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朴心 확실히 알려 뒤집자”
- 비박 “朴心만 차단하면 김무성 뜻대로”
- 여권 내 ‘5개 공천 동아줄’ 論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요즘 이 평화스러운 도시에 전운이 감돈다. 이곳 출신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그의 영향권에 있는 여러 의원은 이미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 레드카드를 받은 듯하다. 대신 박심(朴心)을 업은 것으로 알려진 뉴 페이스가 속속 몰려온다. 이에 대해 ‘유승민과 현역 무리’는 일전불사를 각오한다. 옛날 왕의 아성에서 친위군이 역모를 꾸민 뒤 진압하러온 관군과 대치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 핵심인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대구 달서병)가 자백한다. 조 부대표는 “2016년 총선 대구 출마예정자로 거론되는 인사 가운데 4~5명은 청와대와 교감하고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추가로 한두 명 더”
조 부대표는 통화에서 “청와대와 교감했다는 대구의 4~5명이 누구냐”고 묻자 “그걸 어떻게 말하느냐?”고 했다. 예상되는 인물 몇 사람의 이름을 꼽으며 다시 묻자 “정종섭, 윤두현, 곽상도, 전광삼…그 정도 상황”이라고 답했다. “추가로 한두 명이 더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 사람이 박 대통령과 직접 교감했나요.
“그야 뭐 상상에 맡기는 거죠. 다만 대통령께서 누구는 어디에 나가라고 그렇게 하실 분은 아니잖아요?”
▼ 그러면 누구와 교감했다는 건지….
“생각해보세요.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출신이) 불쑥 ‘저 대구에 나가겠습니다’라고 했겠어요? 그런 건 아니고, 청와대와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으니 나가는 거죠.”
‘교감’이 ‘낙점’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12월 8일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힌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대구 동갑으로 갈 것 같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동을)의 이웃 선거구다. 현역은 류성걸 의원으로, 세 사람은 경북고 57회 동기다. 유 전 원내대표에겐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도전장을 냈다. 기자 출신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서구로 나설 모양이다. 현역은 김상훈 의원이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달성군에 도전할 것 같다. 현역은 이종진 의원이다.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권은희 의원이 버티는 북갑에서 활동한다.
청와대와 교감하고 나섰다는 이들 4명은 실제로 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 출신이다. 이들이 도전장을 내민 지역의 현역들은 ‘국회법 파동’ 때 유승민 편에 섰다가 청와대의 눈 밖에 났다는 초선의원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나 때문에 공천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조 부대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조 부대표가 언급한 “추가 한두 명”과 관련해 친박계 공공기관장과 언론계 인사 차출설이 돈다.
“현역 낙원 만들건가”
▼ 청와대와의 교감 출마는 전략공천을 의미하는 건가요.“전략공천, 이 부분은 시간이 좀 더 지나야 무르익겠죠. 지금 상태에서 어떻다 말할 상황은 아니고, 야당의 변화가 워낙 크니 그걸 감안해야 하지 않겠어요? 상황을 좀 봅시다.”
▼ 김무성 대표는 ‘전략공천을 하려면 날 죽이고 하라’는 말을 했다는데요.
“전체적으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 비박계에선 “내각·청와대 출신은 험지(險地)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험지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기는 선거, 이기는 공천을 해야죠.”
조 부대표는 결선투표제 적용 범위에 대해선 “여러 경선 후보 중 1위 득표자가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적용하는 게 결선투표제라는 용어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결선투표제는 친박계 수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요구하고, 김무성 대표가 수용했다. 친박계는 결선투표의 범위를 넓히려 한다. 반대로 비박계는 1위와 2위의 득표차가 오차범위 내에 있을 때로 제한하려 한다. 결선투표를 하면 비현역 표가 하나로 결집하므로 현역이 불리하다. 외견상 친박계는 되도록 현역을 교체하려 하고, 비박계는 현역을 지켜주려는 것으로 비친다.
조 부대표의 ‘청와대 교감’ 발언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친박계 인사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천 개입 그 너머의 것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공천 개입이 반드시 나쁜가. 그렇다면 당에만 맡겨야 하나. 당의 주류에게만 맡기면 아마 이들은 컷오프도, 전략공천도, 물갈이도, 중진용퇴도 없는 ‘현역 낙원’을 만들 것 같다. 이들의 전략이 김무성 대표에게 줄 선 현역을 다 당선시켜 총선 후 김무성 대통령 만들기 아닌가. 대신 나쁜 정치인이 또 의원 되고 20대 국회는 더 나빠지고 나라는 암울해지고….”
친박계가 청와대와 출마예상자의 교감을 자백(?)까지 하는 건 그만큼 판이 불리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지지자들에게 박심을 확실히 알려 뒤집어보려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반면, 비박계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것 같다. ‘박심만 차단하면 김무성 뜻대로’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비박계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분리해 대응한다. 또 청와대가 중립을 잘 지킨다고 치켜세운다.
