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1초들 _ 곽재구 지음, 톨, 352쪽, 1만3800원
살다 보면 문득 삶의 순간들이 먹먹해질 때가 온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 출근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멋진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문득 이게 내가 꿈꾼 삶인가 싶은 생각이 찾아오는 것이다. 월급날을 기다려 꼬박꼬박 할부원리금을 갚아가면서도, 주말 오후 가족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도 봄날 꽃밭 위의 배추흰나비처럼 팔랑팔랑 이 생각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생이 무엇인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무렵 나는 내 인생의 업이 시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 생각을 했고 낮 동안 이리저리 시정을 떠돌면서도 시 생각을 했고 누군가의 집에서 하룻밤 비럭잠을 자면서도 시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쓰지? 그 무렵 내가 택한 방법은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금 내게로 오는 모든 한 초 한 초를 기억하고 그들의 습성과 사랑과 슬픔을 다 껴안은 뒤에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모두들 가난했고 정치적 현실은 암울했지만 내가 지닌 1초 1초를 다 느끼고 그들의 주인이 되리라 생각했을 때 행복의 느낌이 찾아왔다.
그 무렵 나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를 사랑했는데 그의 시에는 인간 세상이면서도 신들의 세상에 펼쳐지는 것 같은 순수함과 신비의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언젠가 타고르의 고향을 찾아가 그의 시편들을 그의 모국어인 벵골어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바로 그 꿈의 실현이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1년 반을 나는 타고르 시의 이상향 산티니케탄에서 보냈다. 1년 중 9개월 동안 45℃ 이상의 폭염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지극히 가난했지만 나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타고르가 왜 이곳을 그의 이상향으로 삼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된 숲길을 거닐며 가난한 사람들의 맑은 미소와 눈빛을 대하는 동안 나는 내게로 오는 1초들의 행복한 숨결을 느꼈다. 산책하고 시 쓰고, 가난한 이들과 밥 먹고 웃고 돌아와 책 읽고 글 쓰고, 아무도 없는 한낮의 고요한 숲길에 앉아 숲 향기를 맡다가 다시 시 생각을 하는 동안 많이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온전히 내가 느끼고 소유하는 시간이 내 생애 두 번째 찾아온 것이다.
누군가 내게 행복에 대해 물어온다면 나는 자기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1초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자기 눈앞의 1초들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한다면 그때 이 세상은 우리가 꿈꾼 낙원이 되지 않겠는가. 감자 두 알과 짜이 한 잔으로 식사를 마치고 숲길을 거닐던 산티니케탄의 1초들이 그립다.
곽재구 │시인, 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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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의 끝 _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황성원 옮김
기상 이변이 더 이상 ‘이변’이 되지 않는 시대다. 가뭄·홍수·폭염이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인인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인류와 문명이 겪어야 할 운명의 전조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문명은 행성의 신진대사를 붕괴시키고,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에 맞먹는 힘을 지구에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역사상 유례없던 ‘긴 여름’, 말하자면 인류의 황금기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인정하자. 지금까지 인류는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현대 문명이 자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설명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부제는 ‘지구에게 문명과 인류의 생존에 대해 묻다’이다. 아카이브, 422쪽, 1만8000원
제국의 탄생 _ 피터 터친 지음, 윤길순 옮김
