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직장인이 은퇴 후 30년 동안 쓸 노후자산 10억 원을 현금으로 마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투자의 기본 원칙만 제대로 안다면 현재 월급을 아껴 노후자산을 만드는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적절한 자산배분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은퇴 후 생활비 수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평균 230만 원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연간 은퇴생활비에 은퇴 기간을 곱하면 현재 시점에서 총 은퇴자금이 계산된다. 월 230만 원이면 연간 2760만 원이고, 60세에 은퇴해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30년의 은퇴기간 동안 필요한 자금은 8억2800만 원이다.
노후자금 10억 마련하기?
그런데 이 금액은 현재 가치로 계산된 것으로 오늘 은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금액이다. 따라서 이 금액을 자신이 은퇴하는 미래 시점의 가치로 환산해야 현실적인 은퇴자금이 산출될 것이다. 현재 40세라고 하면 은퇴까지 20년이 남는다. 현재 8억2800만 원은 20년 후 가치로 얼마일까. 물가상승률을 2%로 가정했을 때, 20년 후엔 약 1.5배인 12억3036만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진짜 10억이 넘는 돈이 필요하단 얘기다.이만큼의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뭐가 있을까? 첫째, 매월 512만 원을 집안 금고에 쌓아놓는다(수익률 0%라는 말이다). 둘째, 매월 439만 원을 예금한다(세후이자 1.57%일 때). 지난해 발표된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중위월급이 208만 원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방법이다.
다음 방법으로 투자수익이 연 15%인 상품에 가입해 매달 94만 원씩 불입하면 된다.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를 권유하는 상품들이 이런 식의 사례를 든다. 월 94만 원이면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만들어볼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문제는 연평균 15% 수익을 20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활비를 절반인 115만 원으로 줄이면, 은퇴 시점에 6억1518만 원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60세부터 쉬는 게 아니라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다. 월급이 적더라도 70대까지 일할 수 있다면, 은퇴할 때까지 모아야 할 자금은 훨씬 줄어든다. 또한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급여가 올라가고, 차츰 저축금액을 늘려간다면, 은퇴 준비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60세 이후에 할 일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60세까지 12억 원을 만드는 일보다는 현실적이지 않은가.
은퇴 준비,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평생 직장생활로 모은 돈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 돈을 잘 굴려 수익률을 높인다면 좋지 않겠는가. 돈 굴리기, 즉 ‘투자’란 금융시장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지면 평생 모은 돈이 날아갈 수도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투자 실패의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1720년 영국에 발생한 주식시장의 거품과 폭락으로 재산을 날린 천재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영국의 남해회사 주식에 잘못 투자하는 바람에 2만 파운드(약 20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당시 70대 후반으로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린 뉴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다.”‘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자신’과 ‘상대방’을 잘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투자에서 상대방은 금융투자시장이다. 투자자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시작해야 돈을 잃지 않는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은 심리학자가 수상했다. 제한된 정보와 시간 제약으로 사람들의 판단이 자주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 된다는 점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는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뉴턴처럼 잘못된 판단으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뇌를 연구하는 신경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편도체, 전전두엽 피질 같은 뇌의 부위가 특정 상황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응함을 알게 됐다. 행동경제학에서 밝혀낸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들이 뇌의 활동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일부 사람이나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으며, 그들의 돈을 잃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투자자들이 구성원으로 있는 금융투자 시장 역시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인다. 비정상적인 시장의 모습은 자산 가격에 거품이 형성되고 또 붕괴되면서 나타나고 이를 금융위기라고도 부른다.
수백 년 금융시장 역사에서 금융위기의 양상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영어권 속담에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금융위기의 역사 또한 반복된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비슷한 구조로 그려진다. 이러한 역사의 반복은 사람들이 역사에서 배우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나 본성이 변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생존과 관계된 어떤 것이 인간의 두뇌나 유전자 어딘가에 새겨져 있어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아 있는 최근의 사례로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IMF사태), 2000년대 초반의 IT주 버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있다.