김무성 대표의 핵심 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대통령께서 공천에 개입할 길은 절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안전하게 (국회로) 진입하기 위한 발판으로 대통령을 이야기하고 측근임을 자임하는, 일종의 호가호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 요동칠 사안 아냐”
▼ 청와대는 아니고 정치권의 친박계 일부가 호가호위를 한다?“저는 그렇게 봐요. 우리 집권당이 공천 문제를 놓고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죠. 김무성 대표가 ‘전략공천 하지 않겠다. 비례대표 한 석도 추천하지 않겠다’고 했잖습니까. 당 대표가 자신의 지분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마당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공천권 행사에 간여하거나 어떤 관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거죠.”
▼ 김 대표가 청와대와도 공천 룰에 대해 얘기를 나누나요.
“제가 알기론 아직 대통령정무수석(현기환)이 공천과 관련한 청와대의 뜻을 김무성 당 대표와 구체적으로 상의하거나 협의하자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심판’ ‘진실한 사람 선택’을 얘기하며 국회 심판을 주장했는데요. 공천에 영향을 주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않나요?
“대통령께서 법안 처리가 제때 뒷받침되지 않는 현실을 토로한 거죠. 정치권 전반이 요동칠 정도의 사안은 아니에요. 친박계 일부가 그야말로 확대해석하고 있죠. 대통령께서 누굴 미워하고 예뻐할 이유가 없어요. 다만 대통령 측근을 자임해 입지를 확보하려는 목소리들이 여러 해석을 낳는 거죠.”
▼ 결선투표제가 대구경북 등의 물갈이에 활용될 거란 분석도 있는데요.
“특정 지역 물갈이 의도를 가진 세력이 결선투표제를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죠. 그러나 결선투표 한다고 현역을 인위적으로 물갈이할 수 있나요. 명확한 기준을 갖고 객관성을 확보해야죠.”
▼ ‘청와대 참모와 내각 출신은 새누리당의 판세가 어려운 지역에 출마하라’고 요구했는데요.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사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은 험지에서 분발해 당의 안정적 의석 확보에 도움을 주는 게 바람직하죠.”
친박계와 비박계는 결선투표 외에 경선에서의 국민 참여 비율 문제로도 다툰다. 친박계는 현행대로 국민 참여와 당원 투표를 5대 5로 하자고 말하지만 비박계는 국민 참여 비율을 7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의 100%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가 물 건너간 만큼 국민 참여 비율이라도 높이자는 것이다. 김성태 의원은 “명색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지향했던 정당이 5대 5로 가면 안 된다. 3 대 7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4월 13일 밤 ‘김무성 정치’ 시작”
비박계의 속마음은 ‘우리에게 유리한 지금의 판이 틀어져선 안 된다. 총선 때까진 친박계를 끌어안고 가자’인지 모른다. 한 비박계 인사는 “4월 13일 투표일 밤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선언하는 그 순간 비로소 ‘김무성 정치’가 시작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한다.“대통령과 당, 국회가 대등하게 국정을 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 열심히 잘하지만 독재자의 딸, 불통 이미지는 어찌할 수 없다.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려면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현실정치인 중에 김무성 대표가 이 일의 적임자 아니겠는가.”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에게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고 전략공천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홍 의원의 상황 인식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김 대표가 현상 유지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고 알아서 판단하세요. 언론에서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니 첨언해서 말씀드릴 게 없고…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후보자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면 그냥 현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냐의 문제겠죠. 괜히 틀을 바꿨다가 우리(김무성계)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그냥 지금처럼, 우리가 충분히 배부른데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다시 흔들어서 우리한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면 낭패다, 그런 생각 아니겠어요?”
“결국 실력자 의중이 중요”
당 내에선 수면 아래이긴 하지만 상대방을 겨냥한 비방전도 벌어진다. 비박계 한 의원은 사석에서 “친박계 모 인사가 ‘공천헌금’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공천헌금이 오가나요.
“그런 사례가 있는 걸로 들었어요.”
▼ 공천을 앞두고 줄을 대는 건가요.
“‘누구는 친박계 아무개의 내락을 받았다더라’, ‘친박계 핵심끼리도 자기 사람 심기 위해 경쟁한다더라’ 하는 소문은 많이 듣죠.”
새누리당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요즘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핵심부에 줄을 대기 위해 온갖 채널을 동원한다. 여의도 정가에선 누가 밑그림을 그리는지, 어떤 현역 의원이 밀려나는지에 대한 괴담이 돈다. 청와대 참모들의 이름도 들린다.
수도권에 출마하려는 한 인사는 선거기획사를 찾아 공천 문제를 상의하다가 “확실한 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기획사 측은 “우리와 계약하면 핵심 인사와 연결해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여권 일각에선 “공천을 받으려면 5개의 동아줄 가운데 하나를 잡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친박계에선 최경환 경제부총리, 서청원 최고위원, 김재원 의원이 회자된다. 비박계에선 김무성 대표로 창구가 단일화됐다고 한다. 김 대표가 ‘공천기득권 내려놓았음’이라고 공표했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러냐?’라는 말이 나온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한 그에게 줄을 대려는 출마 희망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의외로 거론되는 인물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를 떠났지만 여전히 박 대통령의 신뢰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 청와대 참모들과도 마음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관계자는 “‘컷오프·전략공천 없네, 결선투표 하네’ 말이 많지만 명분과 현실은 다르지 않나. 예나 지금이나 공천은 결국 사람, 실력자의 의중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선투표 역시 조직이 밀어주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