미국 코네티컷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수학과 교수인 저자는 러시아 모스크바대와 미국 뉴욕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는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세계사를 연구하는 통섭형 연구자다. 그가 이 책에서 논의하는 것은 ‘매번 전투에서 지기만 했던 로마가 어떻게 거대 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다. 비슷한 경쟁자를 제치고 성공적으로 도약하는 집단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강력한 내적 결속, 집단행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자본, 이른바 ‘아사비야’다. 저자는 12세기 무슬림 사회학자 이븐 할둔이 제시한 ‘아사비야’라는 개념을 원용해 ‘사막의 혼란 속에서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탄생시킨 이 역량이 세계 모든 제국을 탄생시킨 씨앗’이라고 말한다. 웅진지식하우스, 552쪽, 2만5000원
사르트르와 카뮈 _ 로널드 애런슨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20세기 지성계의 두 거인, 사르트르와 카뮈의 논쟁사’라는 설명이 붙은 책. 저자에 따르면 사르트르와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만나 1951년 카뮈가 ‘반항적 인간’을 낼 때까지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그러나 이 책 출간 이후 사르트르가 카뮈를 ‘현실적 갈등과 동떨어져 있는 지식인’이라고 비난하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 카뮈가 사르트르를 ‘역사의 방향으로 의자를 놓지 못한 자’라고 공격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됐다. 미국 웨인주립대 교수로 사르트르 전문가인 저자는 ‘자유’와 ‘악 앞에서의 책임’ 문제에 공감대를 갖고 있던 두 사람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를 꼼꼼히 짚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20세기를 특징짓는 여러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사가 완성됐다. 부제는 ‘우정과 투쟁’이다. 연암서가, 546쪽, 2만50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칼레발라 _ 엘리아스 뢴로트 엮음, 서미석 옮김, 물레, 768쪽, 3만2000원
우리나라에서 환상문학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핀란드의 신화적 영웅들’이라는 부제가 붙은‘칼레발라’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반지의 제왕’을 쓴 작가 톨킨은 자신이 ‘칼레발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칼레발라’는 핀란드 지역에서 수천 년 동안 구전된 신화로, 1849년 의사이자 문학가인 엘리아스 뢴로트가 수집·편찬했다. ‘칼레발라’라는 제목은 핀란드와 붙어 있는 러시아 지역의 지명 ‘카렐리아’ 혹은 ‘카렐리아 지역의 사람(영웅)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이 나온 후 유럽 각국에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독일 언어학자 하이만 슈타인탈은 이 책을 ‘일리아스’ ‘니벨룽겐의 노래’ ‘롤랑의 노래’와 함께 세계 4대 서사시 중 하나로 꼽았다. 핀란드의 화가 A. 갈렌 칼렐라는 ‘칼레발라’의 내용을 그림으로 재현했고, 음악가 시벨리우스는 이 작품을 테마로 한 여러 음악을 작곡했다. 핀란드의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이 책을 읽도록 한다. 핀란드인이라면 누구나 ‘칼레발라’의 영웅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나이 많은 현인 베이네뫼이넨, 대장장이 일마리넨, 미남이지만 바람둥이인 레민케이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남쪽 지방 출신으로 북쪽 포욜라 지방의 늙은 여인 로우히와 갈등 관계에 있다. 이들 주인공의 결혼 이야기는 ‘칼레발라’의 주된 내용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핀란드 민족의 기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베이네뫼이넨에게서는 명상적인 안정과 지혜, 일마리넨에게서는 일상의 근면함, 레민케이넨에게서는 유희를 즐기는 무모함이 엿보인다.
이 책이 의미심장한 또 다른 이유는 시와 노래가 가진 힘 때문이다. ‘칼레발라’의 시에는 신화적인 요소와 초자연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다. 세계와 사람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렇다. 이것이 진짜 역사는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과 옛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핀란드 민족시와 노래의 원천이 된다.
‘칼레발라’는 지리적 특성상 북유럽 신화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거칠고 위협적인 대자연에 대한 묘사, 선과 악으로 상징되는 두 세력 간의 투쟁이 근간을 이루는 서사적 구조,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어떤 물건(삼포)을 손에 넣으려는 등장인물의 여정과 다툼,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웅장한 분위기 등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다른 북유럽 신화와 달리 비장하거나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하지 않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옛사람들의 일상이나 생각과 가치관 등에 대한 내용이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에서 ‘칼레발라’가 번역되기를 원했던 이들에게 이 책은 큰 기쁨을 줄 것이다.
