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2020년, 달 따러 간다

나로호, 그 후…

  • 이재웅 | 동아이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입력2013-02-22 09:3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5, 4, 3, 2, 1, 발사!
    •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마침내 하늘문을 활짝 열었다.
    • 1월 30일 오후 4시 발사대를 떠난 나로호는 파란 하늘을 시원하게 가르더니 나로과학위성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해피엔딩으로 마감한 10년의 노력은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고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제시했다. 이제 목표는 달이다!
    2020년, 달 따러 간다
    “공황장애가 낫지를 않네요. 발사가 끝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요즘 약을 더 먹고 있습니다.”

    나로호 발사 성공 2주일 뒤인 2월 12일, 서울에서 다시 만난 조광래 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은 여전히 ‘나로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0년 넘게 나로호 발사의 총책임을 맡았던 조 단장은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지만 마음고생은 쉽게 사라질 문제가 아니었다.

    2010년 2차 발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조 단장은 갑자기 심장이 거칠게 뛰거나 숨이 가빠지는 일이 잦았다. 신경정신과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과거 국내 주요 위성의 제작 책임자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발사하던 날은 바빠서 잊어버렸지만 발사 성공한 뒤로는 꾸준히 약을 먹고 있어요. 의사가 약에 중독될 염려는 없다고 하는데….”

    사람 좋은 웃음 뒤로 54세 ‘한창 나이’가 무색하도록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가 눈에 띈다. 로켓 연구에 몸 바친 25년을 빛내주는 훈장처럼 보였다.



    훈장으로 남은 흰머리

    2020년, 달 따러 간다

    조광래 나로호발사추진단장.

    지성여신(至誠如神·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은 놀라운 힘이 있다). 나로우주센터 조 단장의 사무실에 붙어 있던 ‘중용’의 문구는 그의 삶에서 현실이 됐다. 발사를 앞두고 백일기도를 올렸다는 아내의 힘까지 더해진 덕분일까. 그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에 맡겨질 새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한국과 러시아 연구진, 취재진,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거리던 나로우주센터는 원래의 어촌 마을로 되돌아간 듯 고요하다. 또 한 번의 비상을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우주센터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외나로도에 있다. ‘나로’라는 이름도 마을 명칭에서 비롯한 것이다. 외나로도는 우주센터 최종 후보지로 발표될 당시 52가구 73명이 사는 자그마한 어촌 마을이었다.

    김민현 항우연 시설운영팀장은 조용한 섬 외나로도에 처음 내려온 2003년을 기억한다. 우주센터 건설기술그룹장이던 그는 직원 10명과 외나로도에 가설 사무소를 짓고 터를 닦기 시작했다. 산을 밀고 길을 낸 토목공사, 시설공사, 발사통제동·종합조립동 건설 등 지금의 나로우주센터를 완성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야말로 나로우주센터의 산 증인인 셈이다.

    “당시 늦둥이 아들의 유치원 재롱잔치를 못 가서 핀잔을 많이 들었어요. 이제 봄이 되면 그 녀석이 고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지요.”

    강산이 바뀔 만한 시간이 지난 후 외나로도는 한국 우주개발의 전진 기지로 거듭났다. 항우연은 센터 방문객이 올해 안에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곳은 로켓을 쏘아 올리는 발사대 시스템이다. 해발 390m인 마치산의 허리를 잘라 평지로 만든 뒤 그 아래에 지하 3층 규모의 발사대 설비를 채우고 그 위에 발사대를 세웠다. 한국형 발사체를 쏘아 올리려면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 발사대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한국형 발사체는 1.5t짜리 위성을 쏘기 위한 것으로 높이가 47.5m에 달한다. 100kg짜리 위성을 쏘아 올린 나로호가 33.5m인 것과 비교하면 14m나 더 높다. 아직 발사대 업그레이드 방안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나로호 발사대 옆에 더 큰 규모의 발사대를 세울 것으로 보인다.

