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3일 김동연 경기지사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왼쪽은 김 지사가 작성한 방명록 내용. 뉴시스
“새로운 나라, 7공화국으로 가자.”
“‘기득권공화국’ 말고 ‘기회공화국’ 만들자.”
“‘서울공화국’ 타파, ‘지역균형 빅딜’이 해법.”
“‘기후 내란’ 끝내고 ‘기후경제’로 대전환하자.”
김동연 경기지사가 최근 광주와 대구, 대전 등 전국을 종횡무진하며 쏟아낸 발언 중 일부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헌재)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전국을 돌며 ‘7공화국’ ‘기회공화국’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김 지사의 광폭 행보가 눈길을 끈다. 헌재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할 경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또 3월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항소심 선고가 예고돼 있다는 점에서, 김 지사의 이 같은 전국 순회는 다분히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이해되고 있다. 헌재가 탄핵 기각(혹은 각하)을 하고 대통령의 헌재 최후변론대로 임기 단축 개헌을 해도 마찬가지다.
빛고을 광주가 선택하면 역사가 바뀐다
김 지사는 2월 13일,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아 사실상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광폭 행보를 선보였다. 13일 오전 ‘호남정신과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김 지사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께서 제대로 된 민주 정권,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기적을 이곳 광주에서부터 만들어냈다. 빛고을 광주가 선택하면 역사가 바뀐다”며 “7공화국을 열기 위한 빛의 혁명을 시작해 달라”고 촉구했다. 특강 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김 지사는 방명록에 “광주의 영령이시여, 내란을 종식하고 ‘이기는 민주당’으로 제7공화국을 열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라고 썼다.
그가 그동안 광주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왔는지는 그의 광주 방문 횟수가 잘 말해 주고 있다. 2월 13~14일 광주 방문은 2022년 7월 1일 경기도지사 취임 후 14번째 방문이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광주를 찾은 것이다. 김 지사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닌, 민주당의 이재명, 민주당의 김동연, 민주당의 김경수, 민주당의 김부겸이 다 같이 더 큰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45년 전 민주화운동을 촉발한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해 새 헌법을 만들기 위한 7공화국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교체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번 계엄과 내란을 막기 위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시민들이 나왔듯, 이제는 (한국 정치를 바꿀) 빛의 혁명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 지사는 “지금 광주가 선택하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며 “제2 노무현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 대한민국이 이기는 길, 새로운 길로 나가자”고 호소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광주가 ‘노풍’을 점화해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것처럼,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광주에서 김 지사를 제2의 노무현으로 선택해 ‘김풍’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천시는 이재명, 지리는 김동연?
“하늘의 때(天時)는 땅의 이득(地利)만 같지 않고, 땅의 이득은 사람들의 인화(人和)만 못하다.”
맹자 공손추 편에는 전쟁 승패를 가르는 3요소로 ‘천시·지리·인화’의 장단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도식화하면 ‘천시<지리<인화’ 인 셈이다. ‘천시·지리·인화’는 전쟁을 통한 천하 패권을 다투기 위한 3요소이지만,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점에서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국민주권 시대에도 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3요소로 여겨진다. 동시대인들이 요구하는 시대정신(天時)을 누가 구현할 수 있느냐, 누가 더 많은 지역에서 지지(地利)를 받을 수 있느냐, 그리고 그를 믿고 따르는 지지자가 얼마나 많으냐(人和)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는 점에서다.
‘천시(天時)’ 측면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2·3 비상계엄과 12·14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크게 부각됐을 공산이 크다. 더욱이 차기 대선이 2027년 3월에 예정대로 치러졌다면 그전에 선거법 항소심은 물론 위증교사 항소심, 나아가 선거법 최종심까지 모두 선고됐을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주도한 12·3 계엄 사태 이후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 탄핵심판과 내란 혐의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에 국민의 관심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잠시 잦아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같지 않다”고 했다. 아무리 천시가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조성돼 있더라도 지리적 이점을 얻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요원할 수 있다. 여야 차기 주자 가운데 ‘지리’적 이점을 가진 이로는 김 지사가 꼽힌다. 고향이 충북 음성인 만큼 그가 만약 본선에 진출한다면 역대 대선 때마다 대선 향배를 가늠했던 ‘충북매직’의 후광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충북매직’은 ‘대선 때 충북 지역에서 득표가 앞선 후보가 최종 승리한다’는 말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여덟 번의 대선 때마다 ‘충북에서 이긴 후보가 대선에서 최종 승리’하는, 적중률 100%를 기록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충북매직’은 20대 대선에도 역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재현됐다. 2022년 3·9 대선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충북에서 50.7%를 득표해 45.1% 득표에 그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당시 윤 후보가 충북에서 51만1921표를 득표했고, 이 후보가 45만5853표를 얻어 두 후보 표차는 5만6068표였다. 전국 득표에서 윤 후보는 48.56%를 득표해 47.83%를 기록한 이 후보를 0.73%, 24만7077표 근소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충북에서 두 후보의 득표 차가 전국 득표 차의 22.7%를 차지할 만큼 대선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 때에도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충북에서 38.6% 득표로 2위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26.3%)를 크게 앞섰고, 2012년 18대 대선 때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충북에서 56.2% 득표를 기록하며 43.3% 지지에 그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앞섰다.
