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김정희 세한도 부작란도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입력2016-08-18 17: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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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고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직업도 그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 수유리에 살았을 때, 마당에는 값비싼 것은 아니었으나 크고 작은 유물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고고학과 고미술에 관한 자료가 빼곡히 쌓여 있고, 골동품도 여기저기 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서화나 골동품을 감상할 때 가장 행복해하셨습니다. 서재에서 오래된 글씨나 그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언제나 그윽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 작품들을 뚫어지게 지켜보면서 마치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이기도 했고요. 사랑하는 엄마를 바라보시는 눈길과도 같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저도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관심을 뒀기 때문이지요. 대학에 들어와 공부한 것은 사회과학이었기에 회화를 포함한 미술을 가까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림감상을 좋아했지만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미술

    제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원에 들어와 상담학을 배우면서부터입니다. 상담학은 마음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내담자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상담사의 일입니다. 마음과 심리를 공부하면서 저는 인간이 마음과 심리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가 미술임을 알게 됐습니다.



    미술은 언어처럼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진 않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뿐만 아니라 느낌까지 포괄하는 마음을 담아냅니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복잡 미묘한 마음을 모두 언어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에는 생각뿐만 아니라 느낌도 존재하고,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도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느낌과 무의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데 미술은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포의 마음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포의 느낌은 언어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연재에서 다룬 적이 있는 뭉크의 ‘절규’가 적절한 사례입니다. ‘절규’는 인간이 갖는 공포의 느낌과 생각을, 다시 말해 공포의 마음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작품을 보는 순간 뭉크가 느낀 공포를, 나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포를 온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미술이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저는 미술에 매혹됐습니다. 미술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고 전시회를 찾아 다녔습니다. 서른이 넘어서야 미술이라는 존재와 의미를 발견하게 된 셈이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로소 오래전 고서화와 골동품을 그윽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것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작품입니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정치가이자 학자, 그리고 예술가입니다.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전통 사회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지식인이지요.



    의리와 사랑이 빛나는 순간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김정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입니다. 아버지는 서예 작품을 좋아하셨지만, 저는 서예에 담긴 의미를 아직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미술이 마음과 정신의 표현이라면, 서예에도 마음과 정신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희는 서예와 그림의 필법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불어넣어 표현한다는 점에서 서예와 그림은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김정희를 대표하는 그림은 ‘세한도(歲寒圖, 1844, 국보 제180호)’입니다. 정선의 산수화, 김홍도의 풍속화와 함께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고 배우는 작품입니다. 김정희는 이 작품을 정치적으로 좌절한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렸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쓸쓸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쓸쓸함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견뎌내려는 선비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엔 창문 하나가 달린 작은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기댄 듯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집 주위에 잣나무 세 그루가 서 있습니다. 계절은 겨울인 듯합니다. 소박한 초옥 한 채와 나무 몇 그루가 고적한 한겨울의 느낌을 안겨줍니다. 작품의 제목도 날이 추워진다는 의미를 가진 ‘세한(歲寒)’에서 따왔습니다. 김정희는 그림 뒤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을 때는 가까이하다가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른 척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지금 절해고도에서 귀양살이하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이상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런 귀중한 물건을 사서 부치니 그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헌종 때 김정희는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것이지요. 권력을 가졌을 때는 누구나 우러러보고 두려워하지만 권력을 잃으면 교류가 끊어지고 주변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의리와 사랑이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내가 권력을 잃어도 나를 좋아하고 존중하는 이가 진정한 친구이겠지요. 김정희에겐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한 이상적은 그 책을 권력자가 아닌, 귀양살이를 하는 스승에게 선물했습니다. 김정희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추울 때라야 안다

    앞의 문장에 이어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공자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라 했으니, 그대의 정의야말로 추운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조(節操)가 아닐까.”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란 추운 계절이 돼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다룬 유교의 고전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찾아오는 이 거의 없는 제주도 대정에 유배 와서 김정희는 새삼 권력과 인간과 의리를 생각하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소나무, 잣나무와 같은 제자 이상적의 아름다운 의리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선비 정신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특히 저와 같은 여성의 경우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조선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세한도’가 감동적인 것은 어려운 시절에 나누는 의리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두 번 어려운 시절을 겪게 되지요. 진정한 친구와 동료란 바로 이때 힘이 돼주는 이들입니다. 모두 다 돌아선 채 나를 멀리하더라도 끝까지 내 옆에 남아 나를 지켜봐주고 때때로 격려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리와 사랑이 아닐까요.

    의리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의리는 사대부라면 가져야 할 덕목의 하나였습니다. 가부장주의로서의 유교 문화를 싫어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이제껏 나눠온 믿음에 대한 신뢰라 할 의리가 새삼 그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한도’는 제게 의리와 신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림입니다. 또, 삶의 고난을 의연하게 견뎌내는 기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희일비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품격이 그리울 때면 저는 ‘세한도’를 찾아보곤 합니다.

    추사의 작품 가운데 시선을 끈 또 하나는 ‘부작란도(不作蘭圖)’입니다. 제주와 북청에서 긴 유배 생활을 하고 돌아온 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라 하기도 합니다.

    ‘부작란도’는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그림 한가운데엔 한 포기 난초가 놓여 있습니다. 난초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꽃은 그 반대인 왼쪽에 피어 있고, 자유분방하게 솟아오르는 기운이 한껏 느껴집니다. 여백에는 글씨가 가득 씌어 있습니다. 여백 맨 위에 쓰인 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통로를 제공합니다.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의 하늘을 그려냈다. 문을 닫고 마음 깊은 곳을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이다.’

    김정희에게 난초를 그리는 행위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기보다는 마음속의 하늘, 즉 맑고 푸른 정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유마거사의 ‘불이선’과도 같은 깨달음입니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난초 오른쪽에 쓰인 글은 이렇습니다. ‘(난을)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의 이상한 글씨체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이해하고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



    김정희의 書畵一致

    김정희는 글씨를 쓰듯 난을 그렸습니다. 그에게 글씨를 쓰는 것과 난을 그리는 것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서화일치(書畵一致)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앞서 말한  ‘불이’에도 대응하는 것이지요. 글씨와 그림은 하나이고,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정신의 고결함을 간직하는 것도 하나라는 게 김정희가 생각한 예술관인 듯합니다. 김정희에게 미술은 이렇듯 마음과 정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데 일차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지요.

    김정희의 작품들을 보면서 저는 미술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미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하지만 미술에 담긴 정신은 시간이라는 구속을 넘어서기도 합니다. 김정희에게 정신은 마음의 맑고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세한도’에 나타난 고결한 의리와 절조의 정신은 신뢰와 믿음이 무너지는 현대사회의 비정한 현실을 돌아볼 때 커다란 위로를 안겨줍니다.

    더불어 그 정신은 세상의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으려는 굳고 의연한 마음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세한도’ 앞에 서면, ‘사랑하는 제자야. 스승은 지금 가장 외롭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 어려움을 저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끝까지 의연하게 이겨나가겠다. 너의 정성이 정말 고맙구나’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으로 미술은 쓸쓸한 마음의 따뜻한 거처입니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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