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기업회생 마술사’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

“친환경 석유수지로 오염 잡고 방출 가스 연료화로 비용 절감”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2005-11-10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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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별명은 ‘마술사’다. 적자에 허덕이던 만년 기피 부서를 기업의 핵심 ‘캐시카우(cash cow)’로, 공해산업의 멍에를 쓴 석유화학업체를 친환경기업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은 친환경 석유수지 개발로 새로운 ‘마법’에 도전하고 있다.
    ‘기업회생 마술사’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
    “업체의신뢰도를 평가하려면 공장의 화장실부터 살펴라.”

    배영호(裵榮昊·61) 코오롱유화 사장이 다른 기업과 계약하기 전에 실행하는 남다른 경영 원칙이다. 화장실이 깨끗하다는 것은 곧 CEO가 기업의 세심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근무 환경이 쾌적해야 업무 능률도 극대화된다는 것이 배 사장의 지론. 화장실처럼 사소한 부분까지 살피는 그의 철저한 환경 마인드는 석유화학업체 코오롱유화를 친환경기업으로 거듭나게 한 원천이다.

    1967년 국내 최초로 석유수지를 개발한 코오롱유화는 페놀수지, 고흡수성수지 등 450여 가지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종합화학회사. 고무, 도료에 주로 쓰이는 석유수지나 목재접착제로 쓰이는 페놀수지, 기저귀의 원료가 되는 고흡수성수지 등은 제조공정에서 불가피하게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제품들이다. ‘화학산업은 곧 공해산업’이란 이미지는 석유화학업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멍에였다.

    그러나 1998년 배영호 사장의 취임으로 코오롱유화는 그런 이미지를 깨뜨려갔다. 1999년 한국 RC(Responsible Care·기업이 환경 보전, 안전 개선활동을 벌이는 운동)협의회에 가입해 국제 화학산업체들의 환경운동에 동참했고, 울산공장과 김천공장은 각각 2003년과 2004년에 환경인증인 ISO 14001을 취득했다. 특히 울산공장은 2002년 환경경영 모범기업으로 선정돼 공장 담당자가 국회 환경포럼 회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성과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 경영도 잘한다”는 배 사장의 소신이 숨어 있다.

    10월6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코오롱타워 10층 사무실에서 배영호 사장을 만났다. 기업의 인상을 결정짓는 요인 중 하나가 사무실의 분위기다. 인터뷰에 동행한 환경재단 이미경 사무국장과 기자는 그의 집무실에 들어선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다. 사무실 전면의 유리창을 통해 과천정부종합청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길게 늘어선 가로수와 쪽빛 하늘은 그윽한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었다.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일해 행복하겠다”는 인사에, 배 사장은 “지방 공장들은 본사보다 더 훌륭한 환경을 갖췄다”고 했다.



    “화장실로 기업 평가”

    -코오롱유화에 여러 환경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사실 제가 입사한 1970년대만 해도, 기업이 환경 문제까지 챙기긴 어려웠죠. 세 끼 밥조차 먹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까요. 매출 신장에만 관심을 쏟던 제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1975년 뉴욕지사에 근무하면서부터죠. 당시 구미공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의 눈에 뉴욕의 풍광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도심에 자리잡은 센트럴파크의 아름다운 경관, 꼼꼼하게 분리수거를 실천하는 아파트 주민…. 치밀하고 엄격하게 환경을 보호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꼭 그대로 실천하겠노라 마음먹었어요.”

    -CEO로선 특이하게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하셨던데….

    “기업의 CEO들은 워낙 바쁜 탓에 공부 욕심을 부려봐야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도 과거 두 차례, 서울대 경영대와 경제연구소에서 그런 과정을 수료했고요. 그런데 기업을 경영하다 보니 환경에 대한 전문지식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2003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최고경영자 과정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에게서 들었습니다. 코오롱유화가 기저귀의 원료인 고흡수성수지를 유한킴벌리에 공급하다 보니 문 사장과 자연스레 친분이 이어졌거든요. ‘일단 시작하면 제대로 끝맺자’는 게 제 신조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해외 출장 갈 때를 제외하곤 환경대학원 수업에 결석한 적이 없어요. 해외 여러 기업의 환경경영 사례를 보면서, 환경에 대한 투자는 ‘코스트 센터(Cost Center)’가 아니라 ‘프로피트 센터(Profit Center)’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배 사장은 CEO가 된 이후 환경 개선에 관한 사원들의 제안을 단 한 차례도 흘려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수익 창출에만 몰두하는 사업본부장들에게 “눈앞의 이윤보다 환경 투자로 인해 몇 년 후 돌아올 더 큰 이익을 생각하라”고 독려했다. 사원들은 환경 투자에 적극적인 CEO를 보며 환경경영을 위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놓기 시작했다.