    나로우주센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포인트가 하나 있다. 해안선을 따라 발사대로 가는 길 오른편에는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망향비(望鄕碑)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지내던 주민을 이주시키면서 그들의 애환을 달래고자 세운 것이다. 언젠가 이곳을 박차고 먼 우주로 날아갈 발사체와 위성에도 이 망향비의 의미는 새롭다. 10년 넘게 드나들며 제2의 고향이 돼버린 연구원에게도 망향비는 향수의 표지로 기억될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창이라고 했던가. 10여 년에 걸친 나로호 개발 사업은 한국 우주개발 계획에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가장 절절하게 깨달은 사실은 기술 선진국의 텃세와 견제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조광래 단장은 2004년 12월 러시아 측의 은밀한 제안을 생생히 기억한다. 항우연이 러시아 우주기업 흐루니체프와 1단 로켓과 발사대 시스템 등의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한 직후였다.

    선진국 텃세 심해

    “2단 로켓을 공짜로 줄 테니 우리 걸 그대로 쓰는 게 어떻겠소?”

    당시 흐루니체프의 사장이던 블라디미르 네스테로프는 한국이 2단 로켓을 자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2단 로켓도 가져다 쓸 것을 제안했다. 한국이 만든 2단 로켓이 잘못될 경우 1단 로켓이 애꿎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주 사업에서 중요한 고객인 한국이 우주과학 기술을 쌓아가는 것도 마뜩잖았다.

    조 단장은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2단 로켓을 자체 개발해 나로과학위성을 목표 궤도에 정확하게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한국이 확보해야 할 우주과학 기술은 새로운 것을 만든다기보다 앞선 나라가 쌓아올린 기술을 따라잡는 측면이 강하다. 방송통신 서비스, 지리정보 시스템 등 우주과학 기술의 활용 범위는 넓어지고 있지만 새롭게 진입하려는 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텃세와 견제가 여간 심하지 않다.

    이 때문에 한국과 기술협력 계약을 맺은 러시아는 처음부터 기술 이전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 실례로 러시아 측이 ‘지상 검증용 기체(GTV)’를 한국에 제공한 적이 있는데, 엔진만 빠졌을 뿐 1단과 똑같은 로켓을 무상으로 넘겨준 것이다. 러시아 측은 이와 관련해 불리한 계약을 체결한 책임을 물어 계약 책임자를 해임하고 말았다.

    돈을 주고도 러시아 측의 일정에 끌려 다녀야 했던 비애는 한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잊어선 안 될 과거로 남았다.

    “2018년이나 2019년 한국형 발사체를 발사하고, 2020년에는 달에 가는 것도 시도해보겠습니다.”

    나로호 발사 한 시간 뒤, 발사 성공을 공식으로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승조 항우연 원장은 한국의 우주개발계획 일정을 2~3년 앞당길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달로 가자!

    2020년, 달 따러 간다

    나로호 발사에 참여한 러시아 연구진.

    기존 계획은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600~800㎞ 궤도에 올릴 수 있는 한국형 발사체를 2021년 발사한 뒤 2023년 달 궤도선, 2025년 달 표면 착륙선을 쏘아 올리는 것이었다. 달 궤도선이나 착륙선은 한국형 발사체에 킥모터(고체연료 엔진)만 하나 더하면 올려 보낼 수 있으므로 한국형 발사체만 앞당겨 개발하면 이후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형 발사체는 2단인 나로호와 달리 3단으로 구성된다. 1단은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 추진력 300t을 내는 게 목표다. 2단에는 75t급 액체엔진 1기, 3단에는 7t급 액체엔진 1기를 올려 완성한다. 결국 75t급 액체엔진을 자체 개발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다행히 한국은 나로호 개발 사업과 별도로 30t급 액체엔진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연소기, 터보펌프, 가스발생기 등 핵심 부품 개발을 완료하고 각각의 성능 점검도 마쳤다. 다만 30t급 액체 엔진 전체를 조립한 채 시험은 하지 못했다. 75t급 엔진도 핵심 부품의 시제품이 나올 정도로 개발이 진척된 상태다.

    박태학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장은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230개로 나눠 분석한 결과 54개는 나로호를 통해 확보했고 156개는 국산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4개의 엔진을 하나로 묶어 제어하는 클러스터링 기술처럼 중요한 20개 기술은 국제협력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협력대상국을 정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러시아와는 지금까지처럼 공조체계를 유지하되 향후 우크라이나와 협력을 강화해 국제협력의 다변화를 꾀하려고 한다. 우주정거장을 발사하는 등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과도 앞선 인공위성 기술을 내세워 협력에 나설 계획이다.