IMF 외환위기 때 많은 회사가 부도 나고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 벤처신화에 덩달아 투자했다가 주식이 눈앞에서 휴지조각이 되고, 수익률 좋던 펀드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반 토막이 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시장은 위험하니 아예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투자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지금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다. 실질금리란 통장에 찍혀 있는 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값을 말한다. 통장에 찍힌 이율이 2%인데, 물가상승률도 2%라면 실질금리는 0%이다. 그런데 이자에 붙는 세금(15.4%)을 제하고 나면 통장에 입금되는 이율은 2%가 아니라, 1.7% 정도다. 이때 실질금리는 -0.3%이다. 이것이 ‘실질금리 마이너스’라는 말이다.1990년대 후반의 세후 실질금리는 4~6% 수준으로 꽤 높았다. 예금만으로 내 돈이 불어나던 시절이었다. 세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던 시기는 2004년, 2008년, 2011년으로 각각 신용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남유럽 사태 등 경제 환경과 관계가 밀접하다.
예금을 해서 이자를 받아도 실제로는 손해가 난 시기는 그때만이 아니다.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세후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예금만으로는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닥친 첫 번째 위험이 이것이다. 내 돈이 사라지고 있는 이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최소한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률을 유지해야 애써 모은 내 돈을 지킬 수 있다.
투자에서 두 번째 위험은 변동성(불확실성)이다.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변동가능성을 말한다. 하락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투자자의 심리를 불안정하게 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 판단을 내리게 한다. 이는 투자의 실패를 가져오는 주요 요인이다.
주식과 같이 변동성이 큰 투자자산의 위험을 낮추는 방법이 있다. 장기투자가 그것이다. 미국에 있는 5가지 유형의 주식을 대상으로 약 30년간 수익률과 손실 확률을 조사했다. 한번 사면 각각 1년, 5년, 10년이 지난 후에 팔았다고 가정한다. 손실확률은 팔 때 수익이 마이너스인 경우를 말한다.
연수익률은 대부분의 주식과 투자기간에 걸쳐 14~18%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다. 검증 결과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손실 확률이다. 투자기간이 늘어날수록 손실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어떤 주식이든 1년 투자 시 14~23%가 손실이 났다. 하지만 투자기간이 길어질수록 손실확률이 낮아졌고, 10년 투자 시 모든 주식의 손실확률이 0%로 떨어졌다. 장기투자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수익률은 손해 보지 않고, 손실확률만 낮아지는 것이다. 10년이 길다면 5년만 투자해도 손실확률이 0.3~7% 수준으로 크게 낮아진다. 장기투자의 효과는 국내 주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분산투자
자산배분 전략에서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길 점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느냐 여부다. ‘우상향’한다는 말은 가격이 오르고 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자산 가격의 움직임을 그래프로 그렸을 때 오른쪽으로 갈수록(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올라가는(상향) 모양을 말하는 것이다. ‘장기적’이라는 말은 일시적으로는 가격이 떨어지고 수익률이 하락할 수도 있지만 길게 봤을 때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러 국가의 투자자산을 조사했을 때 장기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것은 주식이다. 주식은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첫 번째로 포함돼야 할 자산이다.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으로는 인덱스투자를 권한다. 개별 주식을 분석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투자가 직업인 기관투자가를 이길 확률은 매우 낮다.
인덱스투자
인덱스투자란 주식시장 전체를 사는 것이다. 주식회사의 총합이 주식시장인데, 실적이 나빠진 기업은 퇴출되고, 좋은 회사들이 진입한다.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것은 바로 지속적으로 진입하는 신규 기업들 때문이다.포트폴리오에 포함될 다음 자산은 주식과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이다. 상관관계가 낮다는 것은 주식이 오를 때 가격이 떨어지고, 반대로 주식이 하락할 때는, 가격이 오르는 것을 뜻한다.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편입하면 포트폴리오의 위험이 낮아진다.
