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혼밥판사] 제주도에 가면 두부를 드세요

두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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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5-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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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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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살 때였나.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겨울날이었다. 나는 친구 집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손으로 채널을 돌려야 하는 흑백 텔레비전 안에서 대여섯 명의 산타클로스가 염라대왕 앞에 좌우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정색하고 화를 냈다. 세상에 나가 보니 도저히 선물을 줄 수 없는 나쁜 아이가 많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선물은커녕 지옥에 던져 넣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서 아이들이 지옥 불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공포의 산타클로스와 두부의 위로

    저럴 수가. 인심 좋고 푸근하고 인자한 할아버지로만 알았던 산타클로스의 돌변한 모습에 서운함과 배신감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나도 지옥에 갈까봐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 몰래 사서 책상 밑에 숨겨놓았던 500원짜리 신검 엑스칼리버도 떠올랐다. 도깨비나 저승사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허구의 존재인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산타클로스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 그러니까 산타클로스로부터 받은 선물이 있으니까. 선물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만큼 지옥도 존재할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나는 친구 가족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부랴부랴 친구 집을 뛰쳐나왔다. 찬바람이 부는 밤거리를, 참았던 눈물을 흘리면서 걸었다. 울면서 집에 들어오니 부모님이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이 내가 두려워하는 죄가 무엇인지 추궁할 것 같았다(책상 밑에 엎드려 있는 신검 엑스칼리버가 내 양심을 쿡쿡 찌르기도 하고).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얘 뭐 좀 먹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뭔가를 가져왔다. 그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던 부추전일 수 있고, 동네 런던제과에서 사온, 와이셔츠같이 하얀 기름종이 봉지에 담긴 고로케였을 수도 있다. 그냥 밥이었을 수도 있다. 가장 유력한 음식은 두부 부침이다. 어머니는 직사각형으로 납작하게 자른 두부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구워서 간장을 곁들여 주시곤 했다. 겉은 튀김처럼 바삭거리고 고소하지만 속은 연하고 부드러웠다. 어머니가 준 음식을 먹으면서 나는 회복했다. 공포로 위축된 마음이 조금씩 펴지고 졸음을 느끼고,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콩밥과 두부

    그날 이후 아무 관련 없는 산타클로스와 두부가 나에게만은 늘 결부돼 떠올랐다. 산타클로스를 보면 두부가 떠오르고 두부를 보면 산타클로스가 떠오르는 식이다. 그날의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겉으로는 인자해 보이지만 실은 냉정하게 처벌하는 판사 이미지와도 연결됐다. 직업이 판사다 보니 남의 잘못을 후벼 파고, 지적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짓을 매일같이 했다.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나 자신도 숱한 잘못을 저지르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임을 깨달을수록 판사 일을 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럴 때는 종종 법정에서 산타클로스가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법복을 입은 채 선행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피고인의 선행이 지나쳐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으면 사정없이 루돌프 사슴 썰매에 태워 몰디브에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한 달에도 수십 명씩 감옥에 보낸다. 그들도 출소하면 두부를 먹었을 것이다. 출소자가 두부를 먹게 된 유래는 분명치 않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관습이다. 혹자는 이런 관습이 일제강점기에 감옥에서 나온 독립운동가들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감옥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고 소화 능력도 손상된 독립운동가들에게 응급처치로 두부를 먹였다는 얘기다. 

    징역살이를 속된 말로 “콩밥을 먹는다”고 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부는 콩으로부터 풀려난 상태며 다시는 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음식이다. 출소 후 두부를 먹는 것은 다시는 옥살이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희고 깨끗한 두부가 과거를 지운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말도 있다. 하얀 두부 앞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두부 조각을 삼키면 누구라도 몸과 마음에 쌓인 과거의 잘못과 상처가 지워질 것만 같다.

    두부의 유래

    [GettyImage]

    [GettyImage]

    1960년경 중국 허난성 미(密)현이라는 곳에서 동한 말기 묘비가 발견됐는데 여기에 두부 만드는 과정이 조각돼 있다고 한다. 늦어도 한나라 시대에는 두부가 유행했다고 볼 수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두부를 처음 만든 사람은 한고조 유방의 손자인 유안이라 한다. 유안은 도교사상의 대가로 오랫동안 산에서 도를 닦았다. 그러던 어느 날 8인의 신선을 만났다. 그가 불로장생 비법을 묻자 신선들이 두부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유안이 영양 보충을 위해 소금으로 간을 한 콩국물을 마시곤 했는데 어느 날 다 먹지 못하고 놓아뒀더니 나중에 굳어서 두부가 됐다고 한다. 

    두부는 단백질 덩어리라 뼈 없는 고기라고 한다. 그래서 고기를 먹지 못하는 승려가 발전시켰다. 두부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불교 전파와 관련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 고문헌에서도 두부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고려 말기 대학자 이색이 쓴 목은집에는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워줘 늙은 몸 양생하기에 좋다”고 적혀 있다. 목은은 원나라에서 장원급제를 한 천재이자 정몽주와 정도전의 스승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두부 이야기가 나온다. 비 오는 날 아침 경남 합천의 한 관리가 두붓국을 끓여 바쳤는데 그의 행동이 점잖지 못해 속으로 화를 삼켰다는 기록이다. 