    “기업이 대개 제품 제조 공정은 잘 가르쳐주지 않아도, 폐수처리 시설은 별 거리낌 없이 개방하잖아요. 많은 기업이 환경과 관련된 기술은 타사와 공유하려고 합니다. 환경 관련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는 회사라도 다른 기업의 기술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결국 직원과 사장이 환경 보호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환경경영의 성패가 달려 있어요.”

    방출 가스는 보일러 연료로

    현재 코오롱유화는 국내 사업장 4개소(울산, 인천, 김천, 여수)와 해외 사업장 1개소(중국 쑤저우)에서 각종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석유수지, 페놀수지, 고흡수성수지, 폴리우레탄수지 등의 폐유제(廢油劑)로 배출 농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코오롱유화는 환경보전법 규제치보다 월등히 엄격한 수준으로 폐수를 처리해 방출한다.

    -지방 사업장의 환경은 어떻게 관리합니까. 울산공장과 김천공장은 환경인증인 ISO 14001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지방 공장은 본사보다 더욱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공장의 청결도는 곧 기업의 신뢰도와 연결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공장 식당은 거의 호텔 수준입니다.

    울산공장은 특별대책 지역으로 강력한 배출기준이 적용되고 있어 청정연료인 지방족계 용제를 사용해 오염물질의 배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는 공정에서 방출되는 여러 가지 가스를 밀폐화해 보일러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고요. 덕분에 1년에 2억원 정도를 절약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울산공장이 2003년 ISO 14001을 받았고, 2002년 악취물질 소각과 관련해 울산지방검찰청이 주관한 환경 세미나에 환경 개선 모범사례로 발표되기도 했지요.

    김천공장은 매일 700~800㎥의 방류수를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소각처리 하던 폐수는 고농도 처리시스템을 거쳐 방출하고요. 모든 공장은 공히 연료 파이프에서 누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준공된 여수 공장과 올해 3월 준공된 중국 쑤저우 공장에도 다른 공장과 비슷한 수준의 엄격한 환경 기준을 도입하려 합니다.”

    -그래도 ‘석유수지’ ‘페놀수지’ 하면 강한 휘발성 냄새나 환경오염부터 떠오르는데요.

    “우리가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자동차를 아예 타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요. 대신 자동차 이용을 조금 줄이거나 무공해 자동차 연료를 개발하는 방법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석유수지나 페놀수지도 쓰지 않을 수는 없어요. 코오롱유화가 할 일은 생산 공정에서 유해 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고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죠.

    먼저 아스팔트 도로에 흰 선을 긋는데 사용되는 석유수지를 예로 들까요? 석유수지는 액체에 녹여 사용하는데, 이걸 녹이는 용제가 바로 유해물질인 톨루엔이에요. 그래서 톨루엔이 아닌 물을 용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수계 석유수지’가 곧 탄생할 전망입니다.

    또한 매립할 때 잘 분해되는 고흡수성수지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어요. 기저귀와 생리대의 원료로 사용되는 고흡수성수지는 자기 무게보다 수백배 많은 물을 흡수하는데 이후 처리에 관련된 문제가 환경에 골칫거리입니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들이 1회용 기저귀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겠죠.”

    그의 적극적인 주도 아래 코오롱유화의 환경 투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경상투자 대비 20%인 10억원을 환경 부문에 지출했고, 올해는 폐수처리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26억원(경상투자 대비 35%)을 환경투자비로 썼다. 2003년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환경경영 방식으로 품질경영체계(ISO 9001), 환경경영체계(ISO 14001) 및 안전보건경영체계(OHSAS 18001)를 융합한 품질·환경·안전·보건(ESHQ)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네 가지 분야는 단어만 다를 뿐,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더라는 것. 배 사장은 “정확한 금액을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인 환경 투자와 효율적 시스템 구축이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부연했다.

