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보수 다 바꾸려 대형 사고 쳤다
- 회견 직전까지 文의 ‘전대 수용’ 기대했건만…
- 같은 당에서 생각 다르다고 내가 새누리?
- ‘무난히 지는 정당’ ‘야당 하기로 작정한 정당’
김형우 기자
안 의원은 12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야당으론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 수 없다.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신당 창당을 예고했다. 2014년 3월 민주당과 합당할 때 “맨손으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이라던 그가 1년 9개월 만에 “안에서 도저히 안 된다면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제는 허허벌판에 혈혈단신 나선다”며 초연히 당을 떠났다. 정치권은 그의 탈당에 따른 총선 ‘셈법 찾기’로 긴박하게 움직였다.
안 의원의 결단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결국 내쳤다”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탓하는 쪽과 “야권 공멸의 길로 나섰다”며 안 의원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모든 언론이 그를 주목한 12월 14일, 안 의원은 지역구 경로당을 찾아 ‘어머니들’을 만났다. 향후 ‘로드맵’을 묻는 기자들에게는 “지금 어머니들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나중에 시간을 내겠다”며 말을 아꼈다. 노심초사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나는 국민 목소리를 듣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정된 건 없다”
▼ 결국 탈당 기자회견을….“뭐, ‘대형 사고’ 쳤습니다(웃음).”
▼ 오늘은 경로당에 가셨네요.
“지역구 경로행사가 있어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설명을 드렸어요. 저녁에는 지역 위원회 당직자분들에게 설명드렸고요.”
▼ 뭐라고 하던가요.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시네요.”
▼ ‘대형 사고’ 수습은 어떻게 할 겁니까.
“결정된 것은 없고, 열심히 의논 중입니다.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현장의 목소리는 매번 들어도 새로워요. 제가 국회 보건복지위에 오래 있다보니 장애인 정책은 꽤 많이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 ‘신용카드를 신청했는데 본인 확인을 전화로 한다’고 하시더군요. 현장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비합리적인 부분들을 놓치는 일이 많아요.”
▼ 깃발을 들었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어제 국회 정론관에 기자회견 하러 걸어가면서도 기대의 끈은 놓지 않았습니다. 문 대표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발표하지 않을까 하고. 연단에 섰을 때 ‘아, 이게 내 운명이구나’ 했습니다. 그러니 뭔가 준비할 상황은 아니었어요. 어제 처음 보좌진과 의논했어요.”
“엉뚱하게 나를 비판”
▼ 기자회견 하는 날 새벽에 문 대표가 안 의원 자택을 방문했죠.“밤늦게 직접 집에 찾아오시는 것은 최선을 다해 설득하겠다는 태도 아닌가요? 저는 설득을 하기 위한 ‘진전된 제안’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엄중한 위기상황에서 10대 혁신안을 제안하고, 이걸(혁신 전당대회) 받아달라고 두 번에 걸쳐 말했는데.”
안 의원은 지난 9월 ‘낡은 진보 청산’ ‘당 부패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이라는 혁신안 기조를 밝힌 뒤 두 차례에 걸쳐 10대 혁신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부패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당원에 대해서는 당원권을 정지하고, 공직후보자격심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간단하게 지난 얘기를 말씀드릴게요. 문 대표 당선 직후 국립현충원에 참배하러 갈 때도, 전직 대표는 관례상 동행하지 않는데 따라갔어요. 전직 대표를 ‘소집’해 현안에 대해 물을 때(원탁회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했고요. 저는 원탁회의를 하면 자칫 최고위원회의를 무력화하거나, 반대로 병풍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하던 사람입니다.”
안 의원의 목소리 톤은 차츰 높아졌다.
“지난 4·29 재보선 때 ‘문재인 오른팔’이라는 사람(정태호 후보)이 서울 관악을 공천을 받았을 때에도 열심히 그를 도왔습니다. 그 선거에서 새누리당 3석, 무소속(천정배 의원) 1석을 내주고 ‘4대 0’으로 패배했을 때에도 문 대표를 찾아갔어요. 곧 있을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단일 후보를 만드는 정치력을 발휘해달라고 조언했어요. 언론에도 ‘문 대표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고요. 나는 계속 도와줬어요.”