    두부는 성격이 느긋해야 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콩을 물에 거듭 씻고, 물에 넣어서 묵히고, 퉁퉁 불은 콩을 맷돌 구멍에 한 숟갈씩 넣어 반나절 이상 갈고, 그것을 가마솥에 부어 오랜 시간 저어주면서 삶고, 다시 자루에 넣어 주리를 틀 듯 쥐고 꾹꾹 짜내고, 온도에 맞추어 간수를 쳐야 한다.

    순하디순하고 착하디착한

    나는 두부가 좋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몇 있는데 계란프라이나 두부가 그에 속한다. 따지자면 두부가 아주 맛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음식 맛은 대부분 향이 좌우하는데(혀보다 코가 주로 맛본다고 할 수 있다) 두부에 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조금 고소하고, 달짝지근할 때도 있기는 한데 아주 조금일 뿐이다. 물컹물컹하고 부드럽고 쉽게 허물어지는 질감도 꼭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두부가 좋다. 좀 더 정확히 내 마음을 살펴보면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마치 나에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지만, 톡 쏘는 매력이나 개성은 없지만, 그저 순하디순하고 착하디착한 사람을 그 자체로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되지만 그런 사람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랄까. 재판을 하면서 갖가지 탐욕을 봤지만 두부를 훔치거나 두부를 더 가지려고 다투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무리 욕심을 내도 탐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두부다. 

    나는 두부를 반찬으로 먹거나 생태탕 등 국물요리에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두부만 먹는 것도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때도 출출하면 찌개용 두부를 꺼내 프라이팬에 한쪽 면 절반만 데워 먹곤 한다. 어릴 적 시장에서 본 풍경이 있다. 상자 가득 따끈한 김이 서린 두부가 나오면 넓적한 칼을 들고 직사각형으로 잘라주던 풍경. 지금도 그것을 먹고 싶지만 맛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얼마 전 제주에 있는 두부전문점에 다녀왔다. 두부로 만들 수 있는 각종 요리가 있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두부는 동그란 그릇에 담긴 오보로 두부다. 두유에 간수를 넣고 굳혀 물을 빼지 않고 만든 것이다. 이 가게에서 만드는 모든 두부 간수는 일본 바다 심층수라고 한다. 

    이 집 두부는 담백하면서 생크림보다 보드랍고 달다. 가장 내 마음에 든 것은 사각형으로 각진 모두부다. 작은 파로 섬세하게 그린 얼굴이 먹는 내내 방긋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함께 나오는 전라도에서 공수한 김치와 된장도 절묘하게 어울린다. 제주산 암퇘지의 삼겹 부위를 간장 소스에 넣어 삶은 수육도 두부와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 많은 건 아게다시 두부라고 한다. 오보로 두부에 전분을 입힌 다음, 주인 말로는 “크리스피하게” 튀긴 것이다. 달콤짭조름한 소스에 적셔 먹으니 두부, 튀김, 간장의 서로 다른 맛과 온도가 하모니를 이루면서 입안에서 교향곡을 연주한다.

    신의 한 모

    [문근찬 제공]

    [문근찬 제공]

    이 두부 전문점의 탄생 유래도 두부처럼 부드러우면서 매력적이다. 가게 주인은 서울 이태원에서 ‘천하노 문타로’라는 유명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를 운영하던 이계훈, 문근찬 씨다. 이계훈은 홍대 쪽에 있던 ‘천하’라는 이자카야 사장이고, 문근찬은 ‘문타로’라는 또 다른 이자카야 사장인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가게를 연 것이다. 어느 날 이곳에 일본인 손님이 찾아와 일본 센다이에 있는 200년 된 두부집 ‘모리도쿠 오보로도후’ 이야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두 사장은 두부를 손수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이자카야 단골손님이자 돈부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김태윤 씨까지 동참해 셋이 일본 센다이 와쿠와현에 있는 두부 공장으로 유학을 떠났다. 종일 두부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고단했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두부 공장 사람들이 점차 마음을 열고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와쿠와현 지역 신문이 이들의 두부 배우기 도전을 기사로 소개하고, 와쿠와현 현장이 직접 두부 공장을 방문해 격려하고 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들은 제주도에 두부 가게를 열기로 했다. 두부 맛을 결정하는 것은 물과 콩이다. 콩은 배달이 쉽지만 물은 그렇지 않다. 콩을 무수히 씻어야 하기 때문에 물이 좋은 지역에서 두부를 만드는 게 유리하다. 이들은 두부 한 모를 만드는 데 바둑 대국에서 프로기사가 오랜 고민 끝에 한 수를 두는 것처럼 정성이 들어간다고 했다. 두부를 한 모, 한 모 열심히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솜씨로 만든 것 같은 두부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꿈꿨다. 제주 하귀마을 바닷가에 두붓집 ‘신의 한 모’가 탄생한 내력이다. 

    두부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 제주에서 먹은 두부가 다시 그립다. 껍데기와 속살이 하나같이 순하게 몽글몽글한 두부가 그립다. 화창한 어느 봄날에는 따뜻한 햇살을 온 얼굴로 받으며 작은 도자기 그릇에 담긴 두부를 흰 자기로 만든 뭉툭한 숟가락으로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떠먹고 싶다. 입속에 넣고 고개를 들고 눈을 감고 입을 천천히 오물거리며 두부의 체온과 감촉을 느끼고 싶다. 두부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 수만 있다면 두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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