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틈 노린 ‘방역’ 상품
약사법 위반 소지 마스크까지 시장에 버젓이
고글로 비말·바이러스로부터 눈 보호?
3일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억제하는 패치?
당국 “근거 없음” 전문가들 “효과 없음”
“불안 심리 이용한 ‘일종의 사기’”
20대 김모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차단해 준다는 코로나19 방역 고글과 모자를 구입했다. 물건을 받아보니, 상품 어디에도 코로나19 ‘방역’ 효과가 인증됐다는 문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일반 고글이나 선캡과 큰 차이를 느낄 수도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공포를 틈타 이윤을 추구하는 악덕 상술이 판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카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품을 코로나19 ‘방역’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며 판매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동강 물을 자신의 것처럼 팔았다는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 그도 울고 갈 ‘코로나19판 봉이 김선달’을 ‘신동아’가 취재했다.
방역 마스크 ‘낚시’ SENSEME 마스크
‘94’라는 문구로 혼동을 일으키는 SENSEME 마스크(왼쪽).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피해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다. “KF94인 줄 알고 샀다” “1장당 3000원 주고 사왔는데 알고 보니 KF94 마스크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94만 보고 KF 마스크인 줄 알고 살 것 같다” 등 사기 판매를 성토하는 글이 많았다. 그럼에도 해당 마스크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는 물론이고 쿠팡, G마켓, 옥션 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은 장당 2000~3000원대로 형성돼 있었다.
판매자들이 허위 사실을 내세우는 점도 문제였다. KF94 마스크라고 광고하는 판매자도 있었고, 현재는 식약처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지만 식약처 인증대기 중이라는 판매자도 있었다. 식약처에 확인한 결과,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해당 마스크는 인증을 받은 적도, 인증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해당 마스크의 제조는 물론 판매에도 위법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마스크 포장지에는 ‘황사와 미세먼지로부터 호흡기 보호’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 문구는 해당 마스크가 의학적 효능·효과 등이 있는 제품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 오인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이를 판매한다면 약사법 61조 위반으로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약사법 61조는 “누구든지 의약품이 아닌 것을 용기·포장 또는 첨부 문서에 의학적 효능·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하거나 이와 같은 내용의 광고를 해서는 아니 되며, 이와 같은 의약품과 유사하게 표시되거나 광고된 것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저장 또는 진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역’ 효과 강조하지만…“근거 없는 상술”
목걸이, 고글, 모자 등 각종 상품이 코로나19 ‘방역’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명시한 지키미 패치(오른쪽 아래).
SENSEME 마스크 외에도 소비자를 현혹해 구매를 유도하는 상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코로나 고글’이라는 문구로 검색하자 수십 가지 상품이 화면에 떴다. 각 상품의 판매자들은 ‘방역 고글’임을 강조하며 코로나바이러스를 완벽 차단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커다란 고글이 비말과 바이러스로부터 눈을 보호해주기에 방역 효과가 있다는 논리였다. 1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었다.
‘코로나 방역 모자’도 눈에 띄었다. 이 역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검색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격은 수천 원대에서 2만 원대까지 다양했다. 해당 상품들은 일반적인 선캡이나 벙거지 모자에 우레탄 비닐을 씌우고선 비닐이 침과 바이러스를 막아준다며 ‘방역 모자’임을 표방했다. 개중에는 특허 상품임을 강조하는 제품도 있었지만 확인 결과 ‘디자인’ 관련 특허일 뿐 방역 효과와 관련된 특허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글은 ‘보호구 안전인증고시’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보호구로 관리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을 방역과 관련된 보호구로 인정한 바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식약처에서 방역 효과를 따로 인증받지 않은 이상 기존 고글은 감염병 예방과는 관계가 없으며 방역 효과를 강조한 것은 ‘상술’”이라고 경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역시 “식약처의 별도 인증이 없다면 과장광고 상품에 해당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마스크·휴대전화에 부착하면 바이러스 억제?
SNS를 통한 지키미 패치 거래. 판매자는 기자에게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며 구매를 유도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살균해 착용자를 보호해 준다는 목걸이도 있었다. 판매자는 해당 목걸이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제균(除菌) 목걸이”라며 “목걸이에서 분출되는 이산화염소가 반경 50㎝ 이내의 바이러스를 살균해 바이러스로부터 건강을 보호해 준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제균 목걸이의 효과는 판매자 측의 주장일 뿐 입증된 바 없기에 효과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목걸이를 통해 염소가 계속해 분출된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착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경고했다.
마스크, 휴대전화 등에 부착하기만 하면 3일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억제할 수 있다는 패치 형태의 상품도 나왔다. 해당 상품은 3월 30일 경남제약이 모자이크홀딩스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전국의 약국과 온라인에 공급할 것이라고 밝힌 ‘지키미 패치’다.
상품의 표지엔 ‘사스(코로나바이러스-감기변종바이러스) 87% 억제효과 확인’이라고 기재돼 있어 마치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19 방지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상품 뒷면에는 한국산업기술대 생명화학공학과를 개발 기관으로 기재, 상품의 신뢰도를 더했지만 정작 한국산업기술대 측은 패치의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산업기술대 측 관계자는 “해당 패치에 사용된 물질은 2004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인 돼지 설사 유행성 바이러스에 대해 테스트된 것이라 현재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또한 판매사는 패치 속 물질이 기화하며 바이러스를 잡아준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당시 실험 결과는 바이러스에 원액을 투여해 얻은 것이기에 효과가 같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국산업기술대는 패치에 사용된 시료만 개발했을 뿐 패치 개발엔 관여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패치에 사용된 물질을 개발한 서만철 한국산업기술대 생명공학화학과 교수 역시 “돼지 설사 유행성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개발된 물질이다. 현재 코로나19와는 상관없다”면서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판매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럼에도 온라인 공간에서 이 제품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4개들이 한 팩을 1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SNS에서 전국 최저가로 ‘지키미 패치’를 판매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판매자에게 구입을 문의해 보니 “도매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으며 최소 수량 100개부터 도매 단가로 거래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팩당 단가는 6600원이었다.
판매자는 “인터넷 쇼핑몰에선 한 곽당 1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나는 직거래를 통해 최저 단가로 판매하고 있다”면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허가받은 제품이라 효과는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제품에 적혀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19가 맞느냐”고 묻자 “맞다. 그것을 예방하고자 개발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판매자가 제품의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 링크로 접속하니 ‘회사 소개’란엔 마치 서 교수가 제품의 개발자이자 판매자인 것처럼 쓰인 글이 있었다. 서 교수에게 확인한 결과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이런 홈페이지가 있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학교 측에 알려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에 대해 경남제약 관계자는 “우리 회사 제품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이 제품에 대한 유통 계약만 맺은 상황”이라며 “게다가 유통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현재 판매되는 패치는 우리 회사와 상관없으며 타 판매업체에 의해 기존에 판매되고 있던 상품”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식약처 판단 근거로 위법 유무 따져볼 것”
이와 같이 소비자를 울리는 악덕 상술을 처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단순히 ‘방역’ 효과를 표시한다고 해서 즉시 위법 제품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효과의 유무, 거짓·과장 정도 등의 요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구조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해당 상품들의 의학적 효과에 대한 식약처의 판단을 우선적 근거로 위법 유무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정부 차원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굉장히 불안한 상태다. ‘뻔해 보이는’ 상술임에도 불안한 심리로 인해 그것을 구입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덜어보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상술은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사기’다. 정부 차원의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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