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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가 류선규를 로맨티스트로 만들었다

[베이스볼 비키니] 야구는 낭만적 비즈니스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SSG가 류선규를 로맨티스트로 만들었다

  • ● 프랜차이즈 스타의 다른 이름은 ‘FA 大魚’
    ● FA시장 과열? 매년 나오는 이야기일 뿐
    ● 2배 넘는 연봉 거부할 선수가 있을까
    ● 양준혁·박용택처럼 더 큰 돈 마다한 선수도 있어
[GettyImage]

[GettyImage]

2021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989억 원 규모로 마감됐습니다. 이전까지 역대 최고이던 2016년 766억2000만 원과 비교해도 1.8배 가까이 많은 금액입니다. 인기 척도라고 할 수 있는 프로야구 경기 TV 평균 시청률은 2020년 0.84%에서 지난해 0.71%로 15.5%가량 하락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 때문에 입장 수익은 물론 광고 판매도 떨어진 상황. 그런데 이렇게 FA 시장만 뜨거운 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연봉 2배,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

“야구는 비즈니스라기엔 너무 스포츠적이고 스포츠라기엔 너무 비즈니스적이다.”

FA 시장 분위기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필립 K 리글리(1894~1977) 전 시카고 컵스 구단주가 남긴 이 말을 떠올리시면 좋습니다. 사실 프로야구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 가운데 프로야구를 그저 ‘스포츠’로 받아들일 이들은 수많은 야구 관계자 중 ‘팬’ 딱 한 부류뿐입니다. 선수나 프런트 직원 심지어 야구 담당 기자에게도 프로야구는 스포츠보다는 ‘비즈니스’에 훨씬 가깝습니다.

LG 트윈즈의 팬이었지만 지금은 SSG 랜더스에 몸담고 있는 류선규 단장.  [동아DB]

LG 트윈즈의 팬이었지만 지금은 SSG 랜더스에 몸담고 있는 류선규 단장. [동아DB]

류선규 SSG 랜더스 단장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류 단장이 PC 통신 ‘하이텔’ 시절 쓰던 ID는 ‘myLG’였습니다. 당연히 프로야구 응원팀도 LG 트윈스였습니다. 류 단장은 하이텔에서 뛰어난 ‘글발’을 자랑한 덕에 프런트 직원으로 LG에 입사하면서 ‘덕업일치’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SSG 랜더스의 사장이 되는 민경삼 당시 LG 매니저와 함께 SK 와이번스(현 SSG)로 이직했습니다.

류 단장은 이번 스토브리그 때 외부 FA 영입에 힘쓰는 대신 내부 ‘예비 FA’를 눌러 앉히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원래 2022 또는 2023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게 될 문승원(33·투수), 박종훈(31·투수), 한유섬(33·외야수)과 5년 연장 계약을 맺은 뒤 그는 “너희들이 나보다는 더 오래 있을 테니 5년 동안 꼭 한 번은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이제 류 단장을 ‘로맨티스트’로 만드는 팀은 LG가 아니라 SSG인 겁니다.



선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손아섭(34)은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고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15년 동안 활약했습니다. 2017년 첫 번째 계약 때만 해도 “롯데에서 지명을 받고 나서 다른 팀에서 뛰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팀의 우승이라는 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던 손아섭은 이번 스토브리그 때는 “야구 인생의 마지막 목표인 우승을 이룰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다”면서 NC 다이노스와 계약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롯데는 2017년에는 손아섭에게 4년간 98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이보다 손아섭에게 많은 돈을 제시한 구단은 없었습니다. 반면 이번 스토브리그 때는 NC가 롯데(42억 원)보다 1.5배 이상 많은 64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현재 다니시는 직장을 사랑해 마지않으시리라 믿지만 월급을 50% 올려준다는 회사가 있어도 정말 이직하지 않으실 건가요? (사장님, 저는 안 갑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타자’로 불리던 손아섭(34)은 1월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왼쪽). 넥센 히어로즈 시절 낸 성과로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했던 박병호(36)도 KT 위즈로 둥지를 옮겼다. [동아DB]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타자’로 불리던 손아섭(34)은 1월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왼쪽). 넥센 히어로즈 시절 낸 성과로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했던 박병호(36)도 KT 위즈로 둥지를 옮겼다. [동아DB]

“프랜차이즈 스타 희미해진다?” 매년 나오는 이야기

스토브리그 때는 손아섭뿐 아니라 (1군 출전 기준으로) NC에서만 9년을 뛴 나성범(33)도 KIA 타이거즈로 팀을 옮겼습니다. LG에서 뛰게 된 박해민(32) 역시 그전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9년을 뛰었습니다. KT 위즈 유니폼을 입게 된 박병호(36) 역시 키움의 전신인 넥센의 ‘간판선수’였는데요. 이렇게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들이 팀을 옳기면서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개념이 희미해져 간다”고 분석하는 언론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털에서 조금만 검색해 보면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팀을 옮겼을 때마다 거의 매번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FA 자격을 얻었다는 것부터 프로야구에서 8년(대졸) 또는 9년(고졸)을 ‘한 팀에서 풀타임으로’ 뛰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FA 시장에서 ‘대박’을 친 선수라면 당연히 원래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평가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번 스토브리그 때는 유독 많은 선수가 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이런 현상이 심해 보일 뿐입니다.