    환경에 대한 열정은 그의 ‘대외 감투’에서도 잘 드러난다. 환경재단 감사, (재)서울그린트러스트의 CEO 자문위원, 환경 보호에 뜻이 있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매출의 1만분의 1을 기부하는 ‘만분클럽’ 회원…. 그는 이것으론 모자라다는 듯 “회사를 더욱 키워야 사회와 환경에 많이 환원할 수 있다”고 욕심을 내비친다. 이 직책들은 그저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배 사장의 적극적인 실천과 연결되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회원사인 코오롱유화는 서울을 쾌적한 생태환경도시로 만드는 데 동참하고 있다. 녹지확대 사업을 펼치는 그린트러스트의 취지에 공감하며, 현재 서울에 300여 평의 숲을 조성, 관리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가족과 함께 ‘코오롱유화의 숲’에 꼭 들르라”고 권유한다. 사원 가족들이 이곳에 와본다면 ‘내 남편이, 내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가 이토록 아름다운 숲을 가꾼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배영호 사장은 ‘기업회생의 마술사’로 불린다. 1970년 한국나이론(현 코오롱)에 입사해 30년 동안 그가 발령받은 곳은 주로 기피 부서였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임을 입증하듯, 적자 부서를 그룹의 핵심으로 바꿔놓았다. 성공신화의 서막을 올린 것은 그가 1981년 6월 타이어코드 담당 부장을 맡으면서다.

    “타이어코드는 지금 코오롱그룹의 핵심 사업이지만, 당시만 해도 공장 가동률이 40%를 밑돌고 있었어요. 왜 그럴까 살펴보니 납품하는 거래처가 금호타이어 한 군데뿐이더군요. 이 회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 우리가 직격타를 맞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과감하게 세계 최고의 타이어 회사인 굿이어(Good Year)사를 공략하기로 결심했죠. 그때 동남아 몇 군데 회사만 거래처로 뚫어도 좀 쉬웠을 텐데…. 일단 품질을 높인 뒤 1년에 걸쳐 굿이어사를 설득했어요. 매일 업무 담당자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게 전부였지만…. 나중엔 ‘Y. H. Bae’라는 영문 이니셜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어렵사리 굿이어사로부터 납품 허락을 받고 나자 나머지 거래처를 뚫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죠.”

    ‘기업회생 마술사’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

    배영호 사장은 “지속적인 환경투자와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이 수익을 구축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배 사장이 타이어코드 사업부장으로 부임한 뒤 2년 만에 부서는 흑자를 기록했다. 직원이 6명에 불과했던 이 부서는 일약 사업본부로 승격됐다.

    1998년 배 사장은 위기에 처한 코오롱유화와 코오롱제약의 사장을 겸임하며 또 한 번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1998년 사장 부임 당시 코오롱유화는 매출이 1600억원에 불과한 ‘작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령탑을 맡으면서 수익과 외형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석유수지를 생산하는 여수공장이 준공되면서 석유수지 부문 연산 8만t으로 세계 4위 수준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그 결과 올해 코오롱유화의 매출액은 4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회생 마술사’

    적자에 허덕이던 코오롱제약을 부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1998년 코오롱제약의 매출액은 426억원, 순이익은 19억원 적자였다. 부채비율은 363%에 달했고, 직원들의 이직률은 40%를 넘나들었다. ‘중환자’와 같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당시 코오롱제약은 잘못 건드리면 금방 죽을 것 같은 중환자였어요. 탐문해봤더니 내부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가장 쇼킹한 방법을 썼습니다. 모든 직원들에게 똑같이 빳빳한 신권 100만원을 넣은 봉투를 돌린 거지요. 선금을 지르는 건 다 믿을 만하니 그런 거 아닙니까.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리해고 대신 마구잡이로 벌여놓은 화장품, 의료기기 사업부터 정리했어요. 부임하던 해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돌리는 데 든 비용은 3억원이었고, 그 돈을 받은 직원들은 그해 19억원의 적자를 내던 회사를 이듬해 흑자로 돌려놨습니다. 죽어가는 환자를 튼튼하게 회복시킨 뒤 저는 기쁘게 물러났지요.”

