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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의 이탈리아 칸초네 떼창에 도밍고도 놀랐어요”

[단독인터뷰] ‘트바로티’ 김호중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아리스의 이탈리아 칸초네 떼창에 도밍고도 놀랐어요”

  • ● 아리스는 내가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
    ● 노래하기 전 가사 곱씹는 습관
    ● 인생을 즐기라는 대가의 한 수
    ● 초등학교 때 우상은 비
    ● 김범수 제친 파바로티
    ● 공부와 달리 실력 느는 게 재밌어
    ●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 신이 허락하는 날까지 노래하는 사람이길
‘트바로티’ 김호중. [생각엔터테인먼트]

‘트바로티’ 김호중. [생각엔터테인먼트]

6월 9일 소집해제 당시보다 날씬해졌다. 낯빛은 환해졌다. 금발에 가까워 보일 만큼 밝은 갈색이던 모발 색도 자연 갈색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표정과 말투에 여유가 생긴 것이 눈에 띄는 변화다. 6월 28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단독으로 만난 김호중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그의 팬덤 아리스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군백기(군복무로 인한 활동 공백기) 동안 아리스가 보여준 한결같은 애정이 더 열심히 활동할 준비를 하게 했어요. 소집해제 이후에도 뜨거운 응원과 지지로 제가 얼마나 복이 많은 놈인지 깨닫게 해줬고요. 아리스는 제가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김호중은 2020년 3월 종영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그해 9월 10일 군 대체복무를 시작해 팬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쉬움이 큰 만큼 그를 향한 그리움이 커진 탓일까. 군대를 다녀오면 인기가 떨어지는 게 일반적 양상이지만 김호중의 경우는 그 반대다. 첫 번째 정규앨범 ‘우리가(家)’와 클래식 미니앨범 ‘더 클래식 앨범(THE CLASSIC ALBUM)’은 합산 100만 장 넘게 팔렸고 팬카페 회원 수는 입대 전보다 약 5만 명이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역 후 그는 놀라운 관중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6월 11일 강원 철원군에서 열린 ‘2022 평화콘서트 우리, 이곳에서’(이하 ‘평화콘서트’)와 6월 19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된 ‘제1회 드림콘서트 트롯’이 좋은 예. 두 공연은 객석이 그의 팬덤 색깔인 보라색으로 도배되다시피 해 김호중 콘서트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6월 26일 게스트로 출연한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 공연에도 아리스가 대거 몰려 예매 개시 2분 만에 전석이 매진됐다. 김호중과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공연 얘기로 시작됐다.

김호중이 6월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이 6월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생각엔터테인먼트]

아리스의 응원은 감동 그 자체

철원 평화콘서트에서 300m 길이로 겹겹이 늘어선 아리스와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가슴이 벅찼어요. 그런 환경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저를 보러 오신 것이 놀라웠고 이제야 내가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에 돌아온 것을 철원에서 처음 실감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네요’ ‘사랑합니다’ 등 여러 목소리가 들렸는데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사실 1년 9개월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기가 쉽지 않아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군대 가기 전 만들어놓은 노래를 다 들으시고, 그날 날씨가 엄청 더워 고생을 많이 하셨을 텐데도 너무도 환하게 맞이해 주셨어요. 진짜 아리스는 대단하구나. 나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내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하는 원동력이 아리스구나. 내가 소집해제된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리스가 인간 띠를 이뤄 환호하는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저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어요. ‘넌 정말 복받은 놈이구나. 네가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길 얼마나 잘했나’ 이렇게요.”



드림콘서트 트롯도 관객의 70% 이상이 아리스였어요. 엄청 큰 공연장이어서 감회가 특별했을 것 같아요.