2015년 12월 13일 탈당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의 짊문에 답변하는 안철수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다시 위기가 찾아오니 혁신위원장을 받으라 하더라고요. 그런데요, 혁신이라는 게 당 대표의 의지와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원회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10대 혁신안 내는 사람이 왜 혁신위원장 안 했느냐’고 해요. 당 혁신안이 10차례 발표될 때마다 국민은 어땠나요. 실망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었잖아요? 정당 지지율이 올라갔습니까? 국민이 보기엔 아무것도 안한 겁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실패했다’고 한 거고요.”
▼ 10차 혁신안 발표도 남았는데요.
“10차 발표 끝나고 비판하면 ‘뒷북친다’고 할 게 뻔하고…. 그래서 그때 3가지 혁신 방안을 발표했고, ‘부패척결’과 ‘낡은 진보 청산’을 위한 10대 개혁안을 냈고요. 더 큰 문제는 제가 개혁안을 말하는데 아무도 답을 안 한다는 겁니다. 10대 개혁안 중 ‘이건 좋고 이건 아니다’ 하면서 혁신 논의에 물꼬를 터야지 엉뚱하게 인터뷰를 통해 나를 비판하는 겁니다.”
문 대표는 10월 1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 의원이 주장하는 낡은 진보는 형용 모순이고 새누리당 프레임을 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이 대목을 설명하며 무척 화가 나는 듯 “아~” 하고 장탄식을 했다.
“11월이 되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어요. 10월 말 국정교과서 문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도, 10·28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전국 24개 기초단체장·광역·기초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15곳, 무소속 7곳, 새정연 2곳 승리). 저는 그때도 지역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전국을 다녔습니다. 유일한 단체장 선거인 경남 고성에도 갔고요. 가는 곳마다 ‘문 대표가 한 번만 와달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당 대표가 와서 보도되면, 나중에 선거 패배 책임을 져야 하니 안 오는 것’이라며 섭섭해하더군요. 그러면 당 대표가 아니죠. 선거 결과보다 패배하는 내용이 더 큰 문제였어요.”
▼ 그래서 ‘혁신 전대’를 요구한 겁니까.
“민심이 완전히 냉랭해졌어요. 저의 ‘10대 혁신안’으로는 돌릴 수 없게 됐으니. 그럼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큰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그게 ‘혁신 전대’라고 봤어요. 문 대표나 제가 아닌, 제3의 후보가 대표가 되면 오히려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원래 조직도 없으니…. 밀알이 될 수 있으면 몸 던지겠다고요.”
▼ ‘빨간 약’ 바르면 나을 수 있었는데, 암수술을 해도 안 낫는 상황이 됐다는 겁니까.
“네. 9월에 ‘혁신안’(A안)을 제시했고, 병세가 심해져 ‘혁신 전대’(B안)를 제시했는데, 뒤늦게 A안을 받는 거예요. 그동안 비판하다 위기가 가중되니 아무 설명 없이 받겠다는 겁니다.”
▼ 탈당 이후 야당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야당(의원들)은 당명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포용해 함께 가야 대중정당, 수권정당이 됩니다. 그래서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한 거고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도 있었고, 지난 대선 때는 저와 문 대표가 단일화했으니 그나마 박빙 승부로 간 겁니다. 그래서 ‘연합’을 당명에 넣었는데, 문 대표는 제게 ‘새누리당 사고방식’이라 하니 큰 문제죠. 같은 당에서 생각이 다르면 새누리당입니까. 그런 것이 평소 말한 낡은 진보의 편 가르기, 순혈주의거든요. 그러면 평생 집권 못해요. 어떤 분은 내가 (당을) 나가니 ‘속이 시원하다’고 해요(웃음). 그런 생각으론 앞으로 집권 못합니다. 나아가 국가를 위해 정말로 죄짓는 겁니다.”
▼ 죄까지야….
“민주주의는 ‘책임’이 중요하고, 집권세력이 잘못하면 책임져야 합니다. 정권교체로 나타나지요. 국가의 건강한 공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여야가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의 줄서기도 막을 수 있죠. 그래서 집권 못하는 야당은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지금 야당이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습니까? 이 당은 야당 하기로 작정한 정당 같아요. 결국은 생각이 다른 사람 다 쳐내고 야당 하자는 겁니다. 무난히 지는 정당으로 가자는 거죠.”
