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 이상의 쾌감을 준다. 정병국 의원(한나라당)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이유도 비슷하다. 신체를 단련시키는 것은 물론 타인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게 한다. 남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이 오히려 사람 속으로 파고들 용기를 배가시키니 참 아이러니하다.
정병국(鄭柄國·48). 몸에 붙는 트레이닝복 차림에 헬멧, 선글라스, 그리고 바퀴 달린 신발…, 가볍게 일어나 부드럽고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국회의원’이라는 단어가 아우를 수 있는 이미지는 없다. 나이보다 젊고 탄력 있어 보이는 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강변을 달리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어요. 스피드가 느껴져 재미있고, 조깅할 때보다 시야도 훨씬 넓어져요. 무엇보다 헬멧에 선글라스까지 쓰면 누구도 못 알아보니 자유롭죠.”
오늘은 출발이 좀 늦었다. 평소 그가 집을 나서는 시각은 6시30분. 압구정동 집에서 국회의사당까지 한강 줄기를 따라 40여 분 만에 주파한다. 국회 건강단련실에서 마무리 운동과 샤워를 하고 나면 하루 일정을 시작할 준비 완료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해 국회 건강단련실에서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있는 정병국 의원.
“전신운동이 되고 재미도 있는데, 주말에 일부러 시간을 내려니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아침에 타기 시작했는데 운동량도 적당하고, 사람들 사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어 좋아요.”
매일 인라인스케이트로 출근하는 건 아니다. 조찬모임이 잦아 일주일에 한두 번만 이렇게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자동차로 출근하는 날은 러닝머신 위에서 30분간 뛰는 것으로 아침 운동을 대신한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지난 총선 때 그가 재선에 성공하는 데도 단단히 한몫했다. 거리 유세를 마치고 난 저녁 무렵,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지역구(경기도 양평·가평)를 누비면 주민들과 훨씬 밀착되는 게 느껴졌다.
“복장을 갖춰 입고 공원에서 주민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아이고 어른이고 깜짝 놀라요. 격의 없이 가까워지는 기회가 됐죠.”
정 의원은 요즘 틈나는 대로 여섯 살짜리 딸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친다. 첫아이와 아홉 살 터울이 지는 늦둥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짬을 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는 그는 “금요일쯤 되면 딸이 ‘이번 일요일엔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겠죠?’ 하고 묻는데, 그 말을 저버릴 수 없다”며 허허 웃는다.
정 의원이 두 아이와 가끔 찾는 곳이 있다. 요즘처럼 나들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더울 때 특히 애용하는 장소다. 바로 평창동 일대의 화랑들. 어린이날에도, 북적대는 놀이공원을 찾는 대신 화랑 순회를 했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설치미술이나 비디오아트를 보면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경이감이 생기죠. 같은 사물을 놓고도 작가의 인상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미술세계를 접하고 있으면 경직됐던 사고가 유연해지고, 인식의 폭도 넓어져요.”
정 의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으로 재직할 때도 점심약속 장소를 되도록이면 인사동으로 정했다고 한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화랑에 들르면 새로운 그림을 보고, 전시장에 마련된 다과도 공짜로 먹을 수 있기 때문.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문화관광위원회에 소속돼 미술계 현장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다. 2003년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법안이 폐지되기까지 정 의원의 노력이 컸다는 걸 미술계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국회 의원실에서 하루 일정을 챙기는 정 의원.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지금까지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그는 문화 예술 전반에 두루 관심을 갖고 있다.
정 의원은 자신이 ‘웰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적인 업무와 그로 인한 고민에서 벗어나는 건 아주 잠깐이지만, 그 짬을 내어 충분히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는 건 핑계죠. 남는 시간이 많으면 오히려 운동을 안 할 거예요.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운동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맛이 있는 거죠.”
웰빙도 부지런해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