    적자가 날 때 직원에게 격려금을 돌린 경영인의 역발상은 지금도 ‘경영 교과서’의 한 장으로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배 사장은 건국대 겸임교수로 위촉되기도 했다.

    “공대 출신이 무슨 경영을 하냐고 하는 사람도 많습디다(배 사장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경영이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는 이치와 똑같거든요.

    CEO에겐 동물적인 감각과 결단력, 미래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결단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주변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요. 적자 위기의 코오롱제약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돌린 것도 그들과 부단히 대화하며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결정의 타이밍도 중요해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긴 어려우니까요. ‘무엇이 최선일까’ 결정을 미루다가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두는 거죠.”

    현재 석유화학업계가 처한 현실이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코오롱유화는 유례없는 원유가 폭등 및 기초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창사 이래 최초로 4분기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외부환경의 악화에 대응해 코오롱유화는 리스크 경영, 사업 합리화 검토 등 다각적인 방안을 실행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악순환은 단기 처방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배 사장이 그 타개책으로 내놓은 게 ‘사내 가치혁신’ 활동이다.

    여수공장은 ‘블루오션’

    그는 최근 전국의 사업장을 돌며 ‘사내 가치혁신’과 ‘블루오션’ 전략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범람으로 ‘레드오션’에 빠진 석유화학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비수익 사업은 과감히 제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자”는 것이 그 요체다. 특히 제거(Eliminate), 감소(Reduce), 향상(Raise), 창조(Create)해야 할 요소들을 발굴해 과감히 실행하자는 가치혁신의 핵심 방법론을 임직원들에게 강조한다.

    -석유화학업계의 ‘블루오션’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자는 것이 바로 ‘블루오션’ 전략 아닙니까.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거나 월등한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방법이 있겠지요. 비근한 예로 코오롱유화가 지난해 준공한 여수공장은 바로 석유화학업계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석유수지는 코오롱유화가 국내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제품입니다. 그러나 석유수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른 업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열려 있었죠. 그래서 다른 업체의 진입을 막고 원료를 선점하기 위해 석유수지의 원료가 생산되는 전남 여수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진입장벽이 높으면 다른 기업이 쉽게 시장을 넘보지 못하거든요.

    450억원을 들여 석유수지 연산 2만t의 여수공장을 짓겠다고 하자 반대여론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공장이 준공된 뒤에는 비판적인 의견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예상보다 제품 판매가 잘 돼 처음부터 공장가동률이 100%를 기록했고, 곧바로 증축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여수공장의 등장으로 코오롱유화는 석유수지 생산에 있어 세계 4위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고요.”

    중국에 페놀수지 공장 준공

    여수공장은 무엇보다 코오롱유화의 자체 연구 인력이 독자 기술로 개발·준공한 고부가가치 생산시설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이 공장을 짓기 전 코오롱유화는 1976년 일본석유화학과 합작한 이래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 모두 70여 억원이 넘는 기술이전료를 지급했다.

    배 사장의 블루오션 창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3월엔 중국 쑤저우에 페놀수지 공장을 준공함으로써 세계 선두업체보다 앞서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시장 내 코오롱유화 제품의 입지를 강화하고,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수요가 한정돼 있는 만큼, 해외 진출의 필요성이 절실했죠. 페놀수지는 목재접착제나 건자재에 주로 쓰이는데, 건설 붐이 일고 있는 중국에서 건자재의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명약관화죠. 한국에서는 기술연구가, 직접투자로 건립된 쑤저우 공장에선 제품 생산이 중점적으로 이뤄질 거예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동물적 감각의 경영인.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기피 부서를 기업의 핵심 ‘캐시카우(돈줄)’로 변모시킨 ‘기업회생의 마술사.’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주름살 없이 팽팽한 피부를 지닌 배영호 사장은 청년 같은 에너지로 코오롱유화의 미래를 말한다. ‘세계 석유수지 톱3 메이커 도약, 연매출 1조원 돌파’라는 그의 소망도 머지않아 이뤄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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