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원장은 임명장을 받은 뒤 “저 혼자만이 통일교육원장 자리를 얻은 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북한에서 오신 분에게 희망과 기대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 능력과 자질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1959년생인 그는 북한 정무원 건설부장(건교부 장관에 해당)이던 아버지와 러시아어 번역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간부 자제만 다닐 수 있는 남산고등중학교를 거쳐 김일성종합대를 다닌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교 및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그는 김일성종합대에서 교수를 지내다 중국 유학을 떠났다. 그가 인생의 모험을 결심한 것은 유학 때였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좀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이른바 ‘성분’이 좋은 집안 출신이지만 중국과 비교해보니 초라한 껍데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7월 한국으로 들어온 그는 엘리트 탈북자라는 평을 들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북한 경제를 연구하면서 탈북자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통일교육원장이라는 자리는 도전적인 과제가 많은 자리여서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이념적인 문제가 개입하는 통일교육 분야에서 그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처리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도 이런 기류를 모르는 게 아니다. 조 원장은 일단 어깨에서 힘을 빼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뭘 가르치려 가는 게 아니다”라며 “자료와 다른 분들의 경험을 활용해 국민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조 원장의 고위직 진출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탈북자들의 ‘코리안 드림’ 그 이상이다. 그를 시작으로 탈북자 사회에서 제2, 제3의 고위직 진출이 잇따를 전망이다. 남북이 통일된다면 남북을 모두 경험한 이들의 경험은 더욱 소중한 가치가 될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길잡이 역할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