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 산삼과 성분은 비슷하지만 약효는 훨씬 떨어지는 인삼을 임신부에게 처방할 땐 기와 혈이 부족한 상태라는 진단을 내린 경우다. 팔물탕이란 약제를 처방하는데, 인삼을 비롯해 백출, 백복령, 감초, 숙지황, 백작약, 천궁, 당귀 등의 약재가 들어간다. 인삼을 단독 처방하면 해로울 수 있지만, 8가지 약재가 혼합되면 인삼은 기와 혈을 조절하는 구실을 한다. 물론 임신기간 중 온몸에 열이 나고 축축해지는 ‘습열(濕熱)’ 상태의 증상엔 인삼을 처방해선 안 된다. 인삼이 임신부에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임신 시엔 함부로 먹어선 안 되는 약재다.
아무튼 민승호의 죽음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잠 못 들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잠이 오지 않는 원인 중 가장 큰 건 역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키고 혈압을 오르게 하며, 위가 아프고 얹히는 등 열을 받는 상황으로 만든다. 결국 인체엔 양기가 넘치면서 음기가 줄어 불면 상태가 된다. 커피, 콜라 등 음료수도 신경을 흥분시키고 잠이 오지 않게 한다. 현대의학에서 보면 갱년기나 갑상선질환, 당뇨, 협심증은 음기를 소진해 불면증을 야기하는 원흉이다.
잠들기 힘들어하던 고종이 승하하던 날 점심때까지 처방된 약물도 온담탕이다. 온담탕 속 대표 약물은 반하(半夏)다. 반하는 보리밭에서 많이 자란다. 속이 더운 까닭에 보리밭 사이에 숨어 해를 피해 자라며 보리농사가 끝나 쟁기질할 때 캐낸다. 속이 더운 식물이 어떻게 잠을 잘 오게 할까. 답은 그 이름에 담겨 있다. 반하는 하지까지는 잎을 펼치지만 이후론 잎을 반으로 줄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반하라는 이름이 붙었다. 반하엔 양이 불타오르는 걸 줄여 음으로 보내는 오묘한 특성이 내재한다. 이는 양을 이끌어 음으로 보낸다는 ‘도양입음(導陽入陰)’으로, 양을 이끌어 음을 활달하게 한다는 뜻이다. 현대의학으로 보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잠이 오게 하는 것이다.
반하와 산조인
온담탕에 가미하면서 잠이 잘 오게 하는 대표적 약재는 산조인(酸棗仁)이다. 산조인은 TV드라마 ‘대장금’에도 등장해 유명해졌다. 중국 사신이 와서 장금에게 수청을 들게 하자 그에게 먹여 잠재운 약재다. 대추나무 종류인데, 크게 자라는 건 대추이고 빡빡하고 작게 여러 개가 자라는 건 산조인이다.
산조인은 신맛을 지녔으며 간을 보한다. ‘본초강목’은 그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 누우면 피는 간으로 간다(간은 근육을 주관하기에 사람이 활동을 그치면 피는 간으로 돌아오고 활동하면 근육으로 스민다). 피가 안정되지 못하여 누워도 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한다.”
이 점도 음기와 통한다. 간장으로 수렴하는 건 혈액이며, 음기다. 산조인의 산(酸)은 신맛으로 수렴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에서 사과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해가 떠오르면 환해지면서 만물이 깨어난다. 반면 달이 뜨는 밤이면 사물을 밝히던 빛은 흐려지기 시작해 이내 어두워진다. 태양은 밝은 양기를 주관하고, 달은 어둡고 서늘한 음기를 주관한다. 잠은 달과 같은 음기가 성할 때 잘 오고 음기가 줄면 오지 않는다. 동의보감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음기가 줄어들어 양기가 성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잠을 잘 오게 한다고 알려진 건 상추다. 상추는 본래부터 음기의 상징이다. 여성의 욕망을 가리킨다. 상추의 속명은 은근초다. 숨어서 불태우는 음욕과 연결되는 말이다. 고추밭 이랑 사이에 심은 상추일수록 약이 올라 상품으로 잘 자란다고 하며 텃밭에서도 보이지 않게 파종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욕할 때 ‘고추밭 상치 가리는 년’이라고 하면 곧 남편을 위하는 척하며 자신의 음욕을 채운다는 나쁜 의미가 숨어 있다. 본초강목에서 상추가 신장에 좋다고 한 것엔 내부의 음액을 도와 정액을 잘 만든다는 뜻이다. 속이 찬 사람이 먹으면 설사를 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경련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에 휘말리면서 3·1운동으로 이어지게 한 중요한 사건이다. 1919년 1월 21일 새벽 1시 15분경부터 증상이 시작돼 새벽 6시 30분 중태에 빠지는 과정에서 당시 고종을 가장 먼저 진찰하고 임종을 지킨 의사는 일본인 여의 도가와 기누코다. 당시 주치의였던 가미오카의 몸이 불편해지면서 대신 고종을 진찰한 여의다. 1월 23일자 경성일보는 도가와를 인터뷰하고 그의 술회를 게재했다.
고종은 발병하기 4, 5일 전부터 “다소 식욕이 없고 잠이 잘 오지 않네” 하고 몸 상태를 설명했는데, 발병 전 의자에 앉아 있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도가와는 발병 연락을 받은 후 허둥지둥 전의와 참궁을 했는데, 2회부터 7회까지 고종의 경련이 계속됐다. 맥박이 2, 3회에는 110회, 4회부터는 130에서 140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체온도 37도7부로 올라갔다. 8회째부터는 의식이 완전히 없어졌다. 경련은 12회까지 계속됐고, 고종은 오전 6시경 훙거(薨去)했다.
고종의 발병에서 임종까지의 시간별 경과를 정리하면 이렇다. 1월 20일 오전 11시 고종은 촉탁의 안상호가 배진한 뒤 아침식사를 했다. 오후 3시에 가미온담탕을 복용하고 가미오카와 도가와의 진찰을 받았다. 오후 9시엔 소화제로 가미양위탕을 복용했다. 밤 10시엔 저녁식사를 했고, 전의 김형배와 촉탁의 안상호의 진찰을 받았으며 12시와 1월 21일 새벽 1시 사이에 자다 발병했다. 전의 김형배가 청심환을 처방하고 도가와가 참궁해 진찰했으며 새벽 2시 30분에 안상호가, 4시 53분엔 가미오카가, 5시 30분엔 모리야스 하가가 배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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