편의를 위해 유엔 예산으로 총장 전용기 한 대쯤은 마련했을 줄 알았는데, 그는 회원국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거나 직접 항공권을 예약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었다.
반 총장은 연임이 확정된 뒤 2011년 6월 뉴욕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수많은 인재(人災)를 볼 때마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13년 9월 중순, 시리아 사태 악화로 반 총장을 맹폭한 해외 언론들은 불과 한 주 뒤 반전을 보게 된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으로 미국 정부가 단독 무력 개입을 심각하게 검토하자 반 총장은 연일 “유엔의 승인 아래 무력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고는 유엔의 틀 안에서 외교적인 해법을 찾도록 설파했다. 결국 미국은 무력 개입을 포기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란 핵협상 단서 마련
이어 9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선 시리아의 화학무기 철폐를 위한 결의안이 처음으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시리아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주재하에 화학무기 폐기 절차를 밟도록 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무력 개입을 허용한 유엔헌장 7장에 따라 무력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반 총장은 지난 11월에도 시리아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회담을 제안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등 국제사회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일정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반 총장은 2013년 9월 유엔총회 때도 막후협상 끝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중동 문제에 관한 기조연설을 하도록 이끌어냈다. 이를 기점으로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중동 정세는 해빙 무드로 접어들 조짐을 보였다. 핵협상을 극구 반대해온 이스라엘도 최근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12월 초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을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집권 2기 중반을 맞으면서 골치 아픈 국제사회 현안에서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는 반 총장. 그는 그간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LA타임스’ 논설실장을 지낸 프리랜서 작가 톰 플레이트가 2013년 출간한 저서 ‘반기문과의 대화’에는 반 총장의 속내가 일부 녹아 있다. 반 총장과 관련한 책이 여럿 나왔지만 그가 직접 얘기한 내용을 담은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반 총장은 조용한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특정 인물이 강력한 슬로건 또는 신념을 내세우거나 소위 리더십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역동적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지를 받을 때에만 지도력이 힘을 발휘한다.”
이어 그는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개발도상국, 선진국 등 각각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유엔에서는 이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런 외교를 매번 조용한 외교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한다.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언제든 융통성을 발휘해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만, 특정 사안과 연관된 회원국을 위해 카리스마를 드러내지 않는 것 또한 외교적 스킬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적 리더십’을 넘어
그의 말처럼 유엔 총장은 한 국가의 지도자와 같이 직접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유엔 안보리 등 결정기구가 최적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합일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중재 기능을 해야 하는 무척이나 어려운 자리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권한에 한계가 있는 유엔 총장에게 대중이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톰 플레이트는 ‘반기문과의 대화’ 표지에 ‘세계 정상의 조직에서 코리안 스타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동안 유엔을 길들여온 서구식 리더십과는 다른, 다소 낯선 스타일로 일하는 반 총장의 고충을 담은 표현이다. 실제로 일각에선 그간 반 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쏟아진 비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중재 등을 강조하는 아시아적 리더십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런 비판에 대해 귀를 닫는 것은 아직 3년의 임기를 남겨둔 반 총장이 경계해야 할 태도다. 특히 국내에선 반 총장이 한국 출신의 첫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점 때문에 이런 비판을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듯이 강력한 목소리가 필요할 때는 전술적으로라도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대량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분쟁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그동안 논쟁을 껄끄러워했던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에 국제사회 지도자로서의 위용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반 총장은 기아, 기후변화, 인권, 여성문제 등 8개 분야 문제 해결을 통해 지속가능한 세계성장을 이뤄가자는 ‘포스트 MDG(Millenium Development Goals·밀레니엄 개발목표)’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준 뒤 후임 총장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이 그 자신뿐 아니라 세계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MDG는 코피 아난 전임 총장이 주창한 것으로 시한은 2015년까지다. 반 총장은 이후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킬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코피 아난 전임 총장이 실패한 유엔 개혁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 유엔이 내부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을 위한 변화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는 2016년 12월 말. 한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고령인 데다 정권욕이 없다는 이유로 본인이 우선 손사래를 치고 있고 주위에서도 출마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상당수 유권자가 원하는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임이 분명하다. 본인의 고사 등을 이유로 수년 동안 여론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다가 ‘문화일보’가 2013년 9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넣어 실시한 차기 대통령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1위에 오른 데 이어 11월 같은 조사에서는 2위 안철수 의원과의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2011년과 2012년 안철수 의원에게 내줬던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외교 인물’ 1위 자리도 2013년에 되찾았다. 남은 총장 임기 3년 동안 그가 보여줄 리더십이 차기 대선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는 건 벌써부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