박종훈│‘물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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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디케이드 _ 조지 프리드먼 지음, 김홍래 옮김, 손민중 감수
저명한 미래예측가로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는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과연 테러리즘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중국은 과연 세계 최대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까, 동북아 한중일 3강 체제에서 힘의 균형은 누가 장악할 것인가 등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10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국제사회 장악력이 떨어지는 사이 이란이 중동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했고, 중국 경제는 쉬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프랑스-독일 동맹의 갈등, 취약한 경제 여건을 가진 회원국의 위기 등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지 저자는 다양한 논거를 통해 제안한다. 한국판에는 “이제 동북아의 요충지는 한국이 될 것이다”라는 저자의 서문이 실려 있다. 쌤앤파커스, 384쪽, 1만6500원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_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이덕임 옮김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생명과학 전임교수인 저자는 용기를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세태에 맞서 “겁쟁이야말로 생물체의 기본 활력소”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많은 나라와 사회에서 칭송받는 용감한 병사와 전사들은 수세기 동안 ‘용기’의 희생양이 됐다. 그들의 행동이 찬양받고 기념비에 새겨진다 한들 그들에게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 범죄에 가까운 이념이나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는 지나치게 겁이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며 이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할 가능성도 크다. 저자는 “다윈이 적자생존 개념에서 설파한 ‘적자(適者)’는 가장 용감하거나 겁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체”라고 말한다. 이가서, 267쪽, 1만3500원
검은 우산 아래에서 _ 힐디 강 지음, 정선태·김진옥 옮김
미국 샌프란시스코 문화교차연구소 등에서 한국학을 강의한 저자는 한국인과 결혼한 미국인이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51명을 인터뷰해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기록했다. 개인의 체험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미시사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다. 인터뷰이들은 미국 이주 전 식민지 조선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옷은 어떻게 입었는지, 같은 마을에 살았거나 같은 학교ㆍ직장에 있었던 일본인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 생생히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창씨개명, 신사참배, 일본군위안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다.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 황해도 등에 살다 미국으로 이주한 16명의 증언은 남쪽에서 거의 연구되지 않은 북한의 식민지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사료로 가치가 높다. 부제는 ‘식민지 조선의 목소리 1910-1945’다. 산처럼, 288쪽, 1만3000원
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빅뱅 이전 _ 마르틴 보요발트 지음, 곽영직 옮김, 김영사, 464쪽, 2만5000원
현대 과학의 두 기둥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이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중력이론을 대신할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안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질량에 의해 변형된 시공간의 곡률에 의해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양자물리학은 불연속적인 물리량을 파동함수를 이용해 다루고 그 결과를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물리학이다. 물리량의 기본 단위가 매우 작아 연속적인 양으로 취급해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 거시적인 물리현상을 설명할 때는 양자물리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원자보다 작은 세계를 기술할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정지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1929년 허블은 측정을 통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빅뱅이론이 등장한 것은 1948년이다. 가모와 알퍼는 1948년 4월1일에 출판된 알파-베타-감마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우주가 한 점에서부터 팽창을 시작했다는 빅뱅우주론을 제안했다. 그 후 1964년에 빅뱅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됨으로써 빅뱅우주론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우주론이 되었다.
그러나 빅뱅우주론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하면 우주가 작아짐에 따라 우주의 밀도와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가 결국 무한대 값을 갖게 되는 특이점에 이른다. 특이점은 모든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반상대성이론은 일반상대성으로도 다룰 수 없는 무한대의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가 일반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어떤 물리법칙도 성립하지 않는 특이점에서 시작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우주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우주의 시작에 대한 이런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특이점이 만들어지지 않는 우주론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도 연속적인 양이 아니라 최소 단위의 정수의 배수로만 증가할 수 있고 감소할 수 있는 양으로 다루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물리량은 불연속적인 양만 가능하다는 양자물리학의 기본 가설을 시간과 공간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특이점이라는 괴물을 퇴치하고 빅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양자중력이론이다.