전통적인 투자 대상 중에는 국채가 있다. 왜 주식과 국채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까.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국채는 안전자산, 주식은 위험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안전과 위험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나라(국채)가 망할 확률은 아주 낮지만, 상대적으로 회사(주식)가 망할 확률은 꽤 높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투자자금을 회수해 국채에 투자한다. 반대로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는 국채에 투자돼 있던 돈을 찾아서 주식시장에 투자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식과 국채는 낮은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한국의 투자자들은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국내 투자자에게 주식과 채권의 관계는 반대의 성질을 갖는다. 국내 투자자들은 경제 환경이 좋아 보이면 위험자산인 주식에 투자하고, 반대의 경우 채권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금 운용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그들에게 한국의 주식이나 채권은 모두 위험자산이다. 즉 글로벌 경기가 안 좋아진다 싶으면 위험자산인 한국의 주식, 채권 모두에서 돈을 빼간다. 반대로 경기가 좋아져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지면, 다시 한국의 주식과 채권 모두에 돈을 넣곤 하는 것이다. 이런 외국인 투자자들의 특성으로 인해 한국의 주식과 채권의 움직임은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리밸런싱
그렇다면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어떤 자산에 투자해야 낮은 상관관계의 이점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달러자산의 편입이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과도 연관된다. 실제 국내시장에서 2000년 이후 주식과 국채의 상관관계는 -0.12지만, 주식과 달러/원 환율의 상관관계는 -0.42다. 국내 주식투자자의 경우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달러자산의 편입은 필수다.금은 어떨까. 역시 상관관계의 관점에서 판단해볼 수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달러(미국국채)를 안전자산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달러의 위험을 방어할 자산으로 금을 선택하곤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금은 달러에 대해 낮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포트폴리오에 금을 편입하고 싶다면 이러한 상관관계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투자 시점과 매매 타이밍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자산배분 투자자에게 가장 좋은 투자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앞서 선정한 투자 대상의 장기적인 성장(우상향)을 믿고, 단기적인 이벤트에 초연해야 한다. 주식이 떨어진다면 채권이 오르지 않겠는가. 내일 가격이 하락해도 장기적으로 다시 올라갈 것이다. 투자 격언 중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뽑으라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라’가 아닐까 한다. 최저점에 사서 최고점에 파는 건 어려우니,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아라’라는 말도 있다. 두 문장 모두 누가 봐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니 투자자 대부분이어려워하는 문제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겠는가.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
자산배분 전략은 매수와 매도 타이밍에 대한 고민을 덜어준다. 최고의 매매 타이밍을 찾아준다는 뜻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타이밍을 찾아준다는 말이다. 자산배분 전략에서 매매 타이밍을 대체하는 부분을 리밸런싱(자산재분배)이라고 한다.
초기에 투자했던 자산별 투자비중이 자산 가격 등락에 따라 변하게 된다. 이때 가격이 올라 비중이 높아진 자산을 일부 팔아,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사는 거다.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구입하니,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파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리밸런싱은 분산투자의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무기다.
많은 연구에 의해 자산배분의 유효성이 검증됐다. 종목 선택이나 매매 타이밍을 이용하는 방법보다 훨씬 우수한 성과가 자산배분에서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자산배분이 유용한 투자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연기금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을 비롯해, 전 세계의 다양한 연기금이 수백조 원의 자금을 운용할 때 자산배분 전략을 사용한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개인투자자가 따라해볼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이다.
다행히 ETF라는 상품이 있다.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고, 매우 낮은 비용구조를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투자대상들에 해당하는 ETF 상품을 골라 돈을 나눠 넣으면 된다. 이런 상품이 나왔다는 것이 개인투자자에겐 축복이다. 원칙을 지키며 꾸준히 실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는 거친 투자의 바다에서 순항할 수 있는 좋은 행동장치임을 잊지 말자. 자산배분 전략을 통해 ‘저위험 중수익’ 투자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