2012년 12월 13일 대전에서 대선 유세에 나선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대선후보 단일화 인연은 악연이 됐다. 동아일보
“생각 다른 사람 다 쳐내고…”
▼ 안 의원이 합당하기 전 ‘독자 신당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정치는 결과로 말해야 합니다. 민주당과의 합당은 도전이었습니다. 거대 정당의 한 축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였죠. 독자 신당을 했다면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는 ‘풀뿌리 근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고요. 그때 제가 당을 만들었으면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당선이) 위태했을 겁니다. 대부분 여당 소속 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이 당선돼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렸을 거고요. 건강하게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는 근간이 없어지면 다음 총선, 대선 모두 뻔하죠.”
▼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못 잡은 건 분명한데요. 한 분은 호랑이 등에서 안 내린다 하고….
“하하…제 능력이 부족했던가 봅니다. 낡은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이제 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 정치세력은 어떻게 만들 요량입니까.
“그동안 함께해온 분들, 대선 때 진심캠프에서 같이 일한 분들, 신당 창당하려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만들 때 같이한 분들, 각 시도에서 새정치를 대표해서 계셨던 분들, 그런 분들부터 먼저 설명드리고 모여야죠. 그분들과 의사소통 하면서 전체적인 방향 설정도 같이 할 겁니다.”
▼ ‘낡은 진보’ 청산도 계속할 겁니까.
“지금은 밖으로 나왔으니 전체를 봐야죠. ‘낡은 진보’와 ‘낡은 보수’를 함께 바꿔나가야죠. 결국은 ‘낡은 정치’를 바꾸자는 거고요.”
▼ 결국 ‘새정치 vs 구정치’ 구도겠네요. 국민은 4월 총선에 나설 인물을 보고 새정치 세력을 체감할 것 같은데요. 앞선 ‘신동아’ 인터뷰에선 ‘경제, 외교, IT(정보기술)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네. 그런 (인선) 기준도 하나씩 말씀드리려 해요. 경제 전문가는 사실 야당(새정연)에서 찾기 힘들었어요. 지금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잘못하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 경제 전문가로서 ‘공정성장론’을 만들었는데, 그걸로 부족한가요.
“저는 대학교수가 아니고 정치인인데, 이론(공정성장론)만 좋으면 뭐합니까(웃음). 당에서 아무리 공정성장론, 개혁안 떠들어도 받아주지 않는데…. 이젠 실현을 해야죠. 지금은 저 혼자지만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공정성장을 든든한 중심축으로 삼고,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내면서 현실로 이뤄내야죠.”
▼ 4월 총선에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안 의원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소문만 있더라고요. 이왕이면 ‘센 놈’ 보내주면 좋겠어요(웃음).”
단계별 집권 시나리오
안 의원과의 인터뷰에 앞서 기자는 안 의원 핵심 측근 2명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화’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들은 “애초 ‘문-안-박 연대’는 ‘주전선수끼리 잘해보자’는, 명분 없는 기득권 안주 연대였다”라고 깎아내리면서도 “우리는 계보도, 조직도, 밑천도 없는 게 오히려 밑천이 됐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우리도 고민 많이 했다. 그런데 문-안-박 연대를 했어도 민심을 돌리지 못했다. 문 대표와 협조했다면 ‘얼굴마담’이 됐을 거고. 오히려 경쟁하면서 안 의원의 존재감은 부각됐고,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었다. 앞으로 한 달간 전국을 깃발 들고 다니며 ‘탈당 당위성’을 설명해야 한다. 여당 견제세력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우리가 진정한 대안 세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쓰러져가는 집(새정연을 지칭)에서 문 대표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민심을 얻은 뒤 창당을 하려면 인물과 노선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안철수 세력’에 있던 분들과 소통하면서, 수도권과 호남의 대표성 있는 분들이 참여의사를 밝히면 선별해 모시고, 동시에 참신한 인물을 찾아 세워야 한다. 새정연과 ‘치킨게임’을 하기 위해서라도 옥석을 잘 가려야 한다. 이번에는 전국 국회의원 공천을 우리 기준으로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안 의원이 새정연 공동대표 할 때와는 다를 거다. 올바른 기준을 세워 공천할 수 있으니.
공약이나 인물 면에서 앞서가면 ‘새정치’ vs ‘구정치’ 구도가 형성될 거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수도권 ‘3파전’ 선거가 되더라도 두 야당이 경쟁하면서 투표율을 높이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총선에서 교섭단체(20석) 의석을 확보하면 좋지만, 단 몇 석을 얻더라도 우리는 빚진 게 없으니 명분으로 밀고 나간다. 목표는 대선이니까. 안 의원도 정치권에 와서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해왔으니 정리는 끝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