“첫 곡인 ‘고맙소’를 부를 때는 긴장을 많이 하고 너무 오랜만에 서는 무대여서 객석을 볼 여유가 없었는데 두 번째 곡 ‘천상재회’를 부를 때부터 아리스의 보라 물결이 보이더라고요. ‘천상재회’를 워낙 많이 불러서 긴장감을 덜고, 무대 앞으로 나아가니 아리스가 하나하나 보였어요. 우리 응원봉에 나중엔 티 색깔까지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신이 나죠. 신날 수밖에 없죠. 그 덕분에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애인이 되어줄게요’와 ‘태클을 걸지 마’는 그 흥으로 노래했어요. 아리스가 그 자리를 빛내러 오셨기 때문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팬들이 ‘걱정하지 말고 노래해’ 하고 말하는 듯했어요. 그래서 저도 ‘알았어요. 걱정 안 할 게요. 열심히 해볼 게요’ 하고 생각했어요.”

김호중이 6월 1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김호중이 6월 1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도밍고 내한 공연이 흥행에 성공한 건 김호중의 아리스 덕이라는 시각이 많아요.

“도밍고 선생님은 세계적인 분이니까 많은 관객이 몰린 거라 생각해요. 저는 게스트일 뿐이에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는 세계 3대 테너예요. 어릴 때부터 그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꿈꿨고 이번에 그 꿈을 이뤘어요.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공연하기 힘들었지만 사정이 나아져 많은 분이 공연장을 찾았어요. 관객이 많아 좋았고, 도밍고 선생님과 노래해서 정말 좋았어요.”

앙코르곡 ‘물망초(Non ti scordar di me)’를 부를 때 아리스가 떼창으로 따라 해 도밍고가 놀라워했다고 들었어요.

“마지막에 앙코르곡으로 그 노래를 불렀어요. 도밍고 선생님과 저, 제니퍼 라울리 셋이 함께요. 제니퍼는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성악가예요. 그분을 보면서도 배울 점이 많았어요. 아무튼 도밍고 선생님이 앙코르곡으로 제안한 ‘물망초’는 제 클래식 1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기도 해요. 그 노래를 셋이 같이 했는데 중간에 오케스트라 간주가 나오는 부분에서 팬들이 ‘Non ti scordar di me~’ 하고 떼창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힐 더 월드’ 같은 대중적인 팝송도 아니고 이탈리아 칸초네잖아요. 내가 듣는 게 맞는 건지 실감 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만찬 할 때 도밍고 선생님이 ‘관객이 떼창을 해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Non ti scordar di me’를 떼창으로 따라 하는 나라는 이탈리아 말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그런 모습을 봐서 경이로웠던 거죠. 그날 관객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선생님 짤(짧은 동영상)을 보면 한국에 와서 무척 행복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새벽까지 했는데 그때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내내 즐거워하셨어요.”

청년의 소리

게스트로 초대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공연 기획사로부터 얘길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주최 측에서 제 클래식 앨범을 들려드리고 유튜브를 통해 제가 노래하는 모습도 보여드렸다고 해요. 도밍고 선생님도 ‘퍼햅스 러브(Perhaps Love)’ 같은 클래식이 아닌 노래를 음반으로 낸 적이 있어선지 저에 대해 굉장히 흥미로워하시며 이 사람을 꼭 보고 싶다고 하셨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어요.”

도밍고와 한 무대에서 노래한 소감은 어떤가요.

“감사하고 행복했죠. 어떤 느낌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단어가 없어요. ‘마이웨이’라는 곡을 선생님과 손을 잡고 부르는데 꽃가루가 막 날렸어요. 한 5~10초간 ‘내가 파바로티인가, 카레라스는 어디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제 손을 잡고 막 흔드니까 마치 파바로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도밍고 맞나 싶고, 감격에 겨워 울컥했죠.”

세계적 성악가는 뭐가 다르던가요.

“소리가 달라요.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노화하고 비브라토도 매끄럽지 못해요. 인간의 몸인지라 오래 쓰면 자연스럽게 고장이 나게 마련이죠. 그런데 도밍고 선생님은 그 연세에도 청년의 소리가 나요.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그 소리를 들어봤는데 왜 대가인지, 월드 클래스인지 알겠더라고요.”