마르틴 보요발트가 쓴 ‘빅뱅 이전(Once before Time)’은 양자중력 이론 연구에 헌신해온 한 젊은 과학자가 자신과 동료들이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한 책이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하듯이 양자중력 이론은 매우 복잡하다. 최종적으로 성공한 이론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주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과 정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곽영직│수원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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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_ 그레고리 N. 데리 지음, 김윤택 옮김
미국 로욜라대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가 이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과학의 가치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게 저술의 목적이다. 논의 방식은 흥미롭다. 벼룩이 사람만큼 크다면 수백m 높이로 점프할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벼룩의 점프 능력을 결정하는 힘은 다리의 단면적과 비례해 증가한다. 반면 몸무게는 부피에 비례해 증가한다. 만일 벼룩이 수백 배 커진다면 체중은 힘에 비해 수백 배 더 늘어날 것이다. 벼룩은 설 수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신화 속 거인도 존재할 수 없다. 거인이 보통 사람보다 5배 크다면, 뼈는 25배 강하겠지만 그 뼈가 지탱해야 할 무게는 125배가 된다. 에코리브로, 504쪽, 2만5000원
철학자들의 식물도감 _ 장 마르크 두르앵 지음, 김성희 옮김
파리자연사박물관의 철학 및 과학사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식물학과 철학의 관계를 논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식물학은 과학의 사회사·물질사 영역에 속하면서 식민지 개발 역사를 비롯한 정치사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동시에 철학적이기도 하다. 헤겔은 저서 ‘정신현상학’에서 ‘철학적 체계의 다양성이 참과 거짓의 대립으로 축소되지는 않으나 진리의 점진적 발전을 가져온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식물학적 비유를 사용했다. “봉오리는 꽃이 피면 사라지는데, 이는 꽃이 봉오리를 반박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열매가 나타나면 꽃은 거짓 실체였던 것으로 선언되고 꽃 대신 열매가 식물의 진리로 들어선다”는 내용이다. 헤겔 외에 장 자크 루소, 라이프니츠 등 저명한 철학자가 식물학을 철학 설명의 도구로 사용한 사실이 흥미롭다. 알마, 467쪽, 2만5000원
낮은 한의학 _ 이상곤 지음
한의학 박사인 저자가 역사와 일상에서 찾아낸 우리 의학 이야기를 모았다. 저자는 허준의 ‘동의보감’이 탄생하게 된 당대의 사상적 배경을 찾아가고, 절제와 금욕을 강조하느라 정작 왕의 건강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왕들과 대신을 치료하던 역사 속 임상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대장금은 최고의 의사였나’ ‘화타가 죽은 이유’ ‘퇴계의 장수법’ 등 흥미롭게 읽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연산군이 백마에 집착한 이유’ ‘정조 암살설의 한의학적 진실’ 등 전문가의 눈으로 역대 왕의 건강을 분석한 부분도 재미있다. 저자는 더불어 우황청심환, 공진단, 경옥고 등 일상에서 접하는 약물의 원리를 소개하고, 한의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처방과 치료에 대해 비판한다. 사이언스북스, 352쪽, 1만5000원
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새로운 자본주의 선언 _ 우메어 하크 지음, 김현구 옮김, 동아일보사, 308쪽, 1만4800원
세계 경제의 전 지구화와 더불어 저자가 이 책 ‘새로운 자본주의 선언’에서 말한 대로, 지구 행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좁은 세계, ‘방주(方舟)’와 같은 곳이 됐다. 이 방주의 경제에서 산업화 시대 경제 논리에 사로잡힌 기업들은 ‘심층적 부채(deep dept·사적비용의 사회적 전가와 사회적 이득의 사적인 전유)’의 누적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결국 그 부채의 상환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 상환 요구의 구체적인 형태가 바로 세계적인 에너지·식량·금융의 3중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산업화 시대 자본주의 모델의 지속 불가능성을 고통스럽게 입증하고 있다.
당신이 방주의 책임자라면 거대한 불균형 위에 이윤과 성장이라는 낡은 전리품들을 올려놓기 위해 애쓸 것인가? 아니면 보다 혁신적인 방주의 관리를 고민할 것인가? 번영의 기반으로 생각되던 산업화 시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번영을 집어삼키는 함정이 되어버린 이때, 저자는 과거의 제도적 초석들과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생존의 문제임을 지적하며, 나아가 새로운 자본주의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순환적 가치 사이클, 민주적 가치 대화, 진화적 우위의 달성을 위한 철학, 시장의 완성, 인간의 삶에 유의미한 차이를 낳는 더 좋은 재화의 창조가 바로 이 ‘새로운 자본주의’ 건설의 밑그림이다.
