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리테일 프라이스

  • 김민경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lden@donga.com

    입력2007-05-02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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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테일 프라이스
    모든 쇼퍼홀릭의 고민은 똑같다. 매시즌 ‘살 것은 많고 돈은 없다’는 것. 며칠 전 벤츠S-class를 타고 에르메스 버킨 백을 드는 한 쇼퍼홀릭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돈이 없어. 열심히 벌어야 할 텐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직접 돈을 벌어 쓰는 쇼퍼홀릭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유형의 쇼퍼홀릭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쇼핑할 때는 늘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그런데도 사기 때문에 쇼퍼홀릭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쇼퍼홀릭이 늘 갖게 되는 의문은 어째서 우리나라 물가가 이처럼 비싸냐는 것이다. 한국의 물가는 ‘살인적’이라는 뉴욕보다 더 높아 ‘연쇄살인’ 수준이다.

    얼마 전 도쿄에서 50만원에 좀 못 미치는 미니 드레스를 쥐었다가 ‘아무래도 좀 비싸다’는 생각에 아쉽게 놓고 온 적이 있는데, 서울에 돌아온 다음날 백화점에 가보니 같은 옷에 80만원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또 최근 화제가 된 한 향수의 경우 뉴욕에서 70달러에 팔린다는 기사를 봤는데 한국 백화점에선 15만원에 팔고 있었다. 며칠 전 한국의 백화점에서 39만원에 팔고 있는 M 슬랙스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125달러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며 클릭클릭해 마침내 배달 주소를 적게 됐을 때 알래스카, 도쿄까지 배송을 하는 이 회사가 유독 남한(South Korea)에는 배송이 안 된다며 ‘sorry’ 문구를 띄웠다. 입고 싶으면 눈뜨고 바가지를 써야 하는 현실이다.

    한국의 물가가 이렇게 비싸진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세금 때문에(업체측 주장), 고가 정책 때문에, 그리고 무역상들이 경쟁적으로 몰려가 브랜드에 엄청난 로열티를 주고 독점권을 따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수입사 대표는 20만원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제 가방을 수입해 한국 강남의 유명 매장에서 150만원대에 팔고 있었는데, 재고 부담 때문에 이 정도 폭리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전세계가 완전 자유경쟁체제로 들어서면 이런 ‘폭리’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완전 자유무역을 통해 인터넷 거래에서 관세가 사라지고 배송이 쉬워지면 한국 쇼퍼홀릭들은 같은 상품을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윤이 줄어든 백화점이나 숍들은 거대한 대리석과 샹들리에 몰을 유지하기 위해 인건비부터 줄일 것이고, 유럽이나 미국 매장처럼 손님이 줄을 서서 스태프를 기다려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건값이 싸진다면 쇼퍼홀릭으로서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건 완전 자유경쟁체제에서 우리 또한 전세계의 워커홀릭과 ‘완전히 자유롭게’ 경쟁해야 한다는 것도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모의 경제와 시스템, 문화적 배경을 통해 나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는 상대들과 말이다. 한미 FTA 체결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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