도밍고가 우리 나이로 81세예요. 본인도 그 나이까지 노래하고 싶나요.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죠. 살아 있는 레전드를 만나다 보니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노래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목 관리를 어떻게 하시느냐고 여쭤봤어요. ‘특별한 게 없다. 인생을 즐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여러 대가와 선배들에게도 목 관리 비결을 여쭤봤는데 ‘신이 허락하는 날까지 노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성악가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갑상샘암에 걸려 원래의 목소리를 잃었어요. 전 세계에서도 절대 실력으로 뒤지지 않는 성악가인데 갑자기 그런 시련이 닥치더군요. 그래서 저도 신이 허락하는 날까지 노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즐기자는 마음이에요.”

노래하기 전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기도하는 건가요.

“어릴 때부터 노래하기 전 집중하라고 배웠어요. 정신이 산만하면 실수하게 되거든요. 집중할 때 기도가 나오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명상을 해요. 3분에서 5분 사이 한 곡을 해야 하는데 정신이 흐트러져 버리면 가사를 까먹을 수 있고 발성이나 포지션이 바뀔 때도 있기에 최대한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실수해도 탓할 사람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래하기 전에는 잘 준비하고 가다듬어야만 하죠.”

김호중이 신동아 독자를 위해 선사한 친필 사인. [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이 신동아 독자를 위해 선사한 친필 사인. [생각엔터테인먼트]

흑역사와 ‘태양을 피하는 법’

그때는 무슨 생각을 주로 하나요.

“가사를 많이 곱씹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실수할 수 있거든요. 한 치도 버릴 시간이 없어요. 반주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쳐요. 많이 불러본 곡일수록 더 집중해야 하더라고요. 많이 해봤으니까 하면서 교만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큰일이 일어나요. 고등학교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콩쿠르에 나가 ‘디 포렐레(Die Forelle)’라는 독일 가곡을 불렀는데 제가 교만해지고 나태해져서 2절 가사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어요. 1절 가사를 다시 하니 땡 하고 떨어졌죠.”

흑역사가 있었군요.

“세종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나니까 저 스스로 교만하고 나태해졌던 거예요. 신이 있다면 ‘한번 된통 혼나 봐라. 이놈아’ 하신 것 같아요. 그 일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마음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노래에 정말 진솔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고 각오를 다졌죠.”

어릴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노래 잘한다는 소리보다 ‘저 녀석은 노래를 진짜 좋아하는 놈이구나’ 했대요. 유치원 다닐 때도 선글라스만 딱 끼면 김건모 선생님, 설운도 선생님의 노래를 척척 불렀대요. 네다섯 살 때 시장에서 그러고 노래하니까 저만 보면 상인들이 ‘노래하는 꼬맹이 나타났다’고 반기셨다고 해요. 그 덕에 제 주머니가 마르지 않았다더라고요. 500원짜리 동전을 하도 받아와서요(웃음).”

그런 노래를 어떻게 알았나요.

“저야 모르죠. 하하.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여자 여자 여자’ 같은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것밖에는. 솔직히 기억은 없는데 몇몇 분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노래해 봐’ 그러면 쑥스러워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대요.”

어릴 때 트로트만 좋아했나요.

“노래는 다 좋아했어요. 장르에 상관없이요.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해 ‘태양을 피하는 법’을 불러 1등 한 적도 있어요. 왜 그 프로그램에 전화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다음 날 문방구 아주머니가 저를 보더니 ‘호중아, 어제 너 태양을 피하는 법 부르는 거 들었다’ 하신 일은 또렷하게 기억나요. 1등 해서 상품도 받았어요. 당시 비 선배님이 저의 우상이었어요. 정말 멋졌어요.”

소년 김호중은 어떤 아이였나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성적인 아이는 아니었어요. 용감하고,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고, 따뜻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어 하고, 친구를 너무 좋아했어요. 거의 매주 친구 집에서 잠을 잤을 정도로요. 어머니들이 차려주는 밥상이 너무 좋았나 봐요. 친구가 놀러왔으니 엄마들이 불고기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거든요.”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나 봐요.

