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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용꿈 속에 감춰진 혁명의 칼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용꿈 속에 감춰진 혁명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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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이점도 크다. 이순신은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꿈조차 사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공적인 해석, 즉 자신의 자리인 군인·장수·리더의 처지에서 모든 꿈을 해석하려 애썼다. 똑같이 전쟁을 겪은 김종이나 오희문, 같은 무신이던 노상추, 고위관료였던 유희춘의 꿈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임금과 관련한 꿈에 대한 관점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달랐다. 조선시대 인물 대부분은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고마움, 기대 사항이 가득한 꿈을 꾸거나, 그렇게 해석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유별날 정도로 그 부분이 불투명했다. 어림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간략하게 기록했다. 임금에게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는 등의 모습이 그의 꿈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자신의 꿈을 현실의 전쟁 상황에 직접 반영해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꿈을 길흉화복이나 예언으로 생각한 반면, 이순신은 언제나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 마주한 일본군과의 대결과 관련된 군사작전과 연계했다. 다른 양반들이 부귀영화를 염원하며 꿈을 해석할 때, 이순신은 꿈의 징조까지 유비무환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꿈속에서까지 승리를 열망했다.

그의 꿈에는 나라의 명운을 걸머진 리더로서, 또 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부하들의 생명을 지키는 장수로서,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고통, 눈물과 회한, 사랑과 열망이 담겼다. 그의 꿈은 회상이나 일차원적 욕망이 아니라 지혜의 원천이었고, 마음의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았다.

푸른 용과 화룡(畵龍)



1595년 2월 9일. 꿈을 꾸었다. 서남쪽 사이에 붉고 푸른 용(龍)이 한쪽에 걸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굴곡져 있었다. 나는 홀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를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도 보게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틈에 벽 사이로 들어와 화룡(畵龍)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한참동안 어루만지며 완상[撫玩]했는데 그 색깔과 움직이는 모습이 기이하고 웅장했다. 기이한 징조가 많을 듯했기에 기록해 놓았다.

이순신의 용꿈 일기다. 이 용꿈은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는 물론이고 ‘친필 초서본 난중일기’에도 나오지 않는다. 충무공 집안이 소장한 ‘충무공유사’에 기록된 일기에만 나온다. 해석 방식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바로 ‘용꿈’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나 왕을 용에 비유했다. 황제나 임금에 관계된 것에는 모두 ‘용’이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용안(龍顔·임금의 얼굴), 용상(龍床·임금이 앉는 평상), 용루(龍淚·임금이 흘리는 눈물), 용기(龍旗·임금의 기), 용포(龍袍·임금의 옷)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버지 해모수는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오룡거를 탔고, 어머니는 수신(水神) 용왕 하백의 딸이었다. 신라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은 계룡에서 나왔고, 석탈해는 용성국(龍城國) 출신으로 용의 호위를 받으며 신라에 왔다. 백제 무왕은 그의 어머니가 연못의 지룡(池龍)과 교통해 출생했고, 신라 문무왕은 죽은 뒤 동해의 호국룡이 됐다. 고려 태조 왕건은 할아버지 작제건과 용녀의 소생인 아버지 용건의 아들이다. 조선의 창업을 찬양한 ‘용비어천가’에서도 왕을 용으로 묘사했다. 용꿈은 정치적 위상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신성화하거나 자신의 정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했다.

커져가는 분노와 야망

이순신은 이 용꿈을 꾸기 전에도 잠재의식 속 야망이 드러나는 꿈을 몇 차례 꾸었다. ‘난중일기’에는 이런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1594년 2월 3일. 새벽꿈에 한쪽 눈이 먼 말을 보았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1594년 2월 5일. 새벽꿈에 좋은 말을 타고 곧바로 바위가 첩첩인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서에서 동으로 이어져 있고, 산마루 위에 평평한 곳이 있어 자리를 잡으려다 깨었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또 한 미인이 홀로 앉아 손짓을 했는데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1594년 9월 20일. 홀로 앉아 지난밤 꿈을 기억해보았다. 바다 한가운데 있던 외딴섬이 달려오다 눈앞에서 멈췄다. 우레 같은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모두 놀라 달아났다. 나만 홀로 서서 그 모습을 끝까지 관찰했다. 아주 기쁘고 반가웠다. 이는 곧 왜놈이 화친을 애걸하다 스스로 멸망할 상(象)이다. 또한 나는 준마(駿馬)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다. 이는 임금의 명령을 받아 올라갈 조짐(兆)이다.

1594년 2월 3일, 2월 5일, 9월 20일의 꿈은 지속적으로 상향적이다. 이순신의 잠재의식이 점차 높은 곳을 향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 결정적 지점이 용꿈이다. 전쟁이 소강상태인 강화기였지만, 이순신은 이미 불패의 명장으로 명성이 드높았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남서해의 제왕과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

전쟁 중임에도 현실에서는 온갖 부조리가 난무했고, 무능한 리더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런 상황에서 칼을 든 장수 이순신의 가슴속은 절망과 고독, 그리고 분노와 변화에 대한 욕망이 뒤엉켜 복잡했을 것이다. 그의 차가운 머리는 인정할 수 없었겠지만, 그의 가슴속 용광로는 활활 타올랐고, 그것의 정점이 바로 불의한 세상을 전복하는 꿈, 즉 새로운 왕조 창업의 꿈인 용꿈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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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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