언뜻 이 모든 것이 도덕적 명령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런 전환이야말로 자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국 경제는 재벌에 고도로 집중돼 있고, 재벌은 창조적 혁신과 사회적 책임에 둔감하다. 2000년대 들어 무수히 생겨나던 신 산업과 기업은 이제 재벌의 손에 집중됐고, 독립적인 기업마저 재벌의 행태를 닮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지속가능성의 시험대에 올라 있는 한국 경제와 기업 현실을 성찰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새로운 현실은 새로운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심층적 부채’ ‘더 좋은 재화(betters)’ 등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런 용어들을 적절히 번역하기 어려워 트위터(@umair)를 통해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번역만으로 속뜻을 직접 전달하기 어려운 용어들은 저자의 추가 설명에 따라 역주를 달았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이 단순한 선언을 넘어 앞으로 수많은 방주의 관리자들에 의해 진화하고 완결될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위기라고 느끼고 어느 방향으로 조타수를 돌릴까 고민하는 방주의 선장이라면 저자가 연구한 15개 건설적 자본주의 기업의 특징이 훌륭한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현구│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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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3 _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중국 출신의 국제금융학자인 저자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중국 및 아시아 경제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2009년 미국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올해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40명’ 중 한 명으로 꼽힌 그는 이 책에서 아시아 지역의 화폐 변화와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논의한다. 미국 화폐 역사를 분석한 ‘화폐전쟁’ 1권, 유럽의 금융 변화 과정을 연구한 2권에 이어지는 책이다. “금융자본의 돌격역량은 막강한 함선과 파괴력 강한 포로 무장한 제국의 해군보다 더 위력적”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청나라의 멸망은 군사 분야보다 금융 방면에서 먼저 시작됐다”며 금융을 분석틀 삼아 중국 현대사를 분석한다. 역사적으로 은이 화폐였음을 논증하며, 머지않아 은이 중요한 투자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랜덤하우스코리아, 580쪽, 2만5000원
회색쇼크 _ 테드 C.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책. ‘뉴욕타임스’ ‘USA 투데이’ ‘비즈니스 2.0’ 등에 원고를 기고해온 언론인인 저자는 일본, 미국, 스페인 등 세계 고령화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고령화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고령화가 야기하는 변화와 갈등이다. 그는 현대 사회 전체에 만연한 노년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사회가 노인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과 노인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이를 통해 고령화가 개인 보험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개인적·가족적 차원에서부터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시장·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적인 관심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반비, 494쪽, 2만원
읽으면 그림으로 기억되는 브레인 한자 _ 최상용 지음
원래 한자는 그림이었다. 원광대에서 기공학과 기학을 전공한 철학박사이자 명예이학박사인 저자는 이 사실에 착안해 독특한 한자 학습서를 만들었다. 출발점은 고대 경전에 나타난 한자 원형의 변화에 주목하며, 모든 글자를 그림으로 그려본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갑골문부터 금문, 소전체 등의 변화상까지 연구했고, 그림을 통해 한자가 어떻게 지금의 뜻을 담게 됐는지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자와 한글을 동시에 습득하는 것은 뇌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를 읽을 때는 좌뇌가 활동하고, 한자와 같은 뜻글자를 이해할 때는 우뇌가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읽을 때 먼저 그림을 보고 어떤 글자인지 연상한 뒤 해설을 봄으로써 양쪽 뇌를 고르게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동아일보사, 300쪽, 1만4800원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위대한 침묵 51초_ 장경수 지음, 지식의숲, 260쪽, 1만3000원
수사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말이 있고 말이 있는 곳에 설득이 있고 설득이 있는 곳에 수사학이 있다’는 경구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나 설득의 기법이 꼭 말에 의존한다고 보는 시각은 참으로 순진하고 유아적인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말을 뛰어넘어 침묵이 얼마나 뛰어난 설득의 도구로 작용했는지는 애리조나 총격사건으로 희생된 크리스티나양을 회고할 때의 오바마 연설을 떠올리기만 해도 쉽게 이해될 것이다. 또한 백 마디 말보다 언행일치의 삶 자체가 설득의 훌륭한 도구가 됐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다기화돼 그에 맞는 맞춤형 설득기법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사학 공부에 매진하던 2003년 7월 당시 방송위원회 위원장이던 노성대 선배를 만난 일이 레토릭에 관한 책을 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노 위원장을 만나 “외국 정상과의 인터뷰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12명의 외국 정상급 인사와 단독 인터뷰한 경험을 말한 순간 노 위원장은 “그 경험을 책으로 남겨 후배 기자들과 공유하면 인터뷰 교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저술 동기를 부여해줬다.