“교우관계가 아주 좋았어요. 저도 친구들을 좋아했고 친구들도 저를 좋아했어요. 안 좋아하는 친구를 누가 집에 데려가겠어요. 친구 집에서 잘 때가 가장 좋았어요. 지금도 연락하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를 두 군데 다녔는데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닌 학교가 있고, 3학년 때 전학 가서 졸업할 때까지 다닌 학교가 있어요.”

‘네순도르마’는 운명

[생각엔터테인먼트]

[생각엔터테인먼트]

특별히 기억나는 친구가 있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문식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소아마비였어요. ‘미스터트롯’에 나가고 나서 문식이 어머니와 통화한 적이 있어요. 문식이 짝지를 아무도 안 해줄 때 제가 짝지하겠다고 나섰대요. 문식이 동생도 ‘그런 형에게 고마웠어요’ 하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김호중이란 아이는 문식이가 장애를 가진 것에 개의치 않고 그 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그리고 ‘남이 안 하는 것을 내가 한번 해주고 싶다’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가정교육의 영향이겠죠.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가르침이 있었거든요. 문식이 어머니가 당시 김치도 담가주시고 저를 엄청 챙겨주셨어요. 제가 전학을 가기 전까지요. 문식이 어머니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어요. 이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통화하기가 어렵지만 감사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 파바로티의 ‘네순도르마’를 듣고 성악에 빠졌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 노래를 접하게 됐나요.

“김범수 선배님의 ‘보고 싶다’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 용돈을 모아 CD를 사러 갔는데 파바로티 노래가 1위더라고요. 잘생긴 가수도 아닌데 어떻게 1위가 됐는지 궁금해 파바로티의 ‘네순도르마’를 들었는데 너무나도 잘 불러서 ‘와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어요. 그래서 김범수 선배님이 아닌 파바로티 CD를 샀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한창 대중가요를 좋아할 나이인데 클래식의 어떤 매력에 끌린 건가요.

“공부를 하면 진도가 나가잖아요. 저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이었지만 성악은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 거예요. 저 자신이 점점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서수용 김천예고 교장선생님이 천부적 재능을 알아보고 헌신적으로 이끌어준 걸로 알아요.

“선생님은 늘 한결같아요. 선생님께 노래도 배웠겠지만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믿음이에요. 선생님 덕분에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됐어요. 선생님께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웠어요. 선생님은 ‘노래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노래 잘하는 놈은 많아. 근데 싸가지 없는 놈이 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하고 말씀하셨죠.”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노래로 먹고살 수 있을 거다. 내가 장담할게’ 하셨어요. 그 말씀이 저한테 큰 힘이 됐어요. 노래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게 했다고 할까요. 선생님이 그 말끝에 ‘내 전 재산을 거마’ 그러시기에 ‘선생님 전 재산이 얼만데요?’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하.”

김천예고로 전학 가기 전 경북예고에 진학한 일이나 진로를 성악으로 정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한 번도 없어요. 성악가가 되고 싶었고, 경북예고가 너무나도 좋은 학교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다만 진학한 후 ‘내가 여기 낄 자리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학교생활이 흐트러지기도 했어요. (경북예고에 다니는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죠.”

긍정의 힘

[생각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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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 씨와 서수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영화 ‘파파로티’의 과장된 내용 때문에 김호중 씨를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김호중 같은 사람도 다시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좌절하지 말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라’ 하고요. 영화가 그렇게 나와서 좋아요. 실제로 ‘파파로티라는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 한다’는 연락을 꽤 많이 받아요. 좀 과장되면 어때요. 영화잖아요. 다큐멘터리는 다 믿겠지만 영화를 누가 다 곧이곧대로 믿겠어요. 설령 다 믿어도 좋아요. 그로 인한 오해는 사실이 아니란 걸 내가 살면서 보여주면 돼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해외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교회 장로님, 권사님이 후원해 주셨어요. 제가 뭐라고 밥을 해주시고 집에 재워주셨어요. 서수용 선생님이 ‘호중아 꼭 레슨 한번 받아봐’ 하고 연결해 주시기도 했고요. 교회 장로님 집에서 홈스테이 하면서 여러 대가에게 성악 레슨을 받았어요. 대가들이 듣기에 다 문제투성이라서 (제 노랫소리를) 녹음도 많이 하고 가자마자 녹음기 켜고 그것만 듣기도 했어요. 그런 시간이 오늘날의 자양분이 됐죠.”