![3월 12일 김동연 경기지사가 대전 유성구 충남대에서 ‘모두의 나라 내 삶의 선진국’을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뉴스1]](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d9/2f/8e/67d92f8e2580d2738276.jpg)
3월 12일 김동연 경기지사가 대전 유성구 충남대에서 ‘모두의 나라 내 삶의 선진국’을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뉴스1]
김 지사는 특강에서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고, 특정 정당의 나라도 아니며, 특정 정치 그룹의 나라는 더더욱 아니다”라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처럼 갈라지고 쪼개져서는 모두의 나라가 될 수 없다”며 “모두의 나라가 되도록 화합과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전국) 10개 대도시에 서울대 수준 일류 대학 10개를 만드는 지역 균형 빅딜이 필요하다”며 “다음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세종시에서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며 “세종시 앞에 붙는 ‘행정수도’ 명칭에서 ‘행정’을 빼고 명실상부한 ‘수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탄핵 이후 흔들리는 ‘어대명’
12·3 계엄과 12·14 대통령 탄핵 이후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가 팽배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 2017년 5월에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을 현실화한 것처럼,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이 대표로의 정권교체를 기정사실화한 것.
계엄과 탄핵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한동안 야권 내 유력 대선주자인 이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을 당연시하는 ‘어대명’ 주장의 근거가 됐다. ‘정권 연장’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높았던 데다, 정당 지지율도 한때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2배 가까운 격차로 크게 앞섰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민심 기류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27일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했다는 이유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를 민주당 주도로 탄핵한 게 계기가 됐다. 한 대행 탄핵 후 여야 정당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내로 급격히 좁혀졌고, 차기 지도자 지지율 조사에서도 이 대표 지지율은 하락한 반면, 여권에서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어대명’ 주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1월 15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그리고 1월 26일 윤 대통령이 구속 기소되면서 여권 지지층 결집 양상이 두드러졌다. ‘29번의 탄핵, 야당의 입법 독주와 일방적 예산 삭감’ 등을 예로 들며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겠느냐”는 이른바 “계몽령”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반탄(탄핵 반대)’ 장외 집회가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을 돌며 열리면서 세를 크게 불려나갔다. 3·1절 106주년이던 3월 1일의 경우 ‘반탄’을 요구하는 장외 집회 참여자가 ‘찬탄’ 집회 참여자를 압도했다. 이후 법원은 3월 7일 윤 대통령 구속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고, 윤 대통령은 체포된 지 52일 만인 8일 석방돼 그날 오후 서울구치소를 걸어 나와 한남동 관저로 돌아왔다.
정권교체 47% vs 정권 재창출 42%
윤 대통령 석방 이후인 3월 10~12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차기 대통령 적합도’는 이 대표가 31%로 가장 높았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11%, 홍준표 대구시장 7%, 오세훈 서울시장 6%,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5% 순이었다. ‘올해 대선이 치러진다면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물음에 ‘민주당 후보’라는 응답이 36%, ‘국민의힘 후보’라는 응답이 35%였다. 차기 대선에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7%,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2%였다.