실제로 지난해(2021)까지 프로야구 1군 경기에 10년 이상 출전한 야수는 총 296명입니다. 이 중 딱 100명(33.8%)이 팀을 한 번도 옮긴 적이 없는 ‘원 클럽 맨’입니다. (이번 FA 시장에서 팀을 처음 옮긴 선수도 여전히 ‘원 클럽 맨’으로 분류합니다.) 10년 이상 뛰면서 팀을 한 번도 옮기지 않는 건 3분의 1 정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겁니다.

그럼 ‘원 클럽 맨’이 팀을 옮겨다닌 ‘멀티 클럽 맨’보다 방망이 솜씨가 더 좋았을까요? 원 클럽 맨 100명 통산 OPS(출루율+장타력)은 0.763이고, 멀티 클럽 맨 196명은 0.754였습니다. 원 클럽 맨 가운데 20%(20명)가 통산 OPS가 0.800 이상이었고 멀티 클럽 맨 가운데는 19.4%(38명)가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정도면 더 잘 치는 선수가 한 팀에 오래 머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가 팀을 옮기는 건 최근에 벌어지기 시작한 일일까요? 원 클럽 맨 100명은 2022년 현재 평균 46.6세, 멀티 클럽 맨은 46.9세입니다. 역시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선수들이 팀을 옮기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증거입니다.

‘파란 피’ 흐른다던 ‘양신’도 멀티 클럽 맨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선수 시절 원치 않은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선수 생활을 했다. [동아DB]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선수 시절 원치 않은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선수 생활을 했다. [동아DB]

기본적으로 선수가 ‘자의로만’ 팀을 옮기는 건 아니기에 이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양신’ 양준혁(52·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내 몸엔 파란 피가 흐른다”고 할 만큼 삼성을 사랑했습니다. 양신도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 뛴 이력이 있습니다. 1993년 삼성에서 데뷔해 2010년 삼성에서 은퇴했지만 그사이 트레이드 때문에 해태 타이거즈(1999)와 LG(2000, 2001)에 몸담은 적이 있습니다.

2002년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돌아간 양준혁은 “나는 삼성에 가고 싶어서 다른 팀에서 주는 백지수표를 거부했는데 너무 순진했다. 지금은 그렇게 안 할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원 소속팀 LG는 우선 협상 기간 4년간 36억 원을 계약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양준혁은 4년간 최대 27억2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삼성으로 돌아갔습니다.

통산 3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양준혁(0.950)보다 OPS가 높은 건 ‘라이온 킹’ 이승엽(46·0.960) 한 명밖에 없습니다. 실력과 팀에 대한 애정 모두 양준혁을 뛰어넘는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양준혁은 끝내 멀티 클럽 맨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구는 스포츠라기엔 너무 비즈니스적이니까요.

“야구는 물론 비즈니스다. 하지만 우리 팬들 하나하나가 팀과 팀의 장소에 개인적인 의미로 관계를 맺는다는 환상 덕분에 가능한 비즈니스다.”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에릭 브론슨 외 3명, 2013)’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이 붙은 책에는 이렇게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절이 나옵니다. 적어도 ‘프랜차이즈 스타’가 만족하지 못할 계약 조건을 제시한 팀에 조화(弔花)를 보낸 팬들이라면 이 구절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일 겁니다. SSG 류 단장이 팀을 옮겨서도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는 건 이 환상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박용택 KBS 해설위원은 선수 시절 내내 LG 트윈스에서만 활동했다. [동아DB]

박용택 KBS 해설위원은 선수 시절 내내 LG 트윈스에서만 활동했다. [동아DB]

선수 가운데서는 박용택(43·KBS 해설위원)이 이 환상을 가장 잘 이해했습니다. 리그 통산 최다 안타(2504개) 주인공 박용택은 LG에서만 19년을 뛴 원 클럽 맨입니다. 그저 한 팀에서 19년이나 뛸 만큼 운만 좋았던 게 아닙니다. 그가 원 클럽 맨으로 남은 건 본인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박용택은 “2014년 두 번째 자격을 얻었을 때 다른 구단에서 20억 원을 더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인생 길게 보면 그 정도 포기하고 영구결번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네, 야구는 비즈니스라기엔 너무 스포츠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팀 프랜차이즈 스타도 박용택처럼 이 환상을 충족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싶지만 이 애원도 돈가방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맙니다. 문제는 아끼던 선수가 다른 팀으로 떠났다고 야구를 끊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야구는 비즈니스라기엔 너무 스포츠적이고 스포츠라기엔 너무 비즈니스적’이라고 주문을 외우는 게 우리 팬들 정신 건강을 지키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신동아 2022년 2월호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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