그는 현지에서 의사소통의 불편함은 겪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용어까진 알아듣지 못해도 기본적인 의사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언어를 빨리 습득한 덕분이다. 어학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떼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해요. 세계 어딜 가든 그 나라 노래 한 곡 정도는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성악가로서의 목표 중 하나예요.”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성악가로 받아주지 않아 살길이 막막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작은 음악회나 결혼식 축가를 부르며 생활했다죠?

“맞아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대학 졸업장이 없는) 저를 누가 써주겠어요. 먹고살아야 해서 한 일이지만 그 안에서 저 나름대로 행복을 느꼈어요.”

긍정적인 성격이네요.

“가만히 있으면 먹고살 돈이 나옵니까. 근데 제가 누굴 축하해 주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도 저는 행복을 느끼는 거죠. 더군다나 노래로 축하해 줄 수 있어서 좋고요. 그 당시 영상을 찾아보면 제가 정말 열심히 노래해요. 그리고 그 표정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열심히 살았으니까요. 지금도 누가 물어요. 작은 데서 공연할 계획이 있느냐고요. 그럼 저는 이렇게 반문해요. ‘우리가 언제부터 큰 데서 공연했느냐’고요. 맞잖아요. 어떤 무대에 서든, 그 무대가 크든 작든, 저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빛이 나는 사람

[생각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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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마인드 덕분일까. 그가 걸어온 길에는 힘들 때마다 힘이 돼준 이들이 있었다. 서수용 선생님과 교회 사람들이 그러하고, 지금은 아리스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미스터트롯’으로 아리스를 얻었어요. 아리스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김호중과 하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리스 덕분에 제가 힘을 얻었듯이 팬들도 저라는 사람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길 바라요. 아리스 중에 ‘예전에는 혼자 외롭게 지냈는데 아리스들과 함께 저를 응원하면서 더는 외롭지 않다’는 분이 많아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수로서 흐뭇하고 행복해요.”

아리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군에 입대했어요. 군 대체복무는 할 만했나요.

“서울 강남역 근처 장애인 복지관에서 1년 9개월 동안 대체복무를 했어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처음 몇 달간은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 친구들이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기 때문에 경계가 심해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친구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그때부터 저를 ‘선생님’ 혹은 ‘호중이 형’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친구들과 무척 친해졌죠. 소집해제 당일에도 친구들이 영상을 준비하고 꽃도 전해줬어요. 그 친구들을 통해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복지관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을 처음 느끼며 인생 공부를 했죠. 앞으로도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에요.”

복지관 친구들의 ID카드를 새것으로 바꿔줬다는 미담이 사실인가요.

“야외활동 수업 때는 복지카드를 소지해야 관람하는 장소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복지카드가 일종의 신분증 같은 건데 죄다 어릴 때 찍은 사진이 붙어 있더라고요. 사진을 꼭 바꿔주고 싶어서 입소 전 화보와 앨범 재킷을 찍어준 작가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고맙게도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그 사진을 아이들 복지카드와 증명사진으로 쓸 수 있게 됐죠.”

군백기에도 팬카페를 통해 아리스와 계속 소통했어요. 기억에 남는 편지나 메시지가 있나요.

“복무를 하면서 주말마다 팬카페에 들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됐어요. 덕분에 팬들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었는데, 내가 음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게 보였는지 ‘장르를 너무 고민하지 마라. 그냥 노래하는 사람으로 와줬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나요. 또 활동 공백기지만 이렇게 소통하며 우리끼리 더 단단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는 글도 많이 받았고요. ‘건강하게만 돌아와라. 우린 이 자리에 있다’는 말도 큰 위안이 됐어요.”