현재까지 나온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이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8%, 민주당 36%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NBS 조사에서 여야 정당 지지율이 뒤바뀐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높게 나타난 것은 여권 지지층, 특히 ‘탄핵 반대’를 강하게 주장하는 지지층이 강력하게 결집했기 때문이란 풀이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권 지지층 중 일부는 헌재의 탄핵 인용 가능성을 여전히 낮게 보고, 조기 대선에 대한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차기 대선’ 관련 조사가 아닌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가 현재 여야 지지층 결집 정도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헌재에서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에야 비로소 차기 대선에 대한 여야 지지층의 진짜 대선 민심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사기관, 조사 시점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하나의 여론조사 결과를 확정된 민심으로 여길 수는 없다. 다만 여론조사 추이를 살펴보면 민심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와 ‘대선이 치러진다면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 ‘정권교체냐, 정권 재창출이냐’ 세 문항의 조사 결과는 모두 ‘정권교체’라는 일정한 지향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3월 13일 발표된 NBS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이 대표가 ‘유력한 정권교체 후보’일 수는 있지만 ‘확실한 정권교체 카드’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차기 지도자’로서 이 대표 지지율(31%)이 민주당 지지율(36%)보다 낮고 ‘정권교체’(47%)를 바라는 여론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어대명’ 분위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정권교체 여론에 비해 낮은 이 대표 지지율은 대선가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대명’이냐, ‘이대불’이냐
더욱이 이 대표는 26일 공직선거법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중형을 선고받게 되면 ‘어대명’이 아니라 ‘이대불(이재명 대표 불가론)이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계엄과 탄핵 이후에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 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다른 점”이라며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지지율 상승을 가로막고 있는 주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어대명’이 다시 점화되느냐, 아니면 ‘이재명 불가론’이 거세지느냐는 3월 26일 이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항소심 판결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1심과 달리 무죄판결을 받는다면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 족쇄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대세론을 형성하며 본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에 비해 지난해 11월 15일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이 선고될 경우 ‘하자 있는 후보’로 낙인찍혀 당 안팎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더라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부터 이 대표의 ‘후보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엄 소장은 “만약 이 대표가 항소심에서조차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선수 교체’ 얘기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야권 지지층이 절실히 바라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이라기보다 ‘확실한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라며 “‘이 대표로 확실히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이 대표를 후보로 내세워 대선을 치르겠지만, 대선 전까지 ‘여의도 대통령’으로 군림하다 대선 당일 딱 하루 져서 ‘대선 재수’에 실패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될 경우 ‘후보 교체’ 요구가 터져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엄 소장은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해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파면된 윤 대통령을 다시 심판하는 선거로 치러지기보다 윤 정부 출범 후 2년 반 동안 이 대표를 향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느라 탄핵과 특검을 남발한 이재명 대표 심판, 민주당 심판 선거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5대 빅딜, ‘경제 대연정’ 제안
2022년 8월과 지난해 8월 두 차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높은 득표율로 당대표에 오른 이재명 대표의 당내 지지도는 2025년 3월 중순까지 가장 견고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강력한 당내 결집이 본선에서는 오히려 중도 확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도로 지지세를 확장하지 못하면 ‘확실한’ 정권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이 대표에 대한 의구심이 잦아들지 않는 까닭이다.
이 대표는 최근 ‘중도보수’를 선언하며 ‘우클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도층, 나아가 중도보수 진영으로까지 지지세 확산을 꾀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맥락 없이 ‘중도보수’를 선언한 게 오히려 ‘집토끼’로 비유되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좌우, 여야를 떠나 우리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다. 그런 점에서 김 지사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재부 차관을 지냈고,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낸 점은 그의 강점이다. 여야 차기 주자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전문가’라는 점에서다.
김 지사는 최근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며 “새로운 나라, 7공화국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 삶의 변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5대 빅딜, ‘경제대연정’을 제안했다.
김 지사가 주장하는 첫 번째 빅딜은 ‘불평등’ 극복을 위한 ‘기회경제’. 대기업은 미래 전략산업에 투자하고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자는 노동유연화를 수용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고, 정부는 규제 혁신과 안전망을 제공하는 ‘3각 빅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서울공화국’을 해체할 ‘지역균형 빅딜’이다.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는 확실한 동력은 일자리와 교육인 만큼 10개 대기업을 지역으로 이전시켜 첨단 경제도시 10개를 만들자는 게 뼈대다. 여기에는 10개 대기업 도시와 연계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우수한 학생이 지역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10개 지역 거점 대학 모든 대학생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해당 대학 교원들은 국내외 겸직을 허용하는 한편, 소득세 면제 확대로 우수 교원 확보를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다. 김 지사는 “10개 거점 대학이 지역에 맞게 특화된 ‘서울대’가 되도록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지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중점 학과 중심으로 대학을 특성화하자”고 제안했다.
![2월 26일 김동연 경기지사가 경기 여주시 SKB위성센터에서 기후경제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d9/2f/be/67d92fbe0651d2738276.jpg)
2월 26일 김동연 경기지사가 경기 여주시 SKB위성센터에서 기후경제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뉴시스]
네 번째 경제 빅딜은 ‘간병국가책임제’를 비롯한 ‘돌봄 경제’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온 가족이 고통받게 된다는 점에서 ‘간병 부담’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자는 게 뼈대다. 경기도는 연 최대 120만 원을 지원하는 ‘간병 SOS 프로젝트’를 자치단체 최초로 도입했다.