여기에 수사학이 우리 사회 갈등 조정의 메커니즘으로 피어나길 소원한 것이 또 다른 이유다.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으로까지 지적되는 막말과 추태는 날이 갈수록 그 수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 현실을 염두에 두고 그 해법을 수사학에 물어봤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개념은 수사학은 리더십의 훌륭한 도구라는 점이다. 특히 설득과 소통의 시대를 맞아 수사학이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 아래 수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관계성과 내면의 수사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수사학 말이다. 말하는 이의 진심이 전달되려면 듣는 이와의 관계 설정이 우선돼야 하고, 말하는 이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일수록 관계 설정은 더욱 중요하다. 또 설득의 열쇠는 마음을 움직이는 ‘HEART TO HEART’ 스피치에 달려 있다고 보고 내면의 수사학에 무게중심을 뒀다. 이를 기반으로 명연설의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설득의 원리를 깊이 있게 분석했다. 이와 함께 각계 지도자들이 적용할 수 있는 ‘레토릭(수사학) 리더십’을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의 모델로 소개하고자 했다.
이 책이 지도자의 말이 반드시 실천담론으로 이어져 스피치의 생명인 신뢰를 확보하는 지렛대가 되는 것에 기여하길 바란다. 또한 새로운 리더십의 모델인 레토릭 리더십이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우리 사회 각 영역을 뒤덮는 날을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길 조심스럽게, 하지만 목마르게 갈망한다.
장경수│전 KBS 보도본부국장, 언론학 박사│
New Books
팔로워십 _ 바버라 켈러먼 지음, 김충선·이동욱·이상호 옮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로 리더십 전문가인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팔로워는 리더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밝히는 팔로워의 정의는 두 가지다. ‘지위’의 관점에서 보면 상급자에 비해 권력·권한·영향력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하급자다. ‘행동’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다른 사람이 원하거나 의도하는 것에 따라주는 이가 팔로워다. 저자는 “모든 리더는 이전에 팔로워였으며, 리더의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누군가의 팔로워”라고 말하며 “리더는 팔로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좋은 팔로워가 좋은 리더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팔로워’는 효율적이고 윤리적인 리더를 따르고, 비효율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또는 둘 모두에 해당하는 나쁜 리더에게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존재다. 더난출판사, 424쪽, 1만6800원
마이 코리안 델리 _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저자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사립 기숙학교를 졸업한 뒤 시카고대에 들어갔다가 매력적인 한국인 여성을 만난다. 훗날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는 그의 아내다. 아내가 로스쿨을 거쳐 전문가로 경력을 쌓는 동안 그는 법정최저임금에 가까운 봉급을 주는, 그러나 꽤 저명한 문예계간지의 편집자가 된다. 그리고 슬슬 직업에 권태가 찾아올 무렵 처가와 살림을 합친 뒤 ‘억척스러운’ 한국인 장모와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기로 한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좌충우돌 동업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저자가 낮에는 뉴욕 중심 맨해튼에서 예술을 논하고, 저녁에는 브루클린 구멍가게에서 생계와 씨름하며, 밤에는 교외지역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한국인 식구들과 복닥거리면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정은문고, 431쪽, 1만5000원
2014 _ 이원호 지음
북한의 서해 도발과 그로 말미암은 한반도 전쟁을 그린 장편소설. 지난해 12월 출간된 상권에 이어 하권이 나왔다. 배경은 2014년이다. 서해상에서 북한 어뢰정이 남쪽으로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남북 함정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이때 백령도 상공을 비행하던 한국 전투기 한 대가 북한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된다. 이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백령도 주둔 해병 사단이 북한 옹진반도 상륙 훈련을 개시하고, 북한은 연평도 주변에서 훈련하던 남한 헬기를 향해 미사일을 다시 발사한다. 이 공격을 기점으로 남한에서 일제히 그 지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전쟁이 본격화된다는 스토리. ‘강안남자’ 등 120여 권의 책을 펴내며 대중소설 작가로 큰 인기를 모은 저자의 최근작이다. 동아일보사, 310쪽, 1만2000원