그가 소집해제 후 처음 낸 신곡 ‘빛이 나는 사람’은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자작곡이다.

“팬들이 자꾸 저한테 빛이 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팬들도 빛이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빛내 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빛이 나는 사람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편지 글을 조합해 가사를 만들고 미디를 배워 작곡도 직접 했어요. 원래 소집해제 후 ‘나의 목소리로’라는 노래를 선보일 예정이었는데 팬들과 더 가까이 교감하고 싶어 ‘빛이 나는 사람’을 먼저 발표했어요.”

앞으로 굵직한 일정이 많다. 7월 중 화보 촬영을 위해 이탈리아로 출국한다. 현지에서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와 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중은 “현지에서 변수가 생길 수 있고 구체적으로 전달받은 게 없다”며 협업 내용을 밝히길 꺼렸다. 대신 “돌아오면 영상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연말까지 ‘열일’

[생각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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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7월 27일 클래식 정규 2집 ‘파노라마(PANORAMA)’를 발매한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 속에 자리한 연인, 친구, 팬들에게 김호중이 전하는 안부 인사 같은 노래들로 채웠다. 정통 성악부터 발라드 성향의 크로스오버, 라틴 음악, ‘낭만가객’ 최백호와의 듀엣곡까지 총 16트랙이 수록됐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루마의 곡도 들어 있다.

“첫 번째 클래식 앨범은 오페라 아리아를 주로 담았는데 이번 2집에는 제가 하고 싶었던 노래, 불러보고 싶었던 곡들을 중점적으로 넣었어요. 이루마 선생님이 써주신 곡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선율이 좋아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웃음).”

그는 ‘우리家’에 이은 두 번째 트로트 정규 2집도 준비하고 있다. 9월이나 10월 발매할 예정이다. ‘나의 목소리로’는 이 앨범을 내기 전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또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열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추석 연휴에는 SBS와 단독 쇼를 펼친다.

지상파방송과 손잡고 단독 쇼를 연다는 건 대형가수 반열에 올랐다는 증거죠.

“영광으로 생각해요. 휼륭한 제작진과 잘 조율하고 준비해 저만이 할 수 있는 음악과 TV에서 볼 수 있는 유일성 있는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단독 콘서트에 앞서 전시회도 연다고 들었어요. 뭘 전시하나요.

“제가 찍은 사진도 전시될 예정이에요. 팬들이 사준 카메라로 취미 삼아 찍은 소소한 사진들이죠. 개미굴도 있고, 제주도에서 포착한 아름다운 풍경도 있어요.”

카네기홀 공연은 언제 할 계획인가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요. 불러줘야 하죠(웃음).”

아리스가 선행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김호중 씨에게 선한 영향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학창시절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재능기부를 한 일이 큰 감동을 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뭘 줄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저는 준 것이 아니라 나눈 거라 생각해요. 내가 이걸 갖고 있는데 너도 좀 맛볼래? 줘볼까? 이런 차원이지요. 나누는 것이 돈이나 물건이 아니어도 좋아요. 말 한마디도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팬들이 그런 마음으로 나눔에 동참하고 있어 저 또한 감사해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행복해요.”

10년 뒤 김호중 씨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때의 청사진을 그려본다면요.

“노래를 하고 있으면 감사한 일이죠. 그렇게 되도록 달려갈 거고요. 이번에 도밍고 선생님을 보면서 더 절실하게 느꼈어요.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할 때 제일 행복하구나, 그 모습이 가장 좋은 모습이구나 하고요. 10년 전 호중이를 돌아봤을 때는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고, 10년 뒤 호중이에게는 건강 잘 챙기고 좋은 노래를 전해 드리는 김호중이 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신동아 8월호 표지.

신동아 8월호 표지.



신동아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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