    우주 전문가 1000명 확보 예정

    항우연은 기관 고유사업으로 달 탐사 연구에 3~4년간 1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했다. 달 탐사 계획은 달 주변을 50~100㎞ 고도로 돌며 지질자원을 관측하고 대기를 측정하는 달 궤도선과 달 표면에 직접 착륙해 토양을 분석하는 달 착륙선으로 나뉜다.

    앞서 달 탐사를 진행한 나라의 우주개발 사업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3년 전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탈 탐사사업에 협력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된 정보통신(IT) 기술을 바탕으로 탐사선 제어 프로그램 개발에 도움을 주면서 부족한 경험을 습득하려는 것이다. 일본에도 협력을 제안했다. 지질분석 실험장비 등의 부품을 제공하고 우주 관련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주발사체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기술뿐만 아니라 인력과 시험시설, 발사대 시스템, 산업체 등 네 가지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로호 이후 인력과 발사대 시스템은 어느 정도 충족됐지만 나머지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험시설이다. 한국은 75t급 액체엔진의 핵심 부품을 개발해놓고도 시험시설이 없어 성능 검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은 지난해 말 75t급 엔진 연소기의 연소시험설비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앞으로 터보펌프의 성능을 시험하는 설비와 엔진시스템 전체를 지상환경과 고공환경에서 연소시험하는 설비 등 6개 시험설비를 2015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연구를 담당할 인력이다. 나로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인력 200명에 산업체 인력까지 포함하면 약 500명의 전문가가 있지만, 정부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과 관련해 500명 정도의 인력을 더 양성해 1000명의 우주 전문가를 배출할 계획이다.

    인력은 안정적인 산업체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김승조 원장은 “국가가 우주개발 청사진 등을 제안해 시장을 이끌면 산업체는 따라올 것”이라며 “산업체가 투자를 늘리고 이들이 모여서 시너지가 생기면 학교에서도 우주 분야에 신경을 쓸 것이고 자연스레 연구인력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산업체의 중요성이 강조돼 있다. 우주개발 초기엔 정부가 이끌고 갈 수 있지만 결국 산업체가 나서야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당장 한국형 발사체에는 75t급 액체엔진 60~70개가 필요하다. 한 번에 동일한 모델 3세트를 만들어야 3차례 시험을 할 수 있는데, 세트마다 75t급 엔진이 5개씩 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엔진 4개를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개발하려면 엔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예산 배정 적어 울상

    항우연의 인력으로 이 많은 엔진을 다 만들 수 없으므로 산업체의 참여가 절실하다. 산업체는 항우연이 개발한 기술을 이전받아 대량생산을 하게 되는데, 영리 단체인 산업체가 뛰어들려면 정부가 나서서 우주개발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의 우주개발에 대한 수요는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발사한 인공위성은 우리별 1호부터 나로과학위성까지 총 14기다. 현재의 위성 수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위성의 수명을 고려하면 해마다 한두 기의 위성을 추가로 발사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 인공위성 수출이 늘면 자연스레 우리 발사체 수요도 늘게 마련이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 하반기쯤 전문가 공청회 등을 열어 ‘중장기 국가우주개발 비전’을 세워 우주개발 청사진을 완성할 계획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문제점을 파악했고 해법도 알았으며 계획도 잘 세워졌다. 이제 이들을 꿰어 현실로 이뤄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 동력은 바로 정부의 우주개발 의지와 안정적인 지원에 달렸다.

    안타깝게도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 1단계(2010~2014년)에 책정한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고 있다. 올해까지 4년간 계획된 예산은 3119억 원인데 실제로는 70%인 2193억 원만 배정됐다. 항우연 사람들은 “선진국의 우주과학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을 통해서라도 정치권이 관련 예산을 늘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을 2~3년 앞당기려면 시험시설 구축 등을 위해 당장 4000억 원이 필요하다. 박태학 단장은 “우주발사체 기술은 개발 초기에 예산이 집중돼야 이후 계획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산이 확보되면 대학 연구소에 연구를 발주해 연구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동시에 이들이 졸업 후 입사할 수 있는 산업체 육성도 진행된다.

    조광래 단장은 “과거 ‘자주국방’을 추진하면서 방위산업이 육성된 것처럼 우주개발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전담기관까지 마련한다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계획은 더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