다섯 번째로 김 지사는 경제대연정을 위한 ‘세금-재정 빅딜’을 제안했다. 김 지사는 “지금 필요한 것은 감세가 아니라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라며 “향후 5년간 국가채무 비율 5%포인트 인상을 감내하자”고 호소했다. 총 200조원을 집중 투자해 신속하고 과감한 경제 빅딜을 이뤄내야 대한민국 대전환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법 항소심 결과도 변수
“앞으로 3년이 향후 대한민국 미래 30년을 좌우한다”고 강조하는 ‘경제전문가’에게 국민은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를 줄 것인가. 특히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주당 지지층은 그를 ‘정권교체 주연’으로 캐스팅할 것인가. 야권 일각에서는 ‘충청대망론’으로 중도 확장성이 있는 데다 ‘경제대통령’ 자질까지 갖춘 김 지사가 정권교체 적임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3월 중순 현재까지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김 지사에게 ‘대한민국을 바꿀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은 아직 낮다. 각종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김 지사는 여전히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그가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를 잡으려면 우선 당내 경선이란 ‘예선’을 통과해야 여야 차기 주자가 자웅을 겨루는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2021년 9월 ‘새로운 물결’을 창당한 김 지사는 이듬해 3·9 대선 직전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후보단일화하고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경기지사 후보로 나서 당선했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대통령에 오른 윤 대통령 다음으로 정치적으로 고속 성장한 케이스다. 따라서 김 지사가 자신만의 정치력으로 당내 예선을 통과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더욱이 국민 여론도 아직 그에게 호의적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흔한 말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고, 더욱이 선거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는 사람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절대평가’가 아니다. 후보등록을 통해 누구와 누가 겨루게 되는지 ‘구도’가 확정된 후 유권자들이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 판단하기 시작하는 ‘상대평가’다. 선거의 가변성이 거기에 있다. 여기에 홀어머니 아래에서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 소년 가장으로 성장해 야간 상고를 다니며 자수성가한 ‘스토리’도 눈길을 끈다.
선거 당락을 좌우하는 3요소는 구도, 인물, 바람이다. 민주당 차기 대선 경선이 친명계 대표주자인 이 대표 한 사람이 나서고, 비명계를 자처하는 후보가 여럿 난립한다면 강성 지지층 결집도가 높은 이 대표가 손쉽게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대표에 맞설 비명계 후보가 한 사람으로 좁혀졌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김 지사가 이 대표와 비명계를 대표해 1대 1 구도를 형성할 경우 경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예상도 나온다. 민주당 내부에는 이 대표를 ‘아버지’처럼 떠받드는 ‘찐명계’ 인사들도 있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탄생에 기여하며 세력을 키워온 비명계도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2월 27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대표와 오찬 회동 때 “민주당에서 이 대표와 경쟁해보려고 용기 내고, 이 대표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성원하고 지지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지사는 도지사 취임 후 친노·친문은 물론 비명계 인사들까지 대거 영입하며 외연 확대를 꾀해 왔다. 여기에는 유연한 사고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도 정책수석, 도지사 비서실장, 정무수석을 역임한 김남수 전 수석은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에서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원조 친노 인사이고, 안정곤 지사 비서실장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을 지냈고, 강민석 대변인도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친문 인사다. 김 지사는 부산 해운대을 국회의원을 지낸 윤준호 전 의원을 정무수석에, 김부겸 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손준혁 전 비서관을 소통협치관에 발탁하는 등 친노·친문은 물론 비명계 인사까지 주변에 포진시켰다.
‘개딸’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층 지지를 받고 있는 이 대표가 손쉽게 당내 경선이란 ‘예선’을 통과할지, 아니면 친노·친문은 물론 비명계까지 폭넓게 아우른 김 지사가 ‘유쾌한 반란’의 주인공이 될지 주목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 수 있고, 골프는 18홀을 마치고 장갑을 벗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선거는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법이다.
12·3 계엄과 12·14 대통령 탄핵, 그리고 ‘임기 단축 개헌’이라는 윤 대통령의 헌재 최후변론 등을 종합해 보면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각하)되든 차기 대선 시계는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더욱이 계엄에 놀란 국민 가운데 ‘정권 연장’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높은 상황이고, 3월 26일 이 대표에 대한 선거법 항소심 결과도 주요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민주당 대표 선수로 누가 본선에 나서게 될까. 맹자 공손추 편의 구절처럼 결국 ‘사람들의 인화(人和)’가 대선 승패의 핵심 요소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신동아 4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지혜를 나눠주세요. 제 이메일은 jhkoo@donga.com입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고, 세상에 도움 되는 콘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한국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스테이트크래프트’”
양심에 털 난 몰